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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es Chae 2011. 9. 3. 16:17

     

     

     

    죽음과 부활

     

    채창완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희 비추실 것이다...... “ 

    에베소서 5 14<표준새번역>

     

     

    사람은 모두 죽는다. 그래서 죽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평등한 어떤 것이다.  그것에는 남녀노소, 빈부, 그리고 귀천에 대한 차별이나 구별이 없다.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을 쉴 수 있는 공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듯이 우리는 이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죽음의 원인이나 정체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지 못할뿐더러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이 죽음을 공포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칼 마르크스(K. Mark)는 이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종교의 기원이며 그 공포를 달래는 역할을 종교가 감당한다고 하여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까지 했다. 분명한 것은 죽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입에 올리는 것은 모두가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그림1_조토(GIOTTO di BONDONE) . The Lamentation(비탄). 1305-6 . 프레스코, 아레나 체플, 파두아.

     

     

    죽음은 병이나 사고 그리고 노령등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예일대 의대교수인 셔윈 B. 뉴랜드 박사는 개업의로 35년간 일해오면서 한번도 사망진단서에 노령이란 단어를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은 무엇인가? 의학적으로 죽음의 원인은 결코 우리가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들은 노령이란 말 보다 세포의 노화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세포의 노화로 인해 그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고 이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병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사망진단서의 심근경색증이란 심장 근육세포들의 불능상태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이와 같이 죽음은 사람 몸의 세포가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불능상태를 의미한다.

     

     

     

     그림2_앙게랑 콰르통(ENGUERRAND QUARTON) .  ‘Avignon Pietà (아비뇽의 피에타)’ .  1470년경. Oil on panel, 161.9 x 217.9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그러나 유대교는 죽음의 원인을 다른 차원에서 찾는다. 우리가 이미 아는 바, 창세기는 죽음의 원인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파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초의 인간은 결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하나님과의 계약이 깨지고 인간에게 죽음이란 것이 찾아왔다. 유대교의 관점에서 죽음그리고 는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기에 유대인들 사이에는 이 인간의 죄 때문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병을 치유하는 것은 곧 죄를 사하는 행위에 상응한다.  그것은 죄사함이 하나님의 고유한 권위에 속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치병사역에 그토록 시기와 멸시를 했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의 아들인 예수가 어떻게 죄사함을 말할 수 있는가? 기독교의 시작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서 있었다. 기독교의 죽음에 대한 태도 또한 이러한 창세기적 생각과 일치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라는 점에서 기독교는 유대교와 큰 차이를 드러낸다. 즉 기독교적 죽음의 이해는 부활이란 개념 없이는 결코 설명되기 어렵다.

     

     

     

     그림3_로히르 반 데르 베이덴(ROGIER VAN DER WEYDEN).  ‘Descent from the Cross(십자가에서 내려지심)’ . 1435년경. Oil on panel, 202 x 206cm.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슬픔이다. 인류학적으로 문화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표현한 대부분의 그림들도 이러한 슬픔에 그 표현력을 집중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더 가까워지는 법이듯이 고통과 슬픔이 클수록 그 후에 있을 부활의 기쁨이 더 클 것이란 역설이 여기에 담겨있다. 경제가 어렵고 사는 것이 힘든 요즘, 우리는 종종 살아있는 것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자살 이야기가 세간에 자주 거론되는지도 모르겠다.  성읍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들과 죽어 가는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도, 하나님은 그들의 간구를 못 들은 체하신다(욥기 2412)”라는 욥의 절규가 오늘날에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 것은 그리스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이다. 그 희망이 바로 부활이며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넘어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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