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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es Chae 2012. 12. 11. 21:31




    한국 기독교 역사학회 엮음,『한국기독교와 역사』제12호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이만열,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어제와 오늘”



    본 논문은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기독교사 연구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면서 각 시대별 연구의 특징들을 저자와 저술들의 분석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I. 선교사들에 의한 연구


    선교사들의 한국기독교회사 초기 연구(19세기 말)는 역사기록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먼저 선교사들의 연례보고서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미북장로회 총무 브라운(A. J. Brown)의 Report of a Visitation of the Korea Mission of the Presbyterian Board of Foreign Missions(1902)나 스피어(Robert E. Speer)의 Report in the Missions in Korea of the Presbyterian Board of Foreign Missions(1897)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1910년대에 들어서서 선교사들의 연구는 좀더 발전된 형태로 등장하였다. 1918년 클라크(C. A. Clark, 곽안련)가 펴낸『장로교회사전휘집』은 장로교 선교사의 입국에서부터 독노회(1907)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한국장로교 초기 역사를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선교사들에 의한 한국교회사 연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34년 한국선교 50주년을 맞이해서 선교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남감리회 소속 쿠퍼(S. Kate Cooper)의 Evangelism in Korea(1930), 미북장로회 소속 솔타우(S. T. Soltau)의 Korea: The Hermit Nation and Its Response to Christianity(1932), 남감리회 소속 왓슨(Alfred W. Wasson)의 Church Growth in Korea(1934)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들은 한국의 기독교 수용과 그 전개과정을 다루면서(솔타우) “기독교 복음이 한국 토착문화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추적”하고(쿠퍼) 선교학적인 시각에서 한국교회 성장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왓슨). 선교사들에 의한 연구는 선교 75주년을 맞아 1964년에 미북장로회 소속 로드스(Harry A. Rhodes)와 캠프벨(A. Campbell)이 공동 편집한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Vol. II, 1935-1959(1964)가 출간됨으로써 한국 선교의 역사를 나름대로 총 정리한 셈이 되었다. 




    II. 한국인들에 의한 연구


    한국인들에 의한 한국기독교사 초기 연구(19세기 말)는 <죠션크리스도인회보>, <그리스도신문>, <기독신문> 등지에서 초기 한국교회사정을 말해주는 기사들이나 개인의 단편적인 역사를 소개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인에 의한 한국교회사 연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백낙준이 서 있다. 백낙준의 박사학위 논문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은 “한국 개신교의 초기부터 1910년까지 그 수용과 확장 과정에서 실제 일어났던 것들을 문헌비판적인 확증성이 허용되는 한, 객관적으로 기술, 해석하려는 것”이었다. 백낙준의 논문은 선교사(史)적인 시각에서 한국교회사의 초기역사를 서술하고 있으며 서구의 역사학적인 방법과 선교학을 적용하여 한국교회사 연구로서는 학적인 체계를 갖춘 가장 선행적인 연구이다. 이를 계기로 이 분야에 관한 많은 저술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능화의『조선기독교급외교사』,『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시기에 나온 연구들은 대부분 자기 교단의 역사를 정리하려는 시도였고 일제 강점기에 조선기독교회전도부가『조선기독교회소사』(1941)를 편찬했지만 일제에 굴종한 한국교회는 자기정체성과 역사의식이 위축되어 갔다. 


    해방 이후(1945)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 있어 최초로 통사화 작업이 시도되었다. 김양선은 한국기독교사를 전래․포교․부흥․수난․재건으로 나누어 5권으로 정리할 계획을 가지고서 먼저 순서를 바꾸어 마지막 것인『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1956)를 편찬하였다. 김양선의 저술들은 확고한 사관을 가지고 기독교 역사를 서술하려 했고, 당대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기록사료뿐만 아니라 경험과 기억을 자료로 활용하면서 선교사들의 자료들보다는 국내의 자료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들이 특이할만하다. 


    1950년대의 한국기독교회의 특징은 교계의 심각한 분열이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의 분열을 한국기독교의 전 역사에서 조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전성천). 하지만 이 시기까지도 한국기독교의 통사는 아직 출간되지 못하였다. 이는 한국교회가 자기의 역사를 관통해 볼 수 있는 역사적인 통찰력을 아직 갖지 못했다는 점을 의미했다. 이러한 사정을 통감하면서 변종호는 한국최초의 개신교사로 평가받을 만한『한국기독교사[개요]』(1959)를 간행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도 몇몇 교단사 외에는 이렇다할 한국기독교사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 때에 “기독교적 관점에서 한국의 종교와 문화적 전통을 재해석함으로 기독교 전통과 민족 전통을 배척과 단절 개념이 아닌, 연결과 보완개념으로 전화시키려는 신학흐름”이라 할 수 있는 토착화신학을 다룬 연구들이 등장했는데, 윤성범의『기독교와 한국사상』(1964)과 유동식의『한국종교와 기독교』(1965)가 대표적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기독교회사 연구는 역사신학의 한 분야로 등장하면서 한국기독교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와 저술가들이 등장하였다. 민경배의『한국기독교회사』(1972)는 선교사적인 관점을 극복하고 ‘민족교회사관’이라는 사관을 토대로 하여 쓴 최초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 오윤태의『한일기독교류사』와 4권으로 된『한국기독교사』는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이 밖에도 전택부, 채기은, 이영헌 등의 한국교회사 저술들은 한국기독교역사를 통사화 시키려는 시도들로 주목된다. 이 시기의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성과를 말한다면 기독교사를 연구, 서술하는 방법과 사관도 제법 학적인 체계를 갖추어 갔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지형이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변화란 교회사와 국사학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연구단체로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라 할 수 있다. 이 연구소가 출간한『한국기독교의 역사 I, II』는 한국기독교사의 연구성과를 잘 반영하고 있는 책으로서 종래의 한국기독교사 연구가 지나치게 사관에 집착함으로써 사실규명에 소홀했던 점을 반성하면서 한국기독교회사와 국사학과의 만남을 통해 문헌비판과 사실 고증을 한층 탄탄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에는 한국기독교사를 민족사와 연결시켜 연구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하였고(윤경로, 한규무, 김흥수 등), 한국 기독교회와 한국의 문화 전통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들도 있었다(이덕주, 서정민, 신광철 등).      

     



    III.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과제


    1)한국기독교의 초기 역사 연구와 관련, 한국인들의 복음 수용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규명작업들이 미흡하다.

    2)한말 일제하의 기독교사 연구와 관련, 민족운동의 기독교적인 원동력으로서의 신학과 신앙에 대한 연구가 취약하다.

    3)한국기독교사 연구에 있어 사관에 입각한 정리보다는 사실 규명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4)앞으로의 연구과제와 관련, 해방 후의 인권, 민주화 운동과의 관계 규명, 분열과 연합에 관한 연구, 한국기독교문화의 정립을 위한 한국인의 신앙, 신학사상, 문화에 대한 연구, 지역교회사와 인물사에 대한 연구 등 시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덕주, “한국 교회사 입장에서 본 한국 신학사상사 서술 문제”


    본 논문은 1980년대 이후 발표된 한국 신학사상사의 연구 내용과 방법을 면밀히 분석, 비판하면서 기존의 한국 신학사상사 서술의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서구 기독교문화 전통과 한국전통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서술 방법론의 한 형태인 ‘토착교회사관’을 제시하고 있다.



    I. 한국 신학사 서술의 흐름과 문제점들


    한국 신학운동사 및 신학사상사 정리의 선구적인 작업은 유동식의『한국신학의 광맥』(1982) 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신학사상사 연대 구분과 시대적 특징 및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신학사상을 분석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신학 잡지 및 논문집이 발행된 시점을 중심으로 한국 신학사상사를 6기로 나누었다(p. 45참고). 유동식 교수는 한국 신학사상사의 흐름을 크게 ‘보수주의 신학’(성서 영감설을 기초로 한 구령운동 중심 신학-길선주, 박형룡), ‘진보주의 신학’(사회, 역사 참여를 중시한 신학-송창근, 김재준, 서남동), ‘자유주의 신학’(타종교와의 대화를 중심한 신학-최병헌, 정경옥, 윤성범)으로 구분하면서 이 세 개의 흐름이 통합해서 하나의 한국 기독교 사상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비판점으로는 신학사의 시기 구분문제나 신학사의 흐름을 세 개의 틀로 갈래 잡이 하는 판단기준이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송길섭의『한국신학사상사』(1987)는 해방 전까지의 내용을 다룬 책으로서 한국 신학자들의 신학사상 보다는 한국교회의 신앙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역사적, 신앙적 체험과 고백에 관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한국 기독교 신앙운동의 흐름을 단순히 ‘개인 구원 신앙’과 ‘민족 구원 신앙’으로, 그리고 한국 신학의 흐름도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으로 지나치게 단순화 시켜 해석함으로써 한국 기독교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온전히 해석해내는데는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숭홍의『한국신학사상의 흐름』(2권, 1996)은 유동식 교수의 한국 신학 시대 구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국 신학사를 계보별로 정리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한국 신학사상의 계보는 크게 1)언더우드-마펫-박형룡으로 이어지는 장로교 신학계보, 2)김재준의 ‘한신’을 중심으로 한 기장의 신학계보 3)아펜젤러-최병헌-정경옥-홍현설-윤성범-유동식-변선환으로 이어지는 감리교의 신학계보, 4)기타 신학 계보로의 분류이다. 이러한 신학의 ‘계보화’ 작업은 한국 신학사상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계보 개념으로 채용한 ‘복음주의’니 ‘개혁주의’니 ‘진보주의’니 하는 개념들은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역시 한국 신학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재용의『한국 그리스도교 신학사』(1998)는 한국 신학운동사를 5기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p. 51참고).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초기 천주교 신앙의 수용과정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범주에 포함시켰다는 점과 선교사들보다는 한국인들에 의해 전개된 한국 교회의 ‘주체적’ 신학에 보다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문제점으로는 시기 구분의 한 틀로 시도하고 있는 선교사 신학과 한국인 신학으로의 이분화를 통해 전자를 ‘지배자 신학’으로, 후자를 ‘해방의 신학’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인 구조 인식에 있으며 역사 해석의 원리로 제시된 ‘민중사관’이라는 ‘사관주의’는 자료 선정과 해석이 통제됨으로 역사의 다양성과 통전성을 훼손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연세교회사학회의『한국기독교사상』(1998)은 서구 신학 사상의 흐름의 한국 적용과 영향을 조명한 것으로 신학자 개인 사상 연구에 집중된 종래의 신학사 정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학 사조 중심의 집단 사상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서구에서 발원된’ 신학 사조에 초점을 두고 있어 ‘한국에서 발원된 한국 토착의 신학’을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취급함으로써 서구 신학의 유입이사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위에서 검토한 신학사 정리 작업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볼 때 신학사 정리 과정에서 선결되어야 할 몇 가지 과제가 등장한다. 1)한국 기독교 사상사를 해석하는데 있어 사관의 문제다. 한국 교회사에서 논의되어온 선교사관, 민족교회사관, 민중교회사관의 한계를 극복하는 보다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역사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사관이 필요하다. 2)신학사의 시기구분의 기준설정 문제다. 주관적이거나 사관 기점이 아닌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역사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시기구분이 필요하다. 3)신학사의 연구와 대상과 성격 문제로서 신학자 개인과 당대의 사조, 운동과의 상호연결을 통한 통전 적인 역사서술이 필요하다. 4)신학사와 인접학문과의 관계문제다. 한국 교회사 연구는 세계교회사와 신학사상사, 한국 민족사와 종교, 문화사의 도움을 받아 총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II. 새로운 한국 신학사 서술의 시안으로서의 ‘토착교회사관’


    ‘토착교회사관’이란 ‘세계 기독교회의 보편적인 신앙’ 전통과 한국 교회 신앙 전통 내지 한국의 토착 종교 문화 전통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구별된다는 입장에 근거해 있다. 이 사관은 서구 기독교라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한국이라는 ‘특수’ 상황에 수용-해석-적용되는 과정과 그 결과물에 대한 종합적 분석이 한국교회사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사를 해석하는 준거의 틀로서의 ‘토착교회사관’은 종래의 신학사 서술에 등장하였던 여러 사관들의 한계점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즉 복음의 수용-해석-적용의 과정을 선교사보다는 한국인들의 역할로 본다는 점에서 선교사관을 극복하고, 역시 복음의 수용-해석-적용의 과정에서 민족의 정치․사회적 상황뿐만 아니라 토착종교․문화적 상황도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민족교회사관을 극복하고 있으며, 교회의 정치․사회적 해방을 포함하여 토착 종교․문화 전통에 대한 변혁 작업에도 관심 한다는 점에서 역시 민중교회사관을 극복하고 있다.  

         

    이처럼 ‘토착교회사관’은 민족-교회-복음이라는 삼각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상황, 모든 사실에 관심하면서 특별히 토착교회 형성과 발전, 토착 신앙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현재의 한국교회 사건에 관심을 둔다. 이를 위해서 한국기독교 신학사 서술 작업은 한국 교회 공동체의 역사적 체험 및 그 고백으로 나타난 신학적 자료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기 구분은 세분하는 것보다는 대별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신학사 서술의 초점도 종래의 한국 교회사 내지 신학 운동사의 흐름을 결정지었던 신앙고백, 종교․문화적 전통, 정치․사회적 현실 등의 요인들에서 나타난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종교․문화 전통을 수용할 수 있는 한국 신학의 수립에 두어야 할 것이다. 




    III. 맺음글


    한국 신학운동과 신학 사상은 세계 기독교의 보편적인 진리와 가치를 한국의 종교․문화 전통에서 수용-해석-적용한 결과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한국 신학사상사를 서술할 때 사관과 해석 방법론에서 보다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이해의 틀이 필요하다. ‘토착교회사관’은 이러한 이해의 틀의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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