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상주의 미술 도서

아트월드 2015. 7. 8. 10:40


모네의 지베르니 정착

 

모네의 첫째부인인 카미유 동시외(18701879)1879년에 미쉘 (Michel)이라는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으면서 정서적인 괴로움과 갓난 아기를 키울 사람이 필요한 하였다. 모네의 친한 친구인 에르네스트 오셰데(Ernste Hoschelde)1877년 파산하면서 처자식을 버리고 벨기에로 도망을 쳤다. 그는 친구의 부인이었던 알리스 오셰데(Alice Hoschelde 18921911)를 자신의 자식들과 모네의 두 아들을 함께 키우기로 작정한다. 끌로드 모네는 알리스 오셰데와 그의 자녀들을 1878년부터 지베르니로 데리고 와서 부양하였다. 알리스의 자녀인 블랑슈 오슈데 모네(Suzanne Hoschedé)는 전 남편에서 낳은 딸이다.

 

1900년경의 지베르니

 

프랑스 파리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지역이다. 마을로부터 서쪽 5km 지점에 위치한 도시 베르농(Vernon)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이곳에 도달할 수 있다.

 

인상파 기법의 창시자이자 거장으로 불리는 클로드 모네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항구 도시인 르 아브르 Le Havre’에서 보내고, 1858-1862년 사이에 바다와 하늘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으젠 부댕 Eugene Boudin’, ‘용킨드 Jongkind’를 만나 영향을 받는다.

 

1883년에는 평생소원이던 노르망디 지방의 지베르니로 이사하여 1926년까지 남은 여생을 보냈다. 센느강 하류를 따라서 석회 암반층을 파고 들어간 집들과 절벽을 지나면서 마주치는 경치는 왜 모네가 이 곳에 정착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이 마을에는 클로드 모네의 집과 그의 대표작인 <수련>의 실제 모델이었던 정원이 보존되어 있다. 그 옆에는 프랑스와 미국 인상주의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Musée des Impressionnismes Giverny)이 설립되어 있다.

 

모네 뿐 만 아니라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시대별 인상파 기법의 미세한 변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특히 모네의 대표작 이외에 다양한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거리에는 독특한 전통 반 목조 가옥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하다.

 

매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정착하고 싶어하는 곳이다. ‘일 드 프랑스노르망디지방의 경계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 지베르니

1883년부터 1926년까지 클로드 모네43년간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마지막 생애를 마친 곳이었다. 꽃이 만발한 정원과 연못은 인상주의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하는 세계의 관광객이 순례처럼 지나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1870년대 초부터 존 싱어 서전트 등 많은 미국등 외국 화가들은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예술의 도시인 파리로 건너와서 에콜 데 보자르 등의 미술학교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의 미술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클로드 모네가 중심이 되어 1874년에 획기적인 화풍의 제1회 인상파 전시회를 파리에서 개최하자 이들은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 1883년에 모네가 지베르니로 거주지를 옮겨 이사하자 인상파에 관심이 많았던 많은 화가들이 모네가 초청을 하지 않았지만 지베르니 마을로 몰려 들었다. 여인숙은 차츰 화가들의 숙소가 되었고 여관으로 증축되었다. 1914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30년간 몰려든 화가들은 16개국에서 350명의 화가 조각가 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미국화가들이었다.

 

1966년 모네의 아들이 미술학교에 기증했던 모네의 작품들은 현재, OECD 사무국에서 가까운 파리 16구의 마르모탕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모네 가족이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였는데, 작업실, 침실, 주방 등을 볼 수 있고 벽면에는 일본의 판화에 집착하였던 모네의 수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