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산내] 건강한 검붉음의 당당함, 지리산 ‘와운 천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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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전라북도

2015. 7. 25.

당당하고 검붉은 건강함의 와운마을 당산목

와운 천년송(臥雲 千年松)’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산111

 

깊은 가을을 계획하기 위해

미리 찾은 지리산 뱀사골입니다.

어느 사진에선가 지리산 천년송

깊은 가을 모습에 푹 빠져있었지요.

비록, 스치듯 다녀온 와운마을이었으나,

그 묵직한 여운은 지금도 계속입니다.

올 가을, 깊은 가을에 여행자가 반드시 다시 찾을 천년송의 여름풍경입니다.


△ '와운마을 천년송'

수령 500년으로 추정하고 있는 부운리 와운마을의 당산목입니다.

쇠지팡이에 의지한 쳐진 가지도 있으나 검붉은 빛은 천년송의 이름만큼이나 당당합니다.



명산 지리산(智異山)’,

19671229일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혜로움을 얻는 산이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간직한 국립공원으로 웅장하고 아늑한 산세가 매력적인 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리산의 주능선이라 할 수 있는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약 25,5km, 그 둘레가 약 320km! “~!” 누구나 한번쯤은 도전하고픈 종주산행을 꿈꾸어 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은 전남과 전북, 경남에 걸쳐 있으면서 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를 두루 품어 안은 국립공원입니다.

예로부터 금강산(金剛山)’, ‘한라산(漢拏山)’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으로 숭앙을 받아온 신령스러운 산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봉우리마다의 이름들도 신앙을 상징하는 이름이 됩니다.

천왕봉(1,915m)’반야봉(1,732m)’, ‘노고단(=길상봉, 1,507m)’의 세봉을 중심으로 20개의 거대 봉우리들이 펼쳐지면서 그에 걸맞게 길고 깊은 능선을 만들어 내지요. 아직까지 이름도 없는 무수한 능선과 봉우리, 계곡들 사이에 대원사계곡’, ‘칠선계곡’, ‘피아골등과 함께 뱀사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뱀사골에 오늘 여행자의 목적지가 있습니다.

해발 800m, 바로 구름도 누워 쉬어간다.’와운마을입니다. 그리고 그 마을의 당산목 천년송(千年松)’입니다.

 


△ 뱀사골 트래킹

잘 조성되어 있는 '데크길'과 '흙길', '돌길'과 '출렁다리'까지 길을 따라 걷는동안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남원시내에서 길을 떠나

주천면 둘레길 탐방센터를 거쳐 구룡폭포를 거슬러 구불구불 똬리 틀듯이 한참을 오르다가 정령치에 이르러서 이번에는 한없이 길을 내려섭니다. 달궁 야영장을 지나서야 지리산 국립공원 북부사무소, 뱀사골 탐방 안내소에 닿습니다.


, 그런데 이곳에서부터마을까지 자가용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단순히 천년송만을 목적으로는 차량통행이 되지 않는다는군요. 기본적으로 생태환경을 위함이라 하니, 뱀사골의 계곡풍경도 감상해 볼 겸으로 걷기로 합니다.

 

1야영장 입구에 주차를 하고 매표소가 있는 반선교에서 걸음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부터가 전북 남원시 유일의 지리산 권역, 이른바, 지리산 뱀사골코스입니다.



△ '뱀사골 소(沼)'

조성된 길을 따라 다양한 풍경이 연출됩니다. 각기 다른 맑은 물빛들과 바람의 풍경이 명품길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반선에서 출발하여 요룡대’, ‘간장소를 지나 화개재까지 오르며 계곡의 정취에 빠져드는 코스로 총 9.2km, 4시간 20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코스입니다.


뱀사골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구전이 전해집니다.

북부권의 계곡 물줄기가 뱀과 같다하기도 하고, 뱀이 죽은 계곡이라거나, 정유재란 당시에 석실 부근에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배암사라는 절집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도 전해지지요.

또한 1,300여년전,

지금의 매표소와 야영장일대에 송림사라는 절집이 하나 있었는데, 이 절집에서는 매해 불도에 정진하면서 다른 스님들에게 귀감이 되는 승려를 한사람씩 뽑았다고 합니다. 이 승려가 정성껏 기도하면 칠석날 구름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 극락세계로 가 신선이 된다고 하였답니다. 그렇게 신선됨을 부처가 되는 것으로 알았는지 전국의 불자들이 모여들어 행사는 점점 거대해져만 갑니다.

그러던 조선 선조 대, 서산대사가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의 불심이 돈독하다하여 어찌 하늘의 신선이 되겠는가?’라며 그 해에 뽑힌 승려에게 독을 바른 승복으로 고쳐 입게 하고 신선대에서 기도하게 했답니다. 그리고 깊은 밤 자정을 넘어서자 신선대 아래의 용소가 갑자기 요동을 치더니 이무기 한 마리가 나와 승려를 덮쳐버린 것입니다. 이로서 송림사의 흉계로 해마다 한사람씩 승려를 이무기의 제물로 바쳤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다음날 아침, 신선대에는 승려와 이무기가 함께 죽어 있었답니다.


그리하여 이무기가 죽은 이 골짜기를 뱀이 죽었다 하여 뱀사골이라 하였고, 승려가 이무기에 죽어 반쪽자리 신선이 되었다 하여 반선이라 했다고 합니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요.

서산대사는 선조시절에는 거의 묘향산에서 지낸 사람이다.’라고 따지지 마시고, 그냥 이런 전설이 있구나~’ 하시길요.



△ 하늘을 뒤 덮은 푸르른 뱀사골 트래킹

하늘의 풍경을 뒤덮을 정도의 푸르름이 가득한 7월의 풍경입니다. 11월의 깊은 가을 풍경, 그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암튼 반선교에서 와운마을까지 약 2.7km입니다.

매표소의 친절한 직원의 말에 의하면, 난이도가 높은 코스도 아니고,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약 50분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뱀사골 계곡코스가 약 2km, 와운마을까지 약 700m입니다.

왕복해야 2시간 잡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계곡은 어찌 쉬엄쉬엄 걸었는데, 와운 마을 갈림길에서 부터는 으으으......’입니다.

평소 운동과는 담 쌓고 사는 여행자이기도 하지만 다녀오고 이틀 동안 종아리가 댕기고. 저리고, 아파서 고생 좀 했습니다.

 




룰루랄라~!”

이제 출발입니다.

기분 좋아지는 상끗한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 길을 걷기 시작한지 5분도 되지 않아 2야영장으로 들어서는 길림 길의 다리를 만납니다. 다시 5분정도 걸어 오르면 콘크리트길과 계곡길이 나누어집니다.

계곡길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뱀사골 트래킹입니다. 가뭄이 한창이었던 지난 7월 첫 주말이었는데 지리산 계곡에는 가뭄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물다운 물색을 자랑하며 시원스럽게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물은 보이지 않지만 시원한 바람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듯한 폭포소리도 들립니다.

 

잘 정비된 데크길과 자갈밭, 때로는 출렁다리를 이어이어 놓았습니다.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물색에 반해 물만을 바라보지만, 고개 잠시 들어 숲을 보아도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하늘을 뒤 덮은 울창한 수림을 걷습니다. 수많은 단풍나무들과 떡갈나무가 화합을 이룹니다. 깊은 가을의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입니다.

지리산이 만들어 놓은 계곡 길과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이 함께 합니다.


그 길이 그리도 좋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 있어 몰랐던 하늘, 하늘 가린 숲길을 걸을 때는 몰랐는데,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뿌릴 듯이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 '와운교'에서 바라본 뱀사골 풍경

와운교를 지나면 뱀사골 '화개재 가는길'과 '와운마을 가는 길'로 나누어집니다.

 아래의 어느 님처럼 신발을 벗어던지고 시원그런 물줄기에 발 담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쉬엄쉬엄 오르던? 걷던 40여분,

계곡 길을 벗어나 콘크리트길과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와운교입니다. 계곡의 바로 위는 요룡대입니다. 이곳이 화개재 가는 길과 와운 마을 가는 길의 갈림길입니다.

와운 마을은 언덕을 따라 그대로 오르는 길입니다. ‘화개재는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용이 떨어졌다.’탁용소’, ‘병목 모양병소’, ‘뱀이 기어가는 모습이라는 뱀소’, ‘소금 짊어진 보부상들이 빠졌다.’간장소를 지나 옛 남원 사람들이 화개장터로 가기 위해 넘나들던 화개재입니다.

 

여행자의 목적지는 와운 마을이니 언덕을 따라 오릅니다.

아이고! 죽겠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 콘크리트길입니다. 그런데 그 경사가 제법 심합니다. 추적추적 비까지 날리는데 빗방울마저 뜨뜻합니다. 식은땀에 진땀에 헥헥대고 오릅니다.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면 이제부터 마을입구에 해당 됩니다.

그 앞에는 일명 부부 소나무로 불리는 두 그루의 소나무를 만납니다. 기이하게도 바위위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부부송과 잠시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따릅니다.

이번에는 아스팔트길입니다.

~! 진짜 죽겄다.”


오락가락하는 빗방울을 맞아가며 계속 오릅니다.

경사는 그리 심해 보이지 않는데, 더운 날씨 탓을 해야 하는지, 안개비인지 여우비인지의 탓을 해야 하는지 이상하게도 힘이 듭니다. 결국은 여행자의 저질체력으로 결론 났습니다.



△ 와운마을 입구의 '부부송'

특이하게도 소나무 두그루가 바위위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어울림의 모습이 연인? 부부?와 같아 보여

여행자가 '부부소나무'라고 이름 붙여 봅니다.


△ '와운 천년송' 안내판

안내판의 뒤로 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듭니다. 물론, 데크 계단으로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가파르고 중간에 데크가 끊겼다가 다시 이어집니다.



드디어 가파른 나무계단을 만납니다. 바로 천년송으로 가는 계단입니다.

그 앞으로 와운(臥雲)마을입니다.

천연기념물 제 424와운 천년송이 있는 마을로, 201573, 15번째 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선정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지리산권역에서는 처음으로 앞으로 생태마을이자 명품마을로 거듭나는 모습을 기대 해 봅니다.


부운(浮雲)’ ‘와운(臥雲)마을, 말 그대로 뜬 구름을 벗삼는 곳, 지나던 구름도 힘에 겨워 누워버리는 곳으로 첩첩산중입니다.

와운마을은 1595년 임진왜란을 피하여 정씨 일가가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였고,

일제치하와 한국전쟁 등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마을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목기제작을 하며 살아왔고, 1980년대 들어서는 한봉을 통하여 소득을 올렸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현재 17가구 32명이 거주하면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민박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느린우체통'의 뒤로 '천년송'의 모습이 보입니다.

'느린 우체통'은 '천년송' 앞에 설치한 것으로 남원시청 문화관광과와 전북대학교에서 함께 설치한 우체통으로 편지 수거 후 약 100일뒤에 배달 된다고 합니다.



빗방울이 잠시 잦아듭니다.

서둘러 천년송을 만나러 갑니다. 급한 경사의 계단을 따라 오르고 나면 잠시 길을 잃습니다.

이건 길도 아니고 뭣도 아녀..” 혼자 궁시렁 거리다보니 남의 민박집 마당입니다.

이런~!”

민망함과 쪽팔림에 서둘러 산길을 타고 오릅니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만나게 되지요.


등어리도 아프고, 다리도 땡기고..허리 한번 곧추 펴니 눈앞에 멋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기어이 만났습니다!

    


△ '지리산 와운 천년송'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마을이 형성 되기 이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소나무로 와운마을 뒷동산에 우뚝선 당산목입니다.



천연기념물 제424, ‘와운 쳔년송(臥雲 千年松)’

수령 500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소나무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수령은 600년 이상 되었다고도 전해집니다. 그래도 이름은 천년송입니다. 어차피 , , 이라는 숫자의 개념이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마을 뒷동산에 우뚝 솟은 두 그루의 소나무가 20m 정도 거리를 두고 서 있습니다.

이를 한아시(할아버지)할매(할머니)으로 부릅니다.


이 중 더 크고 거대한 할매송천년송(千年松)’이라 부릅니다.

할매송은 수고 20m, 흉고둘레가 6m에 이르며, 수관폭은 12m에 이르는 나무로 마을 사람들 14인의 공동 소유로 함께 보호, 관리하고 있어 건강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전체적으로 역삼각형의 모습으로, 밑둥치에서 약 2m정도 올라서 남북으로 분지 되어 자랐으며, 육중하지만 두 가지가 서로 조화롭습니다. 각각의 가지마다도 건강하게 자라 지리산을 기운을 받들 듯 팔을 펼치는가 하면, 마을을 품 듯 감싸 안은 모습입니다. 비록 노쇠하여 쇠 지팡이에 의지한 쳐진 가지도 있으나, 건강하게 잘 자라 있는 천년송은 20001013,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한아시(할아버지) 천년송'

육중한 할매송에 비해 작고 초라해 보이는 '한아시송'입니다.

그러나 여행자의 눈에는 할아버지 소나무가 더욱 당당해 보입니다. 딱딱한 표정으로 위엄궂게 내려보는 양반네의 모습이라 할까요? 한마디로 그 꼿꼿함이 좋습니다. 

마을에서 '당산제례'를 지낼때도 한아시송에 먼저 제를 올립니다.



모두가 할매송에 눈길을 주고 있을 때 여행자는 한아시송(할아버지 소나무)’을 바라봅니다.

같은 공간에 자리하며 할매송 보다는 작고 가냘프지만 묵묵히 인고를 버텨온 꼿꼿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말 수 적은 어느 양반 댁 영감님의 모습, 딱 그 모습입니다.

할매송의 육중함에 가려져 있으나 단단한 수형의 모습에서 여행자는 더욱 소나무다운 소나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밑둥치에서 4m 정도에서 손바닥 펼쳐 하늘을 가리듯 그늘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직접 말로는 전하지 않으나 모른 척, 사람들을 위해 지긋하게 펼쳐준 그늘입니다.

 

할아버지 송할머니 송은 마을의 당산목으로

오래전부터 매년 정월 초사흩날 당산제를 지내왔습니다. 우리네 선조들은 삶이 척박하고 힘들어 질 때 사람들은 산신제를 통하여 소원을 빌었었지요.


임진왜란 이 전부터 자생한 소나무로 마을사람들이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부터 자리한 터줏대감으로 해마다 당산제를 지냈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제사를 치르지 않는 해에는 기상이변들이 생기면서 감나무에 감이 열리지 않는 등 마을에 변고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을에서는 일 년에 한번 치르는 천년송 당산제를 각별하게 생각하며 지내오다가 한국전쟁을 전후로 중단이 되어 약 15년간 당산제를 지내지 못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러던 20072, 문화재청 지원으로 다행이도 끊겨 사라질 위기의 당산제를 복원, 재현하면서 다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산제례는 제례를 지내기 보름 전에 제관을 선정하게 되는데

지난한해동안 집안에 우환이 없던 사람으로 초상집이나 백일, 돌집을 다니지 않은 사람 중에서 뽑았다고 합니다. 이 후 제관은 행동에 각별한 근신을 하면서 초상집과 출산집을 출입하여서도 안 되며, 고기음식을 입에 대면 안 되며, 부부관계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또한 옷 3벌을 준비하여 뒷간 가는 옷과 잠옷, 일상복으로 구분하며, 제사 3일전부터는 매일 당산 너머의 계곡인 산지소에서 목욕재계하며 매일 갈아입어 청결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날인 음력12일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소나무 주변을 청소하고 황토를 제단과 소나무 주변에 뿌리고, 검긋줄(=금줄, 왼손으로 꼬는 새끼줄)’을 꼬아 두 그루의 소나무에 두름으로서 당산제의 준비를 마칩니다.

다음 날 새벽, 제상을 차리고 촛불을 켜면서 징을 치면 풍물 잡이(상쇠2, 2, 1, 장구1명과 소구들)’들이 매굿터다지기의 당산굿을 친 후, 할아버지 나무에 먼저 제사를 올립니다.

제를 마친 후에는 음식과 술로 고시레를 하고, 빈 그릇에 제물을 담아 할머니 소나무에 가서 땅에 묻고 풍물을 칩니다. 이 때 밥을 한지에 싸서 할머니 소나무 아래 묻고, 검긋줄을 꼬아 소나무에 세 바퀴 두르고, 동동주를 세 군데 나누어 뿌리면서 정성을 드리면 득남을 했다고 합니다.

제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와 집집마다 마당 밟기를 하며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천년당산제례를 마치게 됩니다.


이렇듯 각별한 정성을 쏟으며 마을의 안녕을 바라던 와운 마을 사람들의 당산목’,

이것이 바로 지리산 와운 천년송입니다.


깊은 가을의 천년송을 만나기 위한 사전답사 형식이었으나, 초여름임에도 잘 자라있는 멋진 소나무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육중한 할머니 소나무, 당당한 할아버지 소나무가 지금도 그 자리에 꼿꼿하게 머물고 있음이 올 늦은 11, 여행자의 마음과 발길을 붙잡아 두었습니다.



△ '할아버지송'에서 바라보는 '할매송'


△ 천년송에서 바라본 '와운마을'

그러나 우거진 숲으로 인해 전체를 조망하기는 어렵습니다. 와운마을의 일부만이 모습을 보이네요.


△ 천년송을 내려오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깊은 가을에 다시 찾아 '지리산과 천년송의 가을 단풍의 진면목을 만나리라.' 다짐해봅니다.



차근차근 밟아 올라 느긋하게 즐기다 와야 할 것인데,

아쉽게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에, 시간의 쫓김에, 빗방울의 날림에 서두름을 더하여 주마간산(走馬看山)’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은 없습니다.


건강한 검붉은 빛의 천년송,

올 가을에 다시 만날 것을 천년송의 아래에 묻고 내려옵니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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