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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뜻⟫을 져버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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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9. 4.

이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뜻⟫을 져버렸는가?

 

 

 

누가복음 10장 25절 이하에 보면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불순한 목적으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누가복음 10:25)

 

그러자 예수님은 그 율법교사에게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고 되묻습니다.

(10:26)

 

율법교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 10:27)

 

그리고서 율법교사는 

스스로를 옳게 보이기 위해 또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눅 10:29)

 

그러자 예수님은 

강도 만난 이웃을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 만나 죽기 직전

거리에 쓰러져 있는데..

 

지나가던 제사장은 그걸 보고도 모른척 지나가버리고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냥 모른척 지나가 버렸는데..

(눅 10:31-32)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걸 보고 

상처를 직접 치료해주고 자기 돈 들여

강도 만나 죽어가는 그 사람을 살렸다. 

(눅 10:33-35)

 

이 얘기를 하시고선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이들 중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시고..

 

율법교사는 당당하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10:36-37)

 

율법교사는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답을 잘 알고 있었고..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는 질문에도

그 답을 정확히 얘기했습니다. 

 

사실.. 

누가 우리의 이웃이냐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굳이

이 세 사람(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신 이유는..

 

율법교사의 중심의 상태는

강도 만난 이웃을 마주치고도 모른척해버린 

제사장과 레위인의 상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서

그 심령을 찌를 수 있는 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후 율법교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겸비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달라진 삶을 살았을까요?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율법교사는 그 답을 

지식으로 머리에 담고 있었을 뿐

실제 삶은 그 답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율법교사의 직분은

율법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서..

사람들에게 그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스스로

하나님 일을 열심히 잘 하고 있다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그 일이

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교사는 처음부터

"스스로 옳게 보이기 위해"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눅 10:29)

 

그러나 율법교사의 중심의 상태는

하나님앞에 전혀 합당하지 못한 상태였고..

 

자신이 행한 외적인 종교행위들로 의해

본질인 자기 중심은 전혀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중심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황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너도 이 사마리아인처럼 이렇게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 10:37)

 

하지만 이 율법교사는 

자신의 종교적 행위들로 인해

중심이 변질된 상태였기 때문에

강도 만난 이웃에 대한 말씀을 들었을 때도 

그 본질적 의미를 분별하려 하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율법교사는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유대종교인이었는데..

 

이들은 스스로 율법에 정통하다 자부하며 

율법에 근거한 종교행위에 

열심을 기울이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종교행위의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외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0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세례요한이 말씀을 선포하며 세례를 베풀 때 

일반 백성들과 세리들은 대부분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교사들은

세례요한의 보잘것 없어보이는 겉모습이나 

그가 전하는 직설적인 메세지가

자신들의 종교적 기준에 맞지 않는

반율법적이라고 판단해 버렸기 때문에..

 

세례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의 섭리를

전혀 이해하지도 분별하지도 못했고,

 

그로 인해 결국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져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난 이후

자기 율법적 기준에 의한 종교행위에 열심을 다했지만

실상은 이런 종교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더욱 대적하는

가증한 행위가 되어버렸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까지 막아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인즉,

율법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그 직분을 이용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금 하나님이 뜻하고자 하시는 바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전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더욱 멀어지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함으로써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마 15:14, 눅 6:39)

 

율법교사는 이처럼

경건하고 거룩해보이는 껍데기를 두르고 있었지만..

 

실상은 회개를 성토하는 

진실된 메세지를 거부해버리고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까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음에도..

 

자기 율법지식과 외적인 종교행위에 눈이 가려져

진짜 본질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로 나아가 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직분상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제적인 인도함을 받지 못하도록

그 눈과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얼마나 알고 있든

또 경건해보이는 종교행위를 얼마나 했든

이들이 하나님앞에서 받게 될 보응은..

 

천국의 상급이 아니라, 

영원히 울며 이를 갈게 될 지옥 심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전하신 복음은 다른 말로 기쁜 소식,

즉 사람을 살리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강도 만나 죽어가던 이웃을 살린 

사마리아인의 모습이 

비록 육적인 상황이 대한 비유였으나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도..

 

사람의 존재적 본질인 영이 

하나님앞에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39)

 

하지만 오늘날도 

당시의 바리새인, 율법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인 영은 죽어가도록 만들면서..

 

지식만 머릿속에 채우려고 하거나

외적인 종교행위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나 만연해 있습니다. 

 

목회자를 비롯한 사역자들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저런 종교행위에 열심을 다하기만 하면..

 

구원의 확정은 말할 것도 없고

천국에서의 상급도 클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또한.. 

종교 교리가 자기안에 깊게 뿌리박힌 채 

자신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중심축이 된 상태에서

 

그런 교리를 거스르는 

모양의 섭리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는

아무렇지 않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해 버립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가

세례요한의 내추럴한 모습과 

강하고 직설적인 메세지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져버린 것처럼..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본질은 제껴버리고 외적인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면 

지금 역사하시는 때에 따른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총괄한다는 

외적인 경건의 끝판왕격인 제사장도

죽어가는 이웃을 모른척 하며 그냥 지나가 버렸고..

 

하나님이 따로 구별해서 임무를 맡기실 정도로 

외적인 경건의 특별함이 더했던 레위인 역시  

그 이웃을 모른척하며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름없는 사마리아인은

그 이웃을 모른척하지 않고 자기 몸처럼

돌봐주며 살리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누가 실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는

눈에 보이는 껍데기, 즉 직분이 

증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허름한 털옷을 두르고 메뚜기 잡아먹으며 

하나님의 메세지를 가감없이 전하는 메신져를 통해

때에 맞는 당신의 메세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오늘날엔 

일어나지 않을거라 여기는 것 역시 

우리안에 내재된 또 다른 종교적 프레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우리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봐야만

눈에 보이는 것들(형식,껍데기,프레임)에 의해 

본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분이 메세지를 전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메세지를 전하느냐를 봐야 하고..

 

또 메신져가 설사

바른 메세지를 전한다 하더라도..

 

그 메신져에 집중하는게 아니라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메세지가 의미하는 본질인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든 포커스를 두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율법교사같은 자들이 아니라

그 모양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만 나아가려는 세례요한과 같은

중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뜻하시는 때에 따른 섭리를 헤아리고

그 뜻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하시는대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주님의 일을 해나갑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겸비함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하신 섭리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마 11:7-9)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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