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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구원받았는지 확인하는 한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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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6. 2.

내가 정말 구원받았는지 확인하는 한 가지 방법!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어떤 목사님이 짧은 신앙 메세지를 전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영상에서 이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어떤 이단의 경우는,

구원받을 숫자가 144,000명뿐이라고 얘기하는데

 

만약 전세계 사람 가운데

14만 4000명 밖에 구원받지 못한다면..

이건 "하나님의 대실패"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구원받을 사람이 아주 적은 수가 되면..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이 되니깐

그럴 일은 절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목사님의 이런 메세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며 호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단 이만희라는 늙은이를 

구세주로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이 14만 4000명 뿐이라 주장하는 신천지의 경우,

어느 정도의 분별력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이단에서 속히 빠져나오지 않는다면

지옥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놓고 이런 이단 사이비가 아니라  

 

인본적인 기준으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진 메세지에 반응하면서..

 

성령안에서 제대로 된 고찰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주장처럼..

 

전세계 인구 가운데

구원받을 수가 극히 적다면

정말 하나님이 실패하신게 되는 걸까요? 

 

구원받게 될 사람들이

많을지 적을지를 논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그 수가 많을지 적을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만약 구원받을 사람의 수가 매우 적다면

하나님이 정말 실패하신 것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날 당시

노아의 여덟식구를 제외한 

전세계 모든 인류(수천만~수십억 추정)가 

구원받지 못하고 다 멸망당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때는 

롯과 그의 두 딸을 제외한 

소돔성 사람들 전부가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언약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더라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직접..

 

"네가 거류하는 이 가나안 땅을 주어 

너의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17:8)

 

그런데 하나님과 언약 맺은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죽었습니다. 

(민 14:30)

 

하나님께서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하셨으니.. 

 

하나님이 인류역사 가운데 행하신 이런 섭리가

하나님의 실패라고 봐야 하나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앞서 예로 든 이 모든 상황들에서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가 뭔가요? 

 

바로 불순종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를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인본적) 기준으로 나아가게 되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하시고

다 멸망에 이르게 하시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만..

 

하나님의 (진리적) 기준으로 나아가게 되면..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머물러 있는 상태에선

그 비율이 80%든 90%든, 99.99%든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하나님이 실패하시는 경우를 

가정해본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섞일래야 섞일 수가 없는 

거룩 그 자체이신 분인데..

 

그런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의 속성대로 역사하게 되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아주 많아지니까

죄악에 버무려져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그냥 눈 딱감고 다 구원해버린다면..

 

이럴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성을 언제든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기에..

 

이런 경우 스스로 실패하신 것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처럼 

정해놓은 원칙과 기준을 

막 바꾸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시라면..

 

오히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겐

더 큰 비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원칙없는 하나님이셨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복음이 완성됐더라도

그 복음의 기준마저 얼마든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다"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장 17-18절에 보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기에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 자체가 

태초 전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회개와 죄사함" "죄에 대한 심판"의 

모든 판단 기준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과 공의"의 속성을 기준삼으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중심이 당신의 기준에 합당하다면

죄로 인해 수백번을 넘어졌더라도

변치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어 그가 

그 죄를 끊고 돌이켜 회복될 수 있게 역사하시지만..

(마 18:21-22, 롬 5:20)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죄악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회개할 마음조차 없는 사람에게는 

변하지 않는 공의의 심판을 내리십니다.

(벧전 1:17, 유 1:14-15, 계 2:23)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의 원칙을 적용하셔서 

그 공의의 섭리를 행하시고..

 

그렇게 행하셨을 때

이건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택함으로써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어떤 섭리에도

실패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자기 생각에 의한 옳고그름의 잣대로

구원받을 자가 극히 적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말하면서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실패하신 거라는 얘기를 하고

 

이런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받아들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우리에게

구원받을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다수의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변치않는 공의의 속성에 의한 

섭리인 것이지..

 

이를 가지고 사람의 관점으로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실패하신거다 라는

얘기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안에

얼마나 인본적인 기준과 관점이 

깊게 자리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이 목사님은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배타적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 걸까요?

 

바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선포하며

전도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전도방식이 어떠하냐를 떠나서..

 

사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진리에 합당한 말입니다.

 

허나 세상 기준에선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은 배타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다시 말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진리를 

불신자들 앞에선 함부로 선포하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고 

그런 종교와는 절대 연합할 수 없다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 역시 

배타적이기 때문에 해선 안된다는 말이 됩니다. 

 

이게 과연 진리에 합당한 주장일까요?

 

사실 교회안에서 목회자나 사역자들이

전하는 메세지를 들어보면 대부분..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세지안에 일부의 진리가 섞여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의 핵심은 대부분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런 메세지에 영이 길들여진 교인들은

교회밖을 나와선 자연스레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진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게 되고..

 

이렇게 되면 

지금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인식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 목사님이 얘기한 것처럼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사람에게 이러이렇게 대하는 

외적인 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사람이 모든 판단과 분별의 

기준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웃으며 상냥하게 대하고 

사람 기분 상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서로 대립하는게 아니라 서로의 말을 귀담아듣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그런 모습들..

 

표면적으로 보면 

바람직한 태도가 맞습니다.

 

하나님앞에 합당한 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자기 감정에 의해 함부로 막 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태도는 어디까지나

본질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런 모습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 여기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강한 책망의 말씀을 하시는데..

 

때론 인간적으로 볼 때

당황스럽게 느낄만큼 강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마 3:7, 12:34, 23:33, 눅 3:7)

 

예수님이 이렇게 강한 태도를 보이신 이유가 뭘까요?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미운 감정이 들어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사랑해서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눅 23:34)

 

하지만 우리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그런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지 않으신 이유는..

 

자신의 영적상태를 인식하지 않고

또 스스로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에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강하게 드러내 선포하는 것이..

 

듣는 사람의 내면이 

그 진리에 반응할 수 있도록 이끄는

가장 합당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리에 반응한다는 말은..

 

진리를 완전히 받아들일지..

아니면 진리를 완전히 거부할지에 대한

중심이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든 사람 상처주지 않고 기분 상하지 않도록

진리를 교묘하게 타협하고 변질시켜서 전하게 된다면..

 

듣는 사람은 온전한 진리를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1장 37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아주 강한 책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눅 11:43-44)

 

그런데 옆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한 율법교사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눅 11:45)

 

그러자 예수님은 방향을 바꿔서 

율법교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눅 11:46)

 

인간적인 기준으로 나아갔다면..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에게 

이렇게 강한 태도를 보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교사에겐..

 

"아, 당신들은 바리새인과는 다르죠?

오해하지 마세요, 님들께 한 말은 아닙니다"

라는 식으로 자세를 낮췄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상황에 따라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진리적 기준을 갖고 계셨기에 

한점 흔들림 없이 그 기준대로 행하셨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헤롯왕이나 로마황제가 있었더라도

주님은 변함없는 강력한 진리적 태도로 

일관하셨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기 중심을 돌아보려 하지 않는 이들에겐..

 

부드럽고 온유한 태도가 아니라

강하고 엄중한 태도로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그들이 그 진리를 듣고 반응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정죄를 당할 때 

오히려 그 사람들을 꾸짖으시며 다 보내십니다.

 

그리고선 그 여자에겐..

"너를 정죄하는 자가 아무도 없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을테니

이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의 신분이 낮아서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상태를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중심이 있음을 아셨기에..

 

강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시고

부드럽고 온유한 태도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내면의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라면.. 

 

중심에서 기반된 현상적인 모습이

사람 기준에 합치된 모양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그렇지 않은 모양으로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외적인 모습과 태도만을 

모든 판단과 분별의 절대기준으로 삼게 되면

미혹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외적인 모습은 경직된 표정과 딱딱한 말투지만 

상대에 대한 나쁜 감정 전혀 없고

오히려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동성애자에게 동성애는 죄이고

그 죄에서 돌이켜 떠나야 한다는 진리 선포를 하면.. 

 

동성애자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판단해버립니다. 

 

굳은 표정과 딱딱한 말투로.. 

WCC는 여러 종교가 서로 화합하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허울좋은 명분을 앞세워

하나님을 배도하는 가증한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을 강하게 하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사람이 되버립니다. 

 

몇달전에

우울증 관련 영상을 몇개 올린 적 있습니다.

 

인간적인 위로를 해주는 차원이 아닌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써

우울증에서 벗어나는게 진짜 치유라는 

메세지의 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을 본 사람들 가운데..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니가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함부로(?) 얘기하냐며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비난하는 분들이 여럿 계셨습니다. 

 

내용 자체가 온전한 진리냐 아니냐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상냥한 말투로 전하는지..

 

또 얼마나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지에 초점을 둠으로써

메세지의 본질이 전혀 들어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 메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삶에 적용시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우울증에서 벗어난 분도 계셨습니다. 

 

우리가 절대 잊지말아야 할 것은..

 

진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인간적인 감동과 위로의 말들로 

사람 마음을 살살 만져주는게 아니라..

 

느낌과 감정의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존재영역인 영이 

살아계신 하나님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진리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생각치도 못하는 것들"

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영이 가장 본질적인 존재영역인데..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꼭

육이나 혼의 영역에서

합치된 상태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론 

진리의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현상적으로 보면

투박해보이거나 거칠어 보일 수도 있고,

인간적인 감동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인 영이 사는 길로 나아감에 있어선  

혼과 육이 반드시 그와 합치된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에게

“괜찮아, 너가 마약을 끊지 않고 계속 하더라도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셔"라는 말이..

 

당장 느끼기엔 

따뜻한 위로의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실상은 마약을 끊지 못하고

중독의 늪에 빠져 죽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이런 인본적인 감동과 위로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상적인 태도나

혼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을 절대기준삼아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려 하고..

 

그런식의 메세지를 전하는 사역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따라갑니다.

 

그리고 사역자는 그런 메세지를 전할 때

사람들이 위로와 감동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그런 메세지를 집중적으로 전하면서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렇게 이끌어갑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구원 섭리에 있어서

다수의 사람들이 구원받는 경우보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구원받는 상황의 말씀들만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관점과 기준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과 기준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도 전혀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불순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심판 당시

모든 사람들이 멸망당했고,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입성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실패해서 그런게 아니라..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속지 않으시고

변치 않으시는 철두철미한 당신의 속성대로 

행하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구원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매사에 내가 

어떤 관점과 기준으로 나아가는지..

 

즉, 하나님의 관점과 기준으로 나아가는지..

아니면 사람의 관점과 기준으로 나아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의 기준이 자리하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기준에 의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기준대로 나아가는 이들이

때에 맞는 하나님의 뜻(섭리)를 분별할 수 있고 

그런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며칠전에 어떤 분이 동영상에

이런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한국이 만약 복음통일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배신감 들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거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분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반드시 이렇게 하셔야 한다"는 

옳고그름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놓고..

 

그런 기준과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대놓고 하나님께 실망감을 드러내거나

그런 종교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정죄하는 등,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님오심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

무엇이 정녕 나를 살리는 길인지

겸비함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람의 기준(관점)을 철저히 내버리고 

하나님의 기준(관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어 

그분의 실제적인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아가는 자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끝까지 인도해주시고 지키십니다. 

(왕상 17:39, 시 25:12,14, 34:7, 103:13)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주님 다시 오실 때

첫추수로 구별된 신부가 되어 

주님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16:2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시편 34:7)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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