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빛으로 살빼는 시대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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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25.

[강석기의 과학카페] 빛으로 살빼는 시대 오나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포유류에서 빛수용(photoreception)은 눈에 한정돼 있다.”


10년 전 이맘때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미국 버지니아대 생물학과 이그나시오 프로벤치오 교수의 기고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새(조류)의 뇌 속에 있는 빛수용체가 빛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논문에 대한 해설이다. 당시까지 척추동물에서 눈이 아닌 다른 기관에 빛수용체가 존재해 기능하는 예는 어류와 양서류뿐이었다.


이는 진화의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다. 빛수용체는 단세포생물에도 존재할 정도로 오래된 단백질로 다세포생물이 등장했을 때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몸의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빛 정보를 처리하는 전담 기관인 눈이 생겨났고 눈 밖의 기관에 있는 빛수용체는 할 일이 없어져 점차 퇴화했다. 그 결과 포유류와 조류에서는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다고 생각했는데 2010년 조류의 뇌에서 빛수용체가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새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는 빛의 양이 미미할 것임을 생각하면 뜻밖의 결과다.


참고로 프로벤치오 교수는 1998년 올챙이 꼬리 피부의 색소세포에서 빛수용체인 멜라놉신(옵신4) 단백질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는 2000년 포유류(생쥐와 사람)의 망막에도 멜라놉신이 존재함을 밝혀냈다. 2002년 미국 브라운대의 데이비드 베르슨 교수팀은 망막의 멜라놉신이 파란빛에 반응해 뇌에서 일주리듬을 주관하는 영역인 시각교차상핵으로 정보를 전달함을 보였다. 빛은 시각 정보로서 의식(시지각)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비시각 정보로서 무의식(생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포유류에서 빛수용체는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열생성 촉진하는 교감신경 억제

 

전자기파의 스펙트럼에서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빛(가시광선)의 범위는 극히 일부이다. 보랏빛과 파란빛은 파장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지만 생리적 효과는 꽤 다르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위키피디아 제공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도 눈이 아닌 다른 신체 기관의 세포에 빛수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잇달아 발견됐다. 이에 따르면 피부와 혈관에도 빛수용체가 존재해 생리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한편 뇌에도 빛수용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류에 이어 포유류에서도 뇌에 존재하는 빛수용체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


학술지 ‘네이처’ 9월 17일자에는 이런 의문에 답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가시광선에서 파장이 가장 짧은 영역인 보랏빛이 뇌에 있는 빛수용체에 작용해 열생성이라는 생리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동물실험(생쥐) 결과를 담은 논문이다.


눈이 아닌 기관의 빛수용체 연구를 이끌고 있는 미국 신시네티아동병원 리처드 랭 교수팀은 포유류 시상하부의 시각교차앞구역(POA)에서 발현하는 빛수용체 단백질 옵신5에 주목했다. 앞서 소개한 새의 뇌에서 빛을 감지한 단백질이 바로 옵신5이다. 포유류의 옵신5는 자외선과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 영역의 빛에 반응하는데, 보랏빛인 380나노미터에서 가장 민감하다. 참고로 사람이 볼 수 있는 빛(가시광선)의 영역은 380~780나노미터다(보남파초노주빨 순서).


POA는 정온동물에서 체온조절을 담당하는 부위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신경세포(뉴런) 표면에 옵신5 단백질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 이 뉴런들은 교감신경 뉴런과 연결돼 갈색지방조직의 열생성 반응을 조절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갈색지방세포는 지방 분자를 태워 열을 내는 기능을 한다.


정상 생쥐에 비해 옵신5 유전자가 고장난 돌연변이 생쥐는 갈색지방의 열생성 반응이 더 활발했다. 그래서인지 먹이를 더 많이 먹음에도 체지방 함량은 오히려 낮았다. 그리고 저온 상태에 놓였을 때도 열생성 반응이 아주 활발해 체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정상 생쥐에서 옵신5 발현 뉴런은 과도한 열생성 반응을 억제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옵신5가 발현된 뉴런이 회로를 켜고 끄는 판단을 할 때 보랏빛이 영향을 미칠까. 보랏빛이 옵신5 발현 뉴런을 자극해 열생성 반응을 억제하는 결과로 이어질까. 얼핏 생각하면 보랏빛 존재 여부 자체는 외부 온도에 대한 정보가 아니므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될 것 같다.


연구자들은 파란빛(파장 480나노미터)과 빨간빛(파장 660나노미터)만 존재하는 저온에서 정상 생쥐와 돌연변이 생쥐를 둔 뒤 체온변화를 측정했다. 이 경우 옵신5가 고장난 생쥐의 체온이 약간 더 높았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에 보랏빛(파장 380나노미터) 조명을 추가하자 정상 생쥐의 체온이 뚝 떨어지면 차이가 1도 미만에서 거의 2도까지 벌어졌다. 정상 생쥐의 옵신5가 보랏빛을 감지해 뉴런이 켜지면서 갈색지방의 과도한 열생성 반응을 억제한 결과다. 그런데 가시광선이 생쥐의 뇌 속에 있는 POA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생쥐의 뇌에 광섬유 탐침을 넣고 두피에서 거리에 따른 투과도를 조사해봤다. 그 결과 멀어질수록 빛의 세기가 빠르게 줄어들었지만, 전형적인 햇빛의 강도라면 POA가 있는 지점까지 옵신5를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 양의 보랏빛이 도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사람에서는 어떨까.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의 POA에도 옵신5 발현 뉴런이 존재한다는 게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람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다만 햇빛 속의 보랏빛이 새나 생쥐와는 비교가 안 되는 두꺼운 두개골과 먼 거리를 지나 POA에 다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필자 생각에는 전혀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저자들은 실험을 해봐야(원숭이를 대상으로)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방세포는 파란빛에 민감

 

보랏빛이 뇌 시상하부의 시각교차앞구역(b)에 있는 뉴런의 표면에 존재하는 빛수용체 옵신5(OPN5)를 자극한다는 동물실험(생쥐) 결과가 최근 보고됐다. 이 신호는 교감신경(sympathetic neurons)을 억제해 갈색지방조직(BAT)의 열생성 반응이 약해진다. 네이처 제공

보랏빛만 열생성과 관련된 건 아니다. 리처드 랭 교수팀은 지난 1월 학술지 ‘셀 리포트’에 파란빛(파장 480나노미터)이 색지방세포 표면에 있는 옵신3이라는 빛수용체를 자극해 열생성 반응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파란빛은 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상 생쥐에 비해 옵신3 유전자가 고장난 돌연변이 생쥐는 저온에서 갈색지방세포의 열생성 반응이 약해 체온이 빨리 낮아졌다. 한편 정상 생쥐도 보랏빛과 파란빛, 빨간빛으로 이뤄진 백색광에서 파란빛(파장 480나노미터) 영역을 끄는 순간 열생성 반응이 약해지며 체온이 바로 떨어졌다. 옵신3이 자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방의 저장고인 백색지방세포 표면에 있는 옵신3이 어떻게 갈색지방세포의 열생성을 촉진할까.


저온 같은 환경에 놓여 열생성 신호가 발생하면 백색지방세포는 저장하고 있는 지방을 지방산과 글리세린으로 분해해 혈액에 실어 보낸다. 갈색지방세포는 이 지방산을 흡수해 태워 열을 생성하는 것이다. 연구결과 파란빛이 옵신3을 자극하면 백색지방세포의 지방분해효소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햇빛에 존재하는 보랏빛은 뇌에 있는 빛수용체를 통해 열생성 반응을 억제하고 파란빛은 지방조직에 있는 빛수용체를 통해 촉진하는 상반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두 빛의 파장 차이가 크지 않음을 생각하면 꽤 정교한 메커니즘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쓸데없는 데 투자했다는 생각도 든다. 햇빛에는 보랏빛과 파란빛이 다 포함돼 있고 따라서 옵신5와 옵신3의 효과가 상쇄돼 둘 다 없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이 오랜 기간의 진화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계절이나 날씨, 하루 시간대별로 보랏빛과 파란빛의 상대적 비율이 다를 것이고 이에 대한 옵신5와 옵신3의 반응도 달라 체내 열생성 반응에 미치는 영향력도 달라지는 게 어떤 식으로든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닐까.


연구자들은 ‘네이처’ 논문의 말미에서 “많은 대사질환의 발생 위험성이 태어난 계절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빛 반응 경로가 관여함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오늘날 인공조명이 표준이 된 선진 사회에서 대사질환이 만연한 건 옵신3과 옵신5가 제대로 자극받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선탠 기구처럼 파란빛이 나오는 통에 들어가 피하지방조직의 옵신3을 자극해 열생성 반응을 촉진해 살을 빼는 방법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파란빛(480㎚)이 백색지방세포(white adipocytes) 표면에 있는 빛수용체 옵신3(Opn3)을 자극해 지방 분해를 촉진한다는 동물실험(생쥐) 결과가 보고됐다. 이렇게 생성된 지방산은 혈관을 통해 갈색지방세포(brown adipocytes)로 이동해 열생성 반응의 연료로 쓰인다. 셀 리포트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동아사이언스 강석기 2020.09.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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