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남보다 쬐금 더 아는 백혈병 이야기

che 2014. 5. 20. 14:08

기일은 아직 좀 더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있을때 가지않으면 쉬는 날이 별로 없는 저로써는 찾아뵙기 힘든지라

지난주 수요일 짬을 내서 잠시 다녀왔습니다.

모란공원이 경기도 마석에 있어서

제겐 참 쉽지않은 위치죠.

조화들 속에 장미를 꽂아놓고 잠시 얘기 나누고 왔죠.


이분을 기억하는 백혈병환자분이나 헌혈자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가가 지금은 많이 안계실것 같습니다.

만 8년

서서히 잊혀져갈듯합니다.

그러나

환자 운동에 있어서 결코 잊혀져서는 안되는 분중 한분이기에 헌혈자인 저는 계속 기억하고 되씹으려합니다.


백혈병 환자분들중 만성백혈병 환자분들 그중 글리벡을 드시는 분들 그리고 만성백혈병과 무관하게 글리벡을 드시는 분들중 대부분 이분을 기억하는 분은 안계실겁니다.

아마도...

그러나

이분을 비롯해 당시 한국백혈병환우회가 유일하게 고가의 신약이였던 글리벡을 보험적용시켜 환자에게 부담이 적게해서 드실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아무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환자단체, 그리고 환자 지원 사단법인과 재단법인들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죠.

그들 재난과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 생색나는 일들이나 하지

제도개선이 환자의 권익을 위해서는 결코 나서지 않는게 그들입니다.


바로 그 시작이 글리벡 싸움이였고

한국백혈병환우회의 전신 한국만성백혈병환우회가 그 싸움을 벌인 유일한 아주 힘없고 작은 단체였지요.

죽음을 무릅쓰고 다국적 제약사와 싸운 환자 그리고 환자단체

어쩌면 당시 인권과 민주주의가 중요시되던 시기였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보게됩니다.

이명박정부 들어서 땅에 추락한 인권은 그 당시 인권에 대한 정부 기관의 생각과 판이하게 다른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런 단체에서 가장 눈에 띄게 보였던 사람이 바로 김상덕씨였습니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백혈병 후유증으로 인해 몰골이 말이 아니였으니까요.

백혈병은 나았어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지금도 많죠.

그런 몸으로 환자 운동의 일선에 나선 사람들이 당시 한국백혈병환우회 1기 사무국 직원 약 5명이였습니다.

그중 일부는 현재 정상 생활을 하고 계시기도 하죠.

강주성 사무국장,김상덕씨,김경애씨,김승숙씨,이문석씨

정말 빈약한 재정속에서 힘든 몸을 추스리고 환자권리 운동을 한 우리나라 유일의 환자 단체였습니다.

문제는

지금 2014년에도 역시 유일한 환자권리 운동을 하는 단체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군소 환자 권리 운동을 하는 분들은 힘이 없고

환자권리 운동을 하던 많은 환자질환 단체들이 예나 지금이나 제약사와 손을 잡고 환자권리는 나몰라라 하는 현실이고

대다수의 환자와 관계된 사단법인과 재단들은 국회의원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힘을 불리거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데만 관심입니다.

그 어느 사단법인 재단법인에서도 환자 권리를 위해 제도개선 활동을 하거나 정부나 제약사에 대응해 싸우지 않습니다.

손쉽고 생색나는 활동이나 관심사죠.

가발기증,헌혈증서 받아서 기증,기부받아 환자에게 연결해주는 일, 기타 등등....

대댜수의 단체들이 하고 있는 활동입니다.

10년전이나 달라진게 하나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요...?


인간은 누구나 기득권 측면이 있고 비기득권 측면이 있을겁니다.

어떤 사람은 비기득권 측면이 거의 찾기 힘든 사람도 있고

또 어떤이는 기득권측면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


모든 사람이 자신의 비기득권 측면만 얘기한다면 싸움밖에 없을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내가 아닌 타인의 비기득권측면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잘 사는 나라가 선진국이지

비장애인만 잘 사는 나라가 선진국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쇄약해진 몸으로 고 김상덕씨는 수년간 환자권리운동에 온몸을 바치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 남은 사람들의 몫일 것입니다.

좋은 세상은 결코 노력없이 만들어지지는 않을것입니다.


아래는 고 김상덕씨의 아프기 전 아주 잘 생긴 모습이 납골당 사진입니다.

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청년의 모습이죠.



 
 
 

헌혈/남보다 쬐금 더 아는 백혈병 이야기

che 2013. 11. 3. 20:32

제가 헌혈에 관한 본격적인 활동을 한게 2000년경입니다.

벌써 만13년이 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참 많은 것이 바뀌었고

좋아진것도 있습니다.

여러사람들의 노력으로 환자들 특히 수혈자와 백혈병환자들은 많은 해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택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아닌 즉 그런 노력을 외면한 단체들 역시 잘되고 있는걸 보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가 헌혈에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본 몇가지가 있습니다.

헌혈에 관련된 활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백혈병환자들과 관계된 것들에도 관심을 갖게되서 활동을 한것들이 있는데

주로 관계된 단체는 한국백혈병환우회(그 전엔 글리벡 환우회였을겁니다.) 그리고 건강세상네트워크(그전엔 건강연대였죠)입니다.

요 근래에는 특별한 만남이 없습니다.


처음 관심가졌던게

2000대 초반 많이 회자되던 글리벡 - 해결 - 약가 보험적용 및 제약사에서 환자에게 비용을 되돌려줌

그리고 혈소판 공여문제(이건 1단계 ,2단계로 나눠서 해결된 것들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수혈비검사 이중청구 문제 - 해결

그 다음으로 의료비 부당청구 문제(이건 제가 개인적인 관심사로만 생각합니다.) - 앞으로 계속될 문제

그리고 헌혈증서 폐지 문제입니다. - 미해결

백혈구 공여자 문제 - 해결불가

뭐 이것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큰것들로 이렇습니다.


글리벡때 제가 처음 느꼈습니다.

아....

환자를 위한다고 존재하는 단체란것들이 환자를 이용해서 운영되는 것이지 실상 환자를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구나...

만성백혈병 환자와 일부 다른 병증 환자에게 기적같았던 신약 글리벡을 보험적용시키기 위해 어떻게하면 저렴하게 환자들이 복용할 수 있을까를 위해

당시 보험이 안되던 그래서 1달에 수백만원 들여서 평생 먹을지도 모를 약을 사먹었던 사람들이 투쟁을 했었습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태동기에 시민사회단체들의 도움도 있었구요.

정작 백혈병과 관련된 환자단체들은 수수방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결국 환자들이 글리벡환우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인권위 농성을 해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환자단체의 제대로 된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한국백혈병 환우회는 그 이후로도 재정적으로는 계속 열악했고 환자의 권익과 제도개선을 위한 활동을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당시 다수의 큰 병원에서 환자에게 혈액검사비용을 이중청구하던것을 알렸고 더 이상 병원에서 이중청구하지 않도록 했고 환자들에게 비용반납도 받아냈죠.


그 무엇하나 더 중요한게 있을까싶지만

이어서 혈소판 문제 1탄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건드렸습니다.

물론 이 단체만 건드린것은 아닙니다.

저도 함께 건드렸고

그 이전에도 건드렸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사람들이 속한 모임이 그 모임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움직이느냐죠.


당시 헌혈자 모임과 한국 백혈병 환우회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혈소판헌혈을 하는데는 1시간 남짓 소요됩니다.

당시 혈액수가가 낮았던 혈소판채혈을 적십자사에서는 거의 하지 않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병원이 환자보호자에게 헌혈자를 구해오라고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3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환자 보호자가 병간호에만 매달리기도 바쁜데 헌혈자마저 구해야 하는 상황.

2. 혈액을 제대로 공급해야 할 적십자에서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는 상황.

3. 병원이 치료에 필요한 혈액확보를 직접하지 않는 문제

더불어

이렇게 병원에 가서 헌혈하기 위해서는 검사를 위해 1차례 먼저 방문을 해야하고 헌혈을 위해 또 방문을 해야했죠.

더불어

이렇게 헌혈한 사람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었습니다.

전산이 1달쯤 뒤에 적십자에 넘어갔던 시절이죠.


혈소판 문제의 해결 첫번째는 우선 적십자에서 적극적으로 혈소판채혈을 하라는 것이였고

2번째는 병원에서 환자에게 헌혈자를 구하도록 하지 말아라!

또 3번째는 사실 중간과정에서 필요했던것인데 지금은 필요없어졌습니다.

혈소판 공여자를 확보된 헌혈자가 병원에서 헌혈하지 않고 적십자사 헌혈의집에서 헌혈하도록 하는 것이였습니다.



이런것들이 정말 수년에 거쳐 여러차례 회의를 하고 병원과 적십자에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정부에 압박하고

그래서 얻어진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혈소판 공여자를 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만약, 어떤 병원에서 환자보호자에게 혈소판 공여자를 구하라고 한다면

그 의료인은 뭘 잘 모르고 지껄이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안해도 됩니다.

그래야하는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당시 병원관 적십자에서 했던 이유들. 다 말이 안되는 이유들이였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어쩔수없이 그런 말도 안되는 주장들을 한점도 있고

현실을 잘 몰라서 했던 말들인경우도 있었죠.


어쨌든 수년에 걸려 그 노력의 결실이 인권위 농성으로 다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병원과 적십자에게 약속을 받아냈고

그 약속대로 이행이 됐으니까요.



젓달라고 울지 않으면 어미는 젓을 안줍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 권익을 위해 노력하던 백혈병환우회에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환우회 2기 체제가 되면서 수장이 바뀌고 1번의 위기가 왔었죠.

다행히 그 위기를 잘 넘기고 현재 3기 또는 4기 체제까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환자 단체라는데에도 관심과 감독이 필요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위기가 올것이고

현재 거의 유일하게 환자 입장에서의 힘을 발휘하는 단첵 사라질것입니다.


이런 환자단체가 할 일은 앞으로도 많을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단체가 제약사의 지원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지원없이 운영되고

더군다나 정부에 쓴소리까지 내고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무이하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환자단체가 더 많이 나와서 환자입장에서 쓴소리 내고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을 더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헌혈/남보다 쬐금 더 아는 백혈병 이야기

che 2009. 4. 8. 03:06

1대 사무국장 강주성님

2대 권성기님

3대 현 사무국장 안기종님

 

저와 한국 백혈병 환우회와의 인연은 글리벡싸움을 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환자들 입장에서 환자의 샘명권을 얘기할 수 있는 단체는 전무했죠.

뭐...

지금도 그러하다시피합니다.

 

글리벡싸움으로 만성백혈병환우회가 출범을 했었고

당시 강주성님의 집이 사무실이였죠.

그러다 라이프오피스텔로 옮겨왔다가

잠시 신도림쪽으로 갔다가

다시 라이프오피스텔로 옮겨와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환자단체이니 우여곡절이 많을 수밖에 없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환자의 입장에서 토론하고 싸우고 제안하는 그런단체는

유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시민단체에서는 건강세상네트워크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구요.

 

어찌됐든 오랜만에 놀러갔죠

자원봉사하시는 분들과 상근자분들 열심히 일하고 계셨고

희안하게 제가 환우회에 가는 날이면 꼭 만나는 불량환자 수제씨

 

몇일뒤 입원을 해야한다고 하는데

부디 잘 치료되길.. 기대해봅니다.

담배도 좀 끊길...

 

 

이날 학 4개 접고 갔습니다 ㅎㅎ

희망의 새싹도 꽤 많아졌고

그간 했던 사진들도 더 늘어났고

점 점 더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것 같네요

 

앞으로 이런 다양한 환자 단체가 더 늘어나서 함께 연대할 수 있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