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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부합'되는데 성경을 '거스르는' 이상한 현상!

댓글 1

* 공지사항(필독) *

2020. 9. 11.

성경에 '부합'되는데 성경을 '거스르는' 이상한 현상!

 

 

 

얼마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성경을 보면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성경적 근거도 찾을 수 없는데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오래 전부터 

안식일이 언제냐를 가지고 

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사실 안식일의 정확한 날만 놓고 보면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 

성경에 부합되는게 맞습니다.

 

어떤 분들은 

일요일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영적인 회복을 이루셨으니

신약 이후엔 일요일이 안식일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삼일만에 부활하신 날은

정확히 안식일 다음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변모한다는

첫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토요일) 다음날이자

첫주의 시작이 되는 일요일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고..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실 날을 가리켜

"안식 후 첫날"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막 16:2,9, 눅 24:1, 요 20:1,19)

 

만약 예수님의 부활을 통한

영적 회복의 의미로 

안식일의 변경이 이루어진거라면..

 

이건 본질적인 문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도들에 의해 성경에 다시 기록되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한 영적 회복에

굳이 "안식일의 변경"이라는 의미를 더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 자체로 전 인류에게 

가장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영적 회복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즉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이고..

 

실제로 이런 의미와 합치되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16장 2절과 사도행전 20장 7절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행 20:7)

 

그래서 안식일이 언제냐만 따지며 

일요일날 예배 드리는 것을

비성경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인 것입니다.

 

반대로, 그런 의미 때문에

안식일 자체가 일요일로 변경됐다는 주장 역시

성경에 부합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도

기존의 안식일이라고 명명된 날에 

일어난 상황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 13:14,27,42, 16:13, 18:4) 

 

즉 안식일 자체는.. 

창조 이래로 변경되지 않았다고 보는게

성경에 더 부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본질적 기준으로 구분지어야 할게 있습니다.

 

무엇이 성경에 더 부합되느냐의 문제와

무엇이 성경적이냐의 문제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부합되느냐의 문제는

둘 중 어느 것이 성경에 더 부합되느냐를 의미합니다.

 

성경적이냐의 문제는

둘 중 어느 것이 성경적이냐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가 성경적이라면 다른 하나는

반(비)성경적이라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성경적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

비성경적,반성경적인 것은 철저히 내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부합되느냐의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할 때에만

분별이 가능한 것이고..

 

성경적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성경을 원론적으로만 알고 받아들여도

분별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절대진리와 다르게

어떤 사람이 예수 외에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런 경우는,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어도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 네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는 

4복음서의 말씀 역시 

이 말씀 자체로 성경적 진리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이웃을 괴롭히며 학대한다면..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어도

이런 모습이 성경적인지, 반성경적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성경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성경에 더 부합되느냐의 문제는 다릅니다.

 

마태복음 15장 1절 이하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제자들이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자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사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 먹는 것보다 

손을 씻음으로 청결히 하는 행위가

성경에 더 부합되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서

외적인 부정함과 정결함에 대해서 

강조하신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진다거나

(레21:11, 민 19:11-13)

월경 중인 여인(레 15:19-31)

나병환자와의 접촉(레 13:3)

짐승이나 물건 등에 손을 대는 행위를 할 때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해

구분되고 강조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음으로 외적인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이

성경에 더 부합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지적에 대해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이들이 지적한 행위는 

성경에 더 부합되어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성경에 부합돼 보이는 그 행위를 위해

그 본질은 반성경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태복음 15:3)

 

이들이 얘기한 것은 분명

하나님이 말씀하신 

율법에 부합되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부합되어 보이는 외적인 행동 때문에

지금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태복음 15: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부분에 국한된 문제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반드시

그 중심에서 기반되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외적으로는 

성경에 더 부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성경적인 부분, 즉 그들의 중심은 오히려 

성경을 거스르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25절에서

"너희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이 성경에 더 부합되느냐의 문제는..

 

합당한 중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어야만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분별이 이뤄지고 

그에 맞는 행위가 뒤따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에 부합되는 행위를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로 

나아가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토요일이냐 일요일이냐의 문제 역시

성경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에 더 부합되느냐의 문제로 봐야 하고..

 

그렇다면 이 문제는 애초부터

본질을 거스르는게 아니기 때문에..

 

토요일에 온 마음 다해 예배드리면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고..

 

일요일에 온 마음 다해 예배드리면

그 자체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성경적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인식해버리면..

 

지금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자기 종교적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한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원래 토요일이니까

반드시 토요일에 예배 드려야 하고  

일요일날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다

잘못됐다고 주장해 버린다면..

 

이런 경우는.. 

하나님앞에 결코 합당한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며

실제로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만..

 

성경에 더 부합되는지의 문제인지..

 

아니면 반드시 진리를 사수해야 하는

성경적인 문제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성탄절을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12월 25일은 사실 

예수님이 실제 탄생하신 날이 아니라

태양신 숭배에서 기원된 날짜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성탄절 날짜를 바꿔야 한다거나

성탄절은 애초부터 성경에 있지도 않은 절기이니

없애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문제도 보면.. 

성탄절의 기원이나 날짜가

성경에 부합되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성탄절을 지키냐 아니냐의 문제는

성경적이냐 반성경적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성경적이냐의 문제라면 

성탄절날 예배를 드리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앞에 죄를 쌓는 꼴이 되버립니다.

 

정말 그러할까요?

 

예를 들어

성탄절 오전, A라는 사람은..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탄생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며

더욱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겠다는 

마음을 품는 예배시간을 갖습니다. 

 

반면 B라는 사람은 

성탄절은 태양신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에

이날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다 미혹됐다고 여기며

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둘 중 누가 합당한 사람일까요?

 

창세기 50장에 보면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

총리가 되어 형들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선한 수단으로 이용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수 있는 이유는..

 

그 상황 자체가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따져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성경의 진리를 거스르면서..

 

법당에서 중이 

"부처님은 우리의 구주십니다"

라고 얘기했을 때

그 자리에 있는 불자들에게 

성령을 내려주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거스르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은 

당신이 뜻하고자 하는대로 

얼마든 선으로 바꾸셔서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또다른 예가 바로

마지막 때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

이스라엘을 반드시 회복하실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사 66:8)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이스라엘은

일루미나티에 의해 건국된 나라니까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지금 이스라엘에 모이고 있는 

유대인들은 가짜 유대인들이므로

성경 예언과 상관없다고 주장합니다.

 

아래 사진은 유대인 랍비들이 

'시오니즘과 유다이즘은 전혀 다르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킬거라는 

구약의 예언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세계단일정부를 위한 가짜 유대인(시오니스트)들과 

순수한 목적으로 고국에 돌아오는 진짜 유대인들은

다르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 모이는 유대인 가운데

혈통적으로나 동기적으로 

순수하지 못한 이들이 

일부 섞여 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대다수 유대인들은 

이천년간 잃어버린 나라가 다시 건국되어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오는 진짜 유대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루미나티든, 프리메이슨이든 

악인들의 모든 계획은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운행하는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런 음모집단의 현실적 권세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주권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게 됩니다.

 

악인들이 아무리 악한 계획을 세운다 한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선한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눈이 가려져 미혹된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많이 배워서 지식은 많이 쌓이지만,

그로 인해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10:2, 딤후 3:7)

 

그래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인류역사의 섭리에 있어서

사실적 관점과 진리적 관점의 차이가 무엇이고,

왜 진리적 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o3ilrriSCas

 

말씀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성경의 진리를 거스르지 않으시고 

그 말씀대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이냐 반(비)성경적이냐 문제는

그 자체로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반성경적 가치나 사상을 철저히 배척하는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가 이뤄져야 하는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정방향적인 섭리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성경에 더 부합되느냐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본질이 되어 

역사하시는 비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분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분별은 반드시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성령이 부어주시는 지혜가 임해야 가능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적이냐 아니냐의 문제와 헷갈리게 되고

성경을 지식적 차원으로 접근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제한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공동체로 모여서 예배 드리냐

혼자서 예배드리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 드리는 것이 

성경에 더 부합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때에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분별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잘못된 관점과 기준에 의해

때에 맞는 하나님의 섭리(거룩한 구별)를

분별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공동체로 모여 

교회당에서 예배드리고 신앙생활하는 것을

본질로 착각하며 스스로 미혹 길로 자처합니다. 

 

여성을 목사로 임명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여성을 목사로 임명하는 것은

성경에 반하는 제도라고 얘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과 디모데전서 2장에 보면

교회내에서의 여성의 활동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에 맞게 부여하신 

각자의 역할에 따른 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여자가 본연의 역할을 져버리고 

교회안에서 남자 위에 군림하여

멋대로 가르치려 하거나 

남자를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의 본질적인 의미는 

소위 요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그런 사상과 철학이 

교회안에 침투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일들을 

무질서한 행위라고 말씀합니다. 

(고전 14:33)

 

즉, 여성이 목사가 되는 문제는

성경적이냐 반성경적이냐가 아니라

성경에 더 부합되느냐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성경적이냐 반성경적이냐의 문제로 인식하고서

여자는 절대로 목회자가 되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그런 사람이나 교회를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자기가 하나님 위에 올라서서

하나님의 섭리를 제한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여러 사사들이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드보라라는 여성을

사사로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책임지게 하십니다. 

(삿 4:4~)

 

창세기 2장 18절에 보면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여자가 

한 민족을 책임지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성경에 부합되어 보이지 않는게 사실임에도..

 

하나님이 뜻하고자 하시면

여자도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는게 

하나님의 섭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뜻하고자 하시면

여성이라는 성별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일 때,

교회안에서 당신의 뜻대로 교인들을 섬기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로 부르시는 것은 

전혀 반성경적인 일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것은..

앞서 얘기한 많은 문제들에 대할 때..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부어지는 은혜와 지혜로 분별하는게 아니라

자기 종교적 지식으로 판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 율법적 올무에 갇혀서

자신은 의로운 판단(분별)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토요일이고 

토요일에 예배드리는게 성경적인데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것을 

잘못된 행위라고 하며

판단, 정죄를 일삼습니다. 

 

또 성탄절은 태양신 숭배일인데

성탄절에 예배드리는 이들은 

미혹된 사람들이라고 하며  

판단, 정죄를 일삼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본질이 무엇인지

헤아리려는 마음은 없이, 

자기 종교적 기준으로

일방통행 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들만이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다 여기는 특정 집단들이 

자신들만의 교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정죄하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성경적인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다 지옥간다는 식의 주장이 그렇고.. 

 

또 킹제임스 성경만이 

오류가 전혀 없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인데

다른 번역본을 보는 사람들은 마치

미혹된 사람들이라 정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다른 번역본보다 

원문에 더 가깝게 번역된게 사실이고

누락된 구절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어떤 번역본을 통해서든 

당신의 뜻을 내보이실 수 있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섭리의 주권을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종교적 프레임에 가둬놓고

결국 자신들이 만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앞에 중심이 합당한 사람이라면..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래서 본인은 토요일날 예배를 드리더라도..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정죄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은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이 잘됐다고 생각해서 

그 번역본을 본다 하더라도

 

다른 번역본을 보는 이들을 향해

자기 종교적 기준으로 판단,정죄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들이 

성경적이냐 반성경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무엇이 진정 하나님이 보시는 본질인지를

바르게 인식하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내가 지금 어떤 관점과 기준으로 나아가는지를

가늠해야 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순간마다

겸비함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이러이런 문제에 대해선

하나님의 관점과 기준으로 나아감으로써

바르게 이해하고 분별했지만..

 

또 다른 문제에 있어선

자기 종교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일을 자행하게 됩니다. 

 

내가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또 내가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는 바로..

 

내가 하나님의 기준과 관점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실 때

당신과 동행하며 당신의 뜻안에서

그 뜻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당신의 신부로 여겨주십니다.

 

개인적으로 이 메세지를 보고듣는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것들(비본질)에 집중하느라

하나님이 보시는 본질을 놓쳐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매 순간순간마다

내 생각과 마음을 주님께 의탁하며

그 은혜안에 거해야만..

 

오직 그 은혜로 인해 

하나님의 뜻과 기준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우리 빈틈을 잽싸게 파고들어

미혹의 올무를 놓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그분의 은혜에 의한 도우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을 경외하며 

그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시편 25:12)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이사야 33: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서 4:6)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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