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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es Chae 2013. 8. 27. 00:23


    *이 글은 제가 기획에 참여했던 " 기독교미술시장 활성화 포럼 AUCTION + CRISTIANITY = ? "(2007.11.12 / CCMM빌딩 1층 메트로)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어떻게 종교와 미술 그리고 상업성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물음이 있었던 포럼이었습니다. 물론 그 공존의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는 결론이었지만, 나름 크리스천들이 함께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참고로 이 행사는 N.G.C.G(갤러리 PM2, 빛갤러리,세오갤러리,진흥아트홀) 주최와 기독미술연구회, 아트미션,한국미술인선교회,(주)바흐컬쳐,진흥문(주),(주)타블로기획 등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N.G.C.G와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 복제 및 전제는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대 기독교미술의 시장성



    - 네덜란드의 미술시장형성배경 및 렘브란트의 기독교사상을 통한 고찰 -

     



    조 명 계 (중앙대 교수/전 소더비 한국지사장)



    I.               들어가는 말


    기독교미술의 시장성과 현대미술시장의 주류인 경매시장과의 연관성을 문헌적 고찰을 통하여 살펴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무엇보다 기독교미술의 의미를 고찰하기에 앞서서 종교화라는 한 미술양식의 시장성을 분석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 중상주의의 태동으로 세계무역거래의 중심에 선 네덜란드의 미술시장형성과, 당시 네덜란드의 경제발전, 프로테스탄트의 등장에 따른 자유주의 의식의 확대 그리고 이러한 자유의식이 미술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의 미술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면서 현대한국의 기독교미술 시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II.              16세기 말 네덜란드


    16세기 말 네덜란드는 종교개혁을 거쳐 17세기 해상왕국으로 급부상하는 대 변혁 속에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로마 등이 중심이 된 이탈리아와 대등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1517년 종교개혁으로 칼빈의 신교를 받아들인 북부네덜란드는 오늘의 네덜란드를 형성하였고 카톨릭을 지킨 남부는 오늘날의 벨기에가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를 지배하던 에스파냐는 카톨릭 국가였으므로 자유주의를 구가하는 상인, 학자, 신교도들을 박해하였고 여기에서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은 인류역사상 피지배자 스스로 최초로 지배자를 몰아내기 위한 혁명이었고 프랑스대혁명보다 200년 앞선 시민혁명이었다. 당시 에스파냐와 해상주도권을 다투던 영국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때가 1588년이고 같은 해 네덜란드는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이어 네덜란드는 1609년 에스파냐와 불가침조약을 조인함으로써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당시 유럽 각국에서 카톨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신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네덜란드로 피해 왔으며 이들의 유입으로 네덜란드는 유럽대륙의 주요 무역상과 상인들이 밀집하게 되고 이로 인해 국가가 부유해지게 되었다. 국가가 부유하게 됨에 따라 눈을 해외로 돌린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게 되고 뉴 암스테르담(오늘날의 뉴욕)을 만들었고 동인도회사를 통하여 동양과의 무역을 한때 독점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자유주의에 기초한 네덜란드의 동 시대에는 시인, 철학자, 화가, 문필가 등 수많은 예술인들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처럼 위대한 예술을 낳을 수 있었던 직접적 계기는 상업적 번영과 해양무역의 발전 때문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전세계 해상권을 제패할 만큼 강대국이 되어 있었고 게다가 뛰어난 상술을 발휘하여 주변 나라들의 부러움을 샀다. 암스테르담의 인구만 해도 16세기말 겨우 3만 명에 불과하던 인구는 1640년에는 22만 명으로 불어났다. 유럽 각지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과 경제적 부유를 향해 몰려든 사람들로 암스테르담 거리는 크게 붐볐다. 1588~1652년까지를 네덜란드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III.            네덜란드의 미술시장 형성


    과거 국가, 교회, 상류계층의 주문에 의한 주문화 위주로 형성되던 미술시장은 카톨릭의 쇠퇴에 따른 종교화의 주문이 현저히 감소되고 네덜란드가 세계무역의 중심지가 됨에 따라 상업에 눈을 뜨게 된 암스테르담은 다수의 자산가들을 양산해 내었고 중산층까지도 부를 향유함에 따라 그림을 갖고자 하는 미술시장의 발흥을 보이게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제재소가 1곳에서 무려 50곳으로 증가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암스태르담의 경제적 부흥을 보여주는 것이며 화가 300여명이 창작활동을 하는 등 미술시장 역시 시장 확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종교의 자유까지 얻게 된 중산층들은 너도나도 기록화 및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집단화까지 주문을 하게 되는 회화수집의 유행이 도래하고 이는 바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회화공방의 증가를 가져오게 되었고 렘브란트 화실은 그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속박과 굴종이란 카톨릭의 기본 신앙생활에서 청빈하되 자유를 구가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이념의 선봉에 서게 된 네덜란드의 종교개혁은 이러한 시장형성에 일조를 하게 되었으며 자유로운 의식을 가지게 되는 중산층의 구매력은 자연히 유럽대륙 최초로 풍경화 및 정물화의 등장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는 결국 시골 농부까지도 회화에 투기를 하게 되는 현상까지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자유주의 시민의식이 결국 회화를 매입하게 되고 회화의 매입이 훗날 추가이익까지도 가져오게 되는 현상을 기대하게 되면서 아울러 미술시장 형성의 가장 보편적인 거래방식인 경매까지 도입되게 된 주 원인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의 네덜란드는 다량의 치즈를 거래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경매업이 자리잡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화상들은 산업혁명 후 서민까지 회화매입에 나서게 된 영국의 미술시장을 점령하게 되고 후에 자생적으로 미술시장을 형성하게 된 영국은 영국만의 경매거래방식을 만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늘까지 이어지는 영국식 미술품경매를 만들게 된다. 종교개혁을 성공시킨 네덜란드는 정신적, 물질적 측면에서 다른 나라에 견줄 수 없는 부유함을 거머쥐었는데 암스테르담 시민들이 얼마나 윤택한 생활을 했는지 거의 모든 가정에는 회화가 걸려있게 되고 직업을 불문하고 철물상, 제빵사 심지어 정육 도살업 종사자까지도 미술품을 장식하는데 몰입했었다.


     

    IV.            르네상스, 종교개혁, 중상주의, 네델란드인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아담 스미스에 의해 골격을 갖추게 된 경제학이란 학문은 영국 산업혁명기에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 확립되어지고자 할 당시 학문체계를 수립한 것인데 이러한 경제학의 뿌리는 바로 중상주의에서 출발했다고 봐야 한다. 중앙집권적 봉건사회에서는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 봉건영주를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던데 반하여 성지회복만이 목표였던 십자군의 전쟁은 결국 동서교류가 시작되고 이는 다시 문물교역으로 발전하게 되고 동로마의 수많은 학자들이 로마로 입성함에 따라 소위 르네상스가 발흥되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란 중세로부터의 탈피운동이자 신과 권위에 대한 인권선언으로 봐야 한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그리스, 로마 고전 문화 부흥 운동을 우리는 르네상스라 칭한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하여 멸망한 후 많은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망명해 와서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었는데 르네상스의 가장 큰 의의는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이라는 점에 있었고 대표적인 예술가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등을 들 수 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만이 아닌 알프스 지방에서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는 다른 현실 사회와 교회를 비판하는 문예부흥이 일어나게 되고 대표적으로 토마스 모어, 에라스무스, 세르반테스 등이 이에 속한다. 모두가 기본적으로 인간중심으로 서술한 작가로 보면 된다. 당시 유명했던 그림들을 보면 신들은 하나도 없고 전부 인간들 뿐이었다. 문예부흥 이후 또 다시 유럽은 크나큰 변혁에 휩싸이게 되는데 다름 아닌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쉽게 말해 종교의 선택에 자유가 주어졌다는 말이다. 이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르네상스 이후 나타난 인쇄술이었고 이러한 인쇄술에 의해 면죄부를 비판하게 된 데서 시작된 것이다. 교황이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려 하자 신학교수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해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목숨을 건 행동을 실행한다. 이에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종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루터파에 의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성립되어 루터파 교회는 북유럽으로 퍼지게 된다. 칼빈의 종교개혁은 중부유럽으로 퍼지게 되는데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영국에서는 청교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파, 네덜란드에서는 고이센이라 칭했다.


    종교개혁은 국가의 독립과 개인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상으로 인간이 이윤추구를 위한 상업과 무역이 존중되게 됨에 따라 부의 획득이나 부의축척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었다. 여기에는 화폐의 중요성이 따라오게 되었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거래형태까지 등장하게 된바 경매란 종목도 여기 이러한 자유주의적인 거래관행의 하나였던 것이다. 즉 하나의 새로운 상업운동이었던 것이다. 경매행위란 경제적인 합리주의 바로 이러한 합리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동안 패권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네덜란드는 절대주의의 강력한 중앙집권화에 대한 거부감이 컸고 주변 강대국이 왕권을 강화하는 동안 네덜란드가 공화국 체제를 갖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중상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를 강력하게 만드는 상업체계이고 자본주의는 개인을 부유하게 만드는 상업체계이다. 절대왕정을 기피한 네덜란드는 중상주의 이론에서 벗어나 자유무역을 우선적으로 지향했다. 자본주의의 원칙에 더 충실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자유로운 의식 바탕 위의 네덜란드가 비록 마약거래나 성매매조차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허용하는 지나친 자유주의라는 비난도 있으나 당시 절대왕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공화제 아래에서 자본주의의 기틀 아래 상업제일주의를 지향했던 네덜란드에서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근대적 미술시장이 최초로 형성된 것은 당연한 일로 봐야 한다. 단순한 디자인의 신교교회가 들어서고 귀족의 몰락으로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전통적인 예술 후원자들이 모두 사라졌으며 새로이 등장한 부유한 개인들은 당시 암스테르담의 미술시장의 큰손들이었다. 시민과 농부들이 그림을 들고 미술시장에 나오게 되었던 사실들을 역사기록은 전하고 있다. 화가는 자유로이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사고는 화가들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는데 다름아닌 경쟁 속에 그림을 그려야 했으며 대중의 의향을 따라야 했다. 이 때부터 화가는 가난이라는 굴레를 얻게 된 것이다.


     

    V.             렘브란트와 기독교정신


    네덜란드는 부의 축척에서 도시자체가 자본의 우위성에서 출발했다. 대륙에서 종교의 자유를 부여 받은 수많은 화가들은 일반화된 미술시장에 그림들을 내놓게 된다. 주문종교화에만 의존했던 과거를 탈피하고 화가 스스로의 구상에 의한 회화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17세기 최대의 작가는 다 빈치와 렘브란트이다. 당대 바로크미술의 정수를 그린 네덜란드 최고의 작가는 렘브란트이다. 칼빈주의가 네덜란드의 공식국교가 된 사회의 바탕 위에 개인적으로는 어머니 코르넬리아의 깊은 신앙 속에서 키워진 렘브란트의 예술은 꽃을 피웠고 렘브란트의 영적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렘브란트 (1606-1669)는 철저한 프로테스탄티즘 화가였고 그의 생애 제작한 작품 1500여 점 중 600점이 성서의 그림이다. 반 고흐는 기독교를 이해하지 않고 렘브란트의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성서의 진리를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작가이다. 주지하듯이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황금기인 17세기를 빛낸 베르미어, 루이달, 얀 스텐, 얀 반 호이연 등과 함께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렘브란트는 화가로서 신구약 전권을 화폭에 담았으며 성경에 해박했고 어떠한 회화를 그리더라도 성경의 기본적 정신에서 떠나는 법이 없었다. 대표적인 에칭작품인 탕자의 귀환이란 작품은 모든 기독인들의 눈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다( 15:20) 아버지가 허리에 숙이고 아들을 맞아주고 있으며, 옷과 신발을 들고 나오는 종들이 보이고, 송아지를 잡는 광경이 보인다. 화가 난 맏아들의 표정도 보인다. 사도 바울로서의 자화상(1661)은 렘브란트다운 종교화이자 그의 대표작이다. 영적인 진리를 향한 화가로서의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작품이다. 당시의 네덜란드의 많은 화가들도 이 같은 렘브란트의 기독교정신에 의한 작품세계를 구가했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미술시장은 신교도들이 Majority로서 자리잡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주요 문화시장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사회현상은 기독교미술을 받아들이는데 어떠한 거부감도 칼빈주의 하 기독사회의 일상화된 한편이었던 것이다.

     

     

     


     

     


    VI.            기독교미술의 시장성과 문화적인 현실과의 괴리


    Faith Christianity Inspired Arts로 불리우는 기독교정신하의 미술품은 한국을 비롯한 현대미술의 종주국인 미국에서조차 대중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회화란 기독교정신에 의한 회화로 주로 예수그리스도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과 상상화를 말한다. 주로 특정작가들에 의하여 기독교 주제를 사용한 작품들을 말한다. 기독교미술의 시장성에 대해서는 과거 루오와 마네의 작품만이 주요미술관에 의해 선택되어졌으나 2차 대전 후 현대작가들에 의한 기독교미술 작품들이 주요컬렉션으로 선택되어진 바가 없다. 아울러 경매를 비롯한 공공 미술시장에서 거래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미술시장인 미국에서도 기독교미술의 공개거래는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며 유일하게 기독인들을 위한 기독교미술의 전문갤러리 정도가 전부인 현실이다. 이유는 무엇인가.


     

    VII.          나오면서


    피카소는 말했다. Art washes away from the soul the dust of everyday life. 기독교정신에 의한 예술가의 언변은 아니다. 현대 기독교미술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괴리는 두 가지로 대변할 수 있다.

     

    첫 째, 소비주의 문화를 배척하는 기독교 문화와의 공존불가능에 있다. 1999년 로마교황은 현대기독교인들은 소비주의의 폐혜 속에 살고 있으며 인종차별주의, 마르크스주의 등과 함께 위험한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했다. 소비주의는 복음적인 신앙생활과 배치된다. 소비사회에서 기독교적 가치와 현대적인 삶의 문화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해야 하는가가 숙제이다. 자본주의는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가치를 포함하여 그 어떤 것도 상품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문화적 영향력은 근본적으로 인간관계, 문화, 심지어 종교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소비사회의 등장은 마르크스도 내다보지 못했다. 즉 현대 기독교미술문화의 도래를 기대하는 것은 종교적 신앙적인 희망일 뿐이다. 소비의 추상성은 기독교문화의 전파보다 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독교의 현실참여도 소비화 지향의 대세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현대기독교 정체 및 침하의 가장 큰 원인은 미디어의 힘이다. 기독교미술의 상품화 및 현실화가 어려운 문제는 우선 미술시장에서 기독교이미지의 회화표현이 오히려 본질적인 가치와 추구하고자 하는 기독교선교의 목적에 배치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본다.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은 위에 언급한 소비사회로 이미 깊이 진입을 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선두권에 든 미디어국가로 자리매김을 한 상태이다. 결어로 한국 기독교미술이 지향할 점이란 작가 스스로가 영적 풍요로움의 표시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행하며 이를 작품에 표현하는가에 있다고 본다. 아울러 렘브란트의 경우에서 보듯 그리고 한국미술시장에서는 렘브란트와 같이 운보 김기창의 성화시리즈가 유일한 시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독교미술의 상업성을 논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고 전술한 바와 같이 인위적인 기독교미술의 수요창출을 시도하는 것 역시 현대 기독교의 선교지향점과 다른 방향이라 본다.

    결국 기독교미술이란 장르의 개척과 시장성추구보다는 기독작가의 독창적 열망에 의한 지속적인 예술성의 표현이 우선이라 본다.



     

    참고문헌

    1.     요한 바오로 2.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인권 존중은 참 평화의 비결이다."

    2.     예술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생명의 말씀사

    3.     타일러 코웬, 상업문화예찬, 나누리, 2003

    4.     Roger Fry, Art and the Market, Michigan, 1998

    5.     Raymonde Moulin, The French Art Market, Rutgers University Press,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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