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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믿음으로, 라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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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히브리서 11장

2020. 10. 7.

 

히브리서 11장 31절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또는 가난하게 산다고 해서, 

아니면 병이 들었다고 해서, 우리를 외면하시거나, 무시하시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죄악과 허물로 가득한,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적에서, 아무리 많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은, 영원한 멸망에, 던지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한 생명은,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선행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믿음,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기생 라합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믿음 장 속에는, 별같이 빛나는 믿음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라합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라합의 경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 이겠습니까? 

그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는 사실입니까?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11절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믿음을, 우리에게 소개, 

해 준바 있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모세의 부모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요게벳도 역시 여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35절 말씀을 보십시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역시, 여자들이, 믿음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라합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사실은, 특이한 점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라합의, 특이한 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가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입니까? 

물론,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여리고 성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구원을 얻은, 최초의 이방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의 강조점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라합의 이름 앞에, 하나의 수식어를, 덧붙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라합이 기생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다른 사람을 살펴보면, 아무에게도, 그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족장 아브라함은"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애굽의 총리 요셉은"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등등의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요셉은, 믿음으로 모세는"이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유독 라합은, 그의 직업과 신분이, 기생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술을 팔고, 웃음을 팔고, 자기의 몸을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보잘것없는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의 이름이, 위대한 신앙인들 사이에 당당히 들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가운데, 4곳에서 라합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여호수아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2장을 보면,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영접한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6장 보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그와 그의 가족이, 구원함을 받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마태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그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등장합니다. 

마태 1장 5절에 의하면, 라합은 뒤에 이스라엘 사람, 살몬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보아스가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의 유지였습니다. 

보아스는 나중에, 룻과 결혼했습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오벳이었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습니다.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의 자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을 했습니다. 

셋째,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 31절에 나옵니다.

넷째, 야고보서 2장 25절에 나옵니다. 

사도 야고보는,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생 라합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이름이, 신구약의 66권 가운데서, 네 번씩이나, 나타난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한 가지,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어떠하든지, 직업이 무엇이든지,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시카고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가, 하루는 집회를 끝내고 나서, 교인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무디와 악수를 하던, 한 사람이, 무디의 손을 꼭 쥐더니, 감격스러운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토록 위대한, 하나님의 종을, 직접 뵙고, 악수를 하게 되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무디가, 빙그레 웃더니, 허리를 굽혀서, 흙을 한 움큼 쥐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저는 보잘것없는, 이 한 줌의 흙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견지에서 보면, 기생 라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만, 잔뜩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한 가지입니다. 비록 작은 믿음이지만, 우리의 믿음을, 귀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귀한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믿음에는, 행함과 순종과 실천이, 따라야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적의 정탐꾼을, 영접한다는 것은, 죽어 마땅한 큰 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 라합은, 자기 집을 찾아온,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해 주었습니다. 그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또, 그들이 무사히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떻게, 기생 라합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여리고 성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뚝 서 있는, 자기들의 견고한 여리고 성벽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벽을 믿은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의 가족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목숨을 걸고서,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5∼26절에서, 라합의 믿음을,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루는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한 앉은뱅이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베드로의 마음에,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우리 삶 가운데, 살아 역사 하기 위해서는, 순종과 실천과 행함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기생 라합처럼,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 될때에, 삶의 현장에서, 

살아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기생 라합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자기의 믿음대로,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했습니다. 

이렇게 실천력이 있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며,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찾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합의 믿음은,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살릴 수 있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말씀하신 그대로, 라합의 믿음은, 그 자신을 살렸습니다. 

아울러, 그의 가족들도, 구원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들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구원의 상을, 주십니다. 축복의 상을, 주십니다. 영광스러운 상을, 주십니다. 

 

어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러한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한 청년이, 아주 작은 차를 타고서, 시골 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날 따라,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몹시 나쁜 날씨였습니다. 

그 청년이, 차를 몰고 가다가, 동네 어귀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차에, 한 사람을, 더 태울 수 있기 때문에, 차를 멈추었습니다. 

청년은, 차를 세우고서, 세 사람을, 가만히 눈여겨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할머니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과거에 그가 병들었을 때, 자기를 치료해준,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청년이, 지금껏 찾아오던, 이상형의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차는, 너무 작아서, 단 한 사람만, 더 태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설명이 주어진 후에, 드디어,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런 경우를 만났다면, 당신은, 세 사람 중에서, 누구를 태우겠습니까?"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입사한, 사원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제 자동차의 열쇠를, 의사 선생님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으로 하여금,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치료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저는 제가 찾던, 이상형의 여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대답입니까? 

소위 말하는, win-win 입니다. 다 이기는 것입니다.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다 함께 좋은 것입니다. 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회사뿐만 아니고, 어디서든지 큰 유익을 줄,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생 라합의 믿음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인해서, 두 정탐꾼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인해서, 자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와 그의 후손들이, 영광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풍성한 삶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고, 축복의 샘물이 되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고, 천국 백성이 되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풍성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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