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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행함"의 진짜 의미!

댓글 1

* 공지사항(필독) *

2020. 6. 21.

※중요※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행함"의 진짜 의미!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갈 2:16)


갈라디아서 2장 16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앞에 의롭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행위가 아닌 믿음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경우.. 

이 갈라디아서 2장 16절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율법적인 잣대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는 믿음과 행함이

어떤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알아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16절 말씀이 의미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내주는 말씀이 20절 이하에 나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2:20-21)


20절 중간쯤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안에서 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앞부분을 보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빌 2:6, 히 1:3)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써

내 안에 들어와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내주하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로마서 8장 말씀이 이를 증거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의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은 바로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4:16)


그래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내 안에서 어떻게 사실까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님이 내 안에 살기 위해선

반드시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한번 거듭남으로 구원받게 되면

그 이후부턴 내가 자동으로 죽고 

성령께서 사신다고 생각합니다.


워딩 자체만 놓고보면 맞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20절에 보면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와 사시면서

육체로는 내가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거듭난 후에도

나라는 육신의 존재로 계속 삶을 살지만

내가 내 삶을 이끌어가지 않고 

내안엔 계신 성령께서 내 삶을 

주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렇게 

내 삶을 주관하시기 위해선 반드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그 믿음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어야

내가 살지 않고 내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믿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도 열심히 하면 바라는 바를 들어주신다는 믿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나를 지켜주시고 도와주신다는 믿음..


이런 단순한 차원의 믿음만 강조하고

또 이런 믿음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전부라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바른 믿음이란..


내 바라는 것들을 들어주시는 믿음이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나를 도우시고 지켜주신다는 

제한적인 부분에 국한된 그런 믿음을 넘어서..


내 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내 삶의 전반을 통치하시고 이끌어가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그분께 삶을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내안에 사심으로 내 삶을 주관하시려면

반드시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 자아가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본인의 자아가 죽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단 한명도 없다고 감히 장담합니다. 


제가 이렇게 장담할 수 있는 이유는

성경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21-25)


로마서 7장을 보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듭나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게 됐지만

또 다른 자신이 하나님의 법이 아닌 죄의 법을 따르려 함으로

내적인 씨름이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자아는 결코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자아가 죽을 수 있다면

개인적 차원의 영적싸움이란

아예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12절을 보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이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내 자아가 완전히 죽을 수가 있는데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이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악한 영들은..

하나님을 따르려 하지 앟는 

내 자아를 통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살지 않고

성령께서 내안에 사신다는 의미는..


죽지않는 내 자아가 

내 삶을 주관하고 이끌어가지 않도록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속에서 

하나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 음성에 청종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삶이 바로

내가 살지 않고 내안에 계신 

성령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

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고 

좁은 길로 나를 인도하실거라는 믿음으로 

그 분께 내 삶을 내어드려야 한다는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외적인 행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걸 경계하는 말씀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16절과 21절의 

"우리의 (율법)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향한 온전한 믿음 없이

외적인 종교행위를 본질로 여김으로써

미혹된 방향으로 나아가선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 꼬박꼬박 드리고 

십일조, 헌금 잘 내고,

교회봉사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성경 하루에 100장씩 읽고 외우면서

성경지식 누구보다 많이 알고.. 


심지어 전도한다면서 

주변지인들을 자기 교회로 델꼬와 

교회에 등록시키기까지 합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경건한 행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에 의한 행위가 아니라..


단지, 자기안에 내재된 교리에 의해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고 예배드리고

십일조,헌금 내면서 신앙생활하면

천국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행하는 행위라면.. 


이런 종교행위가 나를 의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교리를 중심에 두고 사는 이들은

자신이 의롭다 여기는 종교행위에 열심을 다하면서 

그런 행위가 보이지 않는 이들을 향해서는

판단과 정죄를 서슴치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처음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을 따른다고 하면서..


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행위적으로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금해야 한다는 식의

율법주의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온전한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함에 따른 행함이 아닌..


믿음 없는 자기 종교적 잣대로 

행위의 어떠함만을 고집하게 만드는

미혹의 영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종교행위에만 열을 올리며

외식을 떨던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보면 

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 것이고..


한번 거듭났으면 그 이후부턴 

자연스럽게 내가 죽고 믿음으로 의롭게 됐으니 

행위는 전혀 중요한게 아니라고 합니다. 


본인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인 

교리적 지식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이런저런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


행위로 구원받는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서 

자신이 신봉하는 교리적 잣대를 들이댑니다. 


온전한 믿음 없이 행위를 본질로 여기는 거나

처음부터 잘못된 믿음안에 거하는 거나..


영적으로 보면 매한가지입니다. 


왜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야고보서 2장에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성령안에서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내안에 계신 성령께서 사심으로

내 삶을 인도해 가신다면..


그에 따른 행위는 

반드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살지않고 성령께서 사심으로써 

삶 가운데 나타나는 당연한 열매입니다. 


비록 사람 기준에 합당한 

그런 모양의 행위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행위는 

어떤 모양으로든 반드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성령께서 내 삶을 친히 주관하시길 

간절히 바라고 원하며 

그렇게 살아가려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일지라도

자아가 결코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날 친한 친구와 감정적으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네가 먼저 사과하라"는 마음을 

강하게 부어주십니다.


이 마음이 성령이 주신 마음임을 분별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 하나님과 지속적 (영적)교제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삶 가운데 자연스레 임하실 수 있도록

꾸준한 교제 속에서 이미 하나로 연합되어 온 상태이기에..


삶 가운데 성령의 개입은 그만큼 활발해지고,

그런 성령님의 개입을 영적으로 잘 캐치해서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그 마음을 깨닫고 생각해보니

자신이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했을까 하는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듭니다. 


그러면서도 먼저 다가가 사과하는 것이 

쉽지 않고 매우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결단하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사과하고 손을 내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친구와 사이가 더 돈독해지고

하나님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던 그 친구가

마음문을 열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행위가 사람 기준에서 보면 

별거아닌 행위로 보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내가 살지 않고 내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 삶을 이끌어가심으로 나타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성령의 전적인 인도함을 받으며

내가 아닌 그분이 친히 주관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행하기도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 말씀처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게 되는" 

일이 삶 가운데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내가 주인되어 

내 생각, 내 교리적 기준에 의해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뜻하시는바를

나를 통해 행하실 수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모양이 있고

하나님이 그런 모양에 맞춰 역사해주시길 바란다면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뜻을 나를 통해 행하지 않으십니다.


내안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살지 않고

여전히 내가 주인되어 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행하실 수 없는건

당연한 영적이치입니다. 


그래서 왜 성경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씀하셨는지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히브리서를 "믿음장"이라고 하고

야고보서를 "행함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 

동시에 언급되면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왜 하필 아브라함일까요?


아브라함은 믿음과 행함(순종)을 

동시에 이룬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이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며 나아갔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고 

하나님이 뜻하시는대로 자신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단에 바쳤을 때

그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을 때

이것을 의로 여겨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그에 따른 순종(행함)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 

아브라함이 동시에 언급됨으로써..


오늘날 성도가 살아갈 때 

어떤 믿음에 기반한 행위가 나타내야 하는지를 

본보기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롬 4:23-24)


그래서 믿음과 행함(순종)은

따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인식 없이

믿음과 행함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놓고

믿음이냐 행함이냐를 가지고 교리적으로 논쟁하며

양극단의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게

안타까운 이 시대의 현실입니다. 


얼마전에 어떤 영상에서 

성령님이 친히 내 삶을 주관하시고 이끌어가실 수 있도록

그분의 음성에 청종하며 그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했을 때..


그리스도인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건데

너는 왜 행위구원(?)을 주장하냐며 

믿음과 행함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몇몇 분들의 댓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본인들이 어떤 교리적 기준을 견지하든간에

말씀이 증거하는 믿음과 행함의 본질적 의미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온전한 믿음으로 성령님께 삶을 내어맡기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나타나는

행위의 여부를 통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내가 사는게 아닌

내안에 계신 성령께서 사심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사는 이들이

다시 오실 주님앞에 서게 될 주님의 신부들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

(마 16:27)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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