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Ngod /그림이야기

    James Chae 2011. 9. 6. 00:51

     

     

    그림과 동물

     

    채창완

     

    반려동물에 대한 언급은 아담에게 ‘이브’라는 반려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존재한 것으로 창세기 2장에 기록돼 있다(창2:18~20). 아담을 돕는 반려자가 생기기 이전에 하나님은 세상에 먼저 동물을 만들어 그에게 이름을 짓게 하고 그것들과 ‘사귐’이 있게 하셨다. 그러나 동물들은 아담의 ‘반려자’가 될 수 없었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창조하셨다. 동물이 사람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는 사람마다 문화마다 다르지만 창세기 1장과 2장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동물은 인간에게 ‘다스려야(창1:28)’ 할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인간과 ‘사귐’(창2:20)이 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창세기의 내용을 추측해보면 아담과 하와의 ‘실낙원’ 이전에는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평화롭게 살았다는 점이다. 오늘날과 같이 인간과 자연과 동물이 각각의 삶의 영역을 나눠 경계를 지어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과 동물 간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의 오랜 역사와 늘 함께 했던 ‘반려동물’들과의 관계에서 들어난다.

     

    서양의 미술에서는 동물이 주제가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작품 주제의 부분으로 그려지곤 했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영모화’라는 양식이 있어 새나 동물을 주제로 한 그림이 자주 그려졌다. 여기 소개된 세 점의 동물 그림 중에서 동물만을 주제로 그린 그림은 김두량의 ‘흑구도’ 뿐이다. 나머지 두 그림의 동물들은 모두 원래 그림의 일부분이다. 서양의 명화들 속에는 동물그림이 무척 많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림의 주제에 비해 부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쉽게 간과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할 때 이러한 디테일한 부분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또 다른 그림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오늘 보는 그림 속의 동물들은 각기 그림 속에서 다른 역할을 한다. 구르네발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그림은 십자가를 메고 있는 ‘어린양’이다. 어떻게 동물이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 이는 어린양이 상징하는 바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이다. 기독교 이미지에서 ‘어린양’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는 이미 모두가 아는 바이다. 그러므로 구르네발트는 어린양을 단순히 귀여워서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그림의 주제를 설명할 목적으로 그려 넣은 것이다.

     

     

     마티아스 구르네발트(Mathias Gruenewald)_The Crucifixion(부분:십자가를 지고가는 어린양)

     

     

    마티아스 구르네발트(Mathias Gruenewald)_The Crucifixion

     

     


    이와는 달리 쿠르베의 그림에서 보이는 동물은 삶의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다. ‘사실주의’ 작가 답게 그는 하얀색 고양이(혹자는 강아지라고도 함)를 보이는 그대로 묘사를 했다. 분명 그 고양이는 그림 속 소년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쿠르베는 철저히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의 주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고양이의 모습도 재롱을 떠는 그대로 담으려 했다. 마치 움직이는 고양이를 카메라로 순간 포착한 듯하다.

     

     

     

    구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_화가의 작업실(부분)

     

    구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_화가의 작업실(부분)

     

     


    이러한 사실주의적 경향은 우리의 조선후기 화가인 김두량의 작품에서도 보인다. 검은 개의 털이나 모양의 묘사에서 서구적인 ‘음영’과 ‘볼륨감’ 등이 느껴진다. 쿠르베의 그림과 다른 것이 있다면 김두량의 그림은 동물이 그림의 주제라는 것이다. 가려운 곳을 긁고 있는 개의 생동감 있는 표정은 마치 그림을 보는 사람도 작가와 함께 그 장면을 보고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흑구’의 살아있는 묘사와 대조적으로 그 배경은 한국화적으로 평면성을 유지하고 있다.

     

     

     

    김두량_흑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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