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규의여정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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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생

2019. 9. 6.




14. 죽어도 있지 못할 맺힌 國民政府


단독주택 38평을 87백만원에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에 빼앗기고...

인천 남구 용현동147번지-137 대지 38평 건평18평 이것이 분명 내앞으로 등기되어 있는 내집이다.

1999년 여름 인천 남구청에서 우리집을 관통하여 소방도로를 낸다고 하며 지적 측량을 해갔다.


(1990년 시몬스가 진돗개 덕실이와 노는 모습

덕실이는 인천 용현동 집과 김포 집에서 13년정도를 살고 死別했다)


이후로 아랫집에 건축하는 光州 고향인 오사장이 우리 대문앞 골목길에서 삼결살 파티 할때나,

만날때 마다 기분 좋으라고 덕담을 좋게 해준다.

박소장님 돈 벌게 되어 좋으시겠습니다. 재수가 좋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 오지요


사실 요사히 추세로 보면 건물이나 토지를 수용할때 시세 보다 상당히 많은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건축업을 하는 젊은 오사장(오사장집은 담장 한줄만 헐려나감)은 우리집을 엄청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보상 받는것 자신이 있으니 자기에게 집을 팔라는 것이다.

나는 그말이 덕담으로 하는 농담으로 알고 내심 즐거워했다.

그도 그럴것이 대지가 38평이니 최소한 38평 아파트는 물론이거니와 가족수대로 이주비와 별도로 부속건물이나

나무의 이식비 까지도 보상이 되었으니 동리 주민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때 차라리 오사장에게 1억이라도 받고 팔았어야 했다)

나는 많이 따져 보았다.

l  대지38평공시지가 + 알파 = 1

l  건물 등기평수 18* 200만원 = 3,600만원

l  이주비 5 500만원 포함 총 1 4 1백만원(당시 인천시내 38평 아파트 가격에 못미침)이다.

그런데 이건 분명히 떼돈이 아니지 않는가?

30평이던 38평이던 아파트 분양가에도 못 미치지만 어차피 나는 아파트는 싫으니

그냥 38평 대지에 20평 정도 집을 지을 정도만 보상을 받으면 되므로 많이 주면 좋겠지만 1 4천만원은 나올것이다

하고 감정원이 찾아와서 감정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02 29

남구청 보상팀에서 나와 1차 보상 협의를 하면서 1 4천에서 다운하여 최소한 1 2천을 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남구청 보상팀은 턱도 없다고 하며 그들의 계산한 표면에 나타난 자료를 보니,

l  공시지가 145만원/38 = 5,510만원,

건물 20년이 넘었으므로 많이 처서

l  평당 90만원/18= 1620만원,

l  이주 보상비 700만원 

l  합계 7,830만원

이게 현행법으로 줄수있는 최고의 보상이란다. ~~~~??


2000 3 3 김대중대통령에게 나는 많은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38평의 땅에 18평을 집 지을 돈만 달라 아니면 인천에 아무 곳이나 대지 38평에 건물 18평을 지어준다면

조용히 집을 비우고 나가겠다.

라고 탄원서를 배달 증명으로 우송하였고,

2000년 3월 7 청와대에서 대통령 김대중 명의로 회신이 왔다.

현행법에 의하여 박문규님의 재산적 피해가 없도록 적의 조치하라고 남구청에 지시를 했다

라고....


2000 3 17

남구청 민원실을 방문하여 수용되는 집에대한 보상에 대하여 위와 같은 내용의 질의를 남겼고,

2000년 3월 22 남구청에서

법에 의하여 책정 된것이라 어쩔수 없다. 공익 사업이니 애국적인 차원에서 양보 해달라."

라고 회신이 왔다.


2000 3 25

공영 방송이라고 자처하는 mbc 보도국에 집과 토지의 강제수용과 억울한 보상건으로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알아보겠다고 한 후


2000 3 27

mbc는 이 문제는 인터뷰가 곤란하다. 미안하다."

연락이 왔고 같은날 I TV 임도현 기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바 알아보고 연락하기로 하고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후 약간의 공백기간이 흐른 뒤,


2000 4 21 14:00

건물 평가사와 남구청 직원이 찾아와 철대문, 정화조, 발코니 난실, 장독대, 계단 등등을 메모해 가고


2000 5 4

건축물 관리대장을 피해자인 우리보고 발급 받아다 달란다.

(구청에서 동사무소에 지시해서 해도 되는일을 민원인보고 떼어 오라고 한다 ...C 8 ㅅ ㄲ ㄷ) 아무튼 약자인만큼 

더 나은 보상을 기대하고 시키는데로 열심히 움직였다.


2000 5 22

남구청에서 호출하여 사뭇 기대감을 갖고 달려 갔더니

양옆의 10평과 8평을 인수 못하겠다. 수용되는 가운데 부분의 20평만 보상을 받고

건축 허가를 내줄테니 8평과 10평에 집을 지으라한다

그 소릴 듣는 순간 가슴이 터지고 피가 거꾸로 돌며 눈이 뒤집어 지고 숨이 막혀 보상과장의 책상을 들었다 놓으며 한 마디 했다.


~ C 8 새끼야 이게 네놈의 집이라면 그렇게 해 줄거냐? 이런 개새ㄲ 들이 있나?
~ 이 개만도 못한 XX~
내가 무리한 보상을 요구 했냐? 내 땅 38평에 내 집 18평만 달라고 했지
보상 할 돈도 없는 것들이 공익 사업을 왜 벌려 엉?
야 임마 구청장 나오라고 그래
구청장과 네놈들 집을 팔아서라도 내 집 보상을 하던가 아니면
소방도로를 취소해~ C~ 8 개새ㄲ들아~~"


구청 전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처다 보며 눈이라도 마주 칠가봐 슬슬 피하는것 같았고 겁을 내는 듯 했다.

(당시 수용되는 내 집의 상세도)


보상과에서 개GR을 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구청장실로 쫓아 올라가 문에 있던 비서를 밀치고

민ㅂㄱ 구청장에게 달려 들어 갔다.


공익 사업도 좋지만 국민의 재산도 지켜주는것이 구청장이 할 일이요
이런 식이면 나는 보상이고 나발이고 버티고 안 움직일테니 어디 소방도로 잘 만들어 보시오

손님과 이야기하다 서슬이 퍼렇게 뛰어 들어온 나에게 전 후 사정을 듣더니


, 그렇게 되었습니까?
박선생님 담당 과장 불러서 좋게 하도록 하겠으니 화를 참으시고
차근 차근 이야기 합시다

보상과장을 불러 차초지종을 듣는척 하며


내가 봐도 좀 잘못된 것 같군요. 다 수용해서 보상하는 것으로 추진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얼마후 있는것 없는 것 다 붙혀서 8,700만원을 보상이라고 받아 들고

아내와 수 많은 날을 인천 변두리와 외곽 근교를 돌아 다니며 찾아 보았으나 이 돈으로는 마땅하게 살만한 집이 없었다.

줄여 가지 않으면 도저히 방법이 없었기

벼락 맞을 김대중 정부의 독재에 품고 시골(김포)로 방향을 돌릴수 밖에 없었다.


퇴직금에서 3,000만원을 보태 11500만원을 들여 이 동네 주민들 조차도 들여다 보지 않고 있는 경사진 토지에

구옥이 하나 있고 거위를 기르던 냄새 나고 황폐된 땅을 매입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큰일이 생겼다.

땅을 구입할 때 수리를 하면 들어가 살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산 집이지만 집수리를 하러온 목수가


도저히 수리가 불가합니다. 신축 할 수 밖에 없습니다한다.

아내가 들었을 땐 그 소리가 청천 벽력이었다.

부동산도 그랬고 겉 모습이 수리가 가능하여 수리해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땅은 샀지만 돈 한푼 없이 집을 어이 짓는단 말인가?


2000 9월 아무리 싸게 해도 평당 건축비 170만원이라고 하는데.. 5천 만원을 어이 해야 한단 말인가?

대한민국 헌법에 분명히 국민이 주인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나는 김대중 정부, 국민의 정부에게 이렇게 속절없이 약탈 당하고 말았다.

얼마나 힘들게 마련한 내 집인데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이렇게 참담하게 짖밟혀야 한단 말인가?


이주비 포함해서 돈 8,700만원을 받아 쥐고 한지에 나 앉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내가 용현동의 이 집을 마련하기까지 피땀으로 흘리며 쏟아온 눈물이 얼마이던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한들 알아주지 않겠지만 김대중이 있는 청와대로 달려가 내 배를 칼로 열고

애타는 창자를 꺼내 김대중의 면상에 뿌리고 싶었다.

나도 국민으로서 행복할 권리가 있다. 국민의 정부야 ~” 하면서...



(고추가루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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