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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다시 오실 때 "먼저될 자와 나중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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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4. 13.

주님 다시 오실 때 "먼저될 자와 나중될 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보면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여러번 나옵니다. 

(마 19:30, 20:16, 막 10:31, 눅 13:30)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기 전 

앞 구절들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각기 다른 상황속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9장과 

마가복음 10장에서의 상황을 보면..


재물이 많은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니가 가진 소유 전부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을 들은 부자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마 19:22, 막 10:22)


그런 부자청년을 보시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이만큼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19:23-24, 막 10:23)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의아해하자..

예수님은.. 


사람의 힘으론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19:26, 막 10:27)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어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복음을 위하여 세상 것들을 

기꺼이 다 버리고 주님만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막 10:29-30)


그리고 이런 상황 뒤에 주님은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재물이 많은 그 부자청년처럼

지켜야 할 이런저런 계명들을 다 지키고

의로워 보이는 행위들이 많았더라도..

(마 19:20, 막 10:20)


본인의 실제 중심은 

그런 표면적 행위가 아닌

자신이 소유한 그 많은 재물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경건한 행위들이 자신을 구원해주는게 아니라

재물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 중심에 의해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표면적인 행위 자체의 많고적음을 떠나서

주님이 뜻하시는바를 분명하게 깨닫게 됐다면..

 

현실을 거스르면서도 주님 뜻대로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느냐가 우리의 진짜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비록 이땅에선 나중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주님 나라에 들어갈 때는 먼저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도 보면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20:16)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주님은

포도원 품꾼들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포도원 품꾼들이 각기 다른 시간동안 일을 했는데..

(마 20:3-5)


포도원 주인이 

가장 먼저 와서 일한 사람이나 늦게 와서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의 품삯을 주자.. 

(마 20:8-10)


먼저 와서 오래 일한 품꾼들이

왜 늦게 와서 짧게 일한 자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품삯을 주냐며 주인에게 항변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건데

네가 왜 나를 악하게 보느냐고 말합니다.

(마 20:10-15)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주님은

"나중된 자가 먼저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 이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에서

주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각기 다른 시간대에 와서 일한 시간이 다름에도 

같은 품삯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오랜 세월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해왔던

이런저런 의로운 행위 자체가 

주님이 달아보시는 절대적 잣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먼저 와서 길게 일한 품꾼들이

늦게 와서 짧게 일한 품꾼과 같은 삯을 받자,

주인을 원망하며 주인에게 따진 그 상황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집주인"이라 가정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은..


오래 일한 품꾼이 자기 품삯에 불만을 품고

주인을 원망하며 주인을 악하게 봄으로써..


이런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해

결국 나중된 자로 밀려나게 된다는게 

이 비유를 통해 주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또다른 포인트입니다. 


육적인 관점으로 보면 

분명히 먼저 와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주님의 마음과 뜻이 어떠한지는 전혀 헤아리지 않고

그런 외적인 행위의  많고적음만을 본질로 여기며

주님의 뜻과 기준을 자기 맘대로 재단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먼저된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눅 13:30)


그런데 그 앞구절인 누가복음 13장 24절에 보면

좁은 문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먼저 하시는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

들어가길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고 말씀하시고선..

(눅 13:24)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해도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눅 13:25)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구했는데 

들어가지 못한 자가 많은 걸까요?


그 다음 구절인 2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눅 13:26)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 가르침까지 받았던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이처럼 주님과 함께 했고

주님의 가르침까지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행한 이런저런 행위들이 있으니

바라던 좁은 문을 들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주님은 오히려 이들을 행악하는 자들로 판결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눅 13:27)


여기서도 주님이 달아보시는 잣대는 동일합니다.


표면적인 행위 자체의 여부만 가지고

자신들은 당연히 주님앞에 합당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주님은 이들의 중심을 보셨기 때문에.. 

행위의 많고적음과 상관없이 

행악자로 판결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선 29절에..

사방에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될 때

"나중된 자가 먼저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눅 13:29-30)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는 이 말씀들은..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게 될 때, 

누가 먼저되고 나중되는지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먼저되는 자와 나중되는 자에 대한 해석은

주님의 다시오심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의 

시대적 상황에 그대로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공중강림하실 때

먼저된 자들이 공중으로 휴거되어

주님을 기쁨중에 만나뵙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지만..


먼저되지 못한 채 땅에 남겨진 자들은

이땅에서 환란을 겪으면서 그제서야 

그에 맞는 믿음과 순종의 행함이 뒤따라야만 

나중된 자로 공중 혼인잔치에 중간합류하게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후 3년반 기간에 피흘림을 통한 순교로 

하나님 나라에 최종합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누가 먼저되고 나중되느냐의 이 말씀들은

말세지말이라는 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지금 우리에겐 이런 의미로 더 선명하게 적용되어집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맨 위 영상 오른쪽 상단의 i버튼을 클릭하신 후 

관련영상들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오심이 매우 임박해 있는 지금,

눈에 보이는 행위의 화려함이나 많고적음,

또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자신은 당연히 구원을 받고,

또 천국에서도 상급이 클거라 생각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땐 당연히 휴거될거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 땅에서 먼저된 자인 것처럼

스스로 여긴다 하더라도..


때에 맞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온전히 헤아리고..


그 때에 맞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행동하고 있느냐가 

본질 중의 본질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뜻과 섭리에 맞게

분별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는 종교적 열심이나

신앙생활의 경력이 아무리 오래 됐다 한들..


결코 주님 다시 오실 때

먼저된 자로 주님앞에 설 수 없습니다. 


앞서 봤던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에 대한 모든 말씀들이 다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행위 자체가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중심으로 

주님 뜻에 맞게 행동하느냐의 여부를 가지고 

주님은 판결하셨습니다.


의로워보이고 경건해보이는 

이런저런 종교 행위들을 많이 했지만..


부자청년의 경우처럼

지금 현실에서 절대 놓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면..


표면적인 행위의 여부가 아니라 

현실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그것이 

주님이 달아보시는 진짜 중심이기 때문에..


이땅에선 먼저된 자인 것처럼 여긴다 하더라도 

주님 다시 오실 땐 나중된 자가 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내가 행한 행위들이 99%로 보이고

고작 그거 하나 안 놓는 걸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사야 55:8)


또 오랫동안 일했다는 그 행위로 인해 

되려 주인을 악하게 봤던 포도원의 품꾼들처럼..


내 생각, 지식, 종교 교리로인해

되려 주님의 뜻을 훼방하고 거스르고 있다면.. 


비록 이땅에선 먼저된 사람처럼 여길지라도 

주님 다시 오실 땐 먼저되는 자가 아닌 

나중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주앞에서 먹고마시며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주님앞에 행악자로 판결받은 이들처럼..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적 지식이 해박하며 

주님 주신 은사로 이런저런 행위가 많지만 

그런 행위에 도취되어 자기 중심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비록 이땅에선 먼저된 자로 여길지라도

주님 다시 오실 땐 먼저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과

자신을 돌아보는 겸비함으로 나아갈 때..


나를 나중되게 만드는 

이런 영적인 누룩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고..

비로소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나를 인도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비록 이땅에선 나중된 자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 주님 공중에서 역사하시는 날

먼저된 자로 주님앞에 서게 되는 신부가 될 것입니다. 


기회는 영원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중의 마지막 때..


그래서 일분 일초가 소중한 

바로 지금이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중심에 두고 주님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삼상 10:7)


제발 눈에 보이는 것들에 속지 마시고

내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지를

겸비함으로 주님께 나아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을 아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아는게 중요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주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위의 어떠함이나 신앙생활 해온 날수와 상관없이

주님은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입니다. 

(마 7:23)


부디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며 그 뜻대로 나아가는 

먼저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20:16)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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