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일기
복효근
수선화 구근을 캐낸 자리
고슬고슬한 맨땅에
참새 떼 날아와 모래목욕을 한다
딱 제 몸 크기의 흙 욕조를 만들고
부르르부르르 깃털을 고른다
뭐라고 뭐라고 떠든다
흙먼지 일고 새소리가 수선화처럼 노랗게 핀다
말하자면 얘기꽃이겠지
시월이 오면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수선화 구근을 묻을 것이다
봄이면
참새의 욕조에선 새깃 같은 싹이 돋고
참새의 지저귐 같은 수선화가 필 것이다
소리의 꽃과
꽃의 소리 사이를 오가며
한세상 까무룩 저물 수만 있다면
한 켤레뿐인 내 발은 다 닳아도 좋겠다
저들과 더불어
죽을 일을 한 생쯤 잊어버려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