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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구원의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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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6. 8.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구원의 확신'




히브리서 3장 14절에 보면..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많은 경우..

이 말씀에서 의미하는 확신을 

거듭남으로 인한 구원의 확신이라 생각하고..


그런 구원의 확신을 끝까지 붙들고 살면

훗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한번 거듭남으로 인한 구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개됨이 없기 때문에

그 (구원의) 확신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앞뒤문맥으로 이어져 있는 말씀들을 통해서

이 말씀이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3장 5-6절을 보면..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종의 입장으로 하나님앞에 신실했고,

그리스도는 아들의 입장으로 하나님앞에 신실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선 우리 역시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의 참여자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인

7절과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여기서 "성령이 이르신 바"는 바로

시편 95:7절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보아라."

(시 95:7_표준새번역)


하나님이 우리를 기르시고 인도하시는 목자시니

우리가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 맨앞에 

{그러므로}라는 접속어가 붙은 이유는..


이 {그러므로}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바로..


6절과 14절에 등장하는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7-8절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확신'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완고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출애굽했지만

상황과 환경, 자기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거역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눈앞의 상황이나 현실, 내 생각과 기준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지 않고 완고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6절과 14절이 말씀하는 확신은..


한번 거듭나서 구원받았으니 

"난 구원받았다"라는 

자기세뇌적 확신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며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라는 것입니다. 


9절~11절 말씀이 

이를 더욱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도함을 받아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땅에서 출애굽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강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출애굽이라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지만..


가나안 입성이라는 

구원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함으로 인해 

결국 약속하신 그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자기 눈앞에 상황과 자기 감정,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이후부터는 

그런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하나님이 뜻하시는 길(방향)을 알지 못한 채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나아가면서도..


마음이 미혹되어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 3장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본질적인 메세지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구원의 시작을 열어주시고..


그 최종목적지로 나아가는 삶의 여정길을

함께 동행하며 인도해 주고자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뜻을 거역하며

불순종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진짜 의미는..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안에 역사하신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끝까지 붙들고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첫사랑의 관계의 시작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무조건 그 뜻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감격과 열정이 타오르던 때이고..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며 

그 뜻대로 나아가게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놓치 않으신다는 

그 믿음과 소망의 확신을 

히브리서 3장 전체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 믿음의 확신을 붙들지 않는다는 말은..


걸어가야 할 그 길을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속에서

그분의 인도함을 받는게 아니라..


내눈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에 따라

내 생각, 내 기준이 튀어나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나아가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미혹되어 

자신의 상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뜻하시는 길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 3:10)


12절과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 3:12-13)


여기서 믿지 아니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말은

첨부터 믿지않는 그 불신을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불신이었다면 그 다음 구절에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붙어있던 상태였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시작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확신속에 출발했지만

이후 여정길을 걸어가는 과정속에서 

하나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죄의 유혹 또한

히브리서 3장 전체가 강조하는 것처럼..


표면적인 어떤 행동 이전에 

본질적인 죄, 즉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14절에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초반에 살펴봤던 5-6절 말씀처럼..


모세가 종의 입장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신실하게 나아갔고

그리스도는 종이 아닌 아들의 입장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갔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된 입장이라면 

마찬가지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신실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 우리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 이후에

이 모든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브리서 3:15-19)


지금도 교회안에서 보면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라고 물으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시작할 때 끝까지 붙들어야 할 그 확신은 

그런 단순한 차원의 확신을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구원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후 13:5)


이 고린도후서 13장 말씀은..


앞서 자세히 살펴본 

히브리서 3장 전체의 내용과 

그 맥을 같이 하는 말씀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그분의 음성에 청종하며 

그분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고 있는지..


겸비한 마음으로 

자기 중심을 살핌으로써 

확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려는 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그런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이

아주 견고한 영적 방패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근본적으로 

붙들어야 할 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그 안에 내주하셔서

그 사람을 친히 인도해가시기 때문에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선 

절대 미혹되지 않도록 역사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교리적 메뉴얼이나 

인본적인 생각과 종교적 지식에 의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실상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있음에도..


"구원의 확신"이라는 교리적 프레임에 빠져서

스스로의 상태를 돌아보기는 커녕,

자신은 당연히 구원받았다 여기며 

자기 종교적 기준대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에게도 

외적인 종교행위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미혹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함에도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해 

예수님이 책망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이런저런 행위들이 많았습니다. 

(계 2:2-3)


그런 의로운 행위들이 많았으나

아주 치명적인 잘못 한 가지를 저지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계 2:4)


첫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들이 대놓고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나 사랑으로 교제하며 

하나님을 따르던 그 순수한 마음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그 분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나아가는 

순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 3장 3절에 보면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동행하기 위해선..

서로 뜻이 같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같이 하기 위해선

서로 사랑하는 관계안에 거하고 있어야 합니다. 

(빌 2:2)


그런 관계안에 거하고 있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헤아리지 않고

자기 생각과 기준대로 행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적으로 선해보이는 행위들이 나올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표면적인 종교행위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행하려는

중심이 있는지를 감찰하시는 것입니다.


때론 상황과 환경에 굴복해

또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내 생각과 판단, 감정이 앞서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시는 내 중심이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나아가려는 중심이라면..


자신의 어떠함을 명확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상태를 바로 보고

주님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하며

다시금 주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겸비함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내 기준, 내 생각, 감정, 나의 어떠함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확신인 것입니다.    


부디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이

스스로의 상태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친히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그 확신속에 거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3)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브리서 4:1)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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