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 첨 받은 날

빛별 2010. 3. 12. 16:19

말씀에 온전히 맡겨진 순간

오시정

 

 

 

 

나는 사람은 그저 선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어왔고,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선하게 살면 천국에 가고 악하게 살면 지옥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기독교만이 옳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늘 강한 반발심을 느꼈고 그러한 주장은 기독교를 오히려 더럽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인일수록 타종교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종교가 있든 없든 어차피 결론은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도 있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이 죄들이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 죄들을 알고 계실 텐데,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실까? 또 벌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고민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내게 또 다른 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긴 인류의 역사 중 아주 작은 시점에서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사는 내 인생이 초라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를 무척 괴롭혔다. 개개인이 추구하는 행복, 자기 삶에의 만족, 그런 것 또한 무슨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행복 따위를 설령 내가 얻었다 한들 -아주 유명한 사람도 남들이 알아줄까 말까 하는데- 아무도 알아줄 리 없으니 그것도 결국 부질없고 어리석게만 생각되었다.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살다 죽는다면 그런 인생을 살아 보았자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나마 덜 억울하게 살려면 유명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을까 열심히 고민했다. 그런 야망과 욕심이 점점 커지면서 내 죄에 대한 고민도 부질없는 것 중의 하나로 서서히 묻혀 들어갔다.

 

내가 십대 초중반을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온갖 욕구불만으로 보내는 동안 친척 중 하나가 성경을 통해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척들과 어머니에게도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은 나에게도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말씀 테이프를 보라고 권해 왔다. 말씀 테이프를 보는 동안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감당이 안 될 정도였지만, 그 동안 자부해 왔던 내 종교관과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인생관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몇 차례 집회에 참석했지만 확실함을 얻지는 못했다. 내 죄가 단번에 사해졌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인할 수도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사실을 자꾸 밀어내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마음이 욕심으로 물들기 전, 한동안 죄에 대해 고민했던 당시의 그 상태에서 말씀을 접했더라면 아마 조금 더 쉽게 그 사실들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조금이나마 순수했던 마음에서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내 마음은 완악하기 짝이 없었고 낮아지는 것에는 아직 근처에도 가지 못했으며 세상에 대한 야망 또한 그렇게 한 순간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상태로 내가 감히 죄 사함을 받아들인다면, 구원이 그렇게 뻔뻔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언가 모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내 상태에 절망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확실한 답을 얻고자 하는 가느다란 희망 또한 버리지 않은 채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를 다시 한 번 보았다. 권 목사님이 이사야 44장 22절 말씀의 내용을 칠판에 그리면서 설명하셨다. 그리고 불과 한 1, 2분 지났을 때 그 말씀이 마음속에서 다시 떠오르면서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으니 나에게 돌아오라고 하셨고, 이미 다 해놓으시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다 해놓았다는데 거기에 난 아직 아니라는 이유를 붙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구원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자격을 하나님께서 이미 다 완전히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돌아오라고 하신 것이었고, 나는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날이 1992년 8월 5일이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그 후 몇 년이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체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일 뿐이었다. 구원받은 그 순간이 바로 말씀에 내가 전적으로 맡겨진 순간이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겸손이었다.

 

구원받고 사는 동안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구원받기 전에 지고 있던 짐과는 다른,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본분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짐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원받을 수 있었듯이 이후의 생활도 그 원리와 같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만 하는 어리석은 내 자신을 항상 보게 된다.

 

어느 날 야고보서 강해를 듣는 중에 이런 말씀을 들었다. 우리가 살아 있고 숨쉬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이냐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라고 했다. 사는 것이 수고스럽고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진대 살아 있는 자체를 행복이라고 표현하다니. 다른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나처럼 무거운 짐으로 여길 수 있는가 하면 특권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 실로 큰 충격이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그 말씀을 들은 이후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아직까지 멀고 먼 길로 느껴진다. 멀지만 끊임없이 가야 할 것이다.

 

출처 : 월간 <글소리> 2008년 1월호, 내 마음의 소리

 

 

 

 
 
 

주의 말씀 첨 받은 날

빛별 2010. 3. 11. 16:26

주께서 앞으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호르헤 소사

 

 

 

 

멕시코 휴양 도시 칸쿤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메리다에 사는 호르헤 형제는 칸쿤에 사는 친척의 권유로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를 보고 구원받았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평소 가졌던 슬픔을 말씀 안에서 해결하고, 앞으로 이 복음을 전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계속된,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슬픔에 대한 이유들을 굳이 쓰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언제나 주님께선 절 보호해 주셨고, 함께하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저는 제 삶의 본이 될 수 있는 아버지란 존재 없이 자랐습니다. 그래서 힘들거나 슬픈 일이 닥칠 때면 막연히 주님을 부르며 절 사랑하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항상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지만, 흐르는 눈물과 감정들이 하나님께서 내 목소리를 청종하신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태껏 이러한 생활을 반복하며 살아왔습니다.

 

가엾은 어머니는 저를,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에 보내셨고, 저는 그곳에서 행복을 느꼈지만 그 행복은 집으로 돌아오면 거품처럼 사라지곤 했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계부가 사준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제게 계부를 존중하고 따를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의 반항심에 저는 어머니 말씀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종교적으로 잘 교육된 반듯한 청년으로 자랐지만, 내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종교심으로 똘똘 뭉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크고 작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살던 도시에서 멀리 떠나 공부를 하는 동안,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비슷한 날들의 반복이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칸쿤에 살고 있는 제 사촌 콘셉시온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녀가 말씀을 통해 확실한 진리를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친구이자 선생님인 한국인들에 대한 이야기, 칸쿤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자주 모임을 가진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콘셉시온이 무언가 중요한 것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저는 그 말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있었던 그녀의 좋지 않았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콘셉시온이 이번에도 어딘가에 속아서 지난번처럼 좋지 않은 일을 겪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 반 정도 지났을 무렵 그녀와 다시 같은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콘셉시온이 제게 설명하려고 메모한 성경 구절들과, 예전과는 다른 목소리 톤, 행동 등에 적잖게 놀랐습니다. 콘셉시온은 여전히 한국인들과 모임을 갖고 있었고 기회가 되면 저 역시 그 말씀을 들어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해서, 저는 언젠가 한번 직접 보고 알게 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졌습니다.

 

그렇게 아무 계획도 없던 중 어느 날 그들이 우연히 메리다로 찾아왔고, 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 날 처음으로 정명준, 홍해영 부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대하면서 설명하기 힘든 평안함과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첫 만남을 통해 저는 <성경은 사실이다> 라는 말씀 테이프를 접하게 되었고, 그날 이후로 사전에 정해진 날짜 없이 가끔 칸쿤으로 가서 그 비디오 테이프들을 보았습니다. 가끔은 그들이 비디어테이프를 가지고 메리다로 와서 제가 말씀을 계속 들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 테이프에서 다루는 말씀의 내용이나 깊이에 푹 빠지게 되었고, 한국인 형제자매들이 건네준 조그만 책자들을 읽으면서 더더욱 진리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 삶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들고 확실히 죄 사함을 받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은 저의 죄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아름답고 화창한 어느 날 오후, <성경은 사실이다>의 일곱 번째 말씀 테이프를 보면서 삶 속에서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보지 못하던 소경이나 다름없던 제 영혼이 눈을 떴습니다. 수천 년 전에 예수님을 통해 제 모든 죄가 깨끗이 용서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제가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제 삶에서 그 어떤 순간보다 더 특별한 때를 맞고 있습니다. 내 죄와 세상 모든 죄를 위해 자기 생명을 주신 예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구원에 대한 감사는 드리고 드려도 지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님! 저 또한 사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 대해 오래 참으심과 긍휼히 여기심 거듭 감사드립니다. 영원 전부터 저 역시 구원해 놓으셨다는 것을 제 스스로 알고 깨달을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람들을 보내 주셔서 진정 감사드립니다.”

 

지금 저는 모든 것이 예전과 다르게 보입니다. 마치 구름 속을 걷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예전처럼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 삶은 기쁨으로 넘치게 되었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굉장한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알게 된 이 아름다운 발견과 기쁜 소식을 시작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좋은 것들을 주님께서 채워주실지 모르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주님이 제게 주실 것들을 알고 배워 나가고 싶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말씀을 직접 손으로 더듬고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제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제 행동이 확실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출처 : 월간 <글소리> 2007년 6월호, ‘내 마음의 소리’

 

 

 

 
 
 

주의 말씀 첨 받은 날

빛별 2010. 3. 11. 16:24

내 죄가 사해진 후로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빅터 아부카이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던 어린 시절

 

저는 빅터 아부카이 목사이고 44세입니다. 제 아내의 이름은 수산이며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아들은 22살로 목사이며 딸아이는 19살로 간호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제 딸이 공부를 마치고 구원받게 되면 의료 선교단에서 일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 부모님은 기독교인이며 침례교의 신도입니다. 아버지도 목사이셨는데 지금은 73세가 되셨습니다. 저는 신앙을 갖고 계신 부모님을 두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제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주일학교에 가려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자라는 동안 저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한 이유이고, 구원받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저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의 일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제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1975년, 부모님은 제 구원에 대해 염려하고 계셨기 때문에 제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구세주로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라며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수년이 지난 뒤 제 삶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978년에 저는 다시 예수님을 제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해 이후로 저는 제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가 되었으나

 

1979년,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침례신학원에 등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원에서 제 아름다운 아내 수산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동급생이었고 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는 5년간의 공부 끝에 신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습니다.

 

1985년 졸업하기 한 달 전, 작은 침례교 협회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전담 목사가 되어달라는 요청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 아이들을 포함하여 30명의 신도가 있는 작은 교회의 목사로서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신도들이 가난했기에 교회는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제 월급도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1년 후에는 교회가 성장하여 100명 이상의 신도가 모였고 교회 건물도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지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신학 교수들과 다른 목사님들, 신도들로부터 명성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좋은 목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거의 20년 동안 많은 교회들에게서 일했던 이유입니다. 그것은 제게 있어 명예였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저를 추천하였고 목사가 없는 교회에 소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1999년, 저는 전담목사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일을 수년 동안 하는 것에 싫증이 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쉬고 싶었고 하나님께 다른 일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그만두지 않기를 바랐지만 저는 사람들에게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만두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시간 동안 제 마음속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고, 제 마음이 제 미래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대학을 진학할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저는 제가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제가 나이가 들면 제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죄로 가득 찬 제 모습에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쉽게 화를 내었는데 특히 제 아내에게 화를 자주 내었습니다. 아내는 자주 울었고 저는 다시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아내에게 계속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 제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제 모습에 지치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 양심은 죄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사업 실패로 죽고만 싶었던 그 해

 

저는 목사 일을 그만두고 1999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시작한 첫 사업은 기독교 학교였는데 아내는 첫 교사였습니다. 두 번째 사업은 가금류나 닭의 알 생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사료 공급업을 하였습니다. 저는 소를 키우는 사업을 하는 큰 회사에 사료를 공급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15,000마리의 호주산 소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이익을 냈으나 얼마 있지 않아 환율이 올라 소를 수입했던 회사는 손실을 입었으며, 소의 수입량 또한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 사업은 유기농 비료업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민다나오 섬 전체 지역에 유기농 비료를 독점적으로 공급하였습니다. 저는 제 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첫 해에는 경영성과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선전하기 위해 아내와 민다나오 섬의 여러 도시와 지역을 방문하여, 땅에 해를 입히고 건강을 파괴하는 화학비료와 비교하여 유기농 비료를 사용했을 때의 장점을 알렸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농부들과 회사들에게 강의를 하였습니다.

 

사업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교회가 조직될 때까지 저희 기독교 학교에서 주일마다 모임을 가졌습니다. 저희는 자유침례회라고 교회의 이름 지었는데, 신도들의 숫자가 거의 100명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선교 사업을 시작했고 선교사들을 지원하였습니다. 저희 교회는 자영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교회나 단체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6년의 일입니다. 저는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경쟁업체들이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해 왔고 사업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출 받았던 돈도 갚지 못했고 집도 저당을 잡힐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등록금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은 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2006년은 암흑의 해이기도 하지만 또한 암흑에서 빛을 본 때이기도 합니다. 2006년 8월에서 10월까지 저는 집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와 방에만 머물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제 삶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끊임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문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제 삶에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제 자신과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죽고만 싶었습니다.

 

뜻밖의 방문으로 찾게 된 진리

 

그러던 중 2006년 11월 3일, 노엘 아코스타 목사가 저를 보려고 저희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저희 집에 한 번밖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의 방문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볼 것을 권했고 저는 얼마 후 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그 자리에서 저는 정경화 씨를 만나 제 연락처를 알려 주었습니다. 일주일 후 그는 마닐라에서 열리는 성경 비디오테이프 집회에 저를 초대했는데, 저는 놀랐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내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 보는 것이었고, 제 아이들이 다니는 타이타이 침례 신학원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2006년 11월 13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타갈로그어로 된 <성경은 사실이다> 비디오테이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말씀 테이프를 본 후에 저는 권 목사님의 비디오테이프 강연이 좋아졌습니다. 그가 자신의 간증을 했을 때 우리가 같은 경험을 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권 목사님이 유명한 한국 사상가인 함석훈이 쓴 글을 인용했을 때 더욱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는 창녀는 먹고 살기 위해서 몸을 팔고 선생은 지식을 팔고 목사는 도덕을 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저는 살기 위해서 도덕을 팔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 말씀에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 성령 안에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저는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고, 개인적인 결정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서 받아들여 받는 구원에 대한 제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권 목사님은 스스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해도 그것이 실제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은 위험하다고 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결정은 저로 인한 것이지만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제 개인적인 결정이 하나님께서 내게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결정’할 때가 아니라 그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깨달을 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깨달을 때 오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믿음을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에 받아들여지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믿으며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은 단지 개인적인 결정일 뿐입니다.

 

저는 그때 제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진정한 기쁨과 평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죄가 가득한 제 모습과 육신의 정욕 때문에 발버둥쳤습니다. 그리고 제 미래에 대해서도 자주 걱정했습니다. 저는 제 문제를 모면할 힘이 없었습니다.

 

제가 열한 번째 비디오테이프를 보았을 때는 2006년 11월 16일 오후 2시 30분이었습니다. 저는 제 구원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하며, 제가 죄인이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비디오테이프에서 2천 년 전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희생의 그림자로서 구약 시대에 성전에서 희생된 동물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구원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저를 영원히 속죄하시려고 그 피를 흘리셨습니다. ‘제 모든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치 않으시리라’고 히브리서 9장 12절과 히브리서 10장 1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31절, 방탕한 둘째 아들의 이야기는 제 마음과 양심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방탕한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방황하였고 돼지우리에서 먹고 일할 때까지 삶과 돈, 모든 것을 낭비하였습니다. 그는 실패와 고난으로 고통 받았고 어느 날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라고 말하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직 멀리 있는데도 아버지는 그를 보고 달려와 자신의 팔로 그를 안고 그에게 입 맞추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 이야기 속의 방탕한 아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죄 때문에 제 삶에서 무척 방황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무척 사랑하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저를 찾고 죄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 죄와 걱정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제 죄가 용서받은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지금 제 발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예수의 피를 통해 속죄되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신 하나님은 저의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출처 : 월간 <글소리> 2007년 10월호, 내 마음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