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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2010. 6. 26. 16:33

 

 

 

             자유주의 신학에 대하여



                 양 희 화


 

   1. 들어가는 말

19세기 신학은 여러 부류로 세분될 수 있으나, 구라파, 특히 독일 신학계를 주도한 신학사조를 흔히 자유주의 신학, 신개신교 신학 혹은 현대주의 신학이라 한다. 이것은 1920년대까지 유럽 신학계를 그리고 1930년대까지 미국 신학계를 주도했다.

 자유주의 혹은 현대주의는 그 안에 다양한 입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을 정확히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의미는 “제한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사상체계나 입장을 절대시하거나 그것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19세기의 모든 사상 즉 종교를 비롯한 과학, 철학, 경제, 정치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 종교적 자유주의는 현대의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시대정신에 근거하여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하거나 재 진술함으로써 기독교를 변호하려한 노력이었다. 19세기 들어 개신교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문제 제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현대에서 종교가 어떻게 가능하며 기독교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였다. 이것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 자유주의 신학이며 종교와 신학의 가능성 문제 그리스도론의 가능성 문제 및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 문제가 주 관심사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어느 특정 신앙고백이나 신조에 종속되지 않고 종교개혁 신앙을 그 시대에 적절하고 타당하게 만들려고 한 시도였다. 그러나 신학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경험이나 정황에 둠으로써 인간 중심의 신학이 되었으며 체계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본격적인 태동은 슐라이어마허에서 시작 되었다.


   2.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적 배경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현대 정신에 대한 개신교의 응답인 동시에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개신교는 18세기에 여러 측면으로 변화를 겪었다. 정치적으로는 100년 전쟁, 영국 시민전쟁,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 전쟁과 같은 수많은 갈등과 투쟁이 일어났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가 출현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후 있다는 신념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도전에 대응하여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와 조화하여 또는 계몽주의의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하려 했다. 계몽주의는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 전성기를 누리며 전 유럽 사상의 주류를 형성했던 사조로서 개인의 자유와 이성의 능력을 무한히 신뢰하고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 외에도 경건주의와 19세기 초의 독일 낭만주의가 자유주의 신학 형성에 적지 않는 영향을 끼쳤으며 자유주의 신학이 성장하고 발육한 토양이 되었다.


1)계몽주의: 계몽주의는 18세기에 유럽에 나타난 철학적 문화 운동인데, 인간적 경험의 모든 가능한 영역에 이성적 분석을 적용하면서, 미신, 선입견, 무지를 타파할 것을 제안한다. 이 문화의 영향 아래 전례는 사목을 위한 유용성의 관점에서 단순하게 파악되었고, 공동체적 성격이 강조되었으며, 단순성과 합리성에 더욱 도달할 것을 도모한다. 바로 그 문화에 반대하여, 전례의 본질적 논리를 향한 길을 찾는다. 사효성의 잘못되고 지나친 적용에 반대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의 인효성의 참된 가치를 밝히려 한다. 이런 배경 속에 전례 개혁의 몇몇 시도들이 있었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는 로마의 인준을 받지 않은 프랑스 지방 전례들이 나타난다. 피스토이아의 시노드(대의원회의, 1786)와 같은 전례개혁의 다른 시도들은, 교의적 단죄에 의해 소멸되었다. 1780년부터 피스토이아와 프라토의 주교였던 시피오네 릿치에 이해 주도된 이 시노드는 긍정적인 면들이 없지 않지만; 이들은 얀세니즘의 영향을 받았으며 교황의 권위에 대해서나, 자신들이 아끼는 전통에 깊이 연관된 신자들에 대해서나, 돌발적이고, 정돈되지 못하고, 부적절하고, 무례하게 처신하였으며 특히 전례의 개혁을 위한 적절한 준비가 심리적으로도 교의적으로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들과 다른 이들의 시도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것을 주도하는 이들의 약간은 이단적인 경향과 지나친 이성주의 때문이었다.


 2)경건주의: 18세기와 19세기 개신교 교회와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또 다른 사상운동이 경건주의이다. 17세기 정통주의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생명력 있는 신앙을 상실하고 형식과 교리화되었다. 성서의 권위가 약화된 반면 세례단, 설교단, 고백실 등이 무언의 우상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경견주의이다. 경건주의는 사상의 체계라기보다 감정의 체계이며, 신학적 분위기와 종교적 부흥운동이라 할 수 있다.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 스페너는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자신의 집에서 기도와 성서 연구 및 종교적인 문제에 대한 자유스런 토론을 병행하는 모임을 가지는 한편 “복음적 교회의 개혁을 위한 열망” 이란 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성서의 진지한 연구 평신도의 교회 행정 참여 기독교인의 실천적 삶이 교리 지식에 대한 본질적인 보층물이라는 것. 이단자들에 대한 관대한 취급 대신 혹독한 공격과 처벌을 할 것 대학에서의 기도와 경건 생활, 수사학적 설교를 순수하고 신앙심 있는 설교로 대치할 것 등을 제의했다. 이러한 스페너의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여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스페너의 사후에는 프랑케, 진벤도르프 등이 지도자가 되었으며, 프러시아 왕 프레드릭 3세가 경건주의를 적극 돕고 1694년에 할레 대학을 설립함에 따라 이 대학이 경건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그 후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신경건주의가 일어났으며 멘켄 등이 이를 대변했다.


 3)낭만주의:1790년대 루소와 레씽에 의해 독일에서 시작되어 18세기 후반과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 문학 과학 등 여러방면에 걸쳐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낭만주의가 그것이다.

낭만주의 운동은 형태와 동기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란 말 역시 너무 자유스럽게 사용되므로 통일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헤론에 따르면 낭만주의는 “인공적인 것 보다. 자연적인 것을 강요된 것보다. 자발적인 것을 차가운 합리성보다. 경험과 감정을 외적이며 형식적인 것보다. 내적이며 상상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웰치에 따르면 낭만주의는 자유와 역동주의의 이름으로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에 저항한 것이며 개체성 감정의 직접성 및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 낭만주의는 루소와 레씽에 의해 시작되어 헤르더와 쉴러에 의해 육성되고 노발리스, 슐레겔형제, 피히테 등에 의해 개화되었다. 낭만주의는 헤겔 쉐링 등과 같은 철학자와 슐라이어마허 코러리지, 뉴우맨 같은 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3.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

 자유주의란 이성과 자유를 강조한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정신적 자극에 의해서 19세기에 출현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자율성이 최대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는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결정하는 기회와 과제를 제공해 준다는 의식이 널리 인정되었다. 자유주의의 태동과 더불어 개인주의가 점점 퍼지기 시작하여 신학자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이때 슐라이어마허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종교를 멸시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그 이론 현재적 경향을 공격하고 종교는 형이상학도 아니요 도덕도 아니며 또 그것들에 종속되지도 않는 종교의 독특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시도는 당시 아주 창의적인 것이었다. 비록 자유주의로 흘렀지만 종교에 대해 뭔가 자기 나름대로 철학을 갖고 세상의 사조에 대해 반기를 들고 독창적인 방법을 창출한 점은 대단한 것이었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직관과 감정의 영역으로 설명하면서 새롭게 자유주의 신학의 완전한 논리체계로 만들었다.

 자유주의 신학이란 전통적인 신학 방법론을 버리고 인간의 이성, 직관, 감정, 기타 체험을 이요하여 성경과 신학을 자유롭게 역사비평에 근거하여 재해석하는 신학이다. 앞에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으로 이 신학이 경건주의, 계몽주의, 그리고 낭만주의라는 사조들을 그 기반으로 형성되었음을 살펴보았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슐라이어마허가 자유신학을 전개할 때 3 가지의 조류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4. 자유주의 신학의 조류와 특징

 1)신학조류: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적인 인물로 슐라이어마허가 있었고, 역사 철학적이며 동시에 종교 철학적인 면에서 헤겔이 있었으며, 그리고 비판 철학에 있어서 칸트가 있었다.

따라서 자유주의 신학은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그 논리와 신학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세 사람 이후에 나타나는 학자들은 모두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영향권에 들어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역시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서 감정과 직관을 신학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그는 자유주의의 신학적인 방법론을 최초로 정립시킨 사람이었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름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그 이후의 대부분의 유럽신학자들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가 없다. 비록 칼 바르트도 그의 로마서 강해에서 강하게 비판했지만 그 자신의 말처럼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칸트는 흄의 회의론적 지식론을 가지고 플라톤이 이데아 세계와 감각세계를 구분한 것처럼 현상계와 예지계(혹은 본체계, 오성으로 인식되는 세계)를 구분하였다. 그는 이성의 한계에서 종교의 가능성을 논하는데 사실상 칸트는 초자연의 세계를 거절한 것이다. 그는 종교의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주제들을 도덕의 영역으로 격하시켰다. 칸트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윤리를 강조하게 되었다. 리츨과 그의 학파들이 대표적으로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다. 슐라이어마허가 감정을 신학의 중심에, 헤겔이 정신에 역점을 두었듯이, 리츨은 윤리에 그의 신학의 중심을 두었다. 리츨이 신앙의 중심주제로 윤리적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것은 예수와 - 인간이 따를 위대한 윤리의 모범자 - 함께 발전하고 성숙하게 되는 하나님 나라를 도덕적으로 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종교를 단지 도덕활동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칸트에서 나타나는 현재적이며 세속적 왕국에 불과하다. 한편 리츨은 죄론에 있어서도 윤리적인 관점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그는 죄를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라 무지인데 도덕적 양육과 교육에 의해서 교정될 수 있다고 믿었다.

 헤겔은 대표적인 관념론자였다. 슐라이어마허는 감정을 강조한 반면에 헤겔은 관념론자였기 때문에 이성의 관념을 확대하여 정신의 모든 측면들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둘은 같은 대학에서 별로 좋지 않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신학을 다루는데 있어서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최근에 헤겔의 철학적 동기가 신학적이라고 발표되었다. 즉 그의 전체철학체계가 원래는 기독교 신앙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그의 초기의 노력에서 직접 발전되었다. 헤겔의 철학은 가장 포괄적인 체계로서 인정받고 있다. 그이 문제의식은 절대적 진리의 주장들이 어떻게 역사와 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생각하기를 역사 전체를 하나의 합리적인 체계로 나타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절대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의 변증법이 창출되었다. “헤겔에 의하면 상대의 세계는 자기에 대한 존재하는 세계이며, 모순을 지닌 채 운동과 생성하는 세계이다. 그런데 생성은 이 자기 모순을 지양하고 보다 높은 단계에 이르러 자기 안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무한한 진행은 아니고 일체의 상대적 단계가 경과함에 따라 절대 정신이 개현 된다고 본다. 절대자는 정적 실체자일 수 없고 일체의 상대를 그 안에 포괄하고 있는 살아 있는 주체이다. 이 운동은 이성과 실체에 통하고, 그 이성의 법은 변증법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성경과 기독교의 본질에 적용한 사람들은 스트라우스와 바우어 이었다. 이들은 역사적 예수와 이상적 예수의 관계를 변증법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2) 신학적 특징: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신뢰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인간의 이성과 양심, 도덕 등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a.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성경을 굉장히 존중히 생각한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책이란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정통주의자들과는 다른 이해를 갖고 있다. 성경은 인간이 기록한 책이므로 많은 오류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b. 이성을 중시하는 신학-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비록 성경의 기록일지라도 이성에 맞지 않은 것들은 거부한다. 그리하여 초자연적인 교리들이 전부 잘려나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동정녀 탄생, 예수의 부활, 마귀를 쫓아내심 등을 거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교리 등도 이성에 합하지 않으므로 거부한다.

이런 이성 중심적 신학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슐라이어마허적 자유주의”가 있고 다른 하나는 “헤겔적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슐라이어마허적 자유주의는 종교의 본질이 인간의 내적 본성에 있다고 보고 인간 마음 깊은 곳에는 신과 교류하는 어떤 장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계시는 우주에 대한 근원적이며 새로운 직관이며, 이것은 신에 대한 이념보다 더 가치 있다고 본다. 반면 헤겔적 자유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간다고 생각한다.

c. 인간 예수를 강조하는 기독론-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격인 성자로 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삼위일체론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할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예수는 신성이 충만한 사람으로서 모범적인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성경의 표현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받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당신의 아들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적 양자론이다.

d. 사랑의 윤리- 자유주의의 핵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이다. 예수의 인격이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십자가의 대속을 거부한 것은 심각한 오류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랑을 강조한 것은 매우 옳은 일이다.

e. 헤겔적 역사의 진보를 믿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잘 사용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마침내 유토피아, 즉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르낙’은 “역사 앞의 경외”라는 말을 썼다. 역사를 보면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 앞의 경외인 것이다. 그 이유는 역사 속에 신의 영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를 거의 신적인 운동과 동일시한다. 이것을 “역사적 범신론”이라고 부른다.


  5. 나가는 말

 자유주의 신학은 현대 정신을 신학에 반영하여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를 인간의 종교적 의식이나 경험에 근거하여 수행함으로써 인간 중심적인 신학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성과 과학을 진리의 척도로 간주하여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을 거부하거나 왜곡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선재성,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성경의 무오성 부정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는 그릇된 출발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능력이나 경험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잘못된 시작은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 신학은 복음의 핵심을 상실하고 기독교를 계시종교로부터 윤리종교로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종교로부터 인간 중심의 합리적인 종교로 만들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정통주의 신학을 비판점으로 삼아 종교개혁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오히려 종교개혁 전통으로부터 단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건전한 신학은 신학의 네 가지 근원인 성서 전통 이성 및 경험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다룸에 있어 그것이 성서에서 어떻게 고려되고 있으며 전통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이성에 의해 어떻게 체계화되고 있으며 존재론적으로 어떻게 인간 경험에 관련되어 있는지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우리가 신학을 성경적이며, 개혁주의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주의 신학의 개인주의적 자유적인 특성은 기독교의 신학의 공동체를 약화시켰다. 즉 신학을 다루는 성경적 공통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한 개인의 신학의 방법과 내용은 성경과 기존의 건전한 신학적인 전통에 의해서 검증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이란 로마 카톨릭 교회가 만든 종류의 전통이 결코 아니다.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했던 역사적 신조들이나 성경적 신학사상을 말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함으로서 기독교의 역사성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복음주의적이며 보수적인 기독교회는 언제나 건재한 가운데 어떠한 자유주의 신학 사상도 이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참고문헌

1. 목창균, 현대신학논쟁(서울: 두란노, 1995)

2. 안명준,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과 특징(평택대학교논문)

3. 황정욱,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사적 고찰,(한신대논문집)

 

 

 

 

출처 : 성령이 이끄는 삶
글쓴이 : Ezr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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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2009. 5. 31. 05:18
마르탱 게르의 귀향 저자는 프린스턴대 역사학 석좌교수이며 프랑스 근대사의 전문가로 16세 프랑스 피레네 산맥 근처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영화화한 ‘마르탱 게르의 귀향’ 영화제작에 고문으로 참여한 것이 사건을 책으로 출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데이비스가 동명 영화이기도 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제작에 관여하게 되면서 영화라는 매체가 역사를 ...
출처 : 이정화(李正和)
글쓴이 : 正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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