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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시험의 때⟫를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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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8. 29.

 

믿음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시험의 때⟫를 피할 수 없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롬 14:22-23)

 

로마서 14장 23절에 보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막연하게만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기도하는 바를 들어주시고 

힘든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이런 단편적 차원의 믿음만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믿음도 중요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본질적인 믿음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게 되면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게 되고,

그 내주하신 성령님이 내 삶의 전반을 

통치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그분께 내 삶을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요 16:13, 갈 5:18)

 

믿음이란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 보면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보면

"믿음이 온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믿음이란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5절에 보면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나와 하나로 연합된 상태에 있을 때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이 형성되고

성령안에서 그 믿음을 따라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살펴 본

믿음올 따라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는 말씀에 대해

좀 더 디테일한 의미가 풀어지게 됩니다.

 

성령님이 우리 삶에 관여하실 때를 크게 나눠보면..

 

적극적으로 관여하시는 때가 있고

소극적으로 관여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관여하신다는 말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우리가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직접적으로 관여하셔서 이끌어가시는 것을 의미하고..

 

소극적으로 관여하신다는 말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그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실제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어느날 기도중에 성령께서

"내일 회사에 가면 A라는 동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하시거나, 마음을 강하게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의지적으로 

성령의 뜻을 따라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이런 경우는 성령께서 

특정한 때에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관여하셔서 길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시는 

또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던 그 상황이..

 

시간이 지나서 보니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그렇게 말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관여하셔서 

나를 통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음성을 들려주시거나 마음을 주심으로 

우리가 직접 그 뜻대로 말과 행동을 하도록 이끌기도 하시고..

 

우리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령님이 직접 강권적으로 임하셔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이끌기도 하십니다.

 

사람이 전혀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성령님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실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과 이미 하나된 관계로 꾸준히 교제하며 

삶을 인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 역시 

처음엔 전혀 인식하지 못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다

성령께서 적극적으로 우리 삶에 

관여하시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소극적으로 관여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그냥 볼일 보러 화장실에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장실 가는게 맞는지 

굳이 성령님께 묻지 않습니다.

 

또, 저녁밥을 부실하게 먹은 나머지,

밤 10시쯤 배가 너무 고파서

집에 있는 어떤 간식거리를 먹는다고 할 때도

굳이 성령님께 묻지 않고 행동합니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인 상황으로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직접적인 관여를 바라거나

그 뜻을 묻지 않아도 됩니다. 

 

이처럼 아무 거리낌없이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에 성령안에서 믿음따라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함을 구해야 하는지 아닌지의 상황을 분별하여 

그에 맞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3절 말씀의 의미처럼 

믿음이 오게 되면, 성령안에 거하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에 매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과 조금 다르게..

 

이미 음식을 양껏 먹었는데

내안에 음식에 대한 욕구가 지나쳐서

또 음식 먹기를 탐하려 합니다. 

 

이런 경우는 성령께서 

그런 행동을 원치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 내 삶에 

소극적으로 관여를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평소 성령님과 꾸준한 교제속에 살아왔다면

그런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행동인지를

인지하고 욕구를 내려놓으려 할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그래서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는 말은.. 

 

내주하신 성령님과의 관계속에서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죄가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관여하셔서

나에게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인도하실 때

스스로 상황과 환경의 어려움을 핑계삼아

성령님의 뜻을 거스르게 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앞에 죄가 되는 것이고..

 

또 내가 내 욕심에 의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행동을 할 떄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한 것이기에

이 또한 하나님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행동이 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주하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 믿음 안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교리적,종교적 기준에 의해 

이런저런 행동들을 율법적으로 구분해놓고 

스스로 그런 율법적 올무에 갇히게 되면.. 

 

로마서 14장 23절 초반에 언급된 것처럼  

성령안에서 믿음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22절에 보면

성령 안에서 우리 믿음을 굳게 하고

그 믿음안에서 허락된 행동을 했을 때 

그게 거리낌이 없다면

그것은 복된 일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율법에 메이지 아니하고

내주하신 성령의 인도함 속에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게 되어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2019년 2월 한달간

일주일에 3-4번 정도 택시를 탈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갑자기 

택시 기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을 강하게 부어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낯선 사람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조잘조잘 댈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 그 마음을 인식했을 때는

"내가 잘못 느낀거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음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깐의 씨름을 한 후

그 뜻대로 행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며

입에서 나오는대로 그냥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사분들 가운데

얘기를 심각하게 들으시고 반응하는 

몇몇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도저히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주님 의지하며 나아가면 주님이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얘기를 할지 준비한 것도 아니고

나오는대로 두서없게 전했음에도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하며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만약 제가

제 성격을 핑계삼아, 

성령의 인도함을 거부해 버렸다면

믿음안에서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 행동은 죄가 됐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크게 

오해하고 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한번 거듭나서 우리안에 내주하신 성령님은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거라는 오해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19절에 보면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성령은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소멸된다는 것은

우리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소멸되어 

우리 삶을 더 이상 인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이 소멸될 수 있나요?

 

성령의 인도함을 한번 두번 거부하게 되면

성령께서 근심하시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성령의 관여하심이 점차 줄어들다가 

결국 그 사람에게 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는

여전히 내 자아가 강하기 때문이고,

그런 자아 속에는 육체의 욕구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여기에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도 포함됩니다.

 

결국.. 이런 이유들 때문에 

성령의 인도함을 반복적으로 거스르게 된다면

성령님의 역사는 그 사람에게서 종결되어 버립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율법에 매여있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행 7:51)

 

조상들이 성령을 거슬렀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사야서 63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사 63:10)

 

하나님께서 당신과 언약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이적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에도

그들은 언약을 져버리고 성령을 거스르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로 인해 베풀어주시던 자비를 다 거두시고 

도리어 그들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도우시고 인도하시던 성령께서

그들의 악독함으로 인해 그 역사를 거두시게 되면

어둠의 권세가 합법적으로 그들에게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 말씀은 성적인 욕구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기 욕구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8절에 보면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의 상실한 마음을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말은..

 

첨부터 믿지 않음으로 

성령과 상관없는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스스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길 거부해 버린다면

성령님은 그 안에서 역사를 멈추시고 소멸하시는 것입니다.

 

두번째 오해는..

하나님은 사람을 절대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오해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구절은 바로 

야고보서 1장 13절에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는 시험이란

자기 욕심에 이끌린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받게 되는 시험을 의미합니다. 

 

뒤에 나오는 구절이 이를 그대로 증거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4)

 

예를 들어 

주식을 하는 어떤 사람이 

돈을 조금 넣어서 이득을 보자

이번엔 가진 돈 전부를 털어넣어서

반토막이 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중요한 일에 급하게 돈을 써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반토막나버린 돈으론 해결하기가 어렵고

상황은 더 꼬이면서 어려운 일이 배가 됩니다.  

 

이런 경우, 자기 욕심 때문에 

스스로 시험에 빠지게 된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왜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라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욕심 때문에 일어난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이지 

시험 자체를 하나님이 하지 않으시는게 아닙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받은 시험은 

욕심에 이끌려서 받은게 아닙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말씀하지만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시험을 받았는데..

 

이땅을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시험 받는 일이 없을까요?

 

택시 기사들에게 복음 전했던 저의 경우 역시..

 

제 성격이나 환경 등,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기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럼에도 제가 

성령의 인도함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는지를 

시험하신 것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믿음을 드러내는지를

보시기 위해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실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그 일을 주도하기도 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굳이 사람을 시험하지 않아도

어떤 믿음의 반응을 할지 다 아십니다.

 

그럼에도 시험을 하시는 이유는..

 

그렇게 직접 시험하심으로써 

시험을 받는 당사자가 

스스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각성시켜 주기 위함이고..

 

더 나아가 그런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나 요셉 등 

성경의 인물들이 받은 시험 역시..

그 믿음과 순종을 통해 후대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 4:23-24)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고전 10:11)

 

만약 제가 택시를 타고 다니는 그 상황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지 않고 있었다면

성령이 주시는 마음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시험받을 일은 없겠지만

결국은 성령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3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 사람들을 시험할 때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시험의 때는

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환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환란의 때를 

시험의 때로 표현하시는 이유는..

 

환란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고 순종한다면

그런 이들은 구원을 받게 된다는 

즉, 시험을 통과하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의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에

공식적으로 세상을 시험하는 때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믿음의 행동이 드러나야만 그 행동이

구원의 증표가 되어 그 시험을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란이 임하기 전, 지금은

우리 일상 가운데 

성령안에서 믿음의 행함이 

나오는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성령안에서 믿음으로 살게 된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그 시험의 때를 굳이 겪지 않고 

주님께서 먼저 신부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링크영상을 클릭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1. 휴거, 두 번 일어나는 이유 ❮1❯ ('에녹 vs 노아' 편) https://youtu.be/hVwu4wufU9s 2. 휴거, 두 번 일어나는 이유 ❮2❯ ('아브라함 vs 롯' 편) https://youtu.be/wERHj843iRM 3. 휴거, 두 번 일어나는 이유 ❮3❯ ('이스라엘의 추수' 편) https://youtu.be/CNJFZaPtOrs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외적으로는 경건하고 거룩해보이는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성령과 전혀 상관없이 사는 종교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행한 종교 행위들을 나열하며 

하나님앞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1-12)

 

이들이 행한 외적 행위들은 그 자체로만 보면

거룩함과 경건함을 증거하는 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들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행위였습니다. 

(마 23:23)

 

외적으로 거룩해보이는 그 종교행위들이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안에서 나오는 

본질의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성령안에서 믿음으로 행하는게 아니라

자기 종교(교리)적 기준에 의해

봉사, 헌금, 십일조, 기도생활, 성경공부 등등..

열심을 다하며 경건한 생활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허나 이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은

진정 성령에 의한 믿음으로 행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앞에는 외식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함 따라 믿음으로 

행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분들은

"저는 성령의 마음도 못 느끼겠고 음성도 안 들려요

어떻게 해야 되죠?"라고 하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이런 경우 사람에게 묻고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해결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 중심에 맞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아예 성령의 음성이나 

성령이 주시는 감동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평소 내 삶의 방향성이

내가 기준되어 내 뜻대로 살고 있는건 아닌지.. 

 

본인이 어떤 중심을 가지고 있느냐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남들 다 성령의 음성 듣고 마음을 받는다고 하니

나도 한번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인간적인 감정과 호기심에 의한 갈망이 아니라.. 

 

성령이 어떤 마음(음성)을 주시든

상황과 환경 따지지 않고

어디로 인도하든 그 뜻대로 나아가겠다는 

중심으로 하나님앞에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그 사람이 성령의 관여하심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루 이틀 몇번 해 본후, 

안되는거 같아서 포기하지 마시고

결단하고 주님앞에 계속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과 타이밍 등을 철저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식과 타이밍을 생각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중심으로 나아가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간증영상 같은 걸 보면

잘나가는 대기업 간부나 대형병원 의사가 

그 명예롭고 화려한 직업을 그만두고 

선교사가 되어 오지로 나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런 상황과 환경을 거스르기가

정말 쉽지 않은 결단임에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본질임을 알고 그렇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 

삶 가운데 관여하시는 성령의 뜻에 반응하며

그 뜻대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성령안에서

믿음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 다시 오셨을 때

"내가 너를 안다"고 하시는

주님의 그 음성을 듣게 되는

감격스런 날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5-7)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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