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기적을 만나는 사람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세상의 헛된 재물에 집착하지마라.(Riches in the earth are meaning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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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전도서

2020. 6. 20.

 

제목 : 세상의 헛된 재물에 집착하지 말라

본문 : 전도서 5;1-20

 

다는 아니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인생들은, 무엇보다도 

부와 재물에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 인생들은 그토록 재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야 하나?

아마 재물이 많아지면, 

그만큼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기의 소유를 늘리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전도서 5장에서는, 

그러한 삶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잘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전도서 5장의 말씀을 통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면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1.우매자의 수고로는, 낙을 누리지 못합니다.

성경은 우매한자는 아무리 수고를 하여도, 이 땅에서 수고한 만큼의 분복을 

누리며 살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매자는 왜, 이 땅에서 수고한 분복을 누릴 수 없는가, 

먼저 우매자가 어떠한 자이며, 어떻게 사는지,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우매한자를 설명하기 위해서, 

세 가지 관점, 곧 올바른 제사(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경건한 기도 생활을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서원, 한 것은 다 이행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이러한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곧, 우매자의 삶이라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매자의 잘못된 제사나 예배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성전에서 제사(예배) 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보다도 앞세워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말씀을 듣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열심에 따라서, 자기 방식대로, 아무리 믿어 본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자기 생각대로, 왼쪽으로 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우매자에게는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매자는 아무리 수고해도, 그 열매를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마르다와 그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지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보다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리아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마르다의 봉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말씀 듣는 게, 더 먼저고,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일, 봉사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언제나 그것보다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둘째, 우매자는 경건하지 못한, 기도의 자세와 모습을 보여줍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기도할 때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한 마디 한 마디, 하나님 앞에 아뢸 때, 아주 신중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반면에 우리는 지극히 낮은, 

땅에 있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여러분이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 앞에서 얼마나 조심하겠습니까? 

대통령 앞에서 한 마디 말이라도 얼마나 신중하게 하겠습니까?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면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함부로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6장 7절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오래 하는 것,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중요하고, 정성과 중심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우매자는 무책임한 서원을 남발하는 자입니다.

서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그 보답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약속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사람은 사람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 전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약속하고 지키지 않고서도, 

무사하겠거니, 일 없겠거니 생각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런데 우매자는,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도,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원은 강제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원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원한 것은, 반드시 행하여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서원을 하느니, 애당초 서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원을 하고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사 시대,  입다(Jephthah)의 이야기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입다가, 사사로 있을 때, 암몬 족속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입다가, 백성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사사기 11장 31절 이하에, 그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하나님, 만일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을 제 손에 붙여 주신다면, 

돌아올 때, 저의 집 문 앞에서, 제일 먼저 저를 영접하는 자를, 

그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무서운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입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그의 집에서 누가 그를 제일 먼저 영접했습니까?

 

34절을 보면, 입다의 하나밖에 없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소고 치며, 춤추며 나와 그를 영접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한 서원이기 때문에, 

입다는 그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원하면,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지키지도 못할, 서원을 함부로 하게 됩니까?

하나님 앞에서, 말을 너무 쉽게, 많이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을 피하기 위해선,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성전에서는 말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함부로 입을 열어서 말하며, 지키지도 못할 서원을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2. 사회구조의 부조리 때문에, 낙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해 아래 인생이 수고해도, 그 열매를 누릴 수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해 아래 인생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학대가 있고, 불의가 있고, 부정과 착취가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백성을 잘 보살펴주고, 공의를 세워서, 

백성들이 마음 편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하는 일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백성을 학대하고, 공의를 외면한다고 했습니다.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런 것을 보아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밑의 사람을 착취해서라도 윗사람에게 상납을 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상납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또 자기 위의 사람에게 상납을 해야 합니다.

먹이사슬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에는 왕까지 올라갑니다.

내가 수고해서 얻은 이익이라고 해서, 

나 혼자 독차지할 생각은 처음부터 아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의 이익은 뭇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관리들도 내 땅에서 나오는 소산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많이 빼앗기느냐 적게 빼앗기느냐 정도의 차이지,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살아갈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21절을 보면,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땅은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이 땅에서 소유에 집착해서, 

너희 보물을 땅에 쌓아두려고 하지 말고,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안전한 곳, 

저 하늘나라 창고에 너희 보물을 쌓아두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해 아래 인생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학대가 있고, 착취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부에 대한 잘못된 편견 때문에 낙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재물에 왜 그렇게 집착합니까? 

그것은 부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네 가지로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편견은 "Wealth brings satisfaction."입니다. 

부가 우리에게 만족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예컨대 우리가 목이 말라서 바닷물을 떠다가 마셨습니다. 

갈증이 해소가 됩니까?

바닷물은 아무리 마셔도 갈증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더 목이 탑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욕심도 한이 없기 때문에, 재물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만족을 누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애당초 잘못된 것입니다.

 

두 번째 편견은 "Wealth solves every problem."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이 있으면, 

그것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착각입니다.

재물이 많아질수록 이전에 없던 문제가 자꾸 생겨납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물질이 없으면 세금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도적이 와서 구멍을 뚫을까 봐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자식들에게 유산을 어떻게 배분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아지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납니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한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서 손을 내밉니다. 

있는 대로 다 나가 버리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소유주는 잠시 자기 눈으로 재물을 보는 것밖에 없습니다. 

순식간에 다 나가 버리니까 실속이 없습니다.

 

세 번째 편견은 "Wealth brings peace of mind."입니다.

재물이 마음에 평안을 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노동자는 가난해서 먹는 것이 시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돈이 많아서 잘 먹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잠을 더 잘 자겠습니까? 

부자가 잠을 더 깊이 잡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노동자가 오히려 잠을 더 깊이 잡니다.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이 걱정 저 걱정을 하느라고 마음에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절대로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네 번째 편견은 "Wealth provides security."입니다. 

부는 인생의 안전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재물 때문에 안전해지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까? 늘 걱정해야 되지요. 

거기다가 강도를 만나서, 물질 때문에 자기 생명을 잃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이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들이 왜 자꾸 재물을 지키려고 합니까? 

자기 자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유산으로 물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됩니까?

한번 재난이 임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재물입니다. 

화재를 당한다든지, 부도를 만난다든지 하면,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물려줄 것이 없습니다.

또 설사 재난을 당하지 않아서, 

재물을 잘 지켰다고 해도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세상에 올 때 세상에 더해 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빈손으로 왔습니다.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갈 때도 그냥 가야지, 

세상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수고했다고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공평한 삶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에서도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재물을 지키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것은, 

잡히지 않는 바람을 잡기 위해서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헛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소유에 집착하면 절대로 우리의 삶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불행 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가 만족을 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마음에 평안을 주고,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지만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반대입니다. 

소유에 집착하면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번뇌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생깁니다.

병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병도 생기고, 육신의 병도 생깁니다. 

마음에 평화가 사라지므로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미국의 록펠러(Rockefeller)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지요?

당대 세계 제일가는 갑부였습니다. 

53세에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돈을 벌었냐 하면, 

매주 그 당시 돈으로 1백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그렇게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마치 세상의 모든 돈을 자기가 다 가져야겠다 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세계에서 제일 가는 갑부인데, 돈을 얼마나 벌면 만족하겠습니까?"

그때마다 록펠러는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Just a little more." 무슨 말입니까? 

"조금만 더"

이미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되었는데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조금 더 벌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그렇게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몸이 바짝 말라 들어갑니다. 

돈이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루에 겨우 우유 한 잔, 비스킷 몇 조각밖에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록펠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가운데, 

자기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소유에 대한 집착을 다 버렸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떨쳐버렸습니다.

"지금까지는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번 것을 값있게 쓰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만든 것이 그 유명한 록펠러 재단입니다. 

그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까, 

그때부터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입맛이 돌아왔습니다. 

잃어버렸던 잠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3세에 불면증에 걸려 죽을 때만 기다리던 사람이,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소유에 집착하게 되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욕심을 내려놓으세요.

그래야 우리 마음속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4. 은혜를 받은 성도의 삶의 모습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즐거운 마음으로 낙을 누리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분복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누려야 할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 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수고하면, 

그 열매를 자기가 다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을 누리게 하시며, 즐거워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가 버리시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마지막 20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의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이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라.

부유하든지, 또 부유하지 못하든지 관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그런 것에는 관념이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아울러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세요. 

빌립보서 4장 10절 이하를 보시면, 

그는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안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라."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기쁨을 주시고, 평강을 주시고, 만족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디모데전서 6장 10절의 말씀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물에 너무 집착하면,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물질을 따라간다고 그 물질이 내 손에 잡힙니까?

절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물질이 우리 뒤를 따라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물질의 주인이 될 때에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물질이 우리 뒤를 따라오도록 만들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우리 예수님이 그 비결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 제일주의로 그리고 하나님 우선주의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부족하지 않도록 넉넉히,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재물에 집착하지 마시고, 

선을 행하며,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 

너그러운 자가 돼라, 고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을 위하여, 헛된 부와 재물에 집착하지 마시고, 

이제는 영적인 풍요와 만족을 사모하며,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