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담양] 홀로 선 매화, 주인의 뜻을 섬기니, 담양 '독수정매(獨守亭梅)'

댓글 0

[길손의 테마여행]/한국의 매화를 찾아서..

2020. 3. 12.



큰 뜻 정자에 새기니, 매화, 홀로 서다.
‘독수정매(獨守亭梅)’



3월 중순,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다.
그래도 매화는 꿋꿋이 피워내기에 여전히 탐매를 떠난다. 그리고 탐매(探梅)를 나서는 길이면 아랫말  마실가듯 늘 상 찾는 곳이 있다.


전라남도 담양,
담양땅에 들어서면 초록의 향연인 대숲을 먼저 만난다. 이제 막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났을 뿐인데, 봄바람은 대숲을 초록으로 물들였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했다. 그리고 그것을 닮은 정자하나가 있다.
지금도 첩첩산중의 오지와 같은 자리, ‘산그늘마을’로 불렸던 ‘산음리’에 들어서면 잘 보이지도 않는 언덕 위에 정자 하나 서니 ‘독수정(獨守亭)’이다.




‘독수(獨守)’란, ‘홀로 지킨다.’라는 뜻이다.

이태백이 “이제시하인 독수서산아(夷濟是何人 獨守西山餓)”라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누구인가, 홀로 절개를 지키다가 서산(수양산)에서 굶어죽었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누구이기에 이토록 스산한 이름을 정자의 현판으로 달아 놓았을까, 정자의 주인은 스스로를 ‘미사둔신(未死遯臣:죽지 못하고 숨은 신하)’이라며 정자를 짓고 은둔했을까,



‘서은 전신민(嶼隱 全新民, ? ~ ? )’
고려 말, ‘북도접무사(北道接撫使)’이자 ‘병마원수(兵馬元帥)’를 거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무인이다.

모시던 왕과 고려의 쇠퇴를 지켜보며 ‘포은 정몽주(包銀 鄭夢周, 1337~1392)’와 함께 나라 근심에 가득하던 때, 포은이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하자 나라의 기운이 이성계의 정권에 들어가면서 고려는 끝이 나고 조선이 개벽된 것이었다.
두 나라에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렸으나 이성계의 끊임없는 부름을 피하여 ‘서석산(瑞石山=현 광주 무등산)’자락에 숨어들어 정자를 짓고 은둔을 하였다.

스스로 은둔함을 뜻하여 자신의 호 마저 ‘서은(瑞隱:서석산에 숨다)’이라 했다.




계류가 흐르는 남쪽 언덕위에 정자를 짓고,
뒤로는 소나무 숲을 두었고, 앞으로는 대나무 숲을 두었다. 계류의 주위로 백일홍이 만발하여 ‘자미탄(紫薇灘)’이라 했다.


그는 이곳에 ‘북향(北向)’의 독수정을 짓고 아침마다 의복을 갖추고 송도를 향하여 곡을 하며 절을 하였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두 왕조와 두 임금을 섬기게 된 신하의 도읍은 한양이 아닌 개경이었으며, 섬기는 왕조는 조선이 아닌 고려였다. 북향을 두게 된 의미도 고려왕에게 문안을 드리기 위함으로 두 나라를 섬기지 않겠다는 서은의 충심이었다.


독수정은 탁 트인 공간에 자리한 것이 아니다. 둔턱한 언덕배기 위에 자그마하게 세워진 정자는 그나마 밖에서도 시원스레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자 속에서도 광활한 풍경은 만날 수 없다.

말 그대로 은둔자의 공간이다.






고집스러운 면모로도 볼 수 있겠으나, 멸망한 나라를 위해 기꺼이 은둔의 삶을 택한 충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긴 작금의 여의도를 바라보면 손톱의 때만도 못한 의지로, 세치 혀로 정치를 논하며, 개인의 욕심에 사로잡혀 망발하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한심과 한숨일 뿐이다. 충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은 선생의 굳건한 충심의 의지를 꼬리만큼도 쫒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이니, 과연 아집이 아닌 충심으로만 보이게 된다.


망한 고려가 그리워 충심을 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원칙을 지켜내고자 했던 굳은 심성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 대쪽 같은 지조와 절개였으니, 권력은 흘러 지나가는 계곡물보다 못한 허무한 꿈이었다.

무인의 충심으로 세워진 담양 최초의 정자는 독수정에서 시작하여 조선시대 500년으로 이어진다. 면앙정, 송강정, 명옥헌, 식영정과 환벽당, 그리고 소쇄원이 이어지면서 조선시대 가사문학을 이끌었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긴 시간의 흐름은 많은 것들을 바꾸어 선비들은 자연과 사상을 시와 노래로 풀어냈다.



독수정은 고종 28년(1891년)에 재건되었으며, 이 후 2차례의 중수를 통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오늘 찾아온 ‘독수정매(獨守亭梅)’도 그 즈음에 식재된 것으로 알려진다.

언덕 위 비탈 모서리에 자리 잡은 매화는 소박하다. 세월의 흐름을 알리는 등걸의 이끼뿐이다. 그러나 그 모습에서 뿜어내는 강건한 모습은 앞뒤로 들어찬 대나무 숲과 소나무 숲에 뒤지지 않는다.


수령 130년의 매화에게는 다부진 기품이 서린다.
수척해 보이나 강단 있다.
영락없는 주인의 충심과 닮았다. 깡마른 모습의 입 꽉 다문 채 세상사 바라보기만 하는 매화다.

함부로 내뱉지 않으며,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매화마저도 작게 피워내고, 향기는 아련하다.



나무걸등의 소리를 내는 정자의 마루턱에서는
느릿한 바람에 일렁이는 대숲의 소리가 빗질하듯이 들려오고, 솔숲의 깨끗한 향이 불어온다.

어리석은 길손의 가슴에는 가벼운 바람에 섞인 아련한 매향이 스며든다. 처마 건너편 대숲에는 또다시 계절이 찾아든다. 오늘은 이렇게 한참을 머물고 싶다. 문득 주위에 어둠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는 느린 걸음으로 독수정을 벗어난다.


댓잎에서 떨어지는 아침이슬과 바람이 만들어 낸 ‘죽로차’한잔이 그립다. 쌉쌀한 첫 맛보다 달큰한 뒷맛의 여운이 오래 남는 茶 한 잔과 같은 독수정의 여운이 남는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가게 하고 머물겠다하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이제 어둠에 자리를 내어줄 때다.


온전한 은둔의 세상, 그만의 세상이 이곳에 있었다.
그곳에 그를 닮은 매화가 있었다. 주인을 닮은 매화를 만난 것으로 그를 만난 듯 차분해진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www.한국기행.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