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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미혹하는 사탄의 교묘한 전술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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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4. 25.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탄의 교묘한 전술전략!




우리가 어떤 영적인 문제를 분별할 때..


특히 특정인이나 

특정단체를 구체적으로 분별해야 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겸비함이 

중심에 전제되어 있느냐의 여부는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이게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분별이란 명목으로

자기 종교적 기준에 의해

판단,정죄하는 일을 마구잡이로 남발하게 되고..


또 반대로 

미혹에 대해 온전히 분별해야 함에도  

판단,정죄가 걸림이 되어 

그 미혹의 올무에 걸려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실상은 자기 종교적 기준임에도 

진리적 기준으로 미혹을 잘 걸러내며 

분별하고 있다고 여기거나..


반대로 자신은 

함부로 남을 판단,정죄하지 않고

온유한 심령으로 

믿음을 잘 지켜내고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이런 양극단에서 믿는다는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겸비함이 전제되어 있으면..


미혹된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진리안에서 온전히 분별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그 미혹에 걸리지 않도록

통로로 쓰임받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온전히 분별해야 함에도..

판단,정죄할까봐 두려워 

분별하지 못하는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또 분별이란 명목으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엇갈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중심에 맞게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중심의 전제가 없다면..


"미혹에 대한 분별"이라는 명목으로 

사람에 대한 판단,정죄를 서슴치 않고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되려 미혹의 통로로 쓰임받게 됩니다.


반대로, 

진짜 미혹을 일삼는 사람 또는 단체에 대해

판단,정죄라는 올무에 걸려 분별하지 못하고

미혹의 올무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판단,정죄와 분별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 기준이 

반드시 진리에 합당한 기준이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고 단순히 자기 생각이나 

인본적 교리에 의한 기준이라면

이건 분별이 아니라 판단,정죄가 되버립니다. 


이런 인본적 교리를 절대기준 삼는 경우에도..


기록된 성경말씀을 앞세우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온전한 분별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하나님의 섭리를 멋대로 제한하고 대적하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 말씀(율법)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자부하던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던 것처럼..


말씀을 강조하면서 되려 말씀을 대적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요즘 많이 접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마음과 감정이 반드시 온전한 상태여야 합니다. 


아무리 진리적 기준에 의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온전치 못한 감정이나 마음에 기반한다면

이 또한 분별이 아닌 판단,정죄가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를 저지르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동성애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한 죄인지

성경적으로 분명하게 얘기하고 지적해줄 수 있지만..


그 전에..

자신의 모습을 분명하게 자각한 상태여야만 합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분별의 행동이 나오게 된다면.. 


"나도 음란함에 자주 넘어졌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가증한 죄임을 알기에

날마다 씨름하며 끊어낼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이겨냈다. 


그러니 너도 하루빨리 회개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그 죄를 끊어내야 한다." 


이런 겸비한 마음의 태도로

판단,정죄가 아닌 권면의 행동이 나올 수 있습니다. 


허나 그게 아니고..


자신 또한 다른 모양의 음란함에 매여서 

그 음란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고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상태인데..


그런 상태에서

"동성애는 하나님앞에 가증한 죄야..

너 회개안하면 지옥갈거야.."라고 한다면..


자기자신도 돌아보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판단,정죄하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 42절에 보면

니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뺀 후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주라고 말씀하고..


로마서 2장 1절에 보면

"남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 18장 이하에서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의기양양하게 

자신들은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진리적 기준에 맞는 얘기를 한다 해도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높은 마음을 품고 

상대를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이 또한 분별이 아닌, 판단,정죄가 됩니다.


욥기에 보면..

자신은 죄가 없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욥을 향해

욥의 세친구가 하는 말들은 진리적 기준으로 볼 때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욥에게 한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못했던 이유는..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지식을 기반으로

상대를 정죄하려는 마음(감정)만 앞섰기 때문입니다. 

(욥기 32:3)


그래서.. 

내가 어떤 기준에 근거하고 있는지..

또 나의 내면의 상태는 어떠한지..


겸비함으로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때에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는 방식 중 하나는 

그 사람의 중심에 따른 투트랙 전략입니다.


그 사람의 중심이 

어떤 방향으로 어긋나 있는지에 따라

엇갈리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중심의 어긋남이

'분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용할만하다면..


사람에 대한 판단,정죄를 일삼는 

미혹의 통로로 이용하게 되고..


"판단,정죄"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용할만하다면..


분별해야 할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미혹의 올무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느 방향으로 쏠려있든간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겸비함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게 되면..


분별을 명목으로 한 '완악함'과

판단,정죄하지 않는다는 '나약함'이라는 

양극단의 미혹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과 마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는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고 말씀합니다.

(마 13:19, 마 4:15)


사탄의 본성은 

속이는 자, 거짓의 아비입니다. 

(요 8:44)


이런 속이는 자의 속성에 따라.. 


진리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그 중심이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분별할만한 상태가 아니라면..


사탄은 그 마음에 뿌려진 바를 

아주 교묘하게 바꿔치기 해서

겉으론 의의 모양을 가장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끕니다.


이것이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전략입니다.

(고후 11:14-15) 


사탄이 이처럼 

사람의 중심의 상태에 맞게 역사하지만..


사탄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의 상태에 맞게 

역사하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사람들을 시험하는 합법적인 권세를 부여받고

"이 세상 임금(신)"이란 칭호를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요 14:30, 고후 4:4)


그럼에도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즉 하나님이 명하셔야만 

자기 일을 행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사기 9:23)


시편 18편에 보면

"신실한 사람에게는 주의 신실하심을

깨끗한 사람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고 

간교한 자에게는 주의 교묘하심을 보이신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중심이 온전하다면

친히 역사하시여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만..


중심이 온전치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당신의 공의의 속성을 드러내 보이시기에..


그 중심의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8)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셨다는 것은   

사탄이 그 중심에 맞게 역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졌음을 의미하고 

그렇게 되면 각기 다른 미혹으로 역사하게 됩니다.  

(살후 2:11)


사탄의 또다른 속성은 바로 

"모방하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5절에 보면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말씀합니다.


가라지는 겉으로만 보면 

알곡과 구별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광명한 모양으로 사람을 속일 때

외적으로 보면 전혀 눈치챌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사람의 인본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엇갈리는 분별의 결과가 나타나도록 만듭니다.


여기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미혹을 전파하는 사람이나 단체의 실체를

말씀대로 분별하고 밝혀냄으로써

사람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함부로 판단,정죄하면 안된다"는

종교적 기준이 중심에 박혀있는 B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를 

A가 함부로 판단 정죄한다고 여깁니다. 


반대로.. 

말씀이 아닌 자기 종교적 기준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이 단체, 저 단체를 타겟삼고 

이단 정죄하면서 낙인 찍는 일을 하는 

C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별"이라는 종교적 키워드가

중심에 강력하게 박혀 있는 D라는 사람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들(?)을 

C가 제대로 분별해서 잡아내고 있다고 여깁니다. 


이런 엇갈리는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그분의 실질적인 인도함 가운데 있는게 아니라..


겉으론 하나님, 성령님을 앞세워 

분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안에 내재된 그 종교적 기준에 의해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탄이 모방하고 위장하는 그 전략을 

전혀 캐치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휘말려 

그냥 그렇게 이용당하게 됩니다.


한 쪽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일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사탄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는데.. 


외적으로만 보면 

모방꾼 사탄이 겉모양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본적 기준으로만 나아가는 이들에게는 

전혀 분별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기 전,

하나님이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때 애굽의 마술사들도


지팡이로 뱀을 만들거나.. 

물이 피가 되게 하거나..

티끌을 이로 만드는 등..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적들을 

감쪽같이 따라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바로의 마음은 더 강팍해집니다. 


이처럼 모방꾼 사탄도

자신의 주특기인 모방과 속임수를 이용하여

믿는다는 자들을 삼키려 하는데..


이런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는 

최적의 상태가 바로 양극단에 있는 

완악함과 나약함입니다. 


그 중심이 완악한 상태라면

옳은 것에 대한 분별이란 기준을 내세우고..


또 반대로 중심이 나약한 상태라면

판단,정죄가 두려워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내세우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참을 거짓으로 분별하고..

거짓을 참으로 인정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나약함이라고 하면

완악함과는 다르게 생각하면서

단순히 치유받을 문제로만 생각하고

주님이 긍휼하게만 여겨주실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약함을 주님안에서

제때 교정하지 않고 방치해 놓는다면..

그 나약함이 나를 미혹의 길로 이끄는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완악함의 정반대편에서

실상은 다르지 않은 미혹의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내가 마음의 쓴 뿌리가 있는데

어떤 사역자가 그런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혼적인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자의 영적인 실상은

미혹을 전파하는 사역자입니다.


하지만 그 사역자로부터 받은 은혜(?)로인해 

그 사역자의 영적 실상에 대해선 분별할 생각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신뢰하며 따라갑니다. 


그리고선 누군가가

그 사역자의 영적 실상을 얘기해줬을 때 

함부로 판단해선 안된다며 그 사역자를 두둔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함으로써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마태복음 15장 14절 말씀이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입니다. 


즉 사역자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미혹시켜서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역자의 영적인 온전함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라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미혹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역자가 하나님앞에 온전한 사람이라면..

그 사역자가 하는 일의 본질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역자가 전하는 메세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게 아니라

그 사역자에게 절대적인 포커스를 맞춰서 그 사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라간다면..


아무리 전하는 메세지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실상은 사람을 우상삼고 사람의 미혹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이 또한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즉, 사역자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따르는 사람이 스스로 사람을 우상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역자는 해당사항이 없을 수 있지만

따르는 사람은 스스로 맹인이 되길 자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비함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돌아보는 삶을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탄이 제아무리 진짜인 것처럼 위장해서

사람들을 미혹시키려 한다 할지라도..


이런 경외함과 겸비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도우시기 때문에 

그 사람에겐 영적인 본질이 밝히 드러나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짓을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또 함부로 판단,정죄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실상은 사탄의 전략에 코가 꿰어

미혹된 길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잘 믿고 있다 여기는 자들,

소위 깨어있다고 하는 자들까지..

 

악한 모양이 아닌 

거룩해보이고 경건한 모양(명분)에 의해

되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져버리는 그런 때입니다. 


그런 말세지말의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에 따른 섭리"는

'키질'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지금까진..

당신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자기 종교적 기준에 의해

하나님이 뜻하신 섭리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지만.. 

 

그 날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중심의 실상을 밝히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알곡과 쭉정이를 철저하게 가려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키질하시는 잣대는 다른게 아닌 

우리 중심의 온전함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의 온전함 여부로

나의 나됨을 판결하시고..

그런 온전한 중심에 의한 행위일 때

당신께서 알아서 보응해주실 것입니다.


부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겸비한 마음으로

주님앞에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6:2)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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