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봉화] 나무결의 부드러운 매력, 도암정(陶巖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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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경상북도

2010. 8. 30.

나무결의 부드러움이 그대로, 

도암정(陶巖亭)

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초2리 502  / 봉화군청 문화경제과 054-679=6392

 

한가로운 길의 끝에

예향의 마을, 황전마을이다.

마을의 입구에 선 집채만한 바윗돌 세개와

단아한 정자가 서니 도암정이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 번영을 위해

지어진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막바지의 여름을 보낸다.

 

 

 

도암정(陶巖亭, 도지정문화재 제54호)

 

읍내에서 519번 한적한 국도를 따른다.

농공단지를 지나면서 예향황전(禮鄕黃田)이라 써진 입석을 만나게 된다. 길게 이어진 마을길을 바라보면 눈에 확 드는 풍경이 있으니 큰돌 세개와 정자한채, 도암정이다. 사각진 연못에 바투 붙혀 세워진 정자의 고즈넉한 풍경이 있고, 성황당의 역할을 하는 듯한 느티나무와 집채만한 바위세개가 떡하니 버티고 선 모습에 걸음을 향한다.

 

도암정(陶巖亭),

조선 효종때의 문신으로 황파 김종걸(黃坡 金宗傑, 1628~1708) 선생이 인조28년(1650년)에 지으신 정자다.

정면3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다락식 건물로 바로 앞 연못의 축대에 가차이 붙인 주초석위에 두리기둥으로 세웠다. 가운데 마루를 놓았으며 양편의 방에는 구들을 놓았으며 뒷편으로 불을 때던 아궁이가 남아 있다. 건물은 간결하며 단아하다. 보통의 정자라면 산세 좋고, 물 좋은 자리에 자리하기 마련이다. 도암정처럼 마을의 입구에 서있는 것은 흔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 연유는 시대를 거슬러 황파 선생의 조부이신 송산공 김흠(松山公 金欽)선생의 이야기로 거슬러 오른다. 송산공이 처음 이마을에 들어와 살때, 마을에는 해마다 재앙이 일었다. 그러다 한 스님이 지나면서 이르기를 마을의 안산인 학가산이 화산(火山)이며, 누른 밭(土)과 송산공(金)이 있으니 오행 중 화수목(火土金)은 갖추었으되 수(水)와 목(木)이 없음이 안타낍다 한다. 이에 송산공은 마을 안팍으로 연못을 파고 아랫연못에 수련을 심었으며, 그 가운데 인공섬을 만들어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심었고, 매년 5월 15일에 풋굿을 열어 마을의 재앙은 사라지고, 자손이 번창하는 등의 안정을 취하게 되었다 한다. 송신공의 손자인 황파선생은 그 연못의 자리에 도암정을 짓고 사림들과 함게 학술을 논하고, 국사를 논하게 된다. 또한 선생은 지극한 효성으로도 알려진 분으로 부친이 병황으로 눕자 소태산에 제단을 만들어 7일 밤낯을 금식기도를 올려 정성을 다하니 그 병이 낳았다하며, 그 효성을 기려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기도 해다.

 

그래서 도암정의 앞 연못에는 이미 진 연잎들의 푸르름이 가득한 이유였다.

조금은 복잡한 그림이 되는 모습임에 다 그러한 사연이 있었으니 까막눈의 길손이야 처음의 느낌만으로 그것을 대신하게 되니 스스로의 무식함에 답답함을 느낄때가 지금인 것이다. 나무 하나, 풀잎 하나 예의 그대로 지나치지 않던 옛 선비들의 품성을 어리석은 민초가 알리 만무 하지만 이렇듯 늦게 라도 다시 그 뜻을 알게 되니 나름 속은 시원해 진다.

연못의 가운데에 인공섬을 만드는것은 신선의 세계를 만드는 것으로 선게를 이루고자 하는 옛 선비들의 이유였고, 그 앞의 연꽃은 조부의 뜻을 이어 마을에 부족한 수목을 거들고자 녹음 가득한 연잎과 꽃을 심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황전(黃田)마을,

누런 들판이 가득한 마을이렸다. 이름 그대로 해석한다면 누런 들판, 즉 곡식이 가득한 풍요로운 마을이란 뜻일진데, 그또한 그러한 연유가 아니다. 오래전, 마을의 앞산에는 황학이 떼를 지어 살았다 한다. 그 황학들이 마을으로 내려와 앉으면 온 들판이 누렇게 장관을 이뤘는데, 그 모습을 보고 황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어찌 됐건, 황학이 떼를 지어 내려왔다는 것은 그만큼 낱알이 많다는 것이고, 낱알을 남길만큼의 여유가 있었다면 들판의 오곡이 풍성하다는 뜻이 되겠으니 이래저래 풍요로운 마을이었음을 알수 있게 된다.

 

도암정 지척에 또 하나의 신비한 모양새가 자리하니 도암사(陶巖祠)라 새겨진 세게의 커다란 바위와 300년 묵은 느티나무다.

마을의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짐작하고 있는 곳으로 성황당의 역할을 하는 듯 하다. 세개의 바위는 독(항아리)바위라 불리는 바위들로 세개의 바위는 각기 쌀독과 술독, 그리고 전(錢)독이라 한다. 가득 들어 찬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모습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있음이 눈에 든다. 또한 그 세개의 바위를 보호하고 있는 300년묵은 느티나무의 우람함은 마을의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자에는 까막눈인지라 도암사라 읽지만 사진을 보시고 아시는 분은 따로 댓글을 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듯한 습함,

그러나, 도암정의 마루위는 건조하고 시원히다. 이마 훑고 지난 바람은 선선하여 잠시동안에도 담을 식혀준다. 먼저 자리를 찿으신 두 어르신의 담소는 한가롭고 평화롭기만 하다. 어르신들의 편안함은 황전마을의 유래와 같음이고, 도암정의 시원함은 황파선생의 얼이 새겨진다.

효행의 마을 황전, 선비의고장 봉화와 참 잘 어울리는 도암정의 풍경이다.

  

 

 

 

 

 

 

 

 

 

 

 

 

 

 

 

 

 

 

 

 

 

 

 

 

 

 

 

 

 

 

도암사(陶巖祠)?

까막눈의 길손인지라 보이는 대로 일었습니다. 글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by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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