스탐노스

뮤즈의 영감이 하나 가득...

효도의 독(毒)

댓글 0

달의뒷면/화운의세상이야기

2020. 2. 3.






효도의 독()

 

    

 

   <계모 A는 전처의 아들 B를 마구 구박했지만 착한 B는 계모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며 정성을 다했다. A는 한 겨울에 죽순이 먹고 싶다고 B에게 구해오라 시켰다. , 여름에 자라는 죽순을 겨울에 구할 수 없음에도 A는 당장 죽순을 구해오라며 B를 때리며 학대했고, B는 죽순을 찾아 추위에 떨며 숲속을 헤메었다. 마침내 B의 효심에 감동한 산신령(?)이 한겨울에 죽순을 돋아나게 하여 B는 죽순을 계모에게 가져다 주었다. >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의 내용이다. B가 죽순을 구해준 뒤 계모가 B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계몽적(?) 동화는 아마도 한국 또는 중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일 것이고, 어쩌면 삼강행실도 같은 책에 실려 있을 지도 모른다. 주제는 누가 보아도 효도(孝道)’임을 알 수 있다.

   어릴적 이 동화를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효도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 동화에서 잘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당연히 계모 A이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을 한 사람은 산신령(사람은 아니지만)이다. A의 행위는 명백한 학대이며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B는 보호받아야 할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학대 속에 방치되었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더욱이 아이를 학대한 계모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동화 속의 산신령은 신()과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았다. 산신령은 겨울에 자라지 않는 죽순을 돋아나게 할 것이 아니라 못된 계모에게 벌을 주든지, 계모가 착한 사람이 되게 하든지 해서 B가 안정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 동화는 유교적 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부모의 그릇된 행동에 면죄부를 주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길렀으니 자식은 부모에게 고마워하고 효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반면, 부모는 자식을 올바르게 양육할 의무가 있으며 어른이자 연장자로서 자식에게 모범을 보일 의무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자식이라 할지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강요하고 학대하며 분풀이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유교에서는 부모에게는 이 당연한 의무를 요구하기 보다는 자식에게 부모가 무한 갑질을 할지라도 무조건 복종하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효도의 독()’이자 전근대 사회, 특히 유교 문화권인 동아시아의 오랜 악습이다.

 

   500여년 동안 이어진 조선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유교 국가였다. 이러한 문화를 전승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도 유교의 영향이 가장 강하며, 유교의 폐해도 크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이러한 악습이 만연하다. 부모와 자식은 혈연 관계이고 수직적 위계 질서가 존재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이 자식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요하거나 학대할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부모라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행동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이가 적지 않으며 분명히 자신이 잘못한 경우에도 부모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관계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어, 인간관계에서 수직적 위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윗사람의 자리를 차지한 이의 갑질이 용인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성인과 미성년자, 연장자와 나이 어린 사람, 선배와 후배, 상사와 직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갑질이 반복된다.












 

   특히 이런 경향은 노인들에게 더욱 심해서 자식뻘 되는 사람,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갑질을 하는 노인이 많다. 명백하게 자신이 잘못해서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 적반하장으로 너는 애비 애비도 없냐!”며 큰 소리 치거나 막무가내로 양보를 요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노인들은 나이가 많다는 것이 자신보다 어리면 막대해도 되는 갑질 면허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서 노인 혐오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데, 나 또한 이러한 노인들은 자주 보면서 은연중에 노인을 혐오할 때가 적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곤 한다.

 

   유교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의 발전에 큰 영향 끼쳤다. 많은 장점이 있는 사상이지만, 신분 차별과 수직적 위계 질서를 정당화하였고, 그 중심에는 ()’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를 군주에 대한 충성과 동일시하여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사회적으로 확대하였다. 그래서 군주와 백성, 어른과 아이, 선배와 후배 사이에 수직적 질서를 강화하고 군주의 지배력을 정당화하려 하였다. 이러한 유교는 수평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와는 맞지 않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청렴함이나 성실함을 강조하는 유교의 장점은 거의 사라지고 위계를 이용한 갑질이 만연하다.

 

   효()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중받아야 할 덕목이다. 부모는 자식에서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자식은 부모에게 예의를 지키고 보답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부모는 자식의 보호자이자 연장자로서 상식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언행으로 자식의 귀감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자식에게 맹목적인 복종만 요구하는 효도의 은 오히려 그 가치를 퇴색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