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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들이 평신도들보다 영분별을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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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10. 7.

목사님들이 평신도들보다 영분별을 못하는 이유!

 

 

 

얼마전에..

wea를 반대하신다는 어떤 신학교수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영상으로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과 신학교는 

WEA에 가입하면 안됩니다.

신학이 다 무너져요. 

우리가 어떻게 지난 100여년 동안 

개혁신학을 지켜왔는데.."

 

"우리 합동총회가 지향하는 개혁주의 신학과

방향이 일치하지 않기에 WEA와 함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표면상으로는 WEA를 반대하는 것이니

무슨 문제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 얘기를 듣고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WEA를 반대하는 이유가..

 

하나님 마음 전혀 헤아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패역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지켜온 신학이 무너지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신학 교리와 맞지 않아서

반대하는 거라면.. 

 

표면상 배도를 반대하고 있지만

그 기준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광명한 껍데기를 가장한 또 다른 미혹에는

속절없이 그 문을 열어주고 

혼합의 길로 나아가버릴 수 있습니다.

 

교회적 차원의 배도는

WCC나 WEA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배도를 반대하는 그 이유가

단지 저런 신학적 기준과 관점 때문이라면..

 

설사 지금은 

카톨릭과 연합을 반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하더라도..

 

카톨릭 교황을 중심으로

모든 종교가 하나로 연합되는 평화적 물결이

전지구적 시대흐름이 되어 

그 앞에 맞딱드리게 됐을 때..

 

과연 그 흐름앞에서도 

그동안 고수해온 "신학"을 지켜내기 위해

혼합의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있을까요?ㅠ 

 

과연 타협하지 않고

구별될 수 있을까요? 

 

사실 이건

몇몇 사역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이런 기준과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그 기준점이 다르더라도..

어떤 상황에선 우연히 같은 방향을 지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한결같은 태도를 확립할 수 있는 이유는

기준점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점은 바로.. 

 

문제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뜻을 온전히 분별하여

그 뜻대로 나아가려는 중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점"이 아니라면..

 

그 끝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다른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온전히 뿌리내리지 않았어도 

센 바람이 아니면 뽑히지 않던 나무가 

차원이 다른 광풍이 불어닥치면

뿌리뽑히는 것처럼.. 

 

이게..

조만간 닥치게 될 환란 속에서

상당수의 제도권 교회들이 

미혹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환란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낼 수 있는 이유는..

 

성령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준점이 다르다면..

 

은혜로만 이겨낼 수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은혜가 임할 수 없기 때문에..

 

내 생각과 교리를

내 마음대로 합리화시키고 타협함으로써 

혼합의 잔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목회자와 사역자들이

이런 종교적 틀에 의한 인본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종 WCC,WEA와 연합을 앞장서서 주도하거나

이런 배도행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우리같은 평신도들도 

저게 얼마나 영적으로 심각한지를 분별하는데

목사라는 분들이 어떻게 저 심각성을 

모를 수 있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평신도라 불리는 일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또는 교단을 이끄는 목사님들의 시야의 폭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는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들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교인들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지만..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보면

교인들이 교회에 더 많이 출석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을 

본질적 사명과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 활력있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교회의 외적인 시스템을 바꿔서 

교인들이 더 많이 찰 수 있게 하는게

가장 큰 관심사안입니다.

 

동료 목사님들이 서로 만났을 때도

교회가 어떻게 하면 더 부흥(?)할 수 있는지..

조언을 듣고 팁을 공유하며

그런 부분에 집중적인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부분, 

특히 민감한 영적인 부분에 대한 

시야가 열리는건 쉽지 않습니다.  

 

시야의 폭이

그만큼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교회 규모가 크고작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를 담임하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공통적인 부분입니다.

 

100%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관심사안과 

시야의 폭이 이러한게 사실입니다. 

 

물론, 예배 때는..

하나님, 예수님을 잘 섬기고 믿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실제 교회공동체를 운영해나가는

목회자나 사역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안은 

이런 현실적 부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 말씀만을 전하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의 뜻대로 교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을 본질적 사명으로 여기며 

그걸 위해서 전심을 다하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은 안타깝게도 극소수입니다.

 

영적인 기준점이 분명한 목회자라면

처음엔 WCC나 WEA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조명하심에 의해

결국 이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 뜻대로 행동하는 열매로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너무나 드물다는게 

오늘날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제법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의 경우..

 

교회의 행사, 세미나, 교육 등

교회내의 범위에 국한된 차원에 모든 관심을 쏟고 

교회가 외적으로 활력있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방향으로만 시야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들과 서로 교제하고 연합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사역의 폭을 확장시키는 

현실적 부분에만 모든 집중을 다하게 됩니다. 

 

교단을 움직이는 목사님들의 경우도,

우리 교단이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해서

교단의 명예를 드높이는 부분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들이 서로 연합하고 

목회자들이 서로 교류하는 등

이런저런 사역적 활동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것에 치중합니다. 

 

물론 내세우는 명분은 하나같이 다..

복음과 선교적 차원이라고 말합니다.

 

교단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시야 자체가 

이런 육적인 차원, 인본적 차원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연합하고 교류함으로써 

사역적 활동폭을 넓히고

교단의 명예를 드높이는 

그런 방향성만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WCC나 WEA를 바라보는 기준과 관점이

일반 성도들과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WCC나 WEA와의 연합을 

주도하고 찬성하는 목사님들의 경우.. 

 

서로 연합하고 교류함으로써

우리 교단과 교회가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인본적 차원으로 그 방향성이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WCC(WEA)가 본질적으로 무슨 문제이고

왜 연합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영적인 고찰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교계에 아주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예장합동 교단은 WEA와의 교류를 단절해선 

안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더 확대해야 하는데 

이런 큰 국제조직과 교류를 단절하면

시대를 역행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작년 9월 예장합동 총회에서

WEA와 교류를 단절해선 안된다고 

목소리 높이던 목사들의 주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우리 교단이

WEA와 교류를 단절해버리면 

우리 교단이 자칫 고립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명분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어떠한지는 아예 안중에도 없고

영적인 거룩함과 순결함을 지켜야 하는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해 버립니다.

 

애초부터 문제를 바라보는 기준과 관점이 

현실적이고 인본적인 방향으로 고정된 상태에서..

 

다른 각도로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범위와 방향을 벗어나는 문제제기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도, 분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문제를 대하는 기준점 자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보다 영적인 분별을 잘해서

하나님 뜻대로 솔선수범 해야 할 분들이..

 

일반 성도들보다 눈과 귀가 가려져버린

기가막힌 상황이 되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목회자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교인들 역시 이분들이 주도하는 

영적흐름대로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맹인이 맹인을 인도함으로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마 15:14, 눅 6:39)

 

그래서 공동체를 책임지는 목회자나 

교단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라면 

더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날마다 겸비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함으로써

그 기준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내 시야의 폭을 좁히고 

기준점을 바꾸려 하는 

거대한 현실의 벽앞에서도..

눈과 귀가 닫히지 않고..

 

끝까지 타협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정진해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현실앞에 그 진리의 기준점을 

맞바꿔버린 상태입니다.

 

현실앞에 그 기준점을 바꿔버리고

시야의 폭은 현실에 철저히 고정시켜 버렸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그분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더 많이 받고 더 많은 일을 맡은 사람일수록 

더 큰 책임과 책망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더 많은 것을 받고 

더 많은 일을 맡았다고 생각된다면

반드시 이 말씀을 중심에 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을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구덩이로 인도하게 됩니다.

 

주님 오심이 매우 가까운 지금, 

굵직굵직한 배도의 일들이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앞에서.. 

 

주님의 마음과 뜻을 온전히 헤아리고 

맡겨진 양떼들을 하나님께로 잘 인도함으로써

주님앞에 칭찬받는 인도자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진짜 인도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그분의 실제적인 인도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편 48:14)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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