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장흥] 가을, 홀로 걷기 좋은 공간, ‘온릉(溫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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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경기도

2020. 11. 11.

멈춰버린 시간의 가을, 왕릉을 걷다.

‘온릉(溫陵)’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255-41 / 031-855-5228

 

어느새 깊은 가을,

시간은 더 흘러 이제 메마름만 남았다.

황홀한 계절은 옷을 벗어버리고 이제 기나긴 겨울의 시간을 준비한다.

계절은,

한 치 오차도 없는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간다.

 

사람의 시간은 유독 느리게 흐르고 있다. 어느새 지루함에 익숙해져버린, 마치 멈춘 듯 죽어버린 시간들이 하염없이 스쳐가고 있다.

비대면의 시대를 살아가야하는 거부 못할 사연의 시간들이다.

컨택contact의 시대에서 언택untact 시대로, 대면의 긴장과 즐거움은 사라진지 오래되고, 이제는 오롯이 혼자만의 사연을 남기는 시간들이다. 지루한 시간들의 흐름에 가슴 한 구석은 늘 조바심이다.

하늘빛에 따라 바뀌어가는 산과 강의 풍경들을 눈으로만 담는 답답함이다.

 

그러한 죽어버린 시간을 살아간 여인이 500년 전에도 있었다.

한(恨)을 가진 여인이었으나, 순종할 수밖에 없던 시대를 살았다. 지금의 계절과 흐름과 같은 시간을 살다간 비운의 여인, 조선11대왕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信氏)다.

바람도 메마르고, 낙엽마저 바싹 말라버린 인적 없는 여인의 무덤, 죽은 지 182년이 지난 뒤에야 영조가 능호를 올리니 후손들은 그 녀의 무덤을 ‘온릉(溫陵)’이라 부른다.

 

경기도 양주 땅에 자리한 온릉(溫陵)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다가 2019년 11월, 일반인에 개방되었다. 한양과는 동 떨어진 땅에 자리한 왕릉이자, 왕후 혼자만이 남은 능이다. 그렇게 온릉은 비대면의 시대를 지내왔고, 지낼 것이다.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信氏, 1487~1557),

익창부원군 신수근(益昌府院君 愼守勤, 1450~1506)의 딸로 1499년(연산군5)에 진성대군(晉城大君, 조선11대왕 중종)과 가례를 올려 부부인으로 봉해졌다. 연산군의 부인이자 왕비 신씨가 신수근의 누이동생으로 고모였으며, 사가에서는 동서지간이 된다.

그러던 1506년, 이른바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연산군의 폭정에 신하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진성대군을 추대하고 왕위에 올리려는 계획이다. 반정의 주역 박종원이 신수근에 이를 알렸으나, “매부를 폐하고 사위를 왕으로 세우는 일은 부적절한 일이다.”며 반대하였다. 그러나 중종반정은 성공하였고, 신수근은 죽음을 맞게 된다.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날, 신씨 역시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집안 사정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직후였다. 중종에게는 역적이 되는 아버지와 일가들이 반정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고, 여인들은 노비로 끌려갔으며, 재산은 모두 적몰되었다.

남편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접한 비운의 소식이었다.

그로부터 7일 후, 공신들은 중종의 아내인 신씨의 왕비 책봉에 대하여 논의를 하게 된다. 즉, 아비와 일가를 몰살시킨 신하들을 그녀가 왕비가 되면 자신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반정들이 목숨 걸고 만든 20살의 중종, 그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결국 중종은 7년여의 세월을 함께 해 온 조강지처를 폐위하고 사가로 내보내게 된다.

 

이로서 단경왕후 신씨는 조선 역대왕비의 역사상 7일이라는 가장 짧은 재위기간을 지낸 왕비로 남게 된다.

이 후 중종은 장경왕후, 문종왕후등의 2명의 왕비와 후궁들을 들이면서도 신씨를 그리워했다고 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야사일 뿐이다. 몸 멀어지면 마음 멀어지는 법이다. 이 후 장경왕후가 세상을 뜨자 신씨를 복위하고자 논의가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1557년(명종12), 71세의 나이로 승하하게 된다.

 

후사없이 떠났기에 친정 묘에 장사를 지냈는데, 명종은 “폐비라 하나 1등의 예로서 장사지내라” 하며, 신수근의 손자들에게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결국, 비정한 임금 중종은 조정대신들의 위세에 눌려 조강지처를 버렸고, 신씨의 왕후 복원마저 입 다물고 있었다.

훗날 인조가 폐비궁이라 이름 짓고 거처를 지어 주면서 생활비를 보조해 주었다고 전하며,

명종이 예를 갖추었으며 장사 지내 주었고, 시호 없이 '신비(愼妃)'라 불리다가

영조대에 들어서서야 왕후로 복원 되어 '단경(端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50여년을 한 남자를 그리워하던 여인 단경왕후,

그러나 중종은 정비였던 여인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시대적인 상황이 만들어 낸 비운의 여인, 비련의 여인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중종, 이 양반 참 답답한 사람일수도 있겠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

온릉 앞으로 국도가 지나고 건너편 아래에는 폐역이 된 ‘온릉역’이 자리한다.

처음의 온릉은 폐비 신씨의 묘로 안장 되었으나, 영조 대에 들어서 왕후로 복원 되면서 능호를 온릉으로 추복하면서 능의 상설을 새로 설치하였는데, 영월 단종의 ‘장릉’의 예를 따르되 ‘정릉’과 ‘사릉’의 상설을 따라 조영 되었다. 그래서 온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생략되고, 무인석 역시 생략되어 사 후 추봉된 능역임을 알려주고 있다.

 

일찌감치 비대면의 시간을 살다간 여인,

역사상 가장 짧은 7일의 왕비, 능에 머물고 있으나 여전히 언택트의 시간의 보내고 있는 단경왕후 신씨의 온릉은 깊은 가을이다.

바람소리마저 바스락거리는 메마른 가을, 어느새 퇴색되어 버린 가을의 색이 되었다. 그래도 위안이 된다면 풍경 좋은 산세와 함께 지내고 있는 그녀만의 유유자적일 것이다.

이 가을, 천천히 걷기 참 좋은 ‘온릉(溫陵)’의 풍경이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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