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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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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공간

2020. 8. 1.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uNy0TxJ1vYc

 

 

어릴 때 왕자와 거지의 이야기를 읽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상상력의 내용이긴 해도 영화 '광해'를 보며 완전히 다른 신분의 닮은 꼴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성경 속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과 우리의 신앙 속에서 이와 같은 상상을 하게 되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입니다. 

 

복음 속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당장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헤로데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오늘은 엉뚱하게 그 사연보다 왜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겹치는지, 또 지금의 사람들도 말로는 예수님을 말하면서도 그 표현 속에는 하나같이 세례자 요한을 이야기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헤로데에게 요한은 자신의 통치에 걸림돌이자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요한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요한은 이미 이스라엘에 유명한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도 기억되지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요한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등장한 사람이고 예수님은 이민족의 땅 갈릴래아 나자렛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금욕의 삶을 살았고 예수님은 늘 사람들 사이에 동네 곳곳에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두 인물이 겹쳐지는 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한쪽은 어떤 잘못도 없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율법 위에 있는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인물로 등장했고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의 삶의 모든 순간으로 알려주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을 통해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알 수 있었고 준비하고 맞이하며 살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 두분을 헛갈려 합니다. 하느님을 말하면서 떠올리는 거룩한 삶이란 거의 세례자 요한의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이들, 곧 성직자들의 초상을 그릴 때도 요한과 같은 삶을 이야기합니다. 복음 삼덕의 가치는 사실 예수님보다 요한에게서 그 모범을 찾는 것이 더욱 확실한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에는 요한의 어떤 모습도 비슷한 구석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가 말했던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 자격은 오히려 예수님이 그의 신발끈을 풀어야 할 사회적 지위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죄인의 모습으로 찾으셨고 그는 결국 예수님을 따르지도 찾아 뵙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신기하리만큼 우리는 이 두분을 헛갈려 하면서도 하느님을 공통적으로 떠올립니다. 곧 하느님의 길을 준비한 이도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한 예수님도 모두 하느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헤로데 처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가 아쉽긴 합니다. 

 

요한의 모습은 거룩하고 엄숙하고 좋긴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현실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모르는 이의 준비에 지나지 않고 우리가 정작 따라야 할 것은 예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요한의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말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