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근남] 자연이 빚은 절경을 만나다 #1. ‘매월대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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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강원도

2015. 8. 26.

복계산이 품은 비경, 매월당이 찾은 은거지

매월대 폭포(每月臺 瀑布)’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222-5 / 철원군청 문화관광과 033-450-5365

 

철원3대폭포를 찾아가 봅니다.

모두가 철원 8경으로

그 처음으로 매월대 폭포입니다.

'매월대폭포',

폭포 스스로의 풍경으로도 충분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 매월대 폭포



매월대 폭포가 자리한 곳은 우리나라 최북단으로 등산이 가능한 복계산(福桂山, 1,057m)’에 자리합니다.

철원3대 폭포 중 두 곳의 폭포는 바로 앞까지 차량의 접근이 용이하지만 매월대 폭포는 약 400m를 걸어야 합니다. 그만큼 깊고, 울창한 수림에 가려있는 비경이 간직되어 있는 폭포지요.


원래 폭포의 이름은 선암(仙巖)폭포입니다.

폭포에서 약 200m 정도 오르면 마치 산을 뚝 잘라놓은 듯 층암절벽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을 선암바위라고 하며, 일명 매월대(梅月臺)’라고 합니다.

 


△ 복계산 이정표

매월대 0.4km는 매월대 폭포를 말합니다.



매월대(梅月臺)’라는 이름은 생육신(生六臣)’의 한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의 호를 따 지은 것입니다.

그의 나이 21세가 되던 세조1(1455),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를 하던 중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는 책을 덮고 3일 동안 방에 들어 앉아 움직이지 않았지요. 그렇게 3일이 지나자 갑자기 대성통곡하며 보던 책들을 모두 불사르고 산으로 숨어들어 승려가 됩니다.

이듬해 세조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의 소식을 듣게 되었으나, 사람들은 모두 세조의 서슬 퍼런 치세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매월당은 승려 설잠(雪岑)’이 되어 거열형(車裂刑)’을 당한 시신들을 바랑에 담아 노량진에 임시 매장을 하고는 전국을 유랑하게 됩니다.

 

유랑생활 중의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당시 집현전 부제학 조상치(曺尙治)’, 청렴선비 박도와 그의 동생 박제’,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조카 5명이 따르니 이들과 함께 찾아 은거한 곳이 바로 철원 복계산 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소일하며 생활하였으며 그 중 해발 595m에 자리한 층암절벽인 선암바위에 바둑판을 새겨 놓고 바둑을 두며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고 전합니다.

이 후 마을 사람들은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을 매월동, 선암바위는 매월대, 선암폭포는 매월대 폭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매월당 선생이 실제 이곳을 찾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흘러 내려오는 구전의 정도일 것으로 추측 되고 있습니다만, 매월당의 기이하고 괴팍한 성격과 행동으로 온 나라를 유랑하던 매월당의 성격을 들어보면 찰나일지언정 한번은 들렸을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겠습니다.





매월대 폭포 가는길은 지방도로 56번에 올라서면 됩니다.

강원도 철원에 진입하여 육단리로 방향을 잡고 다시 잠곡리로 향합니다. ‘매월대폭포 버스정류장삼거리에서 다시 폭포쪽으로 방향을 잡고 약 1km정도 들어서면 도로의 끝에 복계산 주차장이 나타납니다.


여기서부터 약 400m 산행을 하게 됩니다.

산행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산책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오르는 동안의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은 산의 초입부터 시작됩니다. 오르는 동안의 숲의 풍경은 지나치지 못할 만큼의 푸르름과 시원함이 있습니다.

비 온 뒤의 숲이어서 인지 더욱 짙은 푸름에 늙은 나무 등걸의 이끼조차도 신령스럽습니다.


이 길을 수시로 올라 내렸을 매월당을 생각해보면 가히 신령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족히 1백년은 넘었을 법한 늙은 나무들과 수북이 살 오른 잡초, 이끼 가득 머금은 바위까지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을 지경입니다.


더하여 산책길의 옆으로 계곡물이 함께 하니 숲의 싱그러움과 물의 습한 기운이 만나 시원함을 더해줍니다. 폭포는 아직 먼 것 같은데도 계곡의 물소리는 발자국과 함께 동행을 합니다.



△ 나무 등걸의 이끼마저 신령스러운 늙은 나무



다만, 아쉬운 것이 조금의 공간이라도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거나 흔적을 남기는 중입니다.

무더위로 지친 일상이겠으나 계곡의 중간 중간에는 돗자리가 깔리고 오늘 하루의 먹거리가 가득합니다. 아름다움을 망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편히 쉬고 가는 자리 처음의 그 모습으로 온전하게 해주는 배려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10여분, 드디어 선암 폭포, 매월대 폭포 앞에 섭니다.



△ 매월대폭포 올라가는 길의 계곡의 풍경



높이 30m에서 떨어지는 장쾌한 물줄기를 만납니다.

더하여 좌우의 반듯하고 기이한 암석들을 어깨로 두고 있어 그 보다 더욱 큰 풍채를 보입니다. 울창한 숲속에 숨어 있는 폭포의 물소리는 더욱 깊게 울려집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진정한 비경은 바로 이러한 풍경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태초의 자연 풍경에 가까운 풍경의 오롯함에 한참을 머물게 됩니다. 잠시 사람들의 스침이 남긴 아쉬움도 있지만 폭포의 자연풍경은 건재합니다.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폭포수, 맑게 고인 소(), 그 아래 바위 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길 역시도 자연스러움 그대로입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매월대 폭포가 참 좋습니다.



△ 매월대 폭포



매월당 선생의 비분함도 잊게 되는 풍경입니다.

폭포 오르는 동안의 습한 기운속의 비지땀도 잊혀져버립니다. 그리고 세상만사 복잡하고 어지러운 지친 삶도 잊게 됩니다. 자연이 주는 기운, 매월대 폭포가 보여주는 풍경에는 그 만의 모습만이 남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묵은 마음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풍경, 진정한 철원 폭포 여행의 참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 폭포 아래쪽


△ 매월대 폭포


△ 매월대 폭포 - 복계산 등산로에서


△ 매월대 폭포


△ 매월대 폭포


△ 매월대 계곡



불가에서는 폭포가 깨달음의 장소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에 가장 가까운 것이지요. 특히 매월대 폭포의 폭포소리는 몸 전체를 울리는 파동이 있습니다.

법명 '설잠(雪岑)'으로 승려의 삶을 살아가던 매월당과연 그 옛날 매월당은 매월대 폭포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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