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Ngod /신학이야기

    James Chae 2013. 3. 9. 14:22



    Musa Dube, “Postcolonial Feminist Interpretation of the Bible”, Chalice Press, 2000

     



    2 장 포스트식민주의적 조건과 여성주의(요약)


    채야고보

     

    이 장에서 저자는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의 관계를 정의함으로써 포스트 식민주의 여성주의적 성서 해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성서가 가장 서구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엘리자베스 슐츠 피오렌자를 이장에서 주로 다루며 성서적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개한다. 그에 앞서 찬드라 모한티와 로라 도날드슨의 서구 여성주의 비판을 검토한다.

     

     

    모한티가 비판하는 것은 모든 여성을, 즉 제1세계나 제3세계 할 것 없이 하나의 보편적 동종 실체로서 여성(woman)이란 범주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이 모두 억압받는 다는 것을 전제 하지만, 아울러 비서구여성에 대한 서구 여성의 우월성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획일적인 묘사는 제3세계 여성들을 더욱 무기력한 희생자로 만들며 올바른 이론적 분석을 제한하여, 결국 서구의 문화적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이러한 분석의 동종화 범주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저자는 마리아 르스 커트루펠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비판한다. 커트루펠리의 표현에서 노골적으로 마치 모든 아프리카 여성들이 매춘이나 억압에 봉사하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함으로 결국 프링글이 말한 야만의 아프리카라는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매리 대리는 아프리카 여성들을 생식기 절단의 희생자들로 묘사함으로 일부의 사건을 아프리카 전체 여성이 그런 것 같이 동종화 해버린다. 이는 어떻게 동종화를 통해 제국주의가 아프리카를 악의 한 전형으로 정의하는지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는 늘 서구세계는 선한 것의 중심으로 전제되며 결국 제3세계는 그들이 구원해야 할 문화적 결핍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모든 타문화를 (자신의)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자신을 문화적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의도와 다름 아니다. 이러한 영향은 해방적 여성주의 담론에서도 보여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과적으로 오드레 로데는 이러한 동종화가 선택과 억제의 차원에서 아프리카 여성들이 가진 모든 해방적 주제들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한편 저자는 모한티와 도날드슨이 설명한 그 문제는 제국주의적 지배와 문화적 텍스트의 연결에 대한 인식의 실패를 보여준다고 한다. 로라 도날드슨은 서구의 여성주의적 읽기 관행에서 복속에 관한 제국주의적 수사 전략생략이란 특징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즉 이러한 수사들은 괄호 안에 묶어 놓음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서구의 식민지 지배의 폭력성이 반성차별주의적 수사 에 의해 묻혀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모한티의 비판을 제국주의 텍스트 패러다임을 피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쓰기의 문제, 그리고 도날드슨의 것은 식민화를 위한 문학 전략들을 폭로하지 않고 제국주의자들의 텍스트들을 (비판없이 그대로) 읽는 읽기의 문제로 정의한다. 그리고 서구 여성주의자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여성해방을 위한 그들의 주장(이 결국에는) 비서구 민족들을 지배하고 착취할 수 있는 서구의 권리(를 자신들의 주장 속에) 확고하게 보존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포스트 식민주의적 해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식민화된 또는 식민화하는 성서적 여성주의들

    저자는 여기서 제국주의적 복속 전략을 재생산하는 문제의 예로 급진적인 민주주의와 평등의 논리에 입각한 슐츠 피오렌자의 수사적 해석학을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아울러 이와는 반대되는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항한 저항 패러다임아프리카 독립교회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슐츠 피오렌자의 여성 교회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두 가지 측면을 검토한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수사가 실재와 텍스트들 안에 널리 퍼져 있고 또한 지속적 영향을 집요하게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인식하지 않고 하는 어떠한 선한 의도의 연구도 제국주의 수사의 재등장을 피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기

    슐츠 피오렌자의 노력은 기독교 시작의 역사를 여성에게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녀는 가부장적인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또한 서구의 여성들이 개인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그들의 기독교 역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서구의 여성들이 그들의 유산을 포기하는 것은 곧 그들의 권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독교 역사를 여성의 역사로 그리고 여성을 기독교 선교운동에서 남성과 동등한 동반자여성주의적 자기 발견 모델을 찾고자 한다.

    슐츠 피오렌자는 초대교회의 프리스카,리디아,유니야 그리고 푀비 등과 같은 여성 사제들의 활동을 소개하며, 남자와 여자를 동등한 제자직에 놓는 정경을 재건하기 위해 가부장적인 현재의 성서 정경과 그것의 남성중심적 활용자들을 주위에 작동하게 하는 여성주의적 역사기술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저자는 슐츠 피오렌자의 이러한 성서 해석에서 그녀가 성서 텍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적 요소들을 간과함으로 비서구와 비기독교 성서 여성주의자들에 대항한 제국주의적 억압을 묵인했다고 비판한다. 이는 초기 기독교 기원의 제국주의적 상황을 가볍게 여겼거나,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영향을 폭로하려는 어떤 노력도 보여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는 슐츠 피오렌자가 로마 제국을 로마 세계 또는 그리스 로마 세계로 표현하고, 로마를 제국의 중심이 아니라 정치적 중심으로 가볍게 표현한 데서 발견된다. 그녀는 그 시대 억압의 체계가 제국주의였다는 사실과 다른 피식민지 사람들에 대한 로마의 제국주의적 억압의 문제를 간과하고 그리스 로마 세계의 지배적인 가부장적인 특성에 대해서, 그리고 가부장적인 기존 사회질서와 헬라적 로마 세계 만 언급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회피한다. 그 결과 예수의 운동은 당시의 가부장적인 구조의 사회 질서를 비판하는 차원에 머물게 되고, 또한 이스라엘 지배층이 로마 제국과 공모하여 여성을 더욱 사회적 주변인으로 몰아가는 로마제국의 억압의 본질이 감춰진다.

    이와 더불어 슐츠 피오렌자는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지 않고, 역사에 있어서 제국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음으로 해서 제국의 폭력을 유지하고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주장은 제국주의적 억압적 담론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남자와 여자, 거룩한 공동체와 베리알의 지배, 믿는자와 불신자, 등과 같은 이원론계층주의가 남녀간의 평등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로마 이외의 다른 문화와 관계할 때는 이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으므로 제국주의의 자기 정당화의 핵심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피오렌자의 읽기는 도날드슨이 식민주의의 문제를 대치하기 위한 반 성차별주의적 수사라 했던 것의 좋은 예가 된다.

     

     

    -여성에게 권위를

    앞에서 언급한 피오렌자의 여성교회백인 중산층 기독교 여성주의자들과 거의 동치 된다. 언뜻 보기에 여성교회는 가부장제로부터의 여성해방을 주장하며 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권위가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평등과 연대와 포용성을 받아들이는 듯 여겨지지만, 실제로 피오렌자는 3분의 2세계의 비기독교적인 전통을 배제하는 서구 제국주의 기독교의 범주 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에 저자는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 3분의 2세계 여성들과 비기독교 성서적 여성주의자들을 다음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

    머시 오두요애와 엘리자베스 아모아는 그들의 공저에서 가나의 판테의 글로 기록되지 않은 경전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모든 공동체는 그들의 행위가 전체 집단의 운명과 기풍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 온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로즈마리 에테트와 베테 에케야의 공저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성서적 신앙과 함께 그들 자신의 종교들을 재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히 제시된다. 그들은 제3세계의 소외에 대해 말하는데, 서구인들에 의한 아프리카의 복음화가 결국 아프리카인을 문화적으로 소외시키는 문화지배(또는 동화)로 나타나고, 결국 아프리카의 문화적 물질적 정체성의 상실을 불러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의 곽필란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펴는데, 성서가 이교도 문화 안의 어떤 결핍의 한 기표(또는 증표)로 작용하여, 서구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표준이고, 또한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고 지적한다. 서구 기독교가 진리와 계시와 성서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면서 철저히 타문화권의 종교와 문화를 쓰레기 취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토착문화의 단절을 강요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기독교의 성차별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무시한 채 타문화권의 토착 전통의 여성 억압적인 요소들을 비난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기독교와 문명은 동의어라는 서구적 관점을 비판했던 캐롤 데번스-그린, 여성주의적이고 유대교적인 대항의 길을 찾는 아미-질 레빈, 비성서적 기독교를 주창한 아다 마리아 이사시-디아즈 등의 주장을 저자는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들을 정리한다.

     

    첫째, 다른 종교적인 문화들을 평가절하 하는 기독교 제국주의자들의 태도는 비기독교, 비서구 기독교 여성주의자들의 해방적 질문들 안에서도 결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다.

    둘째, 해석학적 중심에서 포용성과 연대와 평등성을 인식하고자 하는 모든 여성주의적 노력은 왜 기독교가 제국주의를 후원하는데 유별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

    셋째, 지금까지 서구적 기독교 실천가들과 텍스트들에 의해서 훼손당해 온 다양한 종교적 전통들을 다시 확인하는 일을 저항의 핵심적인 부분에 포함시켜야 한다.

    넷째, 문화적 지배는 물질적, 경제적 손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다섯째, 지금까지 인용한 내용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포스트식민적 여성주의적 성서적 실천, 세계는 이미 제국주의적 지배와 공모와 저항의 한계들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성서는 본질적으로 이 모든 제국주의적 지배와 공모와 저항들과 연루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실천을 뒷받침한다.

     

    여기까지 살펴본 것은 슐츠 피오렌자의 초기 저작들에 대한 저자의 비평이었고 계속해서 그의 후기 작품들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여기서 하나의 수사적 실천으로써 여성주의적 성서해석을 구축하고자 하는 피오렌자의 노력그녀의 실천이 여성교회에 대한 이론적 해명에 충실한지 아닌지를 검토한다고 밝힌다.

     

     

    -급진적 민주라는 수사적 공간

    저자는 피오렌자가 서구적 정체성의 논리(계층적 민주주의라는)가 아니라 급진적 민주주의의 논리를 특성으로 하는 여성주의적 해석학적 공간으로써 여성교회를 제안한다고 지적하고, 그녀의 이러한 관심은 3분의 2세계와 사회주의적 여성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러 지배들이 맞물린 피라미드인 가부장제에 대한 그녀의 이해를 살펴본다.

     

    피오렌자는 섹스-젠더 체계로써의 가부장제에서 복수적인 억압의 피라미드인 가부장제로 우리의 관심을 이끄는데, 이는 하나의 군주체제 또는 우두머리/주의 지배라고 정의한다. 그녀는 계층적 민주주의라는 서구적 정체성을 넘어 정반대의 민주적 상상력을 명확하게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피오렌자의 이러한 주장들이 이데올로기와 기술과 문화는 한뿌리라고 비판한 마즈루이, 서구에 의한 아프리카의 타자성을 비판한 무딤베와 같은 선상에 놓이지만, 기독교의 배타주의를 비판한 딕슨과 서구의 문화적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포용적 성서읽기를 주장한 바나나의 주장의 급진성에는 못 미친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피오렌자의 비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가부장제를 제국주의로 정의하려는 그 시도는, 식민지 사람들조차도 계층적이고 서열적인 가부장 체제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인정이 되나 그것이 제국주의와는 분명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는 제국주의를 해독 불가능한 신비한 것으로 만들어, 결국 서구와 비서구 여성들의 대화를 더욱 어렵게 한다.

    둘째, 주군제를 제국주의로 묘사하는 것은 유용하지만 분명한 한계들을 갖는다. 그 이유는 그 용어가 제국주의를 불가해한 신비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또한 주군제 체제가 상류층 남성들이 그에게 예속된 사람들에 대한 권력을 가질 때 성립되는 것인데, 제국주의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국주의는 사실은 정복자들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는 다른 자산가 남자와 여자들에 대한 지배를 포함한다. 또한 제국주의는 예속 당한 사람들을 다시 구축해 내는 일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예속 당한 사람들이 지배자에게 의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믿게 하고, 마침내 그들의 의존적인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구조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의 구축이다. 또한 주군제와 달리,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권력 체계를 강요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들과 인종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함께 행동하는 나라들의 자산가, 남자, 여자 그리고 가난한 남자와 여자들을 모두 포함한다.

    셋째, 여성교회라는 개념은 그것이 서구 백인 남성들의 주군제적 민주주의에서 가장 높은 계층을 차지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 때문에 문제가 있다. 이러한 관념은 제국주의적 경향을 돕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피오렌자의 급진적 민주와 평등의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인종, , 종교 그리고 계급의 범주에 따르는 불평등한 주체들로 사람들을 구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저자는 피오렌자의 주장이 제국주의 담론들 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을 경계하며, 그녀의 주장이 이론적 측면을 넘어 실천적 측면으로 나아가는지 그녀의 역사적-수사적 읽기와 [성서를 찾아서 제2]에 대한 간단한 평을 내린다.

     

    저자는 슐츠 피오렌자가 시리아-페니키아여자이방인 기독교인들의 사도적 여성 선조들 중의 한 사람으로 다시 가시화하여 이방인 선교 논쟁의 중심에 그 여자를 옮겨 놓아 바울의 중심성을 여기서 상대화 했고, 이 이방 여인이 주인의 식탁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구걸하는 주군제적 이데올로기의 피해자가 아님을 말하지만, 결국 그녀의 주장이 아직 서구적 학계와 교회의 남성중심적 관점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의 읽기는 전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노력을 나누어 갖고자 하는 백인 서구 기독교 여성들과 백인 서구 기독교 남성들 사이의 논쟁이 된다는 것이다.

     

    [성서를 찾아서 제2]에 대해서는, 피오렌자가 성서의 정경화 작업에 영향을 미친 주군제적 경향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경은 남성중심적 선택과정을 반영하고 있고, 그래서 주군제적 제국 질서를 심어주는 기능을 해왔다는 점을 저자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피오렌자의 방법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즉 피오렌자가 주장한 급진적 민주의 논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녀의 해결 방법이 여느 남성 신학자들 같이 서구의 외경 텍스트에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서구적 텍스트에 의존하지 말고 가나안 바나나의 새로운 성서를 위한 예와 같이 비서구 사회의 신성에 관한 모든 세계적 인식과 관련한 텍스트들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와 유대교의 문화적 텍스트들의 한계를 넘어 나머지 3분의 2세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단지 서구 기독교에만 속한 것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세모야 독자들: 아프리카 독립교회 여성들

    아프라카 독립교회는 19세기에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들이 오직-백인-남성들만 지도자 지위를 인정하던 것에 대항해서 한 저항운동으로 시작한 일군의 교회들을 말한다. 이는 모살라의 표현대로 식민주의, 자본주의, 인종주의, 문화적 국수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광범위한 아프리카인들의 투쟁에 관한 종교적 비전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를 서구의 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한 한 저항이라고 정의한다. 아프리카 독립교회의 통합은 노래와 드라마와 춤과 상징들과 의식의 언어들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진창조적 통합으로써 서구의 신학적 체계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독립교회는 성령론을 중심으로 하는데, 모야, 즉 성령은 모든 믿는 자들 사이에 항상 현존하는 하느님의 대리인이다. 이 성령에 대한 증거로 강조되는 것이 치유이고 이는 생명을 회복시키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 교회들이 성령의 교회들 또는 치유의 교회라 불린다고 한다.

    이 교회에서 여성이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저자는 콩고 가톨릭의 순교자 킴파 비타의 예를 든다. 가톨릭 교회에 대항한 상징인 그녀는 십자가와 십자가상을 과거의 물신숭배로 취급하여 이의 폐기를 주장했고, 그리스도께서 아프리카를 구원하기 위해 아프리카인으로 왔다는 점과 흑인 사도의 존재를 주장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여성 사역자들의 계시와 비전, 그리고 선포, 치유, 예언 등의 사역을 성령의 역사로 간주하고, 성령은 글로 기록된 말씀과는 상당히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령의 역사는 쓰여진 텍스트를 넘어 역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설명으로 비숍 버지니아 루카스의 말을 여기서 인용한다.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는 하느님이 내게 성서를 결코 열어 보여 주지 않았다....(중략)하느님의 성령이 나에게 교회를 시작하고 하느님의 백성을 치유하라 하셨고,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인종적 종교적 차별에 대한 정치적 저항, 성서적 시각과 아프리카 종교적인 시각의 통합을 통한 문화적 해방의 추구, 하느님의 창조를 섬기도록 다양한 인종의 남자와 여자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는 성령의 체험 등을 저자는 이러한 독립교회의 여성들이 수행한 해석들의 역사적 배경이라고 한다.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포박하기

    저자는 여성주의적 성서 독자들은 식민지를 해체하는 독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점을 주지시킨다. 첫째로, 가부장적 억압은 제국주의와 중첩하지만 제국주의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둘째로, 문화적 텍스트들과 실재 안에서 나타나는 복종시키는 방법과 전략들을 인식해야 하며; 셋째로, 예속 당한 사람들로부터 일어나는 저항의 패턴들을 확인해야 하며; 넷째로 식민지 담론에서 여성의 젠더를 이용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또한 포스트식민주의가 어떻게 상당한 여성들을 이중, 삼중의 억압 속에 노출시키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는 이 책의 제2부에서 제국의 문화적-수사적 방법을 중심으로 가부장제와 제국주의적 억압 양자에 저항하면서 탈식민화(decolonizing) 할 수 있는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 읽기 전략을 소개하면서 더욱 구체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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