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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자식들 - 이들은 이렇게 살아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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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10. 1.

"멸망의 자식들" 이들은 이렇게 살아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걸까?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이런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가룟유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오늘 영상은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한번 보고 이해가 잘 안된다 싶으면

두번,세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혹시나 

텍스트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란에 링크주소를 남겨놓을테니

클릭하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하나였지만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팔아넘기고 

배신을 때린 인물입니다.

 

잡히시기 전,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6:24)

 

예수님은 유다에게 

성경에 기록된대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행위는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일이었습니다.

(슥 11:12-13)

 

여기까지만 보면 가룟 유다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예수님을 배신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뒤에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성령안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그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를 아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신 걸까요?

 

후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1절 말씀이 이를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요 13:21)

 

만약..

첨부터 정해진 운명으로 태어난 거라면

예수님이 이렇게 괴로워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거라다면

그 운명에 맞게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죽는 것인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에 기록된대로 행하라는 말씀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삼위일체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시고

시간의 주관자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처럼 

시간에 종속되어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종속된 삶을 살기 때문에

과거,현재,미래라는 타임테이블 위에 존재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에겐 과거,현재,미래가 없습니다.

(벧후 3:8)

 

즉 시간 위에서 시간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누군가가 미래에 행할 일을 알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이

가롯 유다가 행할 일을 다 아시고

성경에 미리 기록해놓으신 것이고.. 

 

어찌되었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곳으로 오셨기 때문에..

 

기록된대로 행해야 할 그 일이

실현되어질 '현재'라는 타이밍에 가롯유다에게 

"너는 기록된대로 지금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가롯유다는 처음부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일을 해야 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게 아니라..

 

모든 시간을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가롯유다가 행할 미래의 일을 알고 계셨기에

성경에 미리 기록해놓으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49장이나 시편 22편 등,

어려 성경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태에서부터 

누군가를 미리 택하신 것처럼 

보여지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이는 태에서부터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를 미리 정해놓으셨다는 

예정론이란 교리와 합치되는 주장입니다.

 

하나님은..

태어나기 전부터 누군가에게 사명을 주시고

미리 택정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대표적으로 세례요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Feat. 삼손)

 

세례요한의 경우는 이미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눅 1:15)

 

이는 다시 말해, 요한의 경우는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아주 특별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길을 태에서부터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경우는

당신께서 특별한 통로로 사용하시는 경우입니다.

 

그와 반대로.. 

엄청난 악의 통로로 쓰임받는 사람의 경우는

결코 태에서부터 택함받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사람이 태에서 창조되는 섭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택하는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창조 섭리에 대한 주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사탄이 마음대로 태에서부터 사람을 

택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도로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더 디테일한 의미를 살펴봐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9-3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29-30)

 

여기서 보면 첫구절에 

"미리 아신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미리 아신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중심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기에 

그들을 미리 택정하시고

그에 맞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중심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요한처럼 태에서부터 성령 충만함을 입고 

그렇게 살도록 운명지어 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차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리 아셔서

그들을 당신의 선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미리 정하시는 것은 전혀 문제될게 없습니다.

 

로마서 9장을 보면..

시간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강권적인 능력의 섭리에 대해 말씀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2-24)

 

시간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은

누가 멸망받을 진노의 그릇이고

누가 영광받을 자비의 그릇인지를 

다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기준에선 이들이 다 

각각의 예비된 그릇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예비된 그릇들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그에 맞게 적용되어진다는 것이고..

 

이 능력의 섭리는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한번 정해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의미와 전혀 다릅니다.

 

적그리스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그리스도 역시 그가 처음부터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게 아니라..

 

가롯유다처럼 사탄에게 쓰임받을만한

변질된 중심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쓰임받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을 보면

적그리스도를 가리켜 "멸망의 아들"이라 지칭합니다.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이 "멸망의 아들(자식)"이란 명칭은 

요한복음 17장 12절에도 나오는데..

 

바로 가롯유다를 가리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2)

 

즉 마지막 때에 등장할 적그리스도 역시 

가롯유다와 마찬가지로

회개할 수 없는 중심의 상태가 되버렸기에..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 역시 가롯유다처럼

어떻게 사탄에게 쓰임받고

지옥불못에 들어가게 될지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회개할 수 없는 중심의 상태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요?

 

이런 중심의 상태는..

본인 스스로가 그 마음을 확정해버린 상태입니다.

 

마태복음 26장 14절 이하에 보면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길 마음을 확정하고

그때부터 계속 기회를 엿봅니다.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요한복음 13장 2절에는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말씀합니다.

 

더 나아가 누가복음 22장 3절에는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말씀합니다.

 

만약 유다의 중심이 변질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마귀가 함부로 그런 생각을 집어넣더라도,

"아니야, 이건 옳지 않아"라고 하며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심이 변질된 상태에서는 

사탄이 그런 생각을 집어넣었을 때

그 생각을 쭉 빨아들이게 되고

결구 자기 마음을 확정해버리게 됩니다.

 

즉 사탄이 넣은 그 생각은

기름밭에 불을 놓는 격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다는 

사탄의 철저한 도구가 되어

조종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은 

유다가 동석한 만찬 자리에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말씀하시고선

대놓고 유다를 지목하시며

"너는 가서 니가 할 일을 해라

하지만 그 일을 하면 화가 있을거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만약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제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예수님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대놓고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음에도 유다는 

그 마음을 확정해버린 상태였기에  

회개는커녕 그 일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요 13:27,30)

 

유다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확정해 버렸음을 의미하는

상황은 그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그렇게 죽음당한 것을 보고 

뒤늦게 후회를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여기서 가룟유다와 베드로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예수님을 저주하며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의 그 잘못된 행동을 후회하며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잘못된 방향으로 확정해버리진 않았습니다.

 

가룟유다의 경우,

예수님을 팔아넘긴 그 행동에서부터..

 

뒤늦게 후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행동까지..

 

그가 행한 모든 행동들은 다

스스로 마음을 확정해버린 채

실행에 옮긴 것들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자신을 향해 

양심을 찌르는 말씀을 대놓고 하셨음에도

이미 그 마음을 확정해 버렸기에 

예수님의 그 말씀이 

전혀 마음에 꽂히지 못했던 것이고..

 

뒤늦게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었음을 자각했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 죽어야겠다는 마음을

확정해버리고 그걸 바로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행위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한 행위는

영적으로 보면 다를바 없는 배도행위입니다.

 

하지만 그 끝이 천국과 지옥인 이유는

베드로는 스스로 그 마음을 

확정해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마음의 확정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의 비유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부자와 거지 둘 다 죽어서

거지 나사로는 천국의 아브라함 품에 안기고 

부자는 지옥에 가서 고통받고 있을 때..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다시 살려서 내 형제들에게 보내주시면

그들이 회개하고 이곳에 오지 않을거라고 얘기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서 전할지라도 

듣지 않을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보통

뭔가 엄청난 기적을 보거나 체험하면

바로 믿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마음의 문제입니다.

 

즉 자기 스스로가 

이미 그 마음을 확정해버린 상태라면..

 

누가 그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그 어떤 기적을 보더라도 

믿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마음의 확정을 

시간의 주관자되신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기에..

 

요한복음 3장 18절에도 보면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릴 때

누구든지 그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에게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보면 그 대상은 "누구든지"

즉 예외가 없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 사는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전제는, 

예수님이 강제로 문을 여시는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스스로 문을 열지 않기로

그 마음을 확정해버린 상태라면

그 문은 열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룟유다의 경우,

처음부터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건 아니었을지라도..

 

스스로 마음을 확정해버린 후 

그걸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오히려 

인류 구원을 위한 통로로 이용하신 것입니다. 

 

즉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신 것입니다. 

 

사실 가롯유다나 적그리스도만 

무슨 특별한 악행을 하다가

지옥 가는 것처럼 언급했지만..

 

사탄에게 더 크게 쓰임받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개인적 차원에서, 이들과 마찬가지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만큼

회개하지 않는 잘못된 중심을 가지고

지옥을 향해 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아실 수 있지만..

 

우리는 누가 구원받을지

구원받지 못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뜻대로의 일을 감당해나가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은 미래를 다 아시니까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지 못할 걸 아실텐데

왜 이런 말씀이 기록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디모데전서 2장 4절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들어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이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노아 시대 때

죄악으로 물든 타락한 인류를 보시고선

한탄하시며 괴로워하시는 상황이 그러하고..

(창 6:6)

 

당신과 언약 맺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도하고 죄악된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돌아오라 호소하시며 

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신 경우가 그렇습니다. 

(렘 2:5, 3:12,14, 호 3:1)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섭리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주권)에 의한 섭리이고..

 

두번째는 

하나님의 속성에 의한 섭리입니다.

 

능력에 의한 섭리는 

하나님께서 시간의 주관자되시는 분이기에..

 

미리 일어날 일들을 예언으로 기록해 놓으시고

그에 맞게 당신의 섭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른 말로 "예언서"라고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속성에 의한 섭리는

"사랑과 공의"라는 두 가지 속성에 의해

인간을 구원하시거나 심판하시는 섭리입니다.

 

특별히 이땅에..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적용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의 섭리만 적용됐다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직후에

그(후손)들의 타락한 미래를 살펴보시고서..

 

이땅을 향한 섭리를 

그 자리에서 바로 접으셨을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을 때도

그들이 배도할 것을 미리 살펴보시고서

언약을 맺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손수 창조하신 

인간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바로 

가장 원초적이자 가장 본질적인 

섭리의 중심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래를 다 보실 수 있으니

그에 따른 능력의 섭리로만 역사하실 수 있음에도..

 

인간을 향한 사랑의 속성을 드러내시며

그에 따른 섭리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가

자식이 어떤 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다 알지만

그럼에도 자식이니까 그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할 운명을 주셔놓고

사랑의 속성을 드러내시며

마음 아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포함되지 않는..

한 마디로 말이 안되는 경우입니다. 

 

즉 가룟유다나 적그리스도의 경우,

하나님이 미래를 볼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기에 

미리 일어날 일을 성경에 기록해놓은 것이지..

 

이미 정해진 목적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진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나 가룟 유다 등

이들이 마치 정해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불쌍한 사람들인 것처럼 여기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오해하는 분들이 

제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문을 열면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하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마음을 

스스로 확정해버리면

그 사람에겐 하나님의 어떤 역사도

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긴다고 말씀합니다.

(출 33:19, 롬 9:15)

 

또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롬 9:18)

 

스스로 완악한 마음을 확정해 버렸을 때

하나님은 그 마음에 따른 

사탄의 역사를 허용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일까지도 

당신의 뜻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왕 바로가 

그렇게 완악한 마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은 그런 바로왕을 당신의 뜻을 위한 

도구로 택하여 사용하신 것입니다. 

(롬 9:17)

 

우리가 보통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직접 주도하고 행하시는 일에

국한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사람이 주도해서 행한 것 같고

사탄이 역사해서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론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모든 섭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셨다. 

"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여라."

(사무엘하 24:1_표준새번역) 

 

그런데 같은 상황에 대해

역대상 21장은 다르게 말씀합니다.

 

"사탄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일어나서 다윗을 부추겨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였다."

(역대상 21:1)

 

사무엘하 24장 1절에선

하나님이 다윗을 부추겨서 

인구를 조사하게 하신 거라고 말씀하지만..

 

역대상 21장 1절은 

사탄이 다윗을 부추겨서

인구를 조사하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기록상의 오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닙니다.

 

사탄.. 

하나님의 주권이 허락하는 범위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다윗을 부추겨서 

인구를 조사하게 한 것이 맞지만..

 

그 본질적 실상은

사탄이 그런 일을 행한 것 자체가

하나님이 뜻하신 주권의 섭리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해도 맞습니다.

 

어떤 대기업의 영업부에서

제품 판매 실적을 많이 올렸다면..

 

표면적으론 

그 회사의 영업부가 일을 행한 것이지만..

 

본질적으론 

그 회사가 그 일을 행한 것입니다.

 

즉 영업부는

회사에 종속된 부서로써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진리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 

악을 대표하는 사탄이 같은 목적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탄의 존재가치는 피조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나는 범위에선

활동할 수 없는 놈이기에 이 비유를 얘기한 것입니다. 

 

그 회사에 소속된 영업부가

다른 회사의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 

말이 안되는 일인 것처럼..

 

사탄 역시

하나님의 주권의 섭리를 벗어나서

활동할 수 없습니다.  

 

즉, 악한 존재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뜻하시는 도구로 

사용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셨다는 살후 2장 11절 말씀을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9-12)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행하시는게 아니라..

 

첫구절에 언급된 것처럼

사람들을 미혹하려는 사탄의 활동이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난 일이기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기록된 것입니다.

 

이런 영적 원리에 의해 

말씀의 표면적 의미안에 감춰진 

진짜 본질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즉, 표면적으로 보면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도록

하나님이 직접 그렇게 하신 것처럼 보여지는 

구절들의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은 

미래의 일들을 다 알 수 있는 분이기에

그에 맞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게 기록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누구도 예외없이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그에 따른 보응을 받게 되는 책임을 

우리 스스로가 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처음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 인간에게 정해놓으신 

유일한 불변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마음을 

스스로 확정해 버림으로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지 못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내 생각과 지식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성령안에서 늘 우리 마음을 점검하고

바르게 분별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주님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안에 온전히 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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