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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스캔들러 2009. 12. 4. 02:11

[우리술] 가양주, 어머니와 나와 술항아리가 있는 풍경

엄마가 요리보다 잘하는 것은 술을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미가 담갔던 버찌술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살았다."

엄마는 살림 솜씨가 좋았습니다. 무엇 하나 그냥 버리는 게 없었거든요. 쌀을 씻은 쌀뜨물은 늘 모아두었다가 화분에도 주고, 설거지도 하고, 된장찌개도 끓이곤 했습니다.

그런 엄마의 음식솜씨는 동네에서도 유명했습니다. 손끝 야무지게 무쳐내는 각종 나물이며, 딱 알맞게 익혀내는 전 같은 한식뿐 아니라 양식과 중식에 일식까지 못하는 요리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요리보다 잘하는 것은 술을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미가 담갔던 버찌술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살았다."

할아버지는 아빠보다도 엄마를 더 사랑하셨습니다. 손끝 야무지게 살림하고,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을 철철이 수북하게 담가주는 엄마를 훨씬 좋아하셨던 거지요.

어렸을 적에는 할아버지가 버찌술을 드실 때 옆에 앉아 술에 절여진 버찌를 꼭 하나씩 얻어먹곤 했습니다. 하루는 할아버지와 엄마 몰래 친구와 함께 버찌를 듬뿍 꺼내어 앉은자리에서 한 통을 다 먹어치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온 집안의 술이란 술은 모두 구석방, 굳게 잠긴 자물쇠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들어가 본 그 방은 말 그대로 주당들의 별천지였습니다.

열 개의 항아리에서는 쑥술, 박하술, 삼양주, 버찌술, 오가피술, 딸기술, 국화주, 인삼주, 뽕잎술, 청주가 익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십 개 유리병 안에서는 사과, 배, 귤, 포도, 마가목 등 온갖 열매가 술이 되어 있더군요. 한 쪽에는 구수한 냄새가 나는 밀 누룩, 보리 누룩이 잘 말려진 채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우리가 학교 간 사이 이 방에서 늘 술을 만들어 오셨던 모양입니다. 그제야 아빠가 수십 명의 손님을 한꺼번에 데리고 들이닥쳐도, 할아버지가 어느 날 노인정 친구분들을 가득 초대하셔도 늘 풍성하게 향긋한 술을 대접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한참을 술방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엄마가 큰 통을 들고 들어오십니다. 곱게 빻은 쌀가루가 가득 담긴 통입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큰 나무 주걱을 제 손에 쥐어주십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슬슬 쌀가루에 붓습니다. 얼결에 나무 주걱을 받아든 저는 쌀가루를 곱게 으깨어 반죽합니다. 처음으로 엄마가 술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주십니다.

쌀을 익혀서 송순을 넣고 미리 발효시켜 두었던 밑술 효모를 넣으면 몇 시간 뒤에 마실 수 있는 급속 막걸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송순 향이 향긋합니다. 효모를 넣고 조금 지나니 쌀이 마구 부풀어 오릅니다. 엄마는 이렇게 거른 막걸리는 깊은 맛은 조금 부족해도 신선하게 술술 마실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술방에서는 온갖 술이 익어갑니다. 그리고 엄마의 시간도, 저의 시간도 함께 익어갑니다. 집에서 만드는 술에는 그래서 시간이 담겨 있나 봅니다. 금방 만들어 금세 마시는 술에도, 오랜 시간 익히는 술에도 말입니다.

엄마와 함께 술 만드는 시간이 이렇게, 익어갑니다.

▶가양주는 집에서 담그는 술이라는 뜻이다. 집집마다 장맛, 김치맛이 다르듯 같은 재료로 술을 빚었다고 해도 누가 만들었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집안마다 오랜 시간 집안 고유의 술이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댓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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