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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중심, 교회중심"이 왜 미혹의 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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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8. 18.

"성경중심, 교회중심"이 왜 미혹의 덫일까?

 

 

 

개혁주의(?) 신앙을 

표방한다는 많은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적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입니다.

 

이 슬로건을 단순하게만 보면

진리에 합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아주 큰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 교회 중심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고..

 

그 차이로 인해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육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책으로 출판되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교회 역시 우리가 육적으로 직접 그 안에 속해서 

신앙생활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표면상으로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경건해보이는 신앙적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눈에 보이는 육적인 차원의 영역에

그 중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본래 영적인 존재지만..

 

눈에 보이는 육적인 현실에 

그 기반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겉으론 

세가지 슬로건을 중심에 둔다고 하나..

 

실상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는 

육의 영역에 기반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교회나 교인들 대부분은 실제로 

육적인 교회당이 중심이 되고 

그런 교회당에서 형성된 교리가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교회당 중심, 교리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회당이 중심이 되고 교리가 중심이 된 채

신앙생활 하고 있음에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록된 성경을 앞세워서 교리를 진리화시키기 때문에

자신들은 하나님 말씀만 믿고 전한다 여기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아주 평범한(?) 어떤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 교인들은 

담임목사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릅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하는 모든 말들을

하나님이 하시는 말처럼 여기고 

무조건 아멘하며 순종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는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로

소속교단으로부터 내려오는 

특정 신학교리가

절대진리로 뿌리내려저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비롯한 사역자들 역시

그 교리를 기반으로 교인들을 양육합니다. 

 

이 교회를

눈에 보이는 현실적 기준으로만 보면..

 

말씀을 공부한다는 미명하에

일주일에 여러번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회를 열어서 열심히 기도도 합니다.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설교할 때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고

예수님이 우리 구원자되시고

성령님이 우리 인도자이시다"라는

원초적 복음을 기반으로 합니다.

 

육적으로만 보면..

전혀 문제없는 신실한 교회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 교회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우리 목사님을 통해서만 역사하시고, 

우리 목사님이 하는 말과 다른 말을 듣게 되면 

그것은 무조건 진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그리고..

교회안에 형성된 신학 교리가

절대진리로 뿌리내려 있기 때문에 

기록된 성경말씀은 

그 교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교리가 

모든 판단과 분별의 잣대가 되버리기 때문에 

교리와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하면 

무조건 부정하고 배척해 버립니다.   

 

목사님이 설교할 때는,

삶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중심은

담임목사님과 교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교인들의 실제 삶의 영역에선 

담임목사님이 하는 말과 교회의 교리를 

판단과 분별의 절대기준으로 삼습니다.

 

교회가 돌아가는 육적인 체계만 보면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교회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교회의 영적인 중심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목사)에게 있고,

사람에 의해 형성된 교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즉 교회가 겉으로 내세우는 슬로건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제껴버리고..

 

내가 육적으로 체험하는 사실적인 영역

즉 "교회당 중심, 목사 중심"이 되는 것이고

"성경을 이용한 교리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외적으로는 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말하고

성경말씀을 앞세우기 때문에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만약 목회자가 강대상에서

하나님은 저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제가 하는 모든 말이 하나님의 말입니다"

라는 선포를 대놓고 한다면..

 

교회안에 상당한 혼란이 임할 것이고,

그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성 교회와 교인들 대부분이

대놓고 사람을 우상화하고 티를 내는 이단들에 대해선 

철저하게 분별하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들은 

대놓고 저런 발언을 하지 않고

부담가지 않는 일반적 설교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육적인 차원에서 보면

전혀 문제될게 없어보이는 

이땅 교회들의 전반적인 영적현실입니다. 

 

즉 그럴싸한 세 가지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보다 목회자를, 하나님보다 교회를,

하나님 말씀보다 교리를 중심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은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4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장 첫째 되는 계명 역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본질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만이 본질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하나님 외의 다른 것들을

같은 선상의 본질적 진리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이 본질이고

그 외에 다른 모든 부분은 그 본질에 

포함되어지는 '비본질'입니다. 

 

구분이 명확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안에 온전히 거할 때,

그 사랑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은 

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애초부터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란

세 가지 모토를 삼는게 아니라..

 

인본적 관점에 의한 것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 중심"만을 본질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뜻)"이라는 

본질적 뿌리가 기반되어 있다면

그 뿌리를 통한 열매는 저절로 맺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든 섭리는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지 않으시기에

성경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고..

 

또 교회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지 못한 것에서 구별되어 

그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섭리를 펼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뿌리가 되어 나타나는 열매들이 바로

성경과 교회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가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도

돌이키지 않고 되려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배역된 길로 나아간다면.. 

 

애초부터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에 포함되는

비본질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런 교회를 벗어나 거룩함을 지켜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뿌리가 되어 나타나는 

또 다른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즉 본질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산다면..

 

교회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애초부터 본질적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경우,

"교회 중심"이라는 프레임의 덫에 사로잡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본질과 비본질을 절대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질이 온전한 상태라면,

비본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본질에 의해

본질이 훼손되려고 할 때는..

 

그 비본질을 철저히 내려놓고

본질을 회복하려는 마음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3장과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외적인 행위나 형식,

즉 비본질에 대해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눅 11:42)

 

하지만 예수님은 그 다음 구절을 통해 

본질과 비본질의 분명한 차이를 말씀하시고

본질이 왜 중요한지를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5-26)

 

이 말씀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행위에만 매여서

본질(중심)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는 부분입니다. 

 

"안을 깨끗히 한 후 겉도 깨끗이 하라"가 아니라

"안을 깨긋히 하면 겉도 깨끗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안을 깨끗이 하는 것이 본질이고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은 

본질에 포함되는 비본질에 해당하기에,

 

안을 깨끗이 하면 

겉은 자연스레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안(중심)을 깨끗이 하면

겉(행위)은 그 중심에 근거하여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모양으로 나오든 

깨끗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이 보시는 겉의 기준은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모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질과 비본질이 바뀌게 되면

안을 깨끗이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해놓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본질을 중심에 두지 않았을 때

나오게 되는 가장 심각한 영적 폐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만을 유일한 중심에 두지 않고

 

그럴싸하게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을

모토로 삼는다는 대다수 교회들을 보면..

 

본질과 비본질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겸비함은 없이

하나님을 교회의 틀안에 억지로 끼워넣고

교회공동체를 마치 "절대적 신성"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를 절대적으로 따르면서

목회자가 설파하는 교리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까지 끼워맞추고..

교인들은 그런 교리안에 스스로 갇혀버립니다.

 

사실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들을 보면 대부분

저런 식의 순환구조로 운영됩니다.

 

실제로..

자기들만의 교리를 교본으로 만들어놓고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에 두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단과 교회들이 

그런 단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경계합니다.

 

참 슬프게도..

아주 대놓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단체들에 대해선 

이단으로 규정하고 분별에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모습을

겸비하게 돌아보려 하지 않는 

정통 교회들의 영적인 실상 역시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자신들은 

저런 이단들과 같은 모양이 아니기 때문에.. 

 

육의 관점에 함몰되어 있는 상태에선

영적인 실상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관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42-43)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때"는 주인이 정한 때입니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때를 따라" 행한다는 의미는

주인이 정해놓은 어느 "특정한 때에" 

"주인이 뜻하는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주인이 정한 때에 주인이 뜻하는

수량과 방식으로 나눠줘야 하고..

 

그런 주인의 뜻을 

잘 헤아려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장 24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며

추수 기한을 정해놓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때와 기한이 있는데

어떤 때에는 이른 비를 주시고

어떤 때에는 늦은 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섭리의 방식이 

때에 따라 얼마든 달라질 수 있는데..

 

그런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리고 분별해서 

그 때에 맞게 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이렇게 때에 맞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그 어떤 종교적 프레임과 불순물들이 

혼합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만 나아가는 이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주하신 성령의 음성을

헤아리고 그 인도함을 받는 것을

삶의 모토로 여기기 때문에..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형성된 교리가 

내 중심에 깊게 뿌리박혀 있고

그런 교리에 기반한 종교적 프레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또 이런식으로 목회자나 사역자들이

교인들을 인도하는 현실이라면..

 

정해진 때에 맞게 유동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별하고 그 섭리대로 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행하기는 커녕..

교회에서 학습된 교리에 기반한 

인본적 관점의 논리를 쭉쭉 뽑아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자행할 것입니다. 

 

몇가지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교단과 교회마다 수많은 신학 교리들이 있습니다.

 

구원에 관한 교리부터 살펴보면..

 

어떤 교회는

교회 봉사나 이런저런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교리를 가르치는데..

 

또 어떤 교회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니

행위는 전혀 중요치 않다는 교리를 가르칩니다.

 

또 어떤 교회는 

한번 거듭났으면 구원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어떤 교회는 

거듭났어도 구원은 상실할 수 있다는 교리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다시오심에 관련해서도..

 

어떤 교회는 환란 전 휴거가 일어난다는 교리를 전하고..

어떤 교회는 환란 중간에 일어난다는 교리를 전하고..

어떤 교회는 환란 후에 일어난다는 교리를 전합니다.

 

어떤 교회는 아예 휴거 자체가 없다고 하면서

주의 재림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시는게 아니라는 교리를 전합니다.

 

그러면서 휴거니 환란이니 이런 단어를 쓰면서 

종말을 전하는 사람들은 다 미혹을 퍼트린다고 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성경의 이스라엘은 구약에서 끝났고

이제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함으로써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교리를 전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들을 보면..

하나님은 무조건 교회당을 통해서만 역사하시니..

 

교회당을 벗어나게 되면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을 상실해버리는 것처럼

강력한 종교적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람이 만든 종교적 교리와 프레임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이런 교리를 믿는 이들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대체 몇 분이시길래

수많은 교리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며

자신은 오직 “말씀 중심”이라고 하는 걸까요?

 

이처럼 하나님을 사람의 교리와 프레임안에 집어넣고 

자신들이 믿고싶은 하나님을 만들어버린 상황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때에 맞는 섭리로 역사하실 때

그걸 분별하고 그에 맞게 행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확률과 같습니다. 

 

물론 자신이 신봉하는 교리가 

진짜 진리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연하게 진리와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인해 

성령이 조명해주시는 지혜로

깨달아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스케치북에 

이런저런 낙서가 잔뜩 그려져 있으면

정작 필요한 것들을 그안에 채워 넣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내면이 이미 무언가에 지배당해 있으면

스스로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하나님의 깊은 섭리는 그 사람에겐 역사할 수 없습니다. 

(계 3:20)

 

여기서 제 얘기를 잠깐 하자면..

 

2018년 10월초, 

제 내면의 큰 변화가 일어난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제 중심의 방향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회복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그에 대한 메세지를 전하고

한 사람이라도 깨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10월초 어느날

하나님께서 갑자기 휴거에 관해

이런저런 (내적)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처음 그 음성을 들었을 땐 

반신반의 했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믿고 있던 것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며칠 후,

휴거에 대해 얘기해주신 그대로를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조명해 주셨습니다. 

 

<참고 영상>

1. 휴거, 두 번 일어나는 이유 ❮1❯ ('에녹 vs 노아' 편)

https://youtu.be/hVwu4wufU9s

 

2. 휴거, 두 번 일어나는 이유 ❮2❯ ('아브라함 vs 롯' 편)

https://youtu.be/wERHj843iRM

 

3. 휴거, 두 번 일어나는 이유 ❮3❯ ('이스라엘의 추수' 편)

https://youtu.be/CNJFZaPtOrs

 

 

여기서 만약 제가 성령의 음성만 듣고 

성경으로는 조명받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내가 잘못 들었던거라 여기며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입니다.

 

또 반대로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그냥 성경을 읽다가 깨닫게 된 거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내가 너무 억지로 해석한거라 여기며

역시나 그냥 넘겨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의 이런 믿음의 수준을 아시고

 

(내적)음성으로 먼저 들려주신 후

기록된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아직까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한가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왜 하필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섭리를 

열어주셨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최근들어

그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한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께서 

이렇게 열어주시기 전까진

환란 전에 휴거가 한번만 일어날 거라는 

교리를 품고 있었습니다.

 

이런 교리를 품게 되기까진

누군가로(글이나 설교)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휴거에 대해 다른 주장을 하는 분들을

내가 믿는 교리를 잣대로

함부로 판단,정죄하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확실하게 조명해주신게 아니었고..

 

환란 중에 오시든 환란 후에 오시든

그게 본질이라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어떤 특정한 교리가 

내면에 심겨져 있긴 했지만..

 

성격상 늘 내 부족함을 절감하고 

그렇게 내면을 들여다보며 살았기에.. 

 

특정 교리에 매여서 

교리에 지배당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께서 

휴거에 관해 자세한 것들을

성경을 통해 풀어주시고..

 

더 나아가 마지막 때 교회들의 배도가 

어떤 영적원리에 의해 일어나는지..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구별되어 거룩함을 지켜내야 하는지를

성경을 통해 더 자세히 풀어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섭리가 때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됐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에 따른 섭리는

배도에서 돌이키지 않음으로 심판이 예비된 

이 나라를 육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속에

당신의 신부들을 데려가실 때가 머지 않았기에..

 

거룩히 구별된 당신의 신부들을 정하시고

그렇게 역사하시는 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때에 따른 인도하심으로

몇년간 다니던 교회(WCC 교단)를 나오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가정에서 예배 드립니다.

 

어찌되었든..

때에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내안에 심겨진 교리에 의해 분별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닌 내 자아가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그 내면의 중심이 

하나님의 뜻과 기준이 아닌 상태라면

영적흐름은 반드시 미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 메세지를 들었을 때도

교회를 깨부수고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린다면..

 

또 "무슨 소리냐, 악한 정권에 맞서서 

대한민국을 회복시키는게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생각하신다면..  

 

자신이 지금.. 

어떤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한번 돌아보시고

주님앞에 나아가 그 은혜를 구하셨으면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들에게 본질적인 회복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복입니다.

 

이 회복이 이뤄질 때

기록된 성경이 진짜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고..

 

교회공동체가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 뜻에 합당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복만을 

본질로 삼지 않는다면..

 

성경으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등등,

그 어떤 신앙적 각성을 얘기하고 

거창한 회복을 이야기한들

실상은 인본적인 기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마음은 전혀 없이..

 

인본적 교리에 함몰되어 있고

교회안의 종교적 프레임에 함몰되어 있는 상태라면..

 

그 어떤 자정적 노력을 하더라도

잘못된 기준과 관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실상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내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분별할 수 있는 혜안이 열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할 수 있고,

하나님안에서 진짜 회복이 이뤄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오직 당신의 뜻만을 본질로 여기며

그 뜻대로 나아가려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은 예비된 심판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남은 구원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 7: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마태복음 15:7-9)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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