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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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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4. 19.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




태초에 사람이 선악과를 먹기 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죄가 존재하지 않던 창조 그대로의 상태였습니다.


죄가 잠복해 있었지만 

죄로 인식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죄가 존재하지 않던 창조 그대로의 상태였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1)


하지만 사람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죄가 사람안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죄가 들어왔나요?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고 선악과를 먹자마자 

자기들 스스로 수치심을 느껴 

몸을 가린 행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 3:7)


여기서 본질적인 포인트은..


그들이 몸을 가렸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아담과 하와가 만약

선악과를 먹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몸을 가리는 행동을 했다면..


이건 하나님 보시기에도

문제되지 않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 이들에게 

지켜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지만.. 


벌거벗은 상태를 두고 

몸을 가리라, 가리지 말라는 말씀은 

단 한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애초부터 몸을 가리느냐 아니냐는

본질적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하나님이 명하신 것만 잘 지키고 살면..


그 안에서 자유의지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각종 들짐승과 새들을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아담에게 이끌어 가셨을 때 

짐승들의 이름을 아담이 

자기 주관대로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 2:19)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않고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안에서  

자기 주관대로 몸을 가리는 행동을 했다면..


즉, 벌거벗은 상태가 전혀 부끄럽지 않음에도

"몸에다 뭘 둘러보면 어떨까?" 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면 이는 전혀 문제될게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자마자"

몸을 가리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그 내면의 속성이 변화되어 

그런 행동이 나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들이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라고 표현합니다.

(창 3:7)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는 말은

일차적 의미 그대로를 뜻하는게 아닙니다.


창세기 2장 25절에 보면

서로의 벌거벗은 모습을 빤히 보는데도

부끄러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먹자마자 눈이 밝아졌다는 말은.. 


선악과를 먹기 전엔 

부끄럽지 않게 여겨지던 서로의 모습이

선악과 이후 "부끄럽다는 감정"이 생겨서 

바로 몸을 가리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선악과 이전엔 없었지만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그들의 내면안에 

선악(옳고그름)에 대한 자기 기준(생각,감정)이 

세워졌음을 의미하고..


그 기준에 의한 최초의 행동이 바로 

자기 몸을 가리는 행위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가렸다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왜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런 행동을 했느냐가 본질입니다.


선악과를 먹자마자 한 그 행동은

내면의 본질적 변질에 의한 행동, 

즉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선악의 기준에 따라 행한 

최초의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악과 전에는 죄가 아니었던 벌거벗음이..


왜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엔

아담과 하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수치로 적용되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벌을 내리셨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와에게는 임신의 고통을 더한다고 말씀하시고..

(창 3:16)


아담에게는 네가 평생 땅을 밭갈아

거기서 나는 소산을 먹게 될 것인데

얼굴에 땀을 흘리며 일해야 

그렇게 될 거라고 말씀합니다. 

(창 3:17-19)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최초의 인간에게 내리신 벌입니다.


하지만 이 벌은 아담과 하와에게만 

해당되는 저주가 아니라..


하와가 고통속에 임신하여 태어나는 

모든 인류에게 해당하는 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가 있는 것이고..


최초의 사람들이 그렇게 

선악과를 먹고 가장 먼저 한 그 행동은..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의 일부가 되어 

모든 인류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들이 

자기 기준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더라도

벌거벗음에 수치심을 느끼는 일은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저주에 의한 결과물로 봐야 합니다.


결국 이런 저주에 의한 결과물에 대해

하나님은 선악과 이전과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선악을 규정하는 

죄의 씨앗이 심겨진 상태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벌거벗음을 어떻게 대하실까요?


선악과를 먹기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영적으로 하나된 관계였기에..

벌거벗었냐 아니냐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지만..


선악과를 먹고난 후 

그들이 나뭇잎으로 자기 몸을 가렸을 때..


하나님은 다시 가죽옷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입혀주십니다.

(창 3:21)


그들의 상태에 맞는 기준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에 보면 

음행과 간음(간통)하는 행위를 

금하는 말씀이 곳곳에 나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엔

사람이 간음하는 행위가 가능했나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 어떤 죄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 이후 

자기 뜻대로 사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간음에 대해 철저히 금하십니다. 


그리고 벌거벗는 행위는 

그런 간음과 직결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벌거벗음을

금하시는게 전혀 의문스러운게 아닙니다. 


이미 인간 스스로 

그 내면에 죄악의 씨앗이 심겨진 상태에서

하나님은 선악과 먹기 전의 기준이 아니라..


선악과로 변질된 내면의 상태에 맞게 

당신이 취해야 할 공의의 기준을 새로 정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

자기가 정한 인본적 기준에 의해

선과 악, 옳고그름, 참과 거짓을 규정하는 행위는

사람안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그런 인본적 기준을 가장 대표하는 것이 바로  

"학문"이라는 지식체계입니다. 


모든 학문들이 다 그러하지만

특별히 신학과 과학을 한번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신학의 경우, 표면적으로만 보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신을 연구하는 것을 큰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이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실제적 교통함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 지식에 기반되어진 거라고 한다면..


철저한 인본적 기준으로 신을 연구하고 정의하여

신에 대해 결론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선악과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안에도 분명히 

진리의 영역에 부합하는 교집합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실상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거스르는 것임에도

인본적 차원의 지식으로 채워진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신학 자체를 진리와 동일시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또 다른 인본적 학문의 산물로 봐야 합니다. 


과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숫자로 정리하여  

표현해놓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본적 기준이 그안에 자리잡게 되면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도구가 되버립니다.


진화론을 보면 그렇습니다.


어떤 물리적 근거도 없는

사람의 가설을 기반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면서.. 


마치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여 

전인류를 미혹하는 통로로 

쓰임받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 등에 의해 

선과 악, 옳고그름, 참과 거짓을 규정하는 

내면의 본질적 변질에 의한 열매인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스스로 선악(옳고그름)의 기준을 세우게 되는

본질적 변질, 즉 죄성이 내면에 심겨지게 됐고..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그 안에 심겨진 죄성에 의해 

죄의 지배를 받게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롬 6:12)


그렇게 아담으로인해 모든 인류는 

죄와 사망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데.. 


자비와 긍휼이 한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류에게 또 한번 기회를 주심으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들을 하나님께로 되돌리셨을까요? 


이사야서에 보면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사 7:14-15)

 

그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죄가 없으셨던 분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그러면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을 토대로 

이사야서 말씀을 다시 보면.. 


그가 악을 품고 있거나 악을 행하며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됐을 때 그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악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계속 시험하려 했지만

그걸 거부하고 선을 행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는 

악은 무엇이고 선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 6:38)


또 갈라디아서 1장 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주셨으니"

(갈 1:4)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는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한다는 말은..


자기 뜻(악)을 버리고 

하나님 뜻(선)을 택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사람들은 다 하나님 뜻을 거스르고 

자기 뜻(기준)에 의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어떤 내면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할지를 예수님은 알고 계셨기에 

당신이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가..

 

인간 내면의 본질적 타락을 가져온 

전환점이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내면의 본질적 회복을 가져오는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자기 뜻과의 씨름을 계속 해나가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잡히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심적인 어려움을 그대로 드러내시며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마 26:39, 막 14:36, 눅 22:42)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자기 뜻을 거부하고 

끝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십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눅 22:42)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쓸개 탄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하자,

예수님은 마시지 않으십니다.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마 27:34)


당시에 쓸개 탄 포도주는

신체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맛보셨을 때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해질 수 있으니

자기 원하는대로 하실 수도 있었지만.. 


끝내 그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의해

인류가 죄로 인해 받아야 할 그 실제적 고통을 

당신께서 짊어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끝까지 자기 뜻(악)과 씨름하며

시험을 받으셨음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의 죄로 인한 대속제물이 되시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결국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한다는 것은..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시고

그걸 먹으면 죽으리라 말씀하신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그걸 먹으면

단순히 선악을 알게 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선악을 기준삼아 자기 뜻대로 행하는 

죄의 씨앗이 심겨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죄성에 의해

하나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살면서

멸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뜻을 행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자기 뜻을 철저하게 내버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 행하심으로써..


그 십자가 복음안에 거하는 이들 역시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본질적인 관계회복을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고전 15:22-23_표준새번역)


혹자는 이처럼 

선악과 이전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거라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선악과 이전처럼 다 벌거벗고 있는거냐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생긴 저주는 

현상적 차원의 변질이 아닌

내면의 본질적 변질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가 

선악과 이전으로 회복된다는 의미는

육적인 차원이 아닌 

영적인(본질적) 차원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면이 변질되지 않았던 상태,

즉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 

만약 그들 스스로 몸을 가리는 행위를 했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거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그러면 선악과 이전으로의 관계회복은

육적인 벌거벗은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랑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사는 

그런 본질적 관계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계시록에 보면 

흰 옷, 세마포 옷을 입은 자들을

하나님앞에 서는 거룩한 자들이라 표현합니다. 

(계 7:9, 계 19:8)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그런 본질적 관계회복이 이뤄지기 위한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은.. 


선악과 이후 세워진 공의의 기준이

하나님 나라에서도 확장된 영적인 의미로 

계속 적용되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거룩한 상태를 

흰 옷 입은 자들로 표현하시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 3:18)


아담과 하와는 

뱀(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절대 먹지 말라 하신

그 선악과를 따먹고 말었습니다.


그로 인해  

자기 뜻대로 선악을 규정하는 죄성이 

모든 인류의 내면에 뿌리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인류가 죄에 지배당하게 됐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선악과 이전의 관계로의 회복을 위해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본을 보이시고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에게 구원의 문과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날마다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며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이 뜻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지식이 삶의 기준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진 않은지를 늘 점검하며.. 


그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신실한 주님의 신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누가복음 12:4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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