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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사랑의 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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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고전 13장

2020. 10. 18.

 제목 ; 사랑의 덕목 (1) / 고전 13장 4-7절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어떤 문제라도 다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정반대입니다.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옛날 고린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큰 교회였습니다. 

성도의 수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여러 가지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성경학자 '아볼로'의 가르침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끊임없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분쟁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 도파로 당파를 지어서, 

계속해서 시기하고, 경쟁하며, 다투었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그들에게 있어야 할 한 가지,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각도 해야 하고, 

무심코 하는 말속에도, 사랑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도,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사랑의 덕목을, 열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양광선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가지 색깔로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게 되면, 

열다섯 가지로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그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부족했던 순서대로, 

그것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사랑의 아름다운 덕목 가운데서, 처음 나오는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랑은 "오래 참고"입니다.(Love is patient.)

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다툼이 있었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속상한 일을 당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도 꾹 참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참지를 못하고, 

앙갚음하려고 하고, 복수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역시 오래 참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였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이후 인류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패역한 인류들을 향해서 오래 참아오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수 천년 동안 참고 또 참아오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패역한 인류들을 향해서, 오래 참아오셨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벧후 3장 9절에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래 참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들 아무도 멸망치 아니하고, 

다 회개하고, 구원의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아오시고 또 참아오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거룩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들을 향해서, 참고 또 참으신다면, 

우리도 마땅히,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참으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이 있는 곳에, 

사랑의 열매가 아름답게 열리기 마련입니다.

 

둘째로, 사랑은 "온유하며"입니다.(Love is kind.)

여기서 말하는 온유는, 정적의 의미가 아니라, 동적인 의미입니다. 

행동적이고 실천적인 온유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주로, kind라는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친절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남에게 선을 행해 주는 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어야 합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원수에 대해서, 

단순히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가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해를 선인이든지 악인이든지 구분하지 않고, 

비추어주지 아니하시느뇨? 

또, 하나님은 비를 내리실 때도 의로운 사람, 

불의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내려주지 아니하시느뇨?"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하시다면, 

자녀 된 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우심과 인자하심을 본받아서, 

누구에게라도 친절을 베풀어주고, 

누구에게든지 선대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유는, 

앞서 말씀드린 오래 참음보다도, 더 적극적인 것입니다. 

 

만약에,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래 참음입니다. 

그러나, 선으로 악을 갚아버리고, 이겨낸다면 

바로 이것이 진정한 온유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의 오른편 뺨을 때렸습니다.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오래 참음입니다. 

그러나 오른뺨을 맞고, 왼편 뺨을 돌려대면, 

그것이 바로 온유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유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스데반은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본받았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기를 돌로 치는 살인자들을 향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리할 때, 그의 얼굴은 사랑으로 천사처럼 환하게 빛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온유가 있는 곳에는 사랑의 열매가 아름답게 맺힙니다. 

스데반의 온유가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였던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온유함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서로 배타적이었습니다. 

이기적이었고, 텃세도 심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바울은 사랑은 온유한 것이라고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친절을 베풀어주고, 선을 행해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사랑은 온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을 보셨습니까? 

그것을 지적하면서, 비난하려고 들지 마십시다. 

사랑으로 그의 민망함을 감싸줄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그것을 비난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그것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온유이고, 친절이며,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 모두가 소유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셋째로,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입니다.

(Love is not jealousy.) 

사랑은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먼저 사랑이 가야 할 길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오래 참음의 길입니다. 온유의 길입니다. 

 

반면에, 사랑이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습니다. 

투기의 길입니다. 질투의 길입니다. 

사랑이 그 길로 가게 되면, 걸려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십시다. 

 

사단이 와서 유혹을 합니다.

"괜찮아, 따먹어!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마음속에 그럴듯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나님만 유독 선악을 아셔야 되는 거야? 

나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하와'입니다. 

인류 최초의 범죄는, 이와 같은 시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두 형제가, 각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형의 제사는 열납지 아니하셨습니다. 

동생의 제사만 열납 하셨습니다. 

형은 동생에 대해서, 시기했습니다. 

결국은 동생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가인'이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결국은 질투와 시기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동생만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만 채색옷을 지어서 입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들은 동생을 시기했습니다.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동생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요셉의 형' 들이었습니다. 

시기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자기보다도, 자기 신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는 천천을 돌리고, 신하에게는 만만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기심 때문에, 

자기 신하를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쫓아다녔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었습니다.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을 위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자기 동생을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즐겨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탕자의 형'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은사들이 다 있었습니다. 

각자에게 알맞은 은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서로 시기했습니다. 

은사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상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바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시기심이 있으면, 결국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랑이 있으면, 시기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십시다.

 

그는 주인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지막하게, 주인이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인의 아들에 대해서 전연 시기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과 주인의 아들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주인의 명에 따라서, 

주인의 고향에 가서 주인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아브라함의 종, 다메섹의 '엘리에셀'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적이었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자기의 친구를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친구를,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자기의 친구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다윗의 친구요,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의 정적과도 같은 사람이었지만,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보호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업적과 명성을 시기하면서, 

그보다도 더 나아지기 위해서,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그 소식이 감옥에 있는 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서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빌 1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가 누구였습니까?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이 있으면, 모든 시기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이룩하지 못한 것을 이룩한 사람이 있습니까? 

시기하지 말고, 

오히려 칭찬해 주고, 축하해 주고, 함께 더불어서 기뻐해 주십시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온유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날마다 사랑의 열매가 아름답게 열려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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