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길안] '만휴정(晩休亭)', 오래된 것의 오랜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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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경상북도

2020. 5. 22.

“저물어 가니 이제 쉬어가자.”

‘안동 만휴정(安東 晩休亭)’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1081(무계하리길 42) / 안동시 문화관광과 054-856-3013

 

한 시대를 풍미한

선비들의 끝은 늘 고향이었다.

쉼,

비워내기 위한 그들은 몸짓,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고자하는 의연함.

그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명성과 함께 관직도 버린 선비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을 벗 삼고, 후학들에게 자신의 사상과 예절을 전하며 살았다. 세상 근심과 욕심 다 놓은 채 스스로 신선과도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싶었던 것이다.

 

‘안동 만휴정’,

보백당 선생이 71세 되던 해에 묵계마을 ‘송암동천(松巖洞川)’의 폭포 위에 자리한 정자로 이름도 “만년에 휴식을 취하다.”라는 뜻의 ‘만휴정(晩休亭)’이다.

 

묵계마을은 ‘거묵’, ‘거무’로 불렸는데, 보백당이 머물기 시작하면서 ‘묵촌(黙村)’이라 하였고, 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를 ‘묵계(黙溪)’라 했다.

길안천이 마을을 크게 휘돌며, 사방으로는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있다. 산골의 골짜기 마을이지만 답답하지 않고 볕이 내내 잘 드는 고요하고 평안한 마을로, 마을에는 계명산 남서쪽 끝자락에 보백당 선생의 ‘안동김씨 묵계 종택’이 있고, 서편으로 ‘묵계서원’이 자리한다.

 

묵계종택의 앞 길안천을 건너 물길을 따라 오르면 송암 계곡이 나오는데, 암벽의 위로 횐 물줄기가 흘러 내리니 ‘송암 폭포’다. 그곳에서 몇 걸음 더 옮기고 나면 계곡으로 향하는 작은 길이 나있고, 그 건너에 만휴정이 자리한다.

정자는 물길을 건너야 들어설 수 있는데 예전에는 돌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그러나 후손들의 손에 중수를 거치면서 외나무다리와 같은 폭 좁고 긴 다리를 세워 놓아 편히 들어설 수 있다.

 

정면3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앞으로 개방된 누마루에 계자난간은 3면으로 둘렀고, 뒤의 양편으로 온돌방을 두어 자연스럽게 앞쪽의 대부분이 툇마루가 된다. 방의 앞으로는 세살문을 달았고, 마루 쪽으로는 띠살문의 들어열개 문을 달았다.

만휴정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만휴정(晩休亭)’과 ‘쌍청헌(雙淸軒)’이다.

쌍청헌은 조선 초 사헌부 정오품 ‘지평(持平)’, 정사품 ‘장령(掌令)’을 지낸 ‘남상치(南尙致)’의 당호로 청백리로 알려져 있으며 김계행의 장인이다. 1453년(단종원년)에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단종이 폐위되자 묵계로 낙향하여 쌍청헌을 짓고 부귀영화를 버리고 청백리의 삶을 살았다.

그러한 자리에 사위 김계행이 이어 장인의 숨결을 이어간 것이다.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 1431~1517)’,

늦은 나이에 관직을 시작하였으나, 그의 관직생활은 파란만장하다.

50세가 되던 1480년(성종11)에 병과에 급제하여 정6품 종부시 주부(宗簿寺 主簿), 2년 뒤엔 고령현감(高靈縣監)을 지냈다.

이 후 ‘홍문관(弘文館)’ 부수찬(副修撰), 부교리(副校理), 교리(校理), 응교(應敎), 전한(典翰), 부제학(副提學)을 지냈고,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헌납(獻納), 사간(司諫), 대사간(大司諫)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492년 2월에는 사헌부(司憲府)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 4월 이조참의(吏曹參議), 6월 성균관 대사성(成均館 大司成)과 사간원 대사관(司諫院 大司諫), 9월 홍문관 부제학(弘文館 副提學), 1495년 5월 승정원 도승지(承政院 都承旨), 1496년과 1498년에 다시 사간원 대사간을 지냈고, 1499년 1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8월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吏曹參議) 그리고 종2품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 大司憲)에 각각 제수(除授)되었다.

이렇듯 관직의 사직과 복직이 수차례 반복된 것에는 그의 강직한 성품에 있었다. 관직 초기 사헌부 감찰에 ‘제수(除授:왕이 직접 벼슬을 내림)’ 하였으나, 그 성격에 그 자리에 오르면 다른 여러 신하가 불편하다하여 조정에서 반대한 인물이다.

 

그러던 1498년(연산군4), 조정과 왕실의 병폐를 직간을 서슴지 않으니 이내 ‘무오사화(戊午史禍)’에 연루되어, 교우였던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1431~1492)’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김일손(濯纓 金馹孫,1464~1498)’, ‘이목(寒齋 李穆,1471~1498)’등을 처형하였다. 김계행은 정여창(一蠹 鄭汝昌, 1450~1504),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1454~1504)등과 함께 김종직의 문도로서 국정을 어지럽게 했다는 죄로 태장(笞杖=곤장棍杖)을 당한다.

그러나 다시 사간원 대사헌에 올랐고, 이듬해 또다시 옥사에 갇히고 또 다시 대사성과 대사헌에 임명 된다. 그럼에도 끝까지 왕에게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 잡을 것을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기로 작정한다.

 

1500년(연산군6),

나이 70에 들어 고향 묵계로 돌아와 작은 서당을 열고, ‘보백당(寶白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보백당이란, 선생의 생활철학이다.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 우리 집에는 보물이란 없으니, 보물이 있다면 오직 청백뿐이다.’에서 취한 뜻이다.

보백당은 현재 ‘묵계종택(黙溪宗宅)’이며,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지방유생들이 1706년(숙종32)에 선생의 향사를 위해 세운 것이 지금의 ‘묵계서원(黙溪書院)’이다.

 

그리고 이듬해, 고희를 넘긴 선생은 장인이 머물던 쌍청헌을 찾아 머물며 ‘늦은 나이에 쉬다.’라는 뜻의 ‘만휴정(晩休亭)’ 현판을 걸었다. 그 자리에 그 인물인 듯, 장인과도 닮은 청백리의 삶이 그대로 만휴정자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을 벗 삼던 삶, 그것이 보백당 김계행의 말년 삶이었다.

 

계류 건너 축대위에 낮은 담을 두어 정자의 경계를 분명히 하여 자연과 교류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으며, 정자에서 바라보는 조망을 해치지도 않았다.

만휴정 아래 바위에는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百堂晩休亭泉石)’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위쪽의 반석에는 그의 청백리 생활이었던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이 새겨져 있다.

정자 안에는 ‘만휴정(晩休亭)’, ‘쌍청헌(雙淸軒)’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서편 방 입구 위에도 그의 평소 생각인 청백리 정신을 담은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 내게 보물은 없다. 있다면 보물은 청백이다.)’을 걸었으며, 동편의 방 입구 위에는 ‘지신근신 대인충후(持身謹愼 待人忠厚 : 스스로 몸가짐을 삼가고 남에겐 정성을 다하라.)’가 걸려 있다. 이는 선생이 81세 되던 해에 종친들이 모두 모인자리에서 후손들에게 전한 경계의 말로, 후손들이 만휴정을 중수하면서 새겨 넣은 글이다.

또한 1517년 12월, 그가 세상을 떠나니 87세였다. 임종 때에도 후손들에게 청백을 전하며 장례는 소박하게 치르고 미사여구를 써서 묘비를 짓지 말라 했다.

 

500년이 넘은 만휴정,

자연의 모습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보백당 선생의 사후 250여년을 방치 해두었던 곳을 후손들이 3대에 걸쳐 선생의 마음과 같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세웠다. 지금의 모습이 처음의 그 모습은 아닐지언정, 선생의 청백리 정신은 그대로 깃들어 있다. 2011년에는 ‘안동 만휴정 원림’이라 하여 명승 제82호로 지정 되었다.

 

그러한 만휴정을 찾아가는 길손에게도 마음 벅찬 휴식을 주었다.

다만, 정자를 찾은 사람들의 배려가 많이 필요한 공간이다. 특별히 제약을 두지 않은 공간인지라 자유롭게 관람하고 즐기면 되는데, 아쉽게도 몇몇의 불편한 모습도 보인다.

특히, 만휴정 마루에 오르지 말아달라는 부탁의 문구가 작게 적혀 있음에도 기어이 올라 쿵쿵거리며 누웠다, 앉았다하며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무책임인한 행동은 삼가야겠다. 화장실과 주차공간도 마을 입구에 안내 되어있다. 기어이 마을을 지나 다리까지 끌고 들어와 좁은 길에서 마을 분들과의 교행으로 불편함을 주지 말아야 한다.

 

즐김은 자유지만, 그곳에 계시는 분들은 삶이다.

자신만의 휴식을 즐김은 자유지만, 누군가의 시선은 불편할 것이며,

오래 된 것의 오랜 시간을 위하여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겠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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