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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사람들! (환상, 예언, 치유, 방언통변보다 더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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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10. 28.

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사람들! 

(환상, 예언, 치유, 방언통변보다 더 중요한..)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실 때

그 광경을 본 어떤 여자가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누가복음 11:27)

 

우리가 보통..

수십억의 돈을 버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를 볼 때

그 사람들의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저런 사람을 아들(딸)로 둔 부모는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예수님을 향해

저런 말을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엄청난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과 가장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낳은 부모에 대해 얘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그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복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누가복음 11:28)

 

다시 말해, 

예수님과 육적인 관계에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한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그대로 행하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가장 복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태복음 12장과 마가복음 3장에 보면

어떤 한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마 12:50, 막 3:35)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사실 우리가 "직접적"이라는 말을 할 때는

육적인 차원에 국한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고 

귀로 들려지고 몸으로 체험하는

육적인 차원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이런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들만을

본질적인 것들이라 여기고..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먹인 태와 젖이 복되다고 말한 저 여자처럼..

 

믿는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런 육적인 관점과 기준에 의한 사고를 기반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환상을 보고, 어떤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하고 병 고치는 능력을 행하고..

기도할 때 눈물이 쏟아지고 

방언이 술술 나오고 방언통변을 하고 등등..

 

육과 혼의 감각적 부분에만 집중하며..

 

이런 현상적인 것들이 나타나느냐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안에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삼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육이 아닌 

영적인 차원에 있기 때문에..

 

영적인 차원에서 본질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복하는 것이고..

 

이렇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순복하며 나아가느냐

의 여부를 통해 알 수 있고..

 

오직 이것만이..

내가 하나님과 직접적 관계안에 거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입니다.

 

그렇지 않고..

육과 혼의 감각적인 부분에만 집중한다면

십중팔구 미혹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22-23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1절에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

 

22-23절에선..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는데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판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조금 의아한 것은..

 

예수님께 불법자로 판결받은 이들은 

자신들의 세치 혀로 입만 놀린게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실제 드러나는 능력들,

즉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는 등의

놀라운 능력들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이런 능력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실제로 이런 능력들을 행했는데

그런 능력들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행한 것일 수 있을까요? 

 

그전에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이들이 설사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능력을 쏟아냈다 할지라도

그런 능력 자체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안에 거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방언통변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더라도..

 

실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분별하여 그 뜻대로 행하는

본질적인 관계안에서 

나오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런 일들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 말씀처럼

하나님께로 오지 않고

사탄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서

그런 기적을 행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능력 자체가 하나님께로 왔다 하더라도..

 

그 능력을 받고 통로로 쓰임받는 사람이

하나님과 본질적인 관계안에 온전히 거하면서

그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게 아니라면..

 

그들에게서 계속 그런 능력이 나타나더라도

통로로 쓰임받는 본인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버리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런 자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그들이 불법자로 판결받은 이유는..

 

자신들에게서 그런 능력이 나타나고 있으니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안에 

거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채.. 

 

정작 자신들의 중심이 변질돼 버렸음에도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이 높임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 했기 때문입니다.

 

본질은 영적인 차원에 있습니다.

 

하지만 육적인 차원에 갇혀버린 상태에선

영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방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육적인 차원에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병을 치유하니

스스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 착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합니다.

 

사랑은..

우리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으며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보통 

감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랑이 감정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곧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무형의 가치들 가운데

가장 본질(영)적인 가치인데..

(고전 13:13)

 

사람의 감정이나 느낌과 같은 혼의 영역에서 

극히 일부로 드러나는 형태만 가지고 

사랑을 감히 정의할 순 없습니다.

 

이 사랑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향한 

가장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거시적으로 보면..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사랑하는 것,

즉 사람을 영적으로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통로로 쓰임받는 사람이 

어떤 능력들을 부여받았다면..

 

그 능력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일,

즉 사람을 살려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단순히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육적인 일에 그치는게 아니라..

 

그런 역사를 통해 사람들을 살려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그 능력을 부여받은 통로자의 사명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을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말씀하고..

 

2절에 보면..

"내가 예언의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런저런 많은 능력들이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하나님께 인도하는 

본래의 통로로 쓰여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보면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고

병 고치는 기적을 행하는 등 

이런저런 은사를 받았다는 이들을 보면..

 

그 일들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게 아니라

자신을 추종하고 자신을 따르게 함으로써

 

되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로 나아가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

 

예수님은 

영적인 차원에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차원에 매여 있는 유대인들은

이 말씀의 진짜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요 6:41)

 

그리고 예수님은 더 심오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요한복음 6:51)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육적인 차원에 매여 있는 이들에겐

아주 경악할만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육이 아닌 영적인 차원이

본질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씀을 하셨고..

 

진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

즉 사람들의 영(생명)을 살리기 위해

당신께서 친히 대속물이 되시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이고

그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적인 차원에 갇혀 있는 이들은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생명인 영을 살리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한 사명만을 감당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

(요한복음 6:38)

 

또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명을 감당하시던 3년 동안

그냥 영의 말씀만을 선포하신게 아니라..

 

육적인 차원에서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는 등의 능력들도 함께 행하셨습니다.

 

살려야 하는 것은 영이지만..

육적인 차원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메시야로써의 능력을 행하신 것인데..

 

그런 능력들을 행하심으로써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완악한 마음을 품고 있던 유대종교인들에게

핑계치 못하게 하신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생명인 영을 살리기 위해 

육적인 차원에서 그런 능력들이 

필요했던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들어 고통받는 이들과

귀신들려 고통받는 이들에게..

 

육적인 치유를 행하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이끄셨던 것입니다.

(마 4:24, 요 5:14)

 

예수님께서도 

위로부터 부어진 그 능력을 행하실 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능력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그런 능력 행함이 목적이 되버리거나

그런 능력을 행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증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따로 70명을 세우셔서 

그들에게 이런저런 능력을 주시고

사람들에게 그 능력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 70명이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행하며

회개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런데.. 

이 70명 가운데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고..

 

가룟 유다 뿐만 아니라

이 당시 능력을 행한 이들 대부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능력을 부여받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행했다 하더라도..

 

그 능력 자체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안에 거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본질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헤아림으로써

그 말씀(뜻)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는 이들이

비록 육적인 차원에선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라도..

 

본질적으론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된

직접적인 관계안에 거하는 이들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은사들이 있거나 

육적인 체험들이 있다면..

 

그런 것들은 자신 또는 타인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지금 당장 내 자신을 돌아볼 때..

 

하루에 3-4시간씩 

방언으로 술술 기도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하는 능력은 없더라도..

 

귀신을 쫓는 능력도,

병 고치는 능력도 없더라도..

 

기도할 때마다 눈물콧물 쏟아져 나오는 

은혜가 넘치는(?) 현상들이 없더라도..

 

날마다 겸비한 마음으로

내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말씀으로 비춰보며 

그렇게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안에 거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 보면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

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많은 경우, 

이 말씀을 단순하게만 해석하여.. 

 

나 역시 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니 

스스로 복된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런 단순한 의미로 받아들일게 아니라,

내가 지금 사는 삶 가운데 

면밀하게 적용시켜야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여기서 "보지 않고 믿는 자"라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현상이나 체험이 있든없든..

 

내가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그 믿음안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그 뜻대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중에 눈물이 안나오고

내적 음성이 안 들리고

뭔가 임재가 안 느껴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나에게 생기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고

믿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바쁩니다.

 

이러하다면 우리는 진정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꾸만 보여지는 것들에 집중하며

정작 본질적인 것들을 놓쳐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육적인 것들에 집착하려는

사람들의 잘못된 중심을 간파한 원수마귀가

광명한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여기저기서 

자신이 하나님께 음성을 들었다며

잘못된 것들을 전함으로써

사람들을 미혹으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날마다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겸비함으로

하나님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다 이 광명한 미혹에 휩쓸려 버립니다.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행위들로

말씀과 기도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고 

기도에 힘쓰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에스겔 11장 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으로 따르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라고 말씀하시고 

그 마음의 행위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6절을 보면..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우리의 마음이 본질이기 때문에..

 

그 마음(중심) 상태가 

하나님앞에 합당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온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말씀을 익히는데 열심을 기울이면..

 

그 말씀이 지식으로 쌓여서

오히려 나를 교만케 할 수 있고..

(고전 8:1)

 

또 그런 상태에서

기도행위에 열심을 기울이면

나를 미혹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눅 18:11-14)

 

온전한 마음을 1이라고 하고

온전치 못한 마음을 -1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1에 10을 곱하면 -10이 되고 

100을 곱하면 -100이 되버립니다.

 

반면 1에 10을 곱하면 10이 되고

100을 곱하면 100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밭이 온전한 상태라면 

그 마음밭에 뿌려지는 기도와 말씀에는 

반드시 성령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에..

 

정결한 영의 양식이 되어

그 열매가 10배, 100배가 됩니다.

 

즉 내가 행한만큼 합당한 열매가 됩니다.

 

반면, 그 마음밭이 오염된 상태라면

성령의 은혜가 임할 수 없기에..

 

그런 상태에서 행하는 종교적 열심은 

정결한 영의 양식이 아닌

영적 방사능의 작용을 함으로써 

오염된 열매들을 10배, 100배 양산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건해보이는 외적 행위를 하기 이전에..

 

우리 마음(중심)이 

하나님앞에 어떠한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함에 있어서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뜻대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중심에서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그 말씀은.. 

더 깊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아가는 

영의 양식이 되는 것이고..

 

그 기도는..

주님과 더 깊고 친밀한 교제로 이어지는

영의 양식이 됩니다.  

 

시편 148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세상의 만물들이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뜻대로 지음받은 후

하나님의 뜻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을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시 148:3)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시간에 예배의식을 행하고 

목소리로 찬양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삶 가운데 나오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들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두손 들고 눈물 흘리며 찬양하는 

은혜가 넘치는 시간을 갖고 나서

교회밖을 나오면.. 

 

내가 바라는 것을 소망하고 

내 생각이 기준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하다면 우리는 진정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안에 

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설사 기도할 때나 찬양부를 때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더라도..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늘 간구하고..

 

내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겸비한 마음으로 주님께 내어드리며

그렇게 주님 뜻대로 나아가는 사람이 

진정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눈에 보이지 않고, 귀로 들리지 않고

느낌(감정)으로 와닿지 않더라도..

 

가장 본질적인 것들에 모든 집중을 다하면서..

 

영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적인 존재로써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28)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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