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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es Chae 2011. 9. 2. 18:21

     

     

    고통과 위로의 현재성 
    -영화 [밀양]과 케테 콜비츠-  
     
     

    채창완
     

     

     

      
    ▲ 케테 콜비츠 _ 죽은 아이를 안고있는 여인(자료출처http://blog.naver.com/hanee3289?Redirect=Log&logNo=60037908646)


     

    고통이나 아픔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라는 원인에 대하여 답을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고통을 당하는 개인에게는 그 고통의 원인이나 이유보다는 그러한 고통이란 사건의 ‘현재’가 더 중요할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라는 질문 보다 ‘일어나고 있다’는 어떤 사건의 현재성에 더 중요성을 둬야 할 것이다. 종종 우리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현재보다는 내세와 미래의 위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향하는 바가 결코 미래만을 전제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영화 [밀양]은 한 인간의 ‘현재적’ 고통과 아픔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주인공 신애 역을 맡은 전도연의 연기가 물론 한 몫을 했을 터이지만, 그 영화의 특성상 주인공 신애의 극중 위치가 바로 고통과 아픔의 자리였고, 이는 어느 누가 그 배역을 맡았더라도 반드시 감당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그 현재의 고통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어떠한 고통의 이유도, 위로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어 찾은 ‘신’에게 조차 위로를 받지 못한 주인공 신애의 심정을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 영화 [밀양]의 한장면. (자료출처 http://www.secretsunshine.co.kr)


     

     

     

     
    ▲ 케테 콜비츠 전사(자료출처 http://blog.naver.com/hanee3289?Redirect=Log&logNo=60037908646)


     

    정신분석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신학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우리는 그 고통의 원인과 위로에 대하여 많은 얘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들과 위로가 과연 고통 받는 자에게 ‘현재적’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모두 공감하는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식을 잃은 것만큼 큰 고통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싶다. 물론 고통은 물리적 양과 결코 비례하지 않는 것이지만, 모든 고통은 아픔 당하는 이의 뼈까지도 멍들게 하는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혹자는 영화 [밀양]과 같이 한 여인의 아픔을 잘 표현한 미술 작품으로 ‘피에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미술 작품 속에서 그러한 아픔의 ‘현재성’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나는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이란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 미켈란젤로, 피에타 (자료출처 http://www.wga.hu)


     

    ‘피에타’에서 느껴지는 ‘거룩한(?)’ 고통과는 다른 느낌을 이 작품은 전해준다. 자식의 주검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여인의 모습은 시간 조차도 ‘현재’에 묶어 놓을 정도로 정지된 시간의 느낌을 준다. 화면 안에서 고통의 시간은 ‘현재’에 맞춰있다. 그림 속의 여인에게 어떤 위로가 주어질 지 작가는 아무런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현재성은 바로 (고통이) ‘일어나고 있다’는 현재의 사건 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작가는 결코 그 여인을 위로하려 들지도 않고, 그 고통의 이유와 원인을 말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고통의 모습을 현재의 자리에 그대로 옮겨 놓을 뿐이다. 그 현재는 바로 작품 자체의 현재성이다. 그렇게 함으로 작가가 창작을 통하여 고통에 참여하면서 느꼈을 경험을 통해 우리는 조금이 나마 그 아픔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예술의 위대성이 바로 이러한 간접 경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 그림 속 여인을 위로할 수는 없지만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과 이유를 찾는 이성보다 편견 없는 우리의 느낌과 감성이 이러할 때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고통이 바로 ‘현재’ 일어나고 있다면 그 ‘위로’ 또한 바로 ‘현재’이어야 한다고.

     

     

     
      
    ▲ 케테 콜비츠, 빵을! (자료출처http://blog.naver.com/hanee3289?Redirect=Log&logNo=60037908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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