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양식

이기는생명 2008. 9. 10. 10:35

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사람-구주의 선주자의 청년 시절

 

누가복음 1장 80절은 사람-구주의 선주자의 청년 시절에 관하여 “그 아기는 자라면서 영 안에서 강하여졌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 있었다.”(원문 참조)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선주자가 영 안에서 강하여진 것과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었다는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선주자의 모친과 부친은 둘 다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41, 67절). 그들의 아이는 쉽게 자라나 영 안에 강하여져서 결국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영 안에서 자라 강해졌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하나님을 위하여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광야에서 산 것은 사람의 문화와 종교로부터 떨어져 있음으로써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를 구주의 선주자로 쓰실 자유롭고 깨끗한 길을 얻으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무엘과 같이 제사장으로 태어난 요한은 성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나실인으로서 요한은 성전 안이 아닌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광야는 문화나 전통이나 종교가 없는 곳입니다. 광야에서 살면서 요한은 그의 모든 배경들을 끊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사장이었지만 제사장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선주자는 문화를 접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3장 3절로부터 사람-구주의 선주자가 광야에서 그의 사역을 시작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약경륜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시작하시고자 하셨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침례자 요한은 와서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였습니다(마 3:1).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시작인 이 전파는 그들의 성경적인 규례들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종교적이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있는 거룩한 성안의 성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옛 길의 어떤 규칙들을 지키지 않았으며 교육되지 않은 방법으로 광야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옛 길이 거부되고 새 길이 도래하려는 것이었음을 암시합니다.

누가복음 1장 80절과 마태복음 3장 1절과 3절에 나오는 단어 ‘광야’는 종교와 문화에 역류하는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새 길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또한 낡은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장차 새로운 어떤 것이 세워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생명의양식

이기는생명 2008. 9. 10. 10:32

눅 1:67-69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기적적으로 요한이라 명명됨

 

침례자 요한은 그의 어머니에게서 기적적으로 태어났습니다(1:57-58). 또한 사람-구주의 선주자는 팔 일만에 할례받았습니다(59절).

1장 13절에서 사가랴는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으리라는 것과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할 것을 천사에게서 들었습니다. 요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이오아네스(Ioannes)’로 이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여호와께서 은혜를 보이신다’, ‘여호와는 은혜로운 제공자시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엘리사벳의 친척 중 누구도 요한이라 이름지은 자가 없었다고 말한 것은 옳은 말이었습니다. 주님의 선주자는 전통을 지키려 하지 않는 자로 예정되었으므로 그에게 이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그에게는 전통적인 이름이 주어지지 않고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요한의 아버지의 예언

 

68절에서 우리는 사가랴의 예언의 서두를 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여기서 우리는 사가랴의 예언이 그들의 구원에 이르기까지 자기 백성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움직임에 관한 것임을 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한 약속에 따라 그분의 풍성한 긍휼을 통하여 그분의 인성으로는 다윗 집에 구원의 뿔이시며 그분의 신성으로는 위로부터 돋는 해인 그리스도를 일으키심으로써 구원을 위한 구속하시는 움직임을 행하셨습니다(68-73절, 76-79절). 사가랴의 예언은 신성하고 인간적인 분에 관하여, 사람-구주의 구원하는 역사에 관하여 엘리사벳의 축복보다 더 많은 빛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에는 구약적 형식과 냄새와 색깔이 마리아의 찬양과 엘리사벳의 축복에 들어 있듯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가랴의 예언은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가져오게 하는 하나님의 구속의 움직임입니다. 구원의 뿔이시며 돋는 해이신 그리스도를 일으키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속하는 일은 그분의 백성들의 구원을 가져옵니다.

1장 69절에서 사가랴는 말합니다.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 구원의 뿔은 다윗의 집에서 나온 예수 구주이십니다(렘 23:5-6). 뿔은 싸우는 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뿔은 다윗의 집의, 하나님의 구원의 싸우는 힘입니다. 다윗의 집이라는 구(句)는 이 구원이 사람-구주의 인성 안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70절에서 우리는 구원의 뿔의 일으켜진 것이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것임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지키심에 있어서 신실하심을 가리킵니다.

인성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한 후, 사가랴는 계속해서 신성 안에서의 그분에 대해 말합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78-79절). 구주 예수께서는 어두운 시대에 떠오르는 해입니다. 그분의 오심은 구약의 밤을 끝냈고 신약의 낮을 시작했습니다. 엘리사벳의 축복에서 열매이신(42절)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이시며, 사가랴의 예언에서 해이신 그분은 우리에게 빛이십니다(요 9:5, 마 4:16). 그러한 분으로서 그분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완성자요 하나님의 구속의 중심이십니다. 

 

 

 
 
 

생명의양식

이기는생명 2008. 9. 10. 10:28

1:48-53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하나님의 긍휼을 찬송함

 

마리아와 사가랴는 둘 다 그들의 비천함을 인식하고(1:48) 그들이 하나님께 은혜 받을 만한 가치가 없음을 겸손하게 인식하여(52)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는 모두 그분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불쌍한 처지에 있을 때, 먼저 그분의 긍휼이 우리에게 이르러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상태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예로써, 15 20절부터 24절은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을 때 아버지가 아들을 불쌍히 여겼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긍휼입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그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먹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더욱더 멀리까지 이르러 우리와 하나님의 은혜 사이에 다리를 놓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마리아는 오늘날의 많은 믿는 이들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찬송에서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 말하지만 그분의 은혜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우리가 합당한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녀와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형편없는 상태에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불쌍한 처지에 있었으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있는 행하심을 찬송함

 

마리아는 그분의 긍휼과 능력 있는 행하심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51절과 52절에서 그녀는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비천한 가운데 빠진 그분의 백성들을 돌보시며 능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의 처지가 매우 비천하였기에 그들은 그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긍휼은 그분의 은혜보다 더 멀리까지 미치기 때문입니다.

1 55절은 그분의 말씀을 지키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주목시킵니다. 마리아와 사가랴는 둘 다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분의 신실하심을 강조합니다(70, 72). 하나님의 긍휼은 그들의 상태를 보살피시며 그분의 신실하심은 그분이 그분의 자비로운 행동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수 있도록 그들의 위치를 보살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은 그분의 신실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들에 따라 그분의 백성들을 방문하고 계셨습니다.

마리아의 찬송은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적입니다. 그녀는 그녀의 체험으로부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마리아는 그녀의 영이 하나님 그녀의 구주를 기뻐하고 그녀의 혼이 주님을 찬양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체험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계속하여 비천함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그분의 긍휼과 그분의 신실하신 행하심을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들은 그분의 약속에 의한 것이요, 조상들에게 주신 그분의 신실하신 말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