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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goes on... like an echo in the forest...

하늘의 생각이 생명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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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2012. 5. 13.

 

 

 

 

 

 

 

 

 

 

 

< 하늘의 생각이 생명의 뿌리다 >

생각을 하는 씨알에게는
그이가 자기 생각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삽니다.
땅 속에 들어가 썩어도 생명으로 폭발합니다.

속에서 주시는 ‘그이’의
이 생각을 받은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도 살고
세상을 살립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분명히는 깨닫지 못해도
그 생각이 우리 속에 줄곧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 아닌 생각이
우리 속에서 끊어질 때 우리는 죽습니다.

나무통이 아무리 커도
뿌리가 마르면 죽습니다.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 함석헌 전집 8권 57쪽 -

 

 

 

< 풀이 >
생각하면 생각이 난다. ‘하는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나는 생각’은 어디선가 주어지는 것이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하늘의 그이가 생각을 주시는 것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이가 주시는 생각은 우리 모두에게 통하는 생각이다. 사심 없는 하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심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자기도 살리고 세상도 살린다. 사심 없는 하늘의 생각이 속 생명의 뿌리다. 하늘의 생각이 끊어지면 아무리 크고 눈부신 문명과 제도도 말라 죽는다. -박재순

 

 


 

권력주의와 민영화를 반대하며

 

요즈음 이해할 수 없는 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합진보당이 선거과정에서 총체적 부정을 저지르고도 책임 있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격렬한 당파싸움에 빠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는 회사가 서울시의 반대에도 요금을 50% 인상하기로 고시한 것이다. 요금 인상의 명분은 큰 폭의 적자였다. 2011년도 감사보고에 따르면 서울시가 운임 보조명목으로 326억원을 보조했는데도 순손실이 446억원이 났다고 한다. 이렇게 손실이 난 까닭은 대주주들에게 이자로 461억원을 지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중의 정의와 평등과 복지를 내세우는 진보당이 어쩌다 저지경이 되었을까? 어쩌면 이번에 진보당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상식도 없고 양심도 없는 집단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선거과정에서 저질렀다는 부정행위와 행태들을 보면 도대체 요즈음 사람들 같지가 않다. 너무 낡고 후진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진보당이라는 이름이 부끄럽다. 진보당은 큰 위기를 맞았는데도 격렬한 당파싸움에 빠져들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도 못하고 있다. 진보당은 성숙한 정치인들이 모인 공당이 아니라 유치한 패거리 집단으로 보인다.

진보당이 왜 저럴까?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자기가 또는 자기 집단이 권력을 잡아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선거부정을 저지르고 당이 망하는데도 당파싸움에만 매달린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강박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성숙한 진보정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독단적인 권력과 권위에 매이지 않고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 시대에, 세계화 시대에 권력이 있고 권위가 있다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과 권위가 있을 뿐이다. 권위도 권력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지하철 9호선의 문제도 국민의 자리에서 보면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주주들에게 비상식적인 높은 이율의 이자를 461억원이나 주면서 적자를 핑계로 요금을 50%나 인상하는 것은 나라의 재정과 국민의 돈을 강탈하는 것과 같다. 국민의 발 노릇을 하는 지하철을 이윤추구가 목적인 사기업에게 팔아넘긴 정부가 잘못한 것이다.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전기, 가스, 교통, 토지, 도로, 수도, 공항, 항만 등과 관련된 사업은 어떤 경우에도 민영화해서는 안 된다. 자본의 탐욕과 이윤추구가 국민의 생활을 직접 위협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의 큰 흐름으로 보아서 국경이 낮아지고 관세를 철폐하고 무역장벽을 제거해 가는 것이 당연한 추세인지 모르겠다. 유럽,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중국과도 FTA를 체결하려고 한다. 이것은 자본의 세계화다. 자본의 세계화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면 국민의 삶, 특히 농민의 삶은 파괴된다. 복지를 포함한 공공의 영역을 강화함으로써 국민의 생활과 농촌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수출이 늘어나도 나라의 토대가 무너지고 뿌리가 뽑힌다.

세계화의 큰 흐름 속에서 국민의 생활을 지키고 나라의 토대를 든든히 세우는 일은 일차적으로 정치인들에게 맡겨졌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추구하되 공정하고 떳떳한 방식으로 추구해야 한다. 나와 우리 집단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 정의와 평화, 자유와 평등을 위해 권력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같은 당의 다른 동지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기꺼이 양보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을 잡을 기회를 양보하고 다른 정파가 권력을 잡도록 돕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기본이 닦여지지 않은 사람은 정치판을 떠나야 한다.

국민들은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검소하고 실속 있게 살면서 생활공동체의 영역을 확대해 가야 한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자치생활 공동체와 공공성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확립해 가야 한다. 정치인들의 사명과 목적은 국민을 섬기고 받드는데 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의 목적은 국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자본의 유혹에 빠진 정치인은 국민의 삶을 자본가들에게 팔아넘긴다. 권력과 자본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칠 수 있는 정치인만이 세계화의 높은 파도 속에서 국민의 생활을 지키고 나라를 바르게 이끌 수 있다.

-박재순

 

 

 

 

 

 

 

< 미완성 철학 >


무슨 사상, 무슨 신조라 하는 것은
다 완결을 보지 못한 것들이다.

어떤 뜻에서는 어떤 사상이든
모두가 영원한 미정고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이나 사상에 대표라는 것은 없다.
철학이나 사상이란

자기가 사색하고 생활해본 정도를
발표한 소견(所見)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상 어떤 종교를 내세워
이것을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면서

완전고(完全稿)처럼 떠들지만
실은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자기들의 사상이나 신조가
완전고라고 떠들고 내려온 것이 인류역사다.


- 다석 어록 83~4쪽 -

 

 

< 풀이 >
유한한 육체 속에서 무한한 절대 ‘하나’를 추구하는 삶이 완성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에 이르러 ‘하나’를 실현하려는 사상과 철학, 종교와 신학도 완성될 수 없다. 사상과 종교를 교조화해서 그것만을 고집하면 삶을 잘못 이끌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제소리를 해야 하듯이 저마다 제 철학, 제 종교를 가져야 한다. 사람마다 하나(하나님)에 대한 제 생각과 체험으로 제 종교와 철학을 닦아내야 한다. 제 종교와 철학이라고 해서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사상과 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저마다 속의 속에서 ‘하나’(하나님)를 생각하고 체험하면, 제 마음과 삶을 울리는 저다운 제소리가 나오지만 제소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을 울리고 ‘하나’로 이끈다. -박재순

 

 


 

민주화에 대한 멸시와 조롱

 

일진에게 폭행당한 한 중학생이 “나 어제 일진한테 민주화 당했어”라고 말했다. 요즈음 학생들은 외모가 남다르게 못 생긴 친구들한테도 ‘민주화 됐다’는 식으로 말한다. 서울의 한 고등학생은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을 자주 혼내거나 심하게 통제할 때 ‘담임이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민주화 먹인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말했다.(한국일보 4월 25일)

어쩌다가 민주화가 이렇게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는지 기가 막힌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던가! 그런데 왜 민주화가 이렇게 웃음꺼리가 되었을까? 형식적이고 절차적으로만 민주화 되고 내용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들만 더욱 부자가 되고 국민 대다수는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청년들은 실업자가 되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청소년들은 대학입시 경쟁교육으로 폭력과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입시지옥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모든 현상은 반민주적인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도 공허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도 우습다. 경제와 문화, 교육과 종교 어디에도 실질적인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헌법에서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있지만 경제현실은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멀다. 교과서는 자유와 평등을 가르치지만, 학교현장에서는 1등만 대접 하고 일진만 판치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에게 민주화란 말이 가소롭게 들리는 게 당연하다. 이런 경제와 사회와 교육의 현실에서 민주화는 학생들에게 뒤쳐진 사람이 되고 못난이가 되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억압받고 무시당하는 사람이 떳떳이 주인으로 일어서는 것이 민주화다. 그런데 짓눌리고 무시당하고 못난이가 되는 것을 민주화로 여긴다는 것은 민주화에 대한 기막힌 풍자이고 조롱이다.

우리 사회의 껍데기만 민주화 되고 알맹이는 반(反) 민주가 되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치열한 생존경쟁을 강요하는 산업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1등만 살아남고 최고만 인정하는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인 것 같다. 꼴찌와 1등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민주화는 공허한 것이고 멸시와 조롱을 피할 수 없다.

예수가 말했듯이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되는 사회를 이룩하지 못하면 진정한 민주화는 없다. 1등과 최고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생활양식과 방법을 씨알들이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씨알들의 창의력과 실천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이끌어갈 책임은 아무래도 정치인들에게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각 부문에서 구체적으로 민주화를 실현해가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찾아보아야 한다. 더불어 사는 공정한 사회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국민과 함께 움직여 나갈 인물을 구해야 한다. 찾으면 반드시 발견할 것이고 구하면 꼭 얻을 것이다. -박재순

 

 

 

 

광복지사길(효창공원) 순례보고

2012-05-11

 

| 광복지사길(효창공원) 순례보고 |

지난 3월 함석헌길1(원효로 자택터)를 걸으면서 정했던 효창공원의 애국독립운동가 묘소순례(광복지사길)에 14명의 순례자가 참가하였습니다. 사당 의열사에 들어가 김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이동영 차리석 조성환 일곱분의 영정 앞에 섰을 때에는 자못 숙연했습니다. 당연히 함께 모셨어야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해 그의 자리가 비어있어 우리 순례자들은 송구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백범이나 이승훈 안창호는 유영모 함석헌 보다 윗 연배로서 씨알의 길을 예비한 분들입니다.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삼의사는 같은 연배라 할 수 있습니다. 애국 열혈지사들이 몸 바쳐 피흘렸기에 지금 우리 독립된 나라에서 씨알의 삶을 누리며 유영모 함석헌 두 선생님의 씨알사상을 이어 갈 수 있습니다.


백범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유학자 고능선의 아래 가르침이 순례자의 가슴에도 반향합니다.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벼랑에 매달려 손을 놓는 사람이라야 대장부라 할 수 있다.

得樹攀枝無足奇
懸崖撒手丈夫兒

<사진설명, 순서대로>

삼의사 묘소에서
의열사 참배
의열사 영정
의열사 앞에서

 

| 6월 씨순길(함석헌길2) 안내|

다음달 6월2일 순례는 함석헌 선생님의 쌍문동집을 찾아 갑니다.

우이령길 6.3킬로와 쌍문공원길 2.7킬로의 평탄하고 상쾌한 숲길을 걷습니다.
구파발역 1번출구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우이령길 들머리인 교현리로 이동합니다.
북한산과 도봉산 사잇길로 천천히 걸어 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쌍문동집은 함선생님이 임종한 마지막 주소지이며 현재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원효로 자택에서 옮겨 심은 나무들이 심겨져 있으며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기 전의 묘비도 있습니다. 묘비에는 선생님의 시 ‘나는 빈들에 외치는 소리’ 일부가 새겨져 있습니다.

순례를 시작하는 우이령길은 군사지역으로 사전에 출입신고를 해야 합니다.
답사를 다녀와 자세한 안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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