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기적을 만나는 사람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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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히브리서 11장

2020. 9. 4.

 

히브리서 11장 13∼16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그가 공원 벤치에 앉아서,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얼마나 깊이 명상을 하는지, 어느덧 주변에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때마침 공원을 청소하던 사람이, 그를 보고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어디에서 오신 분이기에, 아직도 이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까? 

날이 더 어둡기 전에, 어디로 가야 되지 않겠소?"

그 소리를 듣고서, 쇼펜하우어는 정신이 든 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군요. 그것이 바로 내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라서,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토마토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심을, 분명하게, 

밝혀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곧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믿음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믿음을 따라서 살고, 믿음을 따라서, 자신의 삶을 마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계속해서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처럼, 방황하며, 갈바를 알지 못하는 방랑자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나아가는 순례자들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한,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들이 보여주었던, 나그네 의식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사모했던, 더 나은 본향입니다. 

셋째로, 그들이 받게 된, 하나님의 복입니다. 

 

첫째로, 나그네 의식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언하였으니."

 

믿음의 선조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언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자신들이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히브리서 11:1에서, 믿음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설명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을,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표현은 달라도, 똑같은 맥락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마치 그것이 자기들의 삶 속에, 이루어진 것처럼,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약속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That was enough!

그래서 그들은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마치 이미 자신들의, 

삶 속에, 이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정착해서 살지 못하고, 장막을 치며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살았습니다. 

창세기 23:4절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내 사라를 위한, 

매장지를 사기 위해서, 헷 족속에게 한 말이 나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또 창세기 47:9절에는, 야곱이 애급 왕, 바로에게 한 말씀이 나와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이와 같이 그들은, 자기들이 나그네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나그네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그네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 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세상의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결코 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나그네이다. 나는 어차피 빈손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값있게 쓰고 가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태어날 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두 손을 다 펴고 죽습니다. 

빈손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인생을, 이렇게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여관이다. 그 집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집에 잠시 묵고,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그리고 우리의 연수는, 그 집의 계약 기한과 같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그네로서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떠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잠깐 가지고 있다가, 버려야 할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다. 

믿음을 따라,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 믿음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더 나은 본향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4절∼16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본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나온 바, 본향입니다. 땅에 있는, 본향입니다. 이는 과거적인, 본향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태어난 곳입니다. 

둘째, 더 나은, 본향입니다. 하늘에 있는, 본향입니다. 이는 미래적인, 본향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영원토록 살 곳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과거 지향적이고, 땅엣 것에 집착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해서, 광야를 걸어갈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의 몸은, 애굽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온전히 애굽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온 바, 애굽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에서 먹었던, 고깃 국물을,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에서 누워 자던, 푹신한 잠자리를, 그리워했습니다. 

결국 그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만, 일삼았습니다. 

롯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히,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실 때, 

자기의 나온 바, 자신의 집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소금기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릅니다. 

과거 지향적인 삶을, 살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삽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보십시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의 나온 바,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를 생각했더라면, 

얼마든지 그곳으로, 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곳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 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잠시 애급 땅에 내려가서 피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고 난 뒤에는, 과거의 육신적인 자랑거리들을, 

모두 더럽고, 냄새나는,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는 두 번 다시, 그것들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앞에 있는, 푯대만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달음질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의 역할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한 사람씩 차례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두신 찬란한 성,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그네 된 우리의 삶이, 때로는 험난하고, 고달플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늘 밝은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복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6절 하반부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두 가지로, 설명을 했습니다. 

첫째, 나그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둘째,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도 역시,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산다고 해서,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지켜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출애굽기 3: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스스로를 가리켜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와 날마다 동행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시고,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참으로,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한 성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그 성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간혹, 어떤 손님이, 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귀빈'이라고 부릅니다. 

무슨 뜻입니까? "귀찮은 빈대"라는 뜻입니다. 

말로는 어서 들어오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속으로는, 반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 25:3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곳은 이미 창세 전부터, 예비된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 이 성은 히브리서 11:10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람이 계획하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지으신 성입니다. 

얼마나 영화로운, 성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예루살렘 성은, 너무나도 찬란하고도,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곳에 올라가서, 세세 무궁토록, 

주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두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믿음을 따라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육신의 장막 집을 벗고 나면, 더 나은 본향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현재도 믿음 안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믿음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나그네 된 삶을, 믿음으로 아름답게 마감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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