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기적을 만나는 사람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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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전도서

2020. 6. 26.

 

본문 ; 전도서 6:1-12

 

오늘은 전도서 6장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의 지혜를 받고자 합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6장에서, 해 아래 인생들 가운데, 

특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이 겪어야 하는,

세 가지의, 불행하고, 어리석고, 허무한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들은 세상에서 부요와 재물과 존귀를 받았으나,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들은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건강하고 또 장수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낙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산들, 죽지 못해, 마지못해 살아간다면, 

그것이 무슨 행복이 되겠습니까?

 

세번째로, 그들이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뛰다 보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 한이 없는 욕구를, 무슨 수로 충족시킬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해 아래 인생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하는지, 

솔로몬은 오늘 본문의 결론 부분인 10∼12절에서, 그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생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무엇이 인생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의지하면서, 

자신이 목표로 삼고 있는, 행복을 잡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외형적인 번영과 성공 여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도, 시편 146편 3절에서,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결론은, 확고하고, 분명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이며,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전도서 6장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읽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인생의 첫번째 불행한 삶이, 1절 말씀에 나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솔로몬이 본, 첫번째 불행한 삶의 모습은,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2절 말씀에.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그것도 넉넉하게 받았다, 고 했습니다.

마음이 무거운게 아니라, 

도리어 행복하고,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어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때문에 마음이 무겁다,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그 다음에 나와 있습니다.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렇습니다, 

 

불행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많이 받긴 받았느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좋은것, 귀한 것,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받기만 하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설상가상으로, 이 사람을 더욱더 안타깝고, 슬프게 하는 요인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고생 끝에 쌓아놓은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자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사람이, 그것을 누리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제껏 헛수고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사무엘상 25장을 보면, 

솔로몬의 부친이었던, 다윗 왕 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광야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때마침, 그 근처에 살고 있는 '나발'이라는 부자의 집에서 

양털을 깎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양털을 깎을 때는, 으레 주인이 일꾼들을 위해서, 

큰 잔치를 베풀어 주곤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양털을 깎을때엔, 먹거리가 아주 풍성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수하의 부하, 열 사람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먹을 것과 쓸 것을 나누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의 부하들 앞에서, 

이런 말, 저런 말로 다윗을 심하게 모욕했습니다. 

다윗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부하 400명을 이끌고, 나발을 죽이기 위해서 올라갔습니다. 

 

그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 이, 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대단히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부랴부랴 떡과 포도주와 고기를 충분히 준비해서, 

다윗을 맞이하러 갔습니다. 

그것을 주면서,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 대신, 다윗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제야 다윗의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나발은 아비가일을 통해서, 다윗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400명을 이끌고 왔었다, 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발이 겁에 질리고,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더니만, 

그로부터 열흘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사무엘상 25장 38절 말씀을 보면,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너에게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주었지만, 

너는 그것들을 누릴 자격이 없어." 

그러시면서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불러가 버리신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으며, 

나발이 가지고 있던, 그 많은 재물과 부요와 존귀가, 

다 다윗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다윗이 소유하고, 대신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우리 자신이, 능히 누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나발처럼, 움켜 쥐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필요할 때는, 손을 펼 줄 알아야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나누며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주실뿐만 아니라, 

아울러 그것을 능히 누릴 수 있는, 은혜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2. 인생의 두번째 불행한 삶의 모습이, 3절 이하에 나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이 사람은, 2절에 언급된 사람이 받지 못한, 또 다른 복을 받았습니다. 

자녀를 백명이나 두었으며, 건강하고, 또 장수의 복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다음에 이유가 나옵니다.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즉, 많은 자녀를 두고, 육신도 건강하여, 장수하기는 하였으나, 

그 마음속에, 평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하여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삶이라면, 

그것 또한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그런 사람에 대해서, 

3절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오히려 낙태된 자보다, 더 불행하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낙태된 자가, 얼마나 불쌍하고 또한 불행합니까?

 

솔로몬은 4∼5절에서, 

낙태된 자의 불행을, 다섯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나" "라고 했습니다.

낙태된 자가 이 세상서, 무엇을 소유해 보았겠습니까? 

무엇을 누려 보았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그대로 어두운 땅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존재조차도 기억도 하지 못합니다. 

또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루라도 살았어야 햇빛도 보고, 

이 세상 일도 알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된 자가 더 나은 이유가, 

5절 하반부에 나와 있습니다.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왜냐하면, 해 아래서 인생들이 겪고, 당해야 하는 고통과 불행을, 

낙태된 자는 겪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낙태된 자가, 더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평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솔로몬은 6절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천 년의 갑절은 얼마입니까? 2천 년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제일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였습니다. 

그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2천 년은 '므두셀라'가 산 것의 두 배가 넘는 기간입니다. 

그처럼 오래 산다 해도, 마음의 평안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는 것입니다. 

2천 년이 아니라, 3천 년을 살아도, 

결국은 무덤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래 산다는 것이, 고생만 실컷 더 하다가,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죄만 더 많이 짓다가, 가게 될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과 장수의 복뿐만 아니라, 

평강의 복까지, 더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하다, 고 고백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실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을 공경하는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우리 자신이 먼저 이웃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자녀들을 주의 훈계로, 양육하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말씀 안에서,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으로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3. 인생의 세 번째 불행한 삶의 모습이 7∼9절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지혜자도 먹어야 하고, 우매자도 먹어야 합니다.

부자도 먹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먹어야 하고, 

누구나 다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식욕은 차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오늘 잔뜩 먹었다고, 내일부터 안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내일이면 또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는, 식욕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슨 수로, 그 많은 욕구를 다 채울 수 있겠습니까?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지혜자나 우매자나, 아무리 수고해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지혜자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지혜자가 자기의 지혜를 다 짜내고, 

능력을 총동원하여, 

원하는 것을 손에 쥔들, 그것이 무슨 큰 유익이 되겠느냐, 는 것입니다. 

또다시 다른 욕구가 생기기 때문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 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좀더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소유해서 손에 쥐고 있으면, 

실물을 소유할 수 없는, 마음의 공상보다는 낫다, 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한 마디로, Better than Nothi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입니다. 

또 다른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월세방에 사는 사람은, 마음에 소원이 있습니다.

"전세방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는데."  

전세방을 가지기 전에는,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에, 늘 마음에 전세방을 그리면서 공상을 합니다. 

이를 악물고, 수고하고, 고생합니다.

그렇게 해서 전세방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합니까?

만족도 잠시 동안 입니다. 

또다시 마음에 'a little more' 하며 새로운 욕구가 생깁니다.

"작은 평수라도,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또 고생합니다. 또 수고합니다.

그것을 얻기까지는 행복이 없습니다. 

드디어, 작은 아파트가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합니까? 

이번에는 "좀 더 큰 평수, 화장실 두 개짜리 아파트!" 

그렇지 않습니까?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의 공상보다 낫지만,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아무리 쥐려고 해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구도, 아무리 애쓰고 충족하려고, 해도 차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명기 8장 3절말씀을 보게 되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떡'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 결코 행복해 질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면, 

행복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나 목표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focus를 맞출 때, 

비로서, 우리의 마음속에 참된 만족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영원한 만족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내 삶의 목표를,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와같이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삶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전부터 그의 이름이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 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다, 고 했습니다. 

누구에 의해서, 칭한 바 된 것입니까? 

하나님 이십니다. 

언제부터 였습니까? 

오래전, 다시 말하면, 천지가 창조되던 때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을 무엇이라, 고 칭하셨습니까?

'낮'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둠을 '밤'이라, 고 칭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이름을 칭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만드시고 난 뒤에, 사람의 이름을 '아담(Adam)'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흙(dust)'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의 뜻이, 바로 흙에서 왔다,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억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흙에서 왔으니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시편 146편에 보면,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간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약하고 하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서 10절 중반부에 보면,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어찌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창조주 하나님과 감히 다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는데, 

우리가 어찌, 하나님과 다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해 아래 인생들 가운데는 어리석게도, 

하나님과 다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세요.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그러니까,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한들,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러시면서, 에덴동산의 각종 나무의 실과를, 다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했습니까? 

"먹으면, 하나님같이 될 것이라"는 뱀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행복해졌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영생복락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오른쪽으로 순종하며 가는 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입니다.

그 길이 비록, 좁은 길이고,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여도, 

그 길로 가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어리석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한 해 농사가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새로 짓고, 곡물을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

일시적으로 행복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날이, 그에게는 가장 불행한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각으로는 자기 뜻대로 가는 것이 

일순간 행복해 보일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인생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인 것입니다.

 

마지막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솔로몬은, 인생은 헛되다고 표현했습니다. 

시편 기자도, 시편 144편 4절에서,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일평생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덧없이, 잠시 잠깐 있다가, 지나가 버리는 안개와 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니 이와 같이 무지하고, 무능한 우리 인생이, 참된 행복이 무엇이며, 

무엇이 행복을 가져다 줄지 알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아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한 손에 쥐고 계시는 그분, 

곧 주님 말씀하신 대로, 따라가는 것이 

바로 행복을 얻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장래에 대해서 누가 능히 고할 수 있겠습니까? 

점쟁이가 알겠습니까? 지혜자가 알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문필가였던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The grand essentials to happiness in this life are something to do, 

someone to love, and something to hope for." 

 

무슨 말입니까? 

인생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something to do, " 뭔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두 번째로, "someone to love, " 누군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고, 

세 번째로, "something to hope for, " 뭔가 바라고, 기대할 것이 있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해 아래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해 위의 세계, 영원한 천국, 하늘나라를 소망 가운데서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우리가, 바로 주님 안에서,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이 가르치고 교훈하는 대로 사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하고, 참된 행복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우리 주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뿐만 아니라, 

이 땅의 기름지고, 풍성한 은혜와 복도,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의 평강, 심령의 낙을 허락해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참된 행복의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