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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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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10. 13.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미가서 6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과 언약 맺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한다는 말은

실시간으로 진행되어지는 것을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던져주고

니가 알아서 잘하라는게 아니라..

 

삶 가운데 있는 상황과 문제들 가운데

그분과 함께 행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교리들을 주시고

너희들이 알아서 그 교리에 맞춰서 살고

나는 니들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관여하시고 

그렇게 그분과 함께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 역시 달달 외워서 

거기에 맞춰 종교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적용될 수 있도록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성령은 단지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일 뿐이고 

믿음생활은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동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성령님과 함께 나아가야만 됩니다. 

 

함께 나아간다는 말은

그분의 인도하심 따라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 전에 반드시 내 중심이 

바로 서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즉, 성령의 인도함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이 바로 서 있을 때

성령께서 그 마음을 받으시고

우리 삶을 인도해 가십니다.

 

그런데 이런 일체된 동행함이 아니면..

 

성령 따로.. 내 능력 따로..

인도함 따로.. 내 믿음 따로..

 

믿음과 행함을 분리시킨 채

현실은 현실이고 말씀은 말씀이라는 

이상한 기준점으로 

진리를 변질시켜 버립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은

단지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진리안에 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삶을 친히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5장 18절에 보면..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을거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25절에 보면..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행하는 삶을 사는 일이 

자연스런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자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는 것 역시

성령안에서 그 인도함을 따라 나아갈 때

온전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안에서

그분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산다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직접 움직여서

그 인도함대로 나아가도록 역사하기도 하십니다.

 

평소에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령님과 꾸준히 교제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이런 성령님의 직접적인 역사도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이 말씀안에는

바울의 겸손함도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로 바울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행했든간에

그 모든 것들에는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그 인도함따라 나아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우리 믿음의 정도(正道)인 것입니다.   

 

이처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보고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으로

주님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볼 때도

지식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길 원하시는지를

헤아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게 안되면..

교리에 기반한 종교적 틀에 갇힌

신앙생활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실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일은 실현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목회자나 사역자들이

교리에 기반한 종교적 기준과 관점으로

교인들을 양육함으로써.. 

 

그렇게 형성된 종교 교리가 

믿음의 기준점이 되버렸습니다.

 

배도한 교단에 소속된 교회에서 벗어나

거룩히 구별돼야 한다고 하니..

어떤 분은 저에게 무교회주의자냐고 묻습니다.

 

마지막 때에 관해 이야기하면

어떤 분은 세대주의 종말론자냐고 묻고..

 

성령의 인도함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니

행위구원론을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때 

우리가 제거해야 할 가장 본질적 우상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적 틀입니다.

 

이 종교적 틀안에

내 생각, 지식 등 모든 판단기준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종교적 틀에 국한된 내 생각과 지식이

실제 나를 움직이는 기준점이 되버립니다.

 

그래서 무슨 메세지를 전해도..

무교회주의자니, 행위구원론자니, 세대주의 종말론자니..

 

틀에 갇힌 교리적 관점으로만 따지려 하고..

 

실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분이 실제 역사하시는 섭리가 어떠한지를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분별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황과 환경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들과도

타협하고 혼합하는 일은 

얼마든 가능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우상이 

우리안에서 제거되지 않으면

우리의 기준점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타협과 혼합, 배도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적 차원이든

교회적 차원이든 동일한 원리입니다. 

 

이전 영상에서

목사님들이 어찌하여

다른 기준점으로 행동하게 되는지를

자세히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준점이 아니라면

광명한 미혹의 덫에 걸려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예배활동의 자유 등

기독교적 가치를 주장하는 유명 정치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정치인이

모든 종교가 평화적으로 연합하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고

그런 정책노선을 지향합니다.

 

앞서 열거한 저런 기독교 가치들이

우리가 사수해야 할 진리적 가치가 맞다 할지라도..

 

기준점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고 있지 않다면..

 

저 유명 정치인이 

저런 친기독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지지하고 따라갑니다. 

 

교회들을 위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데

어찌 지지하지 않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우리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10가지 선한 행위를 했더라도

한가지 악한 행위를 한 후 

그걸 회개하지 않았을 때..

 

에스겔 33장 13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회개치 않는 그 악한 행위를

그 사람의 중심의 열매로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냐를 분별할 때..

 

그가 수십가지 선행을 했더라도

악을 선하다 하는 한가지 악행을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수십가지 의로운 행위에 꽂혀서

그 사람을 추종하고 따라가버리는 것은

미혹 길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정치인이 설사 

표면적으로 이런저런 친기독교 정책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 진짜 의도도 알 수 없을 뿐더러..

 

또 다른 이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태를 보일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준점으로 삼는 이들이라면 

하나님안에서 바르게 분별함으로써 

함부로 추종하거나 따라가지 않습니다.

 

성경에 반하는 가치들에 맞서서

성경적 가치를 사수하는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우리의 기준점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어야만..

 

그 일들을 

하나님의 뜻안에서 그분의 은혜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선행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과정입니다.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혹시나

그 기준점에 어긋나는 

본질적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면..

 

내버릴 땐 내버리고

선회해야 할 땐 선회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준점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지 않는다면..

 

그런 기독교 가치들이

도리어 우상이 되어

미혹의 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표면적으론 진리적 가치를 

사수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실상은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옳다 하는 자기 생각과 지식이

기준점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자기 생각이 우상이 되고

자기 지식이 우상이 되고..

사람이 우상이 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기준점으로 두고 있지 않다는 말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고 있을 때에야

그분이 우리의 기준점이 되시어..

그 뜻대로 판단(분별)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 3장 3절에 보면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하나님과 뜻이 같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선

내가 이런저런 교리를 빠삭하게 

꿰고 있어야 하는게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이 어떤식으로든 역사하실 수 있도록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지 않은 상태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안에 채워진 다른 것들로 인해

실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는 커녕,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로 가면서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사역을 잘 하고 있고

스스로 옳은 길로 가고 있다 여깁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과 

변론을 벌이시는 상황이 나오는데..

 

37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너희가)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스스로 옳다 여기는 율법교리를 기준삼아

진리되신 예수님을 판단하고 대적하는

패역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율법교리들이 

그 내면에 가득 차 있는 상태였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섭리가 

그들에겐 적용될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 중심이 변질되어 버리면..

인본적인 생각과 지식들이 

그 내면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점은 당연히

자기 생각과 지식이 되버립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실상은 배도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생각과 종교적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안에 거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내면의 우상들을 제거하고

우리 마음에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둠으로써

그 기준점을 명확히 할 때..

 

그분의 실제적인 인도함을 받고

그분과 함께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자세이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심으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렇게 될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타협하거나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 

그런 사람들을 찾고 계시고..

 

그런 사람들이 바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첫열매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모든 영역 가운데 미혹이 차고넘치며,

어둠과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는 때입니다.

 

이런 혼란한 때에

겸비함으로 더욱 스스로를 돌아보고..

 

어떤 상황과 문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분명한 기준점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우리 중심에 두고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벧후 3:17-18)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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