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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예언과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와 분별, 한반도 정세 관련 자료 총모음!

술 담배, 드라마, 아이돌 음악.. 죄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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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5. 6.

술 담배, 드라마, 아이돌 음악.. 죄인가 아닌가?




우리가 어떤 특정한 행동이

죄인지 아닌지를 규정함에 있어서 


그 행동이 성경에 

죄로 기록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본질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 마시는 행위가

죄인지의 여부를 규정할 때.. 


성경은 술 마시는 것 자체를

죄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진 않습니다.


로마서 13장과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고..


잠언 23장에 보면 

술을 즐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술 자체를 죄로 규정하고 있진 않기에..


술 마시는 것을 

율법적 잣대로 금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하거나 

반대로 술은 절대 먹어선 안된다고 하는 등..


이 부분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행동을 죄로 규정함에 있어서

그 행동에 대해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그 행동이 지금 주님이 원하시는 

행동인지 아닌지를 헤아림으로써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성경에 

그 행동이 죄로 분명하게 규정된 경우라면

더 얘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성경에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은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성경에 그런 행동 자체가 

죄로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그 행동을 자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삶을 움직이는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 마시는 것 자체가 죄인지 아닌지를 

종교적 기준으로 따질게 아니라..


지금 내가 술을 마시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내가 술 마시길 원하실지

원하지 않으시는지를 헤아려본다면..


우리의 양심에 근거해볼 때 

어떻게 행동하는게 옳은지를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예수님께서도 포도주를 마셨었는데,

왜 우리는 마시면 안되느냐고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완전한 신성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이셨기에 

우리와 같은 '죄성'이 없으셨습니다. 

(골 2:9, 히 4:15)


인간이 갖고 있는 죄성이 본질이라면,

그 본질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는

비록 비본질에 해당하더라도 

우리가 극도로 경계해야 할 위험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술 자체는 본질이 아닐 수 있지만

본질을 위협하는 비본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신다고 해도..


'죄성'이 없으셨기에

술 자체가 본질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가 없는 것이고..


고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다르게 우리는

'죄성'이라는 내면의 본질을 

내려놓고 살아야 할 존재들이기에..


그 본질의 영역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군들은

반드시 경계하고 지양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마셨으니까

우리도 마셔도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자신의 죄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엔

술을 자주 마셨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거듭난 후엔

즐기던 술을 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일까요?


술은 중독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쳐다보면 마시고 싶고,

한잔 먹으면 두세잔을 부르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그러합니다.


술로 인해 파생되는 죄들만 수두룩할 정도로 

술은 본질의 영역을 쉽게 파고들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술 마시는 행동은

우리안에 임재하신 성령께서 

원치 않으시는 행동 중 하나이기에

거듭난 이후 그런 현상이 

많은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이

여기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전 5:22)


음식 중 고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하나님 만나 거듭난 후 

고기를 끊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고기가 우상이 될만큼

병적으로 탐하는 특이한 경우라면..


하나님 만나 거듭난 후

성령께서 변화시켜 주실 수도 있겠지만..

이건 특이한 케이스이고..


어떤 음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영유하도록 

허락하신 일반적 속성 중 하나입니다.


허나 술의 경우는 이런 일반적 속성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케이스가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후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런 행동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이런 행동을 원하시는지를

헤아려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술 자체를 성경이 금하고 있진 않으니

그런 기준으로 죄의 여부를 규정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자기 원하는대로 하려는 욕구가 

중심에 셋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비단 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담배를 피는 행위나 

이런저런 세상문화를 즐기는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보는 것 자체가 죄라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런 기준을 가지고

"드라마 보는게 죄도 아닌데 뭐 어때?"

라고 하며 드라마에 깊게 빠져듭니다.


그렇게 드라마에 깊게 빠져들어

몇시간을 보고 난 후

곧 바로 기도를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눈으로 본 그 영상과 스토리라인이 

뇌속에 잔상으로 남아 계속 돌고 있는 상태에서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영과 혼과 육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육과 혼에 임한 강한 자극은 당연히 

우리의 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그런 영상들에 빠져있다가

기도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드라마를 보고자 하는 그 행위는

성령이 원하시는 뜻과 반대되는  

육신이 원하는 욕구에 의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7)


그래서..

드라마를 보든, 무엇을 하든간에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난 후

곧바로 기도하려고 할 때..


그 행동이 

기도하는데 어떤 제약을 가져오는가에 따라

주님이 원하시는 행동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만약 내가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드라마에 

심하게 몰입한 나머지 

그와 관련한 영상들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다가 

결국 기도시간도 제껴버리고

거기에 깊게 빠져버립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드라마를 보는 행위 자체가 

죄냐 아니냐의 여부를 따질게 아니라..


이 행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실제적인 문제를 초래하게 됐기에..


이게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행동임을 인식한 후

이를 죄로 규정하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의 여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거나 되려 합리화 해버립니다. 


성경에 이런 행동이 

죄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면서.. 


"저는 술을 몇잔 들이키고 나서

곧바로 기도해도 방언 술술 잘 나오고

기도도 술술 잘나와요.."


"저는 드라마에 몇시간 동안 빠져 있다가 

곧바로 기도해도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은혜 흠뻑 받으며 기도가 잘 되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문제될게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거나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요한일서 2장 16절 말씀에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특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죄로 규정해야 할 문제에 있어서

사람의 인본적 기준이 아닌,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분별한 후 그에 맞게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미세한 틈이 결국 나를

빠져나올 수 없는 올무에 걸리게 만듭니다. 


성경이 죄로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는

어떤 행동이 죄인지 아닌지를 분별함에 있어서..

 

이런 행동을 주님은 과연 원하실지 아닐지를

생각하며 그에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내가 지금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이 죄냐 아니냐를 자기 기준으로 결정짓고 

그렇게 자기 욕구대로 세상 것들을 야금야금 받아들이며

구분이 모호해진 삶을 살게 된다면

내 중심은 하나님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롬 8:7)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종교적 기준은 언제나

극과 극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반대로

자기 종교적 기준에 의해

세상 것들은 철저히 끊어내고 멀리하는 

수행적 삶을 사는 것 역시..


겉모양은 비슷해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비롯되는 열매가 아니기에

그 중심의 상태는 

반대의 경우와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경우 

자기 종교적 원칙에 의해

경건한 모양의 행위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아직도 술을 입에 대니?

아직도 드라마 보고 있니? 넌 아직 멀었다."

라는 높은 마음을 품으며 

상대에 대한 판단 정죄를 서슴치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기도할 때 

자신들은 저 새리와 같지 않다고 말하며

경건해보이는 자기 종교행위들을 

의기양양하게 나열하던 것처럼 말이죠.

(눅 18:11)


그래서 비슷해보이는 외적인 모양이지만

지금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에서 비롯된 것인지가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어떤 행동이 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술 마셔도 되나요?

아이돌음악 들어도 되나요?

드라마 봐도 되나요? 등등..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런 질문 속에는 이미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들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람에게서 답을 얻으려고 하는게

위험한 이유는..


잘못된 답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그 답이 그 사람을 죄의 늪에 빠져들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러이러한 행위는 죄가 아니니 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너무 많이 하지 마시고 적당히 하세요.."  


얼핏 보면 균형잡힌 답변 같지만.. 


"성경에 죄로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해도 된다"

는 말은 아주 무책임한 말과 같습니다.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사람의 뜻에 의해 행동 유무를 

결정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답변을 들은 사람이

"앗싸.. 그럼 해도 되는구나.."라고 여기며

그 답변대로 욕구의 빗장을 풀게 된다면..


이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들어올 수 없는 지경으로 나아가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물어서 답을 구하려 하기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 그 뜻을 구하고

분별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 7:7-12, 약 4:3)


결국..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그분의 뜻을 구하며 

그 뜻대로 행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관계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을 때에만

죄를 죄로 인식하게 되고

뜻하시는 방향대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그 행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인지 아닌지를 알려고 하기 전에.. 


먼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돌(세상)음악을 듣는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기 위해

기도하며 그 뜻을 구합니다.


한번, 두번, 세번, 계속 기도해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는 상태에서..


솟구쳐 오르는 욕구에 이끌려 

계속 아이돌(세상)음악에 빠져 듣습니다. 


그런데 들을 때마다 

마음에 찔림과 부담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본인은.. 

하나님의 뜻을 계속 구했는데도

하나님이 알려주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시길 원하는 

자기가 생각하는 방식을 그려놓고..


그 방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시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찔림과 부담을 통해 

그 뜻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뜻, 기준을 내려놓고

철저히 하나님의 관점과 하나님의 기준으로 

내 삶의 모든 내외적인 행동양식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의 감동과 찔림, 부담감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드러내실 때가 많습니다. 


특히 당신의 자녀가 

당신이 원치 않으시는 행동을 하려고 할 경우,

강력한 부담이나 찔림을 통해 

역사하실 때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노아의 때처럼 타락이 극에 달해

먹고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다들 세상에 취해 있다고 말씀하셨고..

(마 24:37-39)


그런 시대 속에서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다니며

믿는 자들까지 삼키려 한다고 말씀합니다. 

(벧전 5:8)


이처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위시한

세상의 쾌락과 온갖 미혹들이 극에 달한 

마지막 때에는..


이를 분명하게 자각함으로써

치열한 영적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영적싸움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들에

자유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좁은 길을 걸어가는 한 과정이고..


이런 좁은 길은 반드시..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그분을 경외하고 겸비함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사는 자들만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모든 분별의 기준은

지금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냐입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있고 

그렇게 될 때 죄를 죄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명분삼아

실상은 자기 뜻에 의한 기준을 삼는게 아니라..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그 행동을 죄로 규정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면..


"이건 해도 될까? 저건 해도 될까?"라고 하며

어떻게든 자기 욕구를 합리화하면서

죄성의 문을 여는 방향으로 가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분별하여 

그 뜻대로 결단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주님 오심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

우리 영혼을 지켜내고 구별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5)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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