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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리뷰 69] 정희재의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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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리뷰

2012. 2. 22.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리뷰

 

일단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제목만을 보고는 어떤 ‘잠언집일까..? 사색을 안겨주는 책일까..? 깨달음을 안겨주는 생활철학서 같은 책일까..?’ 등등, 제목이 내 눈에 들어왔던 그 찰라의 순간에 내 머릿속엔 수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거참~ 바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책이 ‘생각버리기 연습’이었다는 사실에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책은 마치 학창시절 이런저런 아름다운 시들을 모아 예쁘게 꾸미던 시집이나 시노트처럼 감성을 터치하는 사진들과 아늑한 그림들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이렇게 글 분위기에 맞춰 사진과 그림을 넣으며 편집한 이는 또 누구일까..?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또 다시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마음에쏘옥~ 들었던게다. 사춘기 소녀의 예쁜 시집노트처럼 꾸며진 느낌 가득한 책이 말이다...

 

 

작가 정희재에 대한 나의 착각..

책표지 뒷면에 이 책을 쓴 작가 정희재의 프로필이라고 해야할까..? ‘프로필’이라는 딱딱한 느낌 없는 차가운 단어보다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 한토막’ 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작가에 대한 소개가 너무나도 재밌게 쓰여있었다. “본인은 전라도와 경상도, 서울의 말씨와 억양을 고루 익혀 3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자부하나, 정작 토박이들에겐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읽으면서 그 코믹함과 재치에 얼마나 웃었는지. 이 단 한구절로 나는 정희재라는 작가가 무작정 좋아졌다. 사투리를 외국어에 비유한 그 모양새가 재밌기도 했지만, 그 뒷면에는 그녀의 낯선 곳에서의 삶과 그녀가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쳤어야 할 고된 삶속에 깊은 공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치열한 고백적 글쓰기’라던가 ‘도시 곳곳을 누비며 호기심과 열정, 마음의 평화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라는 표현도 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우연스럽게도 마침 이 책을 읽는 순간 ‘열정’과 ‘비움’이 함께 공존하기는 참으로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차였기에 어떤 동지의식마저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페이지를 넘기며 나오는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란 제목의 작가의 글을 읽으며, 어떻게 한 ‘남성’의 감성이 이리도 섬세하고 여릴 수 있다는 것인가..? 그 맑고 투명한 표현들에 가슴이 파르르 떨리며 어떻게 이렇게 잔잔한 표현들로 우리네의 설움과 희망을 글로 옮겨놓을 수 있었는지.. 나는 놀랍다 못해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하긴 남자라고 감성적이지 못할까나? 그런 여리디 여리고 섬세한 감성적인 터치로 나를 감정의 폭풍 속으로 빠뜨린 남자가 있긴 했다. 이정하 시인. 동갑내기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시대의 정서를 옮겨놓았기 때문이 아녔을까..? 어쨌든, 나는 책 첫 페이지에 쓰여진 작가의 말을 읽으며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이렇게 첫 시작부터 나를 눈물나게 하다니...

나는 이 ‘정희재’라는 작가의 섬세한 터치와 여성적인 감성에 감동에 감격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는 나는 또 한번의 충격을 맛보아야했다. 너무나도 놀랍게도 그는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는게다.

나는 단순히 남성적인 분위기의 이름 석자 ‘정희재’만 보고 내 직관만을 믿고서는 당연하게 그녀에게 ‘남성’이라는 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웃지도 울지도 못할 노릇인지. 이렇게 우리는 명확한 사실 앞에서도 자기 멋대로 착각하고 받아들이는 집요한 이기성을 지니고 있음에 나는 또 얼마나 놀라야 했는지...

이 짧은 시간 안에 작가에 대한 여러가지 느낌이 들다보니 문득,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물론 여기서 ‘어떤 사람인지..’는 어떻게 생긴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게다. 대체 어떤 분위기를 가진 그녀기에 이렇게 남의 감성을 자기 맘대로 주물럭댈 수 있을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다른 싸이트에서는 구하기 힘들었고, 구글에서 건진 그녀의 소박함과 섬세함과 여린 감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진을 한장 어렵게 구했다. 이렇게 생긴 분이셨구나.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썬글라스를 벗으면 어떤 모습일까.. 혼자 상상하면서 일단 호기심의 갈증에 목을 축인 나는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리뷰...

그녀의 글은 그녀의 모습에 풍겨지는 분위기만큼이나 잔잔하고 나즈막한 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감정의 폭풍 속에 휘말리는 거친 열정이 뿜어내는 빨강이 아닌, 그 모든 것을 감싸안는 듯한 파스텔톤의 푸른빛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 소개 글에서 ‘도시를 누비며 호기심과 열정, 마음의 평화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라는 표현이 그대로 전해졌던게다.

잔잔하고 여린 듯 하면서도 강한 내면이 느껴지는 그녀. 지난 날을 추억하는 그녀의 이야기 속에 담겨진 많은 그림들은 참으로 낭만적이었고, 맑고 깊었으며, 그녀는 그 안에서 얼마나 깊은 사랑을 했을까..괜히 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스쳐지나갔던 수 많은 일상 속의 기억들. 그녀는 그런 너무나도 평범해서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무감각해졌던 그런 소재들을 그녀만의 따뜻함으로, 그녀만의 섬세함으로, 그녀만의 여린 감성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꺼내 보여주며 내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때로는 웃음 속에, 때로는 눈물 속에, 때로는 가슴 먹먹해지는 싸한 고통속으로 우리를 내몰았다.

그녀의 글이 그렇게 한치의 공간도 허용하지 않고 온전한 공감 속으로 몰고 간 것은 아마도 그녀가 ‘도시’라는 거대한 괴물 안에서 느꼈던 그 일상들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기에, 또한 미처 느끼지 못한 당연한 것들을 정희재라는 현미경으로 확대시켜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월 플라워처럼 드러나지 않는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 일상은 그녀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는지, 어떤 명상거리가 되었는지, 그 일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그녀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를 가감없이 진솔되게 보여주었고, 간간히 나오는 스승님과의 대화는 짧지만 강렬했고, 깊은 깨우침을 함께 안겨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를 감동 속으로 내내 내몰아가는가 하면, 또는 너무나도 웃겨서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한다.

‘이방인에게는 낯선 풍경들’ 이야기중 티벳에서 온 친구의 눈에 보여진 낯선 풍경 중...

“식당에서 그 많은 반찬을 남기고 가던데요, 처음엔 잠깐 어디 갔다가 다시 와서 먹는건가 했어요. (P157)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의 이야기...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막 뛰더라. 불난 줄 알고 나도 죽어라 뛰었잖아. (P157)

유머도 꽁트도 아닌 글이 이리도 웃겼던 것은 바로 우리가 그런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다가 어느 누군가의 더듬이에 걸려 새롭게 인식되어질 때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에 겸연쩍은 웃음이 이렇게 거창한 웃음으로 번지는게 아닐까...

그녀게 그리움을 안겨주는 수유리는 나에게도 아련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행복헀던 한 때를 떠올리게 하는 그곳이었고, ‘터미널’이 그녀에게 주는 의미는 ‘우체국’이 내게 안겨주는 그 의미와 같았다.

그녀는 말한다. 언제나 도시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지치고 피로에 짓눌린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도시가 아니었다고. 결국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였다고 말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세상 그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일 것. 행복은 발견의 문제이지 성취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 진정한 여행은 낯선 곳에서 돌아와 내가 살던 집에 다시 짐을 풀면서 시작된다는 것, 이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그처럼 여러 번 배낭을 꾸렸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렇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이곳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곳에서의 '그 곳'은 내가 도착 하는 그 순간부터 '바로 이곳'이 될테니까.

정희재가 그랬듯이, 빠울로 꼬엘료가 그랬듯이 그것을 느끼기 위해 꼭 떠나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은 것이다. 돌아와서 바로 지금 이곳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모두가 말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떠나본 자'만이 '그랬노라고...'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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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마치며....

책을 읽는 내내 그녀에게 느꼈던 부러움과 감동 그것은 그녀의 일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었고, 그녀의 감성 풍부한 표현력이었다. 그녀의 표현력을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그런 비유가 글로 표현되어 나오는지. 때때로 현란한 형용사들의 나열로 집중이 흐려질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화려한 필체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내 집중력이 잠시 다른 것으로 흐트러졌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생각하고 있고 표현하고자 하는 그것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그녀의 능력이 내게는 부러움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녀는 작가니까..’라고 합리화를 시킬 수 있지만, 모든 작가가 그런 것 또한 아니니까...

인제 글을 읽는 몫으로 나의 봇물처럼 터지는 눈물을 제물로 내놓아야 했던 그녀의 표현을 빌어 끝을 맺으려 한다.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나는 또 감히 안다. 당신이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을 잃어 왔는지를. 당신의 흔들리는 그림자에 내 그림자가 겹쳐졌기에 절로 헤아려졌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갔지만, 끝내 가 버리던 버스처럼 늘 한 발짝 차이로 우리를 비껴가던 희망들, 그래도 다시 그 희망을 좇으며 우리 그렇게 살았다. (...)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작가의 말’ 중에서)

 

그래...

우리 모두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우리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그래서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의 희망이 계속 타오를 수 있기를...

그리고 마침내...

아직 다가오지 않았던 그 행복의 순간이 우리에게 축복처럼 주어지는 날...

두 팔 벌려 꼬옥 안아주기를...

그 동안 애썼다고...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고생 많았다고 말이다....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읽다가  - 초서

 

작가의 말 언제나 도시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지치고 피로에 짓눌린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도시가 아니었다. 결국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였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세상 그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행복은 발견의 문제이지 성취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 진정한 여행은 낯선 곡에서 돌아와 내가 살던 집에 다시 짐을 풀면서 시작된다는 것, 이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그처럼 여러번 배낭을 꾸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이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그처럼 여러번 배낭을 꾸릴 수 있었던 그녀의 자유가 몹시도 부러웠다. 오로지 떠나본 자만이 느껴볼 수 있는 그것 아니던가...


작가의 말 도시, 서로의 곁을 내주지 않는 익명성을 편리로 인정해 주는 공간, 도시인, 익명의 공간에서 시치미를 떼며 살지만, 누군가 가끔 자신의이름을 불러주기를 사무치게 바라는 외로운 사람들, 그 안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 갑자기 내가 몹시도 외로운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도 도시인이라는 이유로...


작가의 말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나는 또 감히 안다. 당신이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을 잃어 왔는지를. 당신의 흔들리는 그림자에 내 그림자가 겹쳐졌기에 절로 헤아려졌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갔지만, 끝내 가 버리던 버스처럼 늘 한 발짝 차이로 우리를 비껴가던 희망들, 그래도 다시 그 희망을 좇으며 우리 그렇게 살았다.

작가의 말 당신이마에 손을 얹는다. 당신, 참 열심히 살았다.

내 이마에도 손을 얹어다오.

한 사람이 자신의 지문을 다른 이의 이마에 새기며 위로하는 그 순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거품처럼 들끓는 욕망에 휘둘리느라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침묵이 우리를 품어 주리라.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P37 인생에 중요한 갈림길이 될 만한 결정적 순간이 존재한다는 오해를 풀었다.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했다. (...)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방식으로 다가올 기회를 기다릴 것, 새로운 것이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 그래 맞어.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방식으로 다가올 기회... 인생에 중요한 갈림길이 될 만한 결정적 순간이 존재하는,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이라는 것.. 공감한다... 그녀는 갓 30대 중반에 깨달은 것을 나는 50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느꼈던게다...


P38 나의 스승은 말씀하셨다. 나에게서 받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크고 깊은 사랑이라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아야 쓸모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있어야 잘 쓰이는삶을 살 수 있다고, 그 확신은 자신을 믿고, 재능이 꽃필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 주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P57우리가 괴로운 것은 의식(생각)과 감정(마음)의 모순 때문입니다.”

P58생각과 마음이 싸우면 대부분 마음이 이깁니다. 승율 90퍼센트 이상이죠. 백만 대군과 싸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절에 가면 대웅전이 있죠. 그건 자신

의 마음과 싸워 이긴 큰 영웅을 모신 곳이란 뜻입니다. 좋고 싫음에 따라 움직이면서 우린 거기에 온갖 핑계를 다 갖다 붙입니다. 일생이 핑계 찾아 삼만리입니다. 해탈이란 좋고 싫음의 놀음에서 벗어나 좋아도 안 할 수 있고, 싫어도 가볍게 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 ‘대웅전이 그런 곳이구나...몰랐다. 나는 그저 부처임이 계시는 곳이란 생각만... 우리 일생이 핑계 찿아 삼만리라는 표현이 얼마나 진지하면서도 우습던지...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길은 멀고 멀기만 한 것 같다. 그래도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도전의식을 가지고 삶 속에 적용해 나가다보면 해탈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의 평화를 맛보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까..? 미리 상상해보기보다는 그럴 시간에 적용을 해볼 일이다.


P60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나태를 허용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나태보다 더 나쁜 상태인 무기력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뺏는 자책의 허방에서 빠져나오기만 해도 세상은 제 빚깔을 되찿고 의욕은 되살아난다. 나 자신을 오롯이 받아들일 때, 내 보폭만큼 조슴씩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나 자신을 오래 미워했다면 이 책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P63 혼자 나직하게 읊조리는 일, 그것은 가장 낮은 목소리의 소통이자 스스로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혼잣말을 하다 보면 평소에 꾹꾹 눌러둔 무의식이 올라오기도 한다. 읊조림을 통해 숨어 있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가장 낮은 목소리로 자신과 나누는 이 소통 덕분에 때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문제를 안겨 주는 세상과 맞설 용기를 낸다는 것이다.

P101 지불책우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꾸짖지 않는다.


P107 두 젊은이는 창조적인 삶에 부록처럼 따라붙는 세 가지, 즉 젊음과 가난, 고독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 읽으면서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가장 치열했고, 가장 열정적이었고, 가장 처절했던 그 시절이. 젊음, 가난, 고독을 빼면 그야말로 시체였던 시절.. 결국은 어디로 갈데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헤매는 나에게 그 세가지는 바로 마중물이었고, 채찍질이었고, 엔진을 가동시켜 주는 기름이었던지도.. 어설프게 편안한 환경이었으면 나는 아마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어디 기댈 곳 하나 없었던 곳이었기에, 도망가봐야 벽이었고 막다른 골목이었기에 그렇게 기를 쓰고 억척스럽게 현실과 싸워냈는지도...


P106 도시는 너무 쉽게 죄의식을 생산해 내고, 비빌 곳 없는 지방 출신들은 너무 쉽게 그 생산물을 소비했다. 그 자리에서 우린 아직 젊다고 말해 봐야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다.

>> 나는 도시에서 비빌 곳 없는 지방 출신은 아니었지만, 비빌 곳 없는 이민자이긴 했다. 그녀가 낯선 대도시에 겪는 많은 이야기들이, 내가 외국 생활에서 겪었던 많은 상황들과 닮아서 그리도 공감을 하며 폭 빠져 읽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P111 스승이 말했다. “청빈과 극빈의 차이가 무엇인지 압니까? 스스로 그 길을 택해 검소하게 살면 청빈입니다. 극빈은 내 욕망은 그렇지 않은데 할 수 없어서 그렇게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조급함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하거나 큰 병에 걸렸거나 문맹이 아니라면, 그 이상은 더 잘 먹고, 더 건강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남과 비교해 얻는 고통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약이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악한 생각입니다.”

>> 청빈과 극빈의 차이를 이렇게 간단하고도 명백한 그림으로 보여준 스승님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럼 나는 어떤 부분에 있는건가..? 아마도 마음은 청빈으로 살고 싶은데, 현실은 극빈자의 마인드가 아닌지.

나는 비교를 하며 스스를 고통속으로 밀어넣지는 않는다. 없는 나였던 내가 그나마 밝게 웃음 속에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있는 너와 나를 비교하며 부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가끔씩 두려움에 쌓이는 것은 바로 애리와 리예 때문이다.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그것은 내가 그렇게 가진거라곤 오로지 젊음과 열정과 가난이었던 그 시간 속에 절절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던 그런 환경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쉽게 손에 들어오는 허영과 사치로 키우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분야에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에 재능을 발휘할 때, 그 재능을 키워줄 수 있는 배경이 되어주고 싶을 뿐인게다. 그런 과정 가운데 그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애리와 리예가 삶 속에서 경험하고 배워야 할 몫의 삶의 레슨임 또한 잘 알고 있다. 때론 넘어질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론 좌절과 고통 속에 죽음이 유혹으로 다가올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애리와 리예가 되기를 바랄 뿐...


P116 누가 그랬던가, 여행과 생활은 연애와 결혼의 차이 같다고, 막상 그 나라에 터를 잡고 산다면 다르겠지만 여행이었기에, 여행자였기에 우리는 언뜻 새로운 세상을 보았거나 봤다고 생각한다.

>> 너무나도 그럴듯한 비유... ^^ 여행과 생활은 연애와 결혼같다...^^


P118 내게 공항은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곳이다. 벼르고 벼른 끝에 일상을 떨친 뒤에야 도착하는 해바으이 관문이라고 할까.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환승 비행기를 타기 위해 로비 의자에서 짧은 잠을 청해야 할 때도, 그곳에 공항이기에 기꺼이 불편을 감수할 수 있었다. 몇 시간만 지나면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으니 오히려 달콤한 고생이었다. 우리네 삶도 잠깐 머물다 가는 여행객 신세이건만, 공항 밖에서는 왜 그리 자주 고생은 고생일뿐이고, 답답함은 그저 답답함뿐인지...

>> 공항.. 남편과 나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주는 곳이다. 특별히 갈 곳이 없던 첫 이민 정착지였던 파라과이. 우리는 그렇게 공항을 드라이브 다녀오곤 했다. 그곳을 떠나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그곳에 도착하는 이들이 앞으로 겪게될 많은 어려움과 고통들을 상상하며 싸한 아픔을 느끼며..

남편과 나는 오랜 시간 친구였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시각이면, 우리는 그렇게 공항까지 드라이브를 마지막 의식처럼 치뤘던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이곳을 떠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과 함께, 그리고 또 어쩌면 이곳을 영원히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

그때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내 옆지기가 된 남편과 나는 지금도 종종 공항을 다녀오곤 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 어디론가 드라이브를 다녀오고 싶을 때 우리가 향하는 곳은 종종 공항인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며... 없었지만, 가난했지만 꿈이 많은 시절이었음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난 것이다... 웃으며 떠올릴 수 있을만큼....


P119 왜 인간은 늘 유목과 정착 사이에서 갈등하는 걸까. 일이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갈 때는 바람을 쐰다는정도의 작은 일탈조차 사치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 몸의 세포가 다른 곳에서 들이킨 바람의 냄새를 정밀하게 기억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


P121 한곳에 머물기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고, 떠나기엔 용기가 부족한 사람, 스스로 그런 범주의 사람이 된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질 때면 공항으로 간다.

>>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한곳에 머물기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고, 떠나기엔 용기가 부족한 사람.’ 꼭 내 모습이었다. 나는 여전히 떠나기를 그리워하는사람으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꼭 떠나리라는 막연한 다짐과 함께....


P124 해가 지면 안도하고 새벽이 오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겁났다던 분들, 그런 세월을 살면서 알아차린 것이다. 게으른 눈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의 눈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해야 할 일 전부를,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겁먹기 쉽다는 것을, 엄마는 말했다. 오직 지금 내딛는 한걸음, 손에 잡히는 잡초 하나부터 시작하면 어느새 넓은 콩밭은 말끔해진다고, 반드시 끝이 있다고.

>> 우리 엄마 아빠도 그런 시기가 있으셨다고 했다. 밤이 오면 이 밤이 영원히 가지 않기를.. 아침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그랬던 적이 있으셨다고 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삶의 레슨은 공평하게 고루고루 주어지는 것인지, 언제나 엄마 아빠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그것이 내게도 왔다. 이 밤이 지나지 않기를 바라던 그 두려움을 얼마나 많은 밤 속에 흘려보내야 했는지, 새벽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야 했는지.. 그러면서 나는 성장했고 어른이 되었다. 인제는 내가 엄마였던 것이다.

아마도 우리 엄마 아빠만 겪은 것도, 나만 겪었던 것도 아닌 듯... 우리 모두가 겪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우리가 겪는 삶의 레슨.. 오늘 하루만 보내면 밤이 오고 또 오늘 하루만 보내면 그 하루 힘들었던 만큼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동냥받는 부여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글이 내겐 남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고, 마치 나의 이야기가 써있듯 그렇게 온전히 공감과 동감 속에 읽혀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괜히 눈물이.....


P126 이슬람 신비주의이 수피즘 철학에 따르면, 행복을 얻는 방법 가운데 으뜸가는 것은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해...


P129전생의 일이 아득하여 알 수 없는데 인연을 말하려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


P143 아무리 깨어 있으리라 다짐해도 휘말릴 대로 휘말리고 나서야 겨우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린다.

>> 절대 공감이다. 아무리 깨어 있으리라 다짐을 하고 또 해도 휘말릴 대로 휘말리고 나서야 겨우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 차리는 우리. 그나마도 알아차리는 경우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인게다. 그러지도 못해 오랜 시간 끙끙거리다가 우울증에도 걸리며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집어 던지고야 마니 말이다.


P143 명상이란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저사람은 왜 조심하지 않고 책장에 흠집을 냈을까?” 하고 화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건에 집착하고 있구나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리는 순간 화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우리의 감정도 하나의 인격체와 마찬가지여서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면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실체를 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이 바깥(책장에 흠집을 낸 아저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쾌해하는 내 마음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P143 여기서 주의할 점 한 가지, ‘집착은 나쁜 것이니 빨리 내려놓지 그래?’하고 무서운 사감처럼 윽박 지르거나 자책하지 말 것. 이때 필요한 것이 자신을 받아 주는 명상이다.

P144 욕심과 기대가 담긴 일에는 괴로움이 따른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정성껏 해 줬으면 하는 마음은 내 욕심이요, 기대다. 마음이 버거울 때 일의 양이 많이 힘든지, 다른 욕심이나 기대로 괴로워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내 욕망의 실체가 뚜렷하게 보인다.

 P144 지금 여기에 쏟아야 할 눈길과 마음이 엇갈려 있을 때, 오히려 일은 더뎌지고 머릿속은 뒤엉키고 만다. 집중력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볼펜을 바라볼 때 눈뿐만 아니라 마음도 볼펜에 오롯이 머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글로 쓰면 간단한데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 경지에 이르러 깨달은 이가 몇 명 되지 않으니 깨어 있기란 이처럼 힘든 일이다.


P145 그렇지, 이사란 익숙한 누추함이 새로운 누추함을 껴안는 행사인 것을,

>> 이 기막힌 표현에 반해버렸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사를 해보지만, 결국은 거기서 거기인 우리네 삶. ‘이사란 익숙한 누추함이 새로운 누추함을 껴안는 행사라니.. 왠지 모를 싸한 슬픔에 가슴에 싸한 바람이 일었다...


P145 삶은 끊임없는 비우기와 채우기의 연속이구나, 그러니 어쩔 것인가, 이것이 도시 유목민의 운명인 것을...

>> 그러게. 그러니 어쩔 것인가. 이것이 도시 유목민의 운명인 것을..................


P162 낮에 지상의 세게에 붙들리는 동안 허기졌던 영혼은 오직 밤이 되어 모두가 잠든 시간에야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것들, 내가 평생을 다해 닿고 싶은 것들의 세계에 안착하곤 했다. 그것은 불안정한 안식이며, 짧은 순간에 그치고 마는 기쁨이었다.


P165 지금부터 반값이라는 안내 방송이 들리고 주위에서 뛰기 시작하면, 꼭 필요한지 생각하기도 전에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누가 미친 듯이 사과를 골라 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비닐봉지를 들게 된다. 전염성도 강하여라. 욕망은, 내 안의 들끓는 욕망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 마트는 사방이 툭 트인 광야, 나 자신이 투명하게 보이는 명상처로 변한다.

>> 하하하하~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우리의 일상을 콕 찝어 냈는지. 글 속에 나도 모르게 비닐봉지를 들고 사과를 집어 넣는 내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또 그렇게 튀어나왔다. ^^;;


P169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비교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바로 지옥이다.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뿐더러 내가 지닌 것과 살아온 인생을 단박에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추락시키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 그게 바로 비교다.

P169 적게 소유하고 풍부하게 존재하라.” 하루를 세 단위로 나눠 새벽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이웃과 친교를 나누며 살았던 생태 근본주의자 스콧 니어링의 말이다.


P172 순조로운 의사소통을 막는 첫걸음은 과거의 기억에 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동안 봐 온 가족과 오히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을 지상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하기란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 같은 이유로 우리는 싸이버에서 더 자유롭고 정직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도 어떤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지만. 종종 나와 멀리 있는 이들로부터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깊은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멀리 있음이,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는 현실적인 거리가 위로가 되어주기 때문임을 나는 안다. 물론 그 밖에 여러가지 이유도 있지만, 가끔 잘 모르는 이들로부터 이멜을 받으며 그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 그들에게는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낯선이가 필요함을.. 그들에게 귀가 되어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함을 느끼곤 한다. 때때로 나도 그러니까...


P175 내가 옳다는 생각도 소통을 막지만, 내가 틀렸다는 생각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아니다. 미안해 하는 마음은 오히려 상대를 원하는 깊은 속내를 감추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나의 옳음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지기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사라진다. 미안한 마음은 지금 그대로의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 미처 채우지 못한 욕심일 수 있다.

>> 맞다. 옳은 말이다.


P175 지혜로운 스승들은 상대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들 때는 진참회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참회란 내가 문제였어라고 건성으로 결론 맺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옳고 그른 일이란 없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가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하는 일이 사실은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에 다름 아닌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판단은 아니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P190 도시는 끝없이 물욕을 불러일으키지만 원하던 물건을 장만한 기쁨은 잠깐에 불과하지 않던가,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건 그 물건이 잠시 안겨주는 충만한 행복감이 아닐는지. 공동체 삶에서 수혈 받는 생기, 충만함, 안정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도시에서 우리는 물질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사는 게 아닐까. 마치 엄마의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이 베개나 인형을 안고 다니듯이, 그래서 어느덧 물질에서 물질 사이를 떠도는 여행자가 된 건 아닐까. 대답을 할 리 없건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디오를 한 번 쓸어 본다.


P195 운명이란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의 결과물임을 이해했다. 그리고 또 알아차렸다. 내 의지로 그런 환경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억울해 할 수 없다는 것을, 설사 지고한 존재의 선택이었다고 해도, 그런 선택의 배경에는 내 영혼을 위한 배려가 있었을 터였다.

>> 그래.. 맞어.. 내게 주어진 그것이 어떤 것이던, 그런 선택의 배경에는 내 영혼을 위한 배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억울해 할 필요도 속상해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안에서 충만감을 느끼고 만족하며 행복을 누리며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비교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우리는 얼마나 귀가 따갑게 들어야 삶 속에 누릴 수 있는 것일까...?


P240 이제 번호만 누르면 나는 연결된다.너에게, 당신에게, 내가 떠나온 세상을 향해, 아직도 도시에 공중전화가 남아 잇다는 사실이 고맙고, 또 고맙다. 손 전화에 밀려나면서 공중전화는 이제 어느 부스나 텅 비어 있어 경쟁자 없이 여유롭게 쓸 수 있다. 뒷사람 눈치 보면서 불안과 아쉬움을 담아 통화를 이어가던 시절은 까마득해졌다. (...)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챙겨 가서 번호를 조심스럽게 누르는 순간, 지난 세월 공중전화에서 발화됐던 수많은 말들의 역사가 떠오른다.


P241 걸었다가 그냥 끊었던 전화, 받는 순간 끊겼던 무수한 전화, 말없이 음악을 들려주던 전화, 목소리 대신 세찬 파도 소리가 방 안으로 가만가만 들이치던 전화, 낯선 나라와 말이 들려오던 전화, 행운과 불은, 웃음과 눈물, 갈애와 환멸이 담겼던 통화들을 가쳐 오늘에 이르렀다.

>> 그녀의 삶은 참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름다운 역사들이 함께 한 만큼 상념도 고통도 많았겠다. 어떻게 이런 표현들로 그 전화와 함께 한 이야기들을 콕 집어내는지 그녀의 섬세한 눈길과 아름다운 표현에 그만 숨이 막힌다...


P241 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자신이 잇는 동네나 도시의 누군가에게 할 수 없는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을까, 사막에 울려 퍼지는 벨소리를 상상하며 자기 내면의 사막에도 누군가 접속해 주길 바랐던 것일까...

>> 모하비 사막의 공중 전화.. 다른 모든 것을 떠나 그렇게 계획한 그 사람이 누군지 너무 궁금해졌다. 누가 이런 로맨틱한 상상을 현실로 이끌어냈는지. 그는 왜 그 아름다운 현실을 거두어야 했는지... 마치 어린 왕자의 별에나 나올법한 이야기...


P247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어느 날 밤 생각에 잠겨 거리를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이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경관이 다가와 물었다. “저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쇼펜하우어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나도 당신에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소

>> 읽다가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 정작 쇼펜하우어는 비통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는데, 경찰이 그 대답을 들었을 때의 표정은 어땠을까..? ^^ 순간, 쇼펜하우어가 그 오랜 옛날에 태어난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만약 요즘에 같은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면 경찰을 놀렸다며 분명 공무집행 방해로 감옥에 끌려갔던지, 아니면 죽으라고 몰매를 맞았던지 그랬을 것 같다.. ^^ 암튼, 예전에 벌어진 일들은 모두다가 괜히 다 낭만적이고 여유로워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각박하고 배려없는 세상 속에 속해 있기 때문일게다...

쇼펜하우어...하면 안광복 선생님이 떠오르고...큭큭~ ^^


P150 부탁이란 것은 내게 그럴 만한 능력과 힘이 있다고 상대가 판단하고, 그 도움이 필요할 때 이뤄진다. 핵심은 내게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부탁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내가 가진 것은 축복 받은 어떤 능력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에서는 복이 갑자기 재앙처럼 여겨진다. 누구에게는 복이 되는 것이 누구에게는 재앙이 된다니, 인생사란 복잡기묘하기 짝이 없다.

>> 정말 재밌는 그녀다. 어떻게 이렇게 명확한 비교로 부탁의 양면성을 찝어 냈는지..^^ 그녀의 섬세함이란... ^^ 그러게 말이다.. 누구에게는 복이 되는 것이 누구에게는 재앙이 된다니, 인생사란 복잡기묘하기 짝이 없다...


P154 부탁과 거절 사이의 심리적 균형을 찿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상대가 꼭 들어줘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현재의 내 고민을 꺼내 놓을 때, 부탁은 부탁이 아니라 삶의 과정을 나누는 소통이 된다.

>> 그녀의 부탁과 거절에 대한 풀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도 부탁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기에, 그녀의 부탁에 관한 글은 깊은 공감 속에 읽혀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부탁을 잘 하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두두러지게 나타나는 두 이유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내가 편하고자 하는 것 두 가지다.

그니까 누가 부탁을 해올 때는 꼭 바쁘거나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가 많기에, 어쩌면 나도 그런 불편을 끼치는 건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이 그 하나 이고, 또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는 그 결과물이 남에게 결정권으로 남게 되니 상대방의 리듬에 좌우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아주 이기적인 이유에서다...

하지만, 요즘은 나도 부탁에 대한 나의 자세를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람 냄새나는 나이고 싶어서...


P255 거절당하는 것과 자존감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다. 마음에서 어떤 연결 고리가 생긴다면, 그건 거절한 사람과 상관없이 부탁하는 이편의 심리적 컴플렉스와 자괴감일 뿐이다,

>> 절대적으로 동감이다. 내가 부탁을 잘 하지 못하는 세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가 분명하게 말했듯이, 그것은 거절한 사람과 상관없이 부탁하는 내 쪽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심리적 컴플렉스와 자괴감일 뿐이었음을...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던게다...


P257 우리는 외로워서 중독되는 것일까, 아니면 중독되어 외로워진 것일까. 이성에 대한 사랑을 느낄 때 뇌가 반응하는 부위와 코카인을 흡입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같다고 했던가. 무엇인가에 쉽게 중독되는 사람들에겐 허기진 내면의 자아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그래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외로워서 중독되던, 중독에 중독되서 중독되던, 어쩌면 내 안엔 허기진 내면의 자아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P261 중독은 무의식과 충동이 이성을 이길 때 생긴다.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면 중독이 아니라 일시적인 몰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P261 모든 중독은 불안에서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찿아오는 공허와 불안을 참을 수 없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잊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찿아 헤맨다. 무엇인가에 흠뻑 빠져 있는 그 순간이라도 세계와 자신 사이에 생긴 빈틈을 채울 수 있다고 믿는다.

>> 모든 중독이 불안에서 온다는 말. 공감한다. 공허와 불안을 참을 수 없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잊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찿아 헤맨다는 말. 사실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 뒤에는 더 깊은 공허와 불안으로 절절한 방황을 몫으로 내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많이 겪어야 했는지.

그렇게 오랜 방황을 관문처럼 치뤄냈을 때 나는 그 영혼의 방황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알게되었다. 바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과 멀어졌을 때 감당해야 하는 그것이었음을. 내가 점점 하느님과 멀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였음을.. 그래서 하느님이 나를 안타까움 속에 바라보고 있다고 알려주는 나팔소리였음을 이제는 내가 아는 것이다. 그러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는지.... 하지만 인제 나는 조금씩 따뜻한 봄을 느끼고 있다. 엄동설한 추위에 벌벌 떨던 내 영혼은 그분의 품안에 머무는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따뜻한 기운을 느끼며 포근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황마리 스텔라 수녀님께서는 기억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 했다. 이 따뜻한 기억을 따라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린다..


P261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사람 중독만큼 치명적인 게 있을까. 부처님은 일찍이 좋아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어 괴롭고, 싫어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고 했다.

>> 하하하하~ ^^ 얼마나 기막힌 표현인지. 그러게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어 괴롭고, 싫어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운 우리네 삶... 참 잘묘하기도 하다..


P264 중독과 몰입의 차이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있지 않을까. 어떤 일에 지독하게 빠져 있는 자신이 밉고 죄책감이 든다면 중독이다. 그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내면의 자부심이 커진다면 몰입이다. 왜냐하면 중독은 결국 자신의 실체를 잊기 위한 몸부림이며, 올바로 사랑을 쏟아야 할 대상에게서 거부당하고 상처 받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 그녀의 중독과 몰입의 차이에 대한 구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몰입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며, 중독은 파괴적이고 방황과 파멸을 댓가로 내놓아야 하는 것. 무언가에 빠져있다는 겉모양은 닮았으나 이리도 다른 성격의 중독과 몰입. 이렇게 무서운 것이 중독임에도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중독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에 중독되고, 인터넷에 중독되고, 채팅에, 고스돕에, 알콜에, 또는 마약에....

참으로 온전히 살기도 피곤한 세상이다.


P264 중독이 치명적인 것은 물리적인 파괴의 속성 때문이다. 몸 어디 한 군데가 손상된 뒤에야 간신히 벗어날 수 있는 것, 그게 중독이다.

>> 절대 공감~!!


P265 중독을 일컬어 느리게 진행되는 자살 시도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정말 미스테리하고 약 오르는 진실 하나는 좋은 습관은 쉽게 중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하하하하~ 정말 약이 오르고 또 오르는 부분이다. 왜 우리는 우리 삶을 파괴하고 망치는 무엇에는그렇게 쉽게 중독되면서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고 꿈에 이르게 하고 행복에 이르게 하는 좋은 습관에는 그리도 중독되기가 힘든지. 정말 제발 중독 좀 되어주면 고마울 것을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를 시켜주는 좋은 습관은 정말이지 중독되기 힘들다.


P266 기운 빠지고 만사가 심드렁해지고 누군가가 몹시 미워지는 날이 있다. 마음이 싸늘하게 식고, 모든 걸 끝장내고 싶을 만큼 화가 나는 날이. 이런 날은 내 삶에 두 가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다. 느림과 텅 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동은 이 두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생긴다.

>> 그렇다. 내가 바로 그랬다. ‘느림텅 빔이 부족했을 때 나는 방황했고 공허했고, 뭔지 모를 불안 속에서 그렇게 잠 못이루는 밤을 댓가로 지불해야 했다.


P267 걸으면서 자신에게 들려준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텅 빔의 충전이다. 무의 수혈이다.

>> 나도 내가 이유없이 화가나고 짜증이 날 때, 원인 없이 성질이 오르고 날카로워질 때, 내게 느림텅 빔이 고갈되었음을 깨달을 때, 이렇게 되뇌이면 나를 로 되돌리며 그리 투명한 내가 되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럼으로 마음의 평화가 오고 잔잔한 바람을 느낄 수 있기를...


P275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가슴 깊이 받아들일 때 자신의 고통에 함몰되는 어리석음을 멈출 수 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야말로 자기애적 연민과 자기 혐오감을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다.

P279 인간이 고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릴 때는 현실보다 훨씬 리얼한 상상력 때문에 지레 괴롭고, 어른이 되서는 상상보다 훨씬 리얼한 현실 때문에 경악한다는 것.

P297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심장에서 울리는 소리를 따라 길을 떠난다. 그러나 진정 성숙한 여행자는 돌아와서 자기 발밑의 장미 한 송이를 더욱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보다 멋진 사람은 굳이 떠나지 않고도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내면의 여행자이다.

P297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발밑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P299 지옥이 견딜 만한 것은 익숙해지기 때문이라고 하던가.

>> 그나마 다행스럽지 않은가..? 지옥을 견딜 수 있다는 것.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적응력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가닥 실같은 희망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별삼아 걸어가고 숨을 쉬니 말이다. 그래서 지옥을 그나마 견딜수 있을 만한 곳으로 만들어 놓는 능력이라니... 신비롭지 않나....


P307 수행자들이 특정 장소에 애착을 갖지 않기 위해 오래 머무르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애착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고통의 원천이었다.

>> 모든 애착이나 집착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그것이 사람이던 사물이던 어떤 장소건... 그래도 어쩌겠나.. 정을 주지 않으려해도 정은 절로 흘러가고 결국 그것은 애착이란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을...


P313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 주엇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 프랑스 소설가 미셀 투르니에의 묘비명

>> 나도 내 묘비명에 이렇게 밝고 명랑한 묘비명을 쓸 수 있기를...


P321 주머니 두 개가 달린 앞치마를 두르고 하루를 보내는 수행이 있다. 한쪽 주머니에만 콩을 한 줌 넣어둔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빈 주머니에 콩을 하나씩 옮긴다. 화가 날 때 한 알, 즐거울 때 한 알, 두려울 때 한 알, 측은함을 느낄 때 한 알, 누가 마음에 안 들 때 한 알, 맛있다고 느낄 때 한 알.... 밤이 되면 옮긴 콩 개수를 헤아린다. 그 콩의 개수가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깨어 있다고 느낀 횟수다.

>> 참 재밌는 수행 방법이다. 읽으면서 웃음이 났다. 만약 내가 이 수행을 했다면, 아마 앞치마에 달린 조그만 두 주머니로는 택도 안될 성 싶었다. 아예 푸대자루 두개를 가져다가 콩을 쌓아놓아야 할지도. 이 부대자루에서 저 부대자루로 콩을 바가지로 옮기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얼마나 우습던지..^^;;


P323 이 세상의 어떤 기쁨이든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의도에서 나온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이든지 자기 자신만 행복하겠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 아멘~!!


P327 나 자신이 이기적인 인간임을 이해하면 다른 사람의 모습도 이해하게 되는 법이다.

>> 백번 공감가는 말이다.


P331 달라이 라마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하는 것을 이기주의로 아는데,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라고, 돕고 나누는 순간 상대보다 자신이 더 행복해진다는 걸 잘 알기에, 그 행복을 더 많이 누리고 싶어서 또 나누는 사람들이기에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P332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또 쓰이느느기쁨을 아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부리는 것, 써먹는 것을 좋아하고 쓰이는 것은 싫어한다.

P332 마음을 내려놓고 쉬지않는 한, 마음이 바쁘지 않은 때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햇다. ‘쓰이는 일을 안 하는 대신 정작 그 시간을 값지게 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책하며 허송한 시간, 화내며 보낸 시간, 그냥 흘러간 시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공부와 나눔, 자연과 하나되는 삶, 느리게 살기에 관한 책들을 끊임없이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갈망했다. 반쪽짜리 공부였다. 관념에 치우친 수행, 그걸 깨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여러 해 전, 스승은 나를 앉혀 놓고 일대일 강의를 열었다. 쓰이는 기쁨이 없는 사람은 활기가 없어요, 그리고 기쁨보다는 슬픔에 더 공감하게 돼요, 내 능력을 넘어서는 조금 힘든 일을 해 볼 때 진짜 공부가 됩니다.”

>> 그녀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었고, 스승님께서 그녀에게 해주신 말씀은 바로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이었다. 관념적인 수행에서 벗어나 쓰이는 기쁨을 맛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닌지..., 인제 휴면에서 벗어나 봉사를 해야하는 시기가 온 것은 아닌지... 그러라는 표지로 느껴지는 말씀이었다.


P333엄마가 아이를 안을 때 그 아이가 옳아서 안아 주는 게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안지요.”

P333 알면서도 내 무의식의 저항은 깊고도 깊었다. 누가 나를 쓰려고 할 때마다 경계에 부딪쳤고, ‘하기 싫은 마음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영혼과 혼동했다.

>> 어쩜 이리도 내 마음과 똑같은지. 그 혼동하는 영역도 모양새도 너무 똑같아서 웃음마저 나왔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하기 싫은 마음자유로운 영혼과 혼동했었다...


P334 스승은 우리에게 쓰이는 공부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자기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는 발등의 불을 끄는 일이 가장 급선무이지만, 그게 해소되면 작은 일이라도 쓰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을 투, 치고 올라가는 연습을 해 보세요,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은 죽어도 해야 되고,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안 하기 때문에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 무의식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죠.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자신에게 한번 물어 보십시오, 행복하지 않다면 쓰이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 스승님~!!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쓰임의 행복을 느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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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올려본다...

늘 나를 감동의 폭풍 속에 몰아넣었던 곡...

그래서 들을때면 늘 눈물 한 방울 듣는 몫으로 내놓아야 했던 곡...

Enya의 China Roses.....

작가 정희채의 독후감 리뷰 곡으로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