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기적을 만나는 사람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우매한자의 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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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전도서

2020. 7. 25.

본 문 ; 전도서 10장 1-20절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무를 하기 위해서 함께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나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달랐습니다. 

중간에 잠시 잠시 쉬어가면서 일을 했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다 끝났습니다. 누가 더 많은 나무를 했을 것 같습니까? 

뜻밖에도 중간에 쉬어가면서 일했던 사람이, 

계속해서 일한 사람보다 해놓은 나무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죽어라고 일만 한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여보게, 틀림없이 내가 자네보다 더 열심히 일한 것 같은데, 

어떻게 자네가 나보다 더 많은 나무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친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연하지. 나는 쉬는 동안, 부지런히 도끼 날을 갈았다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전도서 10장에서, 

솔로몬은, 어리석음, 곧 우매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리고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 어떠한지, 

여러 가지로 보이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우매의 위험성

먼저 1절 말씀을 보시면, 

우매와 어리석음의 위험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죽은 파리들이 항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중동 지방의 파리는 매우 큽니다. 

작은 것이 아닙니다. 

파리 몇 마리가 냄새를 맡고, 향기름 통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들어가기는 쉬웠으나, 나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속을 맴돌며 날아 다니다가, 결국은 기운이 진해서 향기름에 빠져 죽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썩게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악취가 나게되고, 

나중엔 값지고 귀한 향기름을, 모두 다 못쓰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와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 로 난처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크고 견고한 여리고 성을 쉽게 함락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우매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아간' 이라는 자 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전리품 가운데 일부를 숨겼습니다. 

그것은, 시날산의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무게가 오십 세겔되는 금덩이 하나였습니다. 

그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던 '아이 성'과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아간'이라고 하는 우매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순간 잘못해서 실수하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게 되면, 

그 동안 쌓아올렸던 모든 수고가,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죽은 파리가, 항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할 수 있고,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매를 늘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자꾸 우매한 일을 하게 됩니까? 

그 이유가 2절에 나옵니다. 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 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양들은 오른편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왼편에는, 염소를 두신다고 했습니다. 

오른편에 있은 양들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의인들입니다. 

그러나 왼편에 있은 염소들은, 

바르지 못한, 그릇된, 잘못된 일을 한 악인들입니다. 

그러니까, 오른편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일, 옳은 일을 의미하고, 

왼편은 그릇된 일, 잘못된 일을 의미합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늘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저 나만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내 육신만 즐거우면 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의 우매함을 말하느니라."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말 한 마디라도 아름답게 하려고 신중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매한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막 떠버리고 다닙니다. 

우매한 자는 말 때문에, 

결국 자기의 어리석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고 맙니다. 


2. 우매자의 모습

(1) 우매한 주권자의 모습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여러분, 우매한 사람의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독선적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무조건 자기만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도, 오히려 화를 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독선적이 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권자가 까닭 없이, 신하에게 분을 일으켰습니다. 

자기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리석은 일이지요. 

그때 신하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주권자가 어리석다고, 신하까지 같이 어리석으면 안됩니다.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

왕이 자기에게 공연히 화를 낸다고 신하가 얼굴을 붉히고, 

그 자리를 떠나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왕이 그 신하에 대해서 더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더 크게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받게 하느니라"고 한 것처럼, 

더욱더 공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왕의 노가 수그러들 수가 있습니다. 

또, 왕이 잘못해서 나타날 수 있는, 큰 허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주권자였을 때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기의 경쟁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기회만 있으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당하는 동안, 

몇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사울에게 겸손하게 대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나라의 주권자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매한 사울을 폐하시고, 겸손했던 다윗을, 

나라의 주권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 설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나라의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독선적이면 안됩니다. 

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5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

주권자의 허물과 어리석음으로 생기는, 폐단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6절 말씀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고, 부자들이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바로 북한의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김일성과 공산당이 집권했습니다. 

부자들은 재산도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우매한 사람들이, 군수도 하고, 면장도 하고, 동장도 했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건전한 사회가 되려면, 각자가 자기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들이 말을 타고 다니고, 

고관들이 종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그랬습니다.  

'르호보암'은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랐던 젊은 사람들의 권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처럼 땅에 걸어 다니게 한 것이지요.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르호보암' 때 나라가 쪼개지지 않았습니까? 

열두 지파 가운데, 열 지파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2) 어리석은 일꾼들의 모습

어리석은 사람은 일할 때, 조심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하면서 뜻밖에 불의의 사고를 당할 경우가 많습니다. 

솔로몬은 그런 경우를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조심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린 시절에 이런 놀이를 해보셨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 함정을 파고 거기에 물을 붓습니다. 

그 위에 나뭇가지로 살짝 덮어서 위장을 해놓습니다. 

그리고 골목에 가서 숨어서 지켜봅니다. 

뾰족 구두 신은 아가씨라도 빠지면, 얼마나 좋아했는지요. 

그런데 식사 시간이 되어서 집에 가서 밥을 먹는 사이에, 

그 일에 대해서는 깜박 잊어버립니다. 

밥을 먹은 후 나와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다가, 

아까 파놓았던 바로 그 함정에 자신이 빠지고 맙니다. 

내가 파놓은 함정에 내가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조심성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두번째,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간혹, 담을 허물고 새로 쌓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담벽 중간 중간에 구멍이 있어서, 뱀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리미리 조심합니다. 

조심성 있게 담을 허무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조심성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담을 허물다가, 

그 속에 있던 뱀에게 물릴 수 있습니다. 


세번째, 9절 말씀입니다.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다듬은 돌로 집을 짓기 위해서 돌을 떠내는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조심성이 없으니까, 

망치로 자기 손을 찍을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네번째,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잘못해서 도끼 자루가 빠진다든지, 

아니면 나무 파편이 튀어 다칠 수도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조심성이 없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심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준비성도 없습니다. 

10∼11절 말씀입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 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무딘 철 연장을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에,

힘이 더 듭니다. 

시간만 더 빼앗깁니다.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먼저 날을 잘 갈아놓으면, 일하는데 능률이 오를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성공하는 데 유익한데,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일을 그르칠 확률이 더 많습니다. 

11절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

여러분, 텔레비전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인도' 에 가면, 지금도 술객이 뱀에게 주술을 베풉니다. 

나팔을 불면, 항아리 속에 있은 코브라가, 고개를 들고 나와서 춤을 춥니다. 

그러면 관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동전을 던져줍니다. 

그런데 술객이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돈은 고사하고, 생명조차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뱀에게 주술을 베풀어서 돈을 벌려고 생각하기에 앞서, 

뱀에게 물리지 않을 방도를 먼저 강구하고 

준비를 해야지요. 

준비도 없이 섣불리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그래서 함정을 파시더라도 거기 빠지는 일이 없고, 

담을 헐때에도 뱀에게 물리지 않으며. 

그리고 돌을 떠내는 일을 하더라도, 또 나무를 쪼개는 일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상하거나 위험을 당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항상 기도로 먼저 준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만사 형통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우매한 입술을 가진 자의 모습

우매한 사람은, 말 때문에 낭패를 당합니다. 

솔로몬은 우매한 사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12절 말씀입니다.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말 한마디를 해도 은혜스럽게 합니다. 

생각을 하면서, 가려서 말을 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지혜자의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매자는 어떻습니까? 

가시 돋친 말, 부정적인 말, 중상 비방하는 말, 원망하는 말들을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계속 상처를 받고 나면,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게 됩니까? 

다 떠나고 혼자 외톨이가 됩니다. 

우매자는 말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만, 

결국 누가 제일 피해를 보게 됩니까? 

자기 말 때문에, 자기가 삼켜진 것입니다. 

자기가 제일 피해를 보게 됩니다. 


둘째, 13절입니다.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 이니라."

괜히 언성을 높이고, 흥분해서 대들듯이, 다투듯이,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조용조용, 사근사근 말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갈수록 말이 커집니다. 

언성을 높입니다. 

싸울 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셋째, 14절 말씀입니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낄 줄 압니다. 

왜 어리석은 사람이 말이 많습니까? 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척해야 하고, 잘난 척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변명해야 하기 때문에, 자꾸 말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넷째, 14절 하반부입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사람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떠버립니다. 

모든 일에 전문가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15절 말씀을 보시면,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우매한 자는 자기 말하는 것에, 떠버리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자기가 들어가야 할 성읍을 지나쳤다,는 것조차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참 지나가다가 "여기가 어디야? 

아뿔싸 내가 지나쳤구나. 

죄송합니다. 돌아가야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우매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피곤하고, 같이 가는 사람도 피곤하게 만듭니다. 

바로 눈앞의 것도 알지 못하면서, 무슨 장래 일을 알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은혜스러운 말만 하도록 해야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언짢아도, 되도록 언성을 높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작게 이야기해도 다 됩니다. 

말을 가려서 하시길 바랍니다. 

말할 때 흔히 우리가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말할 때는 one-two-three 전법을 한번 써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1분간 말하고, 상대방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2분 주고, 

3분 동안은 그 사람 말에 맞장구를, 쳐주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내 말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의 실수가 줄어들 것입니다. 


(4) 어리석은 신하의 모습

16절 말씀을 보세요.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왕의 실제 나이가 어리면, 높은 자리에 있는 왕이라도, 

때론 분별력이나 판단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지혜로운 대신은 더욱 왕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대신들이 방탕하고, 자기 육신의 향락을 일삼으면,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화 있는 나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복 있는 나라는 어떻습니까? 17절 말씀을 보세요.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교육을 잘 받은 귀족의 아들처럼, 왕의 인품이 높습니다. 

즐기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나라가 복 있는 나라입니다. 

18절 말씀을 보세요.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나라의 대신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요즘 말로 하면 복지부동하면, 

나라 꼴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나라의 서까래가 다 내려앉고,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어질 수박에 없습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19절에 또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리석은 신하들이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모습이, 

19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실컷 먹고, 마시자는 것입니다. 

기회 있을 때, 자리에 앉았을 때,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 다음에 20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조심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신중하지 못합니다. 경솔합니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왕이나 자기보다 높은 대신을 저주하거나, 나쁘게 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20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우리 나라에도 이런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말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쉽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그 사람하고 사이가 좋을 때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영원토록 사이가 좋으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사이가 나빠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왕에게 가서 "저 사람이 왕에 대해서 저주하더이다."라고 

이실직고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목숨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중에라도, 아무리 은밀한 침실에서라도, 

남을 저주하는 말, 나쁘게 하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전도서 10장을 통해서, 우매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또, 그 모습은 어떠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야고보서 1:5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 

솔로몬이 무엇을 구했습니까? 

'지혜' 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와 장수' 도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다. 

하나님께서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우리 모두에게 지혜를 주시되, 

후히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혜로운 자가 되면, 

우리 가정이 복있는 가정이 되고, 교회가 복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복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시든지, 

지혜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셔서, 

우리 모두가 복 있는 삶을 누릴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