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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이 인류 전체에 가져다 준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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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4. 8.

불순종이 인류 전체에 가져다 준 참사!




사람안에는 DNA처럼 숨겨져 있는

고유의 속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종교성"입니다.


이 종교성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발적으로 신을 섬기는데서 

확인해볼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신이란 존재를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놓고 

그걸 신이라 믿고 섬겨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의 모양은

가시적인 모양의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우상을 받드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우상을 섬기는 종교행위 속에서


이러이렇게 하는 건 선한 행동이고..

이러이렇게 하는 건 악한 행동이라는.. 


선과 악에 대한 가치를 인본적으로 구분해놓고 

그에 따른 행동규범을 형성해 놓았습니다. 


지금도 여러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에서는 각자의 경전들을 두고 

선악에 대한 이런저런 가치규범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즉 여러 종교들을 만들어놓고 

그에 귀속되는 선악의 가치규범들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데..

  

이런 모든 행위들은 그 자체로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엔 

아주 악독한 죄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교성의 기인은

태초에 발생한 사람의 원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 2:7_표준새번역)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이렇게 직접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신 이유는..


육신의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부모가 자녀를 끔찍히 사랑하고

자녀는 그런 부모를 경외하고 공경하며 사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그들과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는 관계속에서

영원히 그렇게 함께 살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이 

아무런 감정과 마음없는 로보트처럼 

당신에게 복종하길 원하셨던게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어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크기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줍니다. 


다만, 자녀에게 해가 되는 것은 절대 해주지 않고

자녀에게도 그건 절대 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동산안에 수많은 과일나무들을 만들어놓고

그 과일들을 맘껏 따먹으며 살게 하셨습니다.

(창 2:16)


그러나 딱 한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절대 먹지말라고 하셨습니다.

(창 2:17)


여기서 어떤 분들은 

하나님은 왜 굳이 에덴동산 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놓고

사람을 시험하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다만 그 한 가지만은 

절대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사랑으로 교제하는 관계안에서

제대로 살고 있다면.. 


지음받은 존재가 자신을 지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이 명하신 그 계명을 지킴으로써 

확증되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에 대한 그 어떤 감정도 없이

단지 사람을 시험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거라면.. 


첨부터 에덴동산에 있는 그 많은 과일나무들을 

맘껏 따먹으라고 하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의 이름을 그들이 짓고 

다스리며 살게 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창 2:19-20)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맹목적인 상하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사는 관계이기에..


지음받은 사람이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경외하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한가지 계명을 지킴으로써 확증되어지고

그렇게 그 곳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져 사람중심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에게 

거기 있는 99%의 열매들을 다 먹고

마음껏 누비며 살게 하셨단 사실은 생각치 않고..


그져 그 한 가지, 

먹지말라고 하신 것만 부각시켜서

왜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셨냐는 

원망섞인 말을 합니다.


이건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거 다 해주고

딱 한가지만 절대 해선 안된다고 금기했더니..


그 자녀는 

부모가 자신에게 해준 것들은 생각치 않고

하지 말라고 하신 그 한가지 때문에

우리 부모는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며 

원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인본적 관점으로 진리를 대하면

진리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왜곡되게 받아들여서 

미혹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그렇게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셔서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함께 살길 원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뱀(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정리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그 열매를 먹으면 죽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7)


그러면 왜 죽게 되는 걸까요? 


사탄(뱀)은 

사람(하와)이 선악과를 먹으면 

어떻게 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된다는게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처럼

선약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긴다는게 아니라..


선악과를 먹게 되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선과 악을 자기 맘대로 규정해버리고

자기 뜻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사탄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속이는 자의 본성에 따라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않고

교묘하게 비틀어서..


선악과를 먹게 되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처럼 얘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그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명하지 않으셨음에도 

스스로 몸을 가리기 위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 3:7)


이들은 선악과를 먹기 전엔 

서로 벌거벗은 모습을 보더라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세기 2:25)


하지만 선악과를 먹게 된 후엔 

벌거벗은 채로 있는다는게 

자기들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규정하고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이미 자유의지가 있었지만..


선악과를 먹기 전까진

자유의지에 기반한 감정이나 생각에 의해 

벌거벗은 상태를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거나

감정적으로 부끄럽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전혀 문제될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고 나니..

부끄럽다는 내면의 감정과 

바람직하지 않다는 자기 생각에 의한

자유의지가 튀어나와..

 

선악의 기준을 자기 뜻대로 규정하고 

그렇게 자의적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찌할까요?


이미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자기 생각과 감정에 잠식돼버린 상태에선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그 상태에 맞게 

그들에게 옷을 입혀 주시고..

(창 3:21)


하나님이 설계하신 거룩한 동산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서로 교제하며 사는게

불가능해져 버렸기 때문에..

에덴동산에 함께 거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창 3:22-24)


결국 인간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리해버림으로써.. 


거룩한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는 상태가 되버렸기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심한 벌을 내리신게 아닙니다.


어쨌든 그 이후부터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게 아니라

자기가 뜻하는대로 살아가게 되고..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떠나 

죄에 지배당하게 되기에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결국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롬 6:23)


이처럼..

불순종에 의한 죄는 이렇게 기인되었고..


그 죄는 다시 말해

사람이 만들어내는 선과 악, 

옳고그름의 정의,

즉 종교성의 기반이 됩니다. 


그렇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죄에 대한 DNA가 박혀 있는 상태에서 

사람의 개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되고..


그러면서 아주 당연하게 

종교성에 기반한 여러 신(우상)들을 창조해내고

선과 악을 자기 멋대로 정의하며 

종교행위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과 관계가 틀어져 버린 상태에서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버리게 됐지만..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정하시고 ..


다시 사랑안에서 당신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관계의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신 10:12)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도 

그안에 내재되어 있는 종교성이란 

DNA는 쉽게 빠지질 않았습니다.


언약을 맺기도 전에 

이미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놓고

자신들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라 부르며 

종교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우상숭배를 저지릅니다. 


사실 사람안에 DNA처럼 박혀있는 

그 종교성이 표출되는 익숙한 행위는..

 

가시적인 모양의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우상을 신으로 받들어섬기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우상은 만들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일은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언약 맺은 이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눈에 보이는 여러 이방민족의 신들(우상)을 겸하여 섬기면서 

하나님을 배도하는 행태를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뼛속 깊히 박혀 있는 이 종교성이라는 

묵은 때를 벗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고..


불순종의 죄악을 거듭하다가.. 


결국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십니다. 


하지만.. 

이미 종교성에 지배당해 있는 유대인들은

겉으론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에 기반한 것처럼 보이나..

(요 7:49)


실상은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는 중심에 기반한 

자기 종교성으로 선과 악을 정의하고

그로 인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적하면서

결국 십자가에 죽게 만듭니다. 

(마 20:18-19, 행 18:13)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이런 악행까지도 선으로 만드사

예수님이 친히 대속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로 인해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선악과 이전의 관계로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행 2:36, 롬 6:6, 고후 13:4)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지독한 종교성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결국 그 죽음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결정적 열쇠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그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연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길로 

걸어갈 것이냐의 여부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다는 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은 반드시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의 교제속에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며 나아가야만 합니다.


이게 안된다면..

여전히 자기 안에 내재된 종교성이 

계속 살아서 자신을 주관하려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겉으론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외식하는 자들이었던 것처럼..


교리적 지식 많고 

경건해보이는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 없이

그분의 뜻과 마음을 헤아리는게 아닌,

자기 종교적 기준으로 옳고그름을 정의하면서

자기가 뜻하는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실제로 사역자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겸비한 마음으로 성령님께 나아가 묻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게 아니라..


종교 교리에 기반한 자기 생각을 

모든 판단과 분별의 절대적 잣대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기준에 말도 안된다 생각되면 

쉽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버립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 이걸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요?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종교성 다분한 종교행위라면..

 

그런 종교행위가 우상숭배이고 

죄라는 사실이 확연하게 인식되기 때문에

분별이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점집에 찾아가 점을 본다던지..

부적을 몸에 심고 다닌다던지.. 

무당에게 돈을 주고 굿을 한다던지 등등

이런 종교성 짙은 종교행위를 할 때..


내가 기독교라는 카테고리안에 있다면 

어렵지 않게 우상숭배라는 것을 분별합니다. 


물론 성령과 상관없이 

무늬만 기독교인들의 경우는

이마저도 분별 못하는 이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론 어렵지 않게 분별이 됩니다. 


허나 

금식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 잘 믿는다 여기던 바리새인들처럼..

(눅 18:11)


외적으론 전혀 분간할 수 없지만

그 내면은 자기가 우상이 되어 

자기 생각과 지식으로 선악을 정의내리고

경건한 모양만 번지르르하다면.. 


스스로 겸비하여 자기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이상 분별이 어렵습니다.


자기가 나아가고 있는 길의 방향이 실상은

지독한 종교성이 기반되어진 멸망의 길임에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 끝을 맞이하게 된다면..


훗날 주님께 듣게 될 말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말 뿐입니다. 

(마 7:23)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스스로 선과 악을 정의하며 종교성에 지배당해 사는 

인류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인류가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신을 만들어 섬기는 우상숭배를 저질렀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적인 모양은 각각 다르지만

종교성에 기반한 우상숭배는 여전합니다.   


특별히 지금은 인본주의가 절정에 올라서

자기자신이 우상이 되거나 다른 사람을 우상으로 추종하는 

그야말로 종교성이 극대화 된 말세지말의 때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딤후 3:1-2a)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 24:4)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비롯되지 않은 

모든 선과 악, 옳고그름의 가치규범은

하나님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반진리적 가치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성령 안에서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며

좁은 길을 걸어가지 않는다면..


광명한 모습을 가장한 

사람(자신 또는 타인)의 미혹에 빠져 

멸망 길로 내달릴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이땅에 오셨고, 그 관계를 이미 회복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회복된 관계안에 거하기 위해선..


우리안에 잠재되어 있는 종교성을 철저히 거스르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뜻을 행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마 7:21)

 

곧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과 같이..


자기 뜻대로 선과 악을 정의하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께 온전히 순복하는 이들을 

당신의 신부로 맞이해주실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고전 15:22-23_표준새번역)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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