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삼 보 2020. 8. 7. 02:23

 

良心(양심)을 파는 사람은 파멸 된다

 

2012 10월 창당한 정의당은 진보정당의 구실을 잘 해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차 흙구덩이 속으로 자주 들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더 큰 진보정당이 되라고 하고 싶은데 자주 함정으로 빠지기도 한다.

아마도 기둥이 쓰러진 때문인 것 같아 더 안타깝다.

정의당의 基主(기주) 역할을 했던 () 노회찬 전 의원의 자리가 그처럼 큰 기둥이었던 것인가?

판단력들이 점차 바닥을 치는 것 같아 더욱 안됐다.

양심을 파는 사람과는 말도 섞을 필요가 없을 것인데 말이다.

 

 

 

정의당의 21대 국회의원(비례대표)  1번으로 꼽은 여성 의원의 전력을 보아하니 양심을 속이는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류호정 의원(이하 류호정)을 국회의원으로 앉혀준 것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이다.

그녀(‘라는 단어의 가치가 맞지 않은 것 같아 그녀로 쓴다)가 국회에 등정하며 붉게 입은 류호정원피스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https://news.v.daum.net/v/20200805143324800

그녀의 판단력이 의심이 되기 때문이다.

나무위키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류호정대리게임 이후 그 실수로 인해 이화대학교 동아리[klass] 회장 직에서 사퇴까지 한 다음,

언론에 아직도 그 직에 있는 것처럼 의연하게 자신을 내세웠던 게 사실이라면 이건 故意(고의)성이 강한 거짓을 저지른 사기죄가 된다.

그런 여성을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국회의원직에 앉게 해 준 정의당 심상정 대표 의원과 그 지도부의 큰 실수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녀가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비하하는 발언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건 박 시장 간판을 이용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前哨戰(전초전)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는 짧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짧은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정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며 자신을 또 세상에 알리면서 구설수를 만드는 명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중이다.

정의당은 국회연극배우 하나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찬반으로 갈라놓으면서 국회를 새롭게 개조하는 여인처럼 변신하려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속아 넘어가고 있는 의원들이 적잖게 대단히 많은 것 같다.

 

 

 

 

정의당은 어째서 풋내기에 1번을 던지고 있었나?

 

정의당은 쉽게 말해 국회에 춤추며 목을 치는 망나니 같은 여인을 들어앉힌 셈 아니던가?

사람을 죽이기는 해도 죽이는 그 순간까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그런 망나니를 말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스스로를 죽여가면서 자신을 앞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를 냉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는 사람은 사회 앞에서 冷徹(냉철)한 판단을 하게 된다.

사회학 공부를 그녀가 진정으로 했다면 협력의 수단이 아닌 파괴를 위한 파괴 학문을 공부한 것은 아닌지?

그녀가 가는 길이 정말 올바른 길이라면 그녀가 가는 길에 꽃을 던져줄 일이지 가시를 던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부터 가시넝쿨을 던져버리고 싶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국회가 한 여인의 所行(소행)으로 인해 잡음으로 들끓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어디까지나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리 꼰데(Conde)라는 단어를 씌운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누구나 마음이 경건하기를 바란다면 옷매무새부터 단정히 해야 하는 법 아닌가?

왜 장례식에서 검은 옷을 깔끔히 차려 입고 이승을 떠나는 사람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인데 모르고 사는 사람 같지 않나?

28세의 청년이라지만 차릴 것은 차려야 인간의 자세 아닌가?

그러한 자세도 모른다면 풋내기라는 소리를 들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양심을 팔지 말라는 말이다.

 

 

 

경건함에서 도피하려거나 뿌리치지 말라!

 

더욱이 그 옷을 입은 것을 탓하는 게 아니라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경건함을 갖춘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게 인간이지만,

초상집에 가서 쓸데없이 자주 웃어대거나 결혼식장에 가서 불편한 눈물을 짜내는 그런 品性(품성)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실수를 자주 했으면서 뉘우침 없는 행동이 여전했던 것이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아주 작은 것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짓은 결국 자신에 대한 減點(감점)을 초래하는 짓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老子(노자)께서도 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을 강조하며 하시는 말씀은,

스스로를 내보이지 않아도 이름이 나는 사람이며,

억지로 하려하지 않아도 이루어내는 사람[不見而名 不爲而成(불현이명 불위이성)].“이어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의 자세란 억지로 튀게 하는 것보다 내면을 다듬어 完成(완성) 人性(인성)이 돼 국민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한 자료를 만들고 다듬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닌가?

젊음을 誠實(성실)하고 맑은 정신으로 發散(발산)시켜야지 틔는 옷으로 爆發(폭발)하려는 꼼수는 부리지 말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렇게 차려입은 상황에서 단 2 cm만 더 올라간 옷과 그렇게 큰 차이가 없지 않는가!

아름답고 신선함보다 아슬아슬하여 눈꼴사납다는 소리를 듣는 게 더 많을 듯!

국민의 대표 지도자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알고 있는 게 올바른 자세가 아닐지?

경건함에서 도피하려거나 뿌리치지 말아야 誠信(성신)한 인간으로 돼가는 길이 아닌지?

中庸(중용)에서 왜 (성실 성)’에 대해 어째서 그처럼 子夏(자하; B.C.507~B.C.420?)께서 강조를 하신 것일지?

 

 

 

 

 

참고

https://namu.wiki/w/%EB%A5%98%ED%98%B8%EC%A0%95/%EB%85%BC%EB%9E%80

https://news.v.daum.net/v/20200806210042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