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바로알기

케엑 2013. 5. 29. 09:38

 

 

 

           북한의 문화재 ㅡ 안악고분

 

   황해남도 안악군 일대에 있는 고분군으로서 제1호, 제2호, 제3호 등 3개의 고분이 각각 국보 제26,27,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악군 대추리에 위치하고 있는 안악 제1호고분은 4세기말의 고구려시대 벽화고분이다.


    1949년 6월 북한의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가 발굴했는데 고분의 크기는 직경이 약3m이고 현실크기는 남-북 2.8m, 동-서 2.54m, 높이 3.35 m이다.

   안악 제1호고분은 무덤안길, 현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정은 평행3각고임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4벽과 천정에는 정교하게 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다. 4벽에는 건물, 사냥하는 그림, 군중의 행진, 부녀들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으며 천정에는 사람의 머리를 가진 짐승과 날개와 발을 가진 물고기, 신선 및 북두칠성과 불꽃무늬를 비롯한 여러가지 무늬가 그려져 있다.


   안악 제2호고분은 제1호고분 북쪽 자그마한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5세기말 6세기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의 전형적인 석관식고분으로서 언덕지대의 일부를 깍아내고 그 속에 무덤칸을 만들었다.
  무덤안길, 현실, 동벽의 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정 역시 평행3각고임식이다. 현실의 벽은 막돌로 쌓은 다음 겉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인물풍속도를 그렸다.


   안악제 3호고분은 안악군 오국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4세기 중엽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은 고구려고분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클 뿐아니라 벽화의 내용이 풍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덤은 남향으로 언덕을 깍아내리고 잘 다듬은 큰 판돌로서 견고하게 쌓았는데 문칸, 전실, 전실 동쪽의 두개의 곁칸, 전실회랑, 현실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회랑천정만 평행고임식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천정은 평행3각고임으로 되어있다.


    구조는 문칸과 전실사이에는 돌문이 있고 전실 동서의 두 곁칸과 회랑입구에는 4각 기둥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서쪽곁칸과 현실은 다른 칸들에 비해 한단 높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이 무덤은 지상건물과 같이 돌기둥과 돌문 등을 세워 무덤안을 웅장하게 꾸린 것이 특징이다.
벽화는 벽면과 천정, 돌기둥 등에 그려져 있는데 주제 역시 인물풍속도이다.
안악 3호고분은 1호고분보다 앞선 1949년 4월에 발굴되었다.

 

 

 

 

 

복원 전 벽화

 

 

   황해도 안악군 오국리에 있는 안악3호 고분 전실 서벽의 귀인도. 4세기 중엽. 백라관(白羅冠)을 쓰고 붉은 맞섭 겉옷을 입고 정좌한 모습. 오른손에는 도깨비 머리를 그린 털 부채를 들고 있다. 주인공 옆에는 종이를 펴들고 무언가를 보고하는 듯한 사람과 붓을 들고 적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주인공이 높은 지위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을 가장 크게 그리고, 그 옆의 남자들은 조금 작게, 또 시중을 드는 여자들은 더욱 작게 묘사하여 신분의 차이에 따른 스케일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드리어진 커튼이나 주인공의 옷 주름에는 흔히 태서법(泰西法)이라고 하는 서양식 주름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중국과 서역을 통한 서양과의 문물교류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악 제3호 고분의 귀부인상. 4세기 중엽. 큰머리에 구름 당초무늬를 놓은 자줏빛 긴 저고리를 입고 누런 끝동의 흰 한삼을 달아 손을 감추고 있다. 오동통하고 탐스러운 여인의 모습은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귀부인의 전형적인 용모이다.

 

 


    안악 제3호 고분의 부엌, 고깃간, 수레 창고 그림. 4세기 경. 이 그림은 주인공이 생전에 생활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생활을 보여주는 이러한 풍속화는 회화적인 가치는 물론이고 생활상을 밝히는 생활사 자료로서도 매우 귀중하다. 깔끔한 맞배지붕의 기와 모습이나 치미 장식의 모습, 우리에게도 눈익은, 부엌에 걸린 시루 등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고깃간에는 돼지, 소와 함께 개고기처럼 보이는 고기도 걸려 있는데 이 그림은 우리 음식 문화전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기를 거는 고리는 오늘날에도 푸줏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고리 모양이다. 부엌 앞에는 예부터 사람과 가장 가깝게 지낸 동물로 동서양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개도 두 마리 그려져 있어 풍속화적인 재미를 더해주며 더욱 실감나게 그들의 생활을 엿보게 해준다.

 

 


안악 제3호 고분의 수박도. 상투를 머리 뒤로 묶고 아랫도리 일부를 가린 채 금방이라도 맞붙을 기세를 보이고 있다. 역사(力士)들의 몸과 동작이 다소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안악 제3호 고분의 의장기수도.

 

 


    안악 제3호 고분 회랑 동벽의 대행렬도. 4세기 중엽. 백라관을 쓰고 수레를 탄 주인공이 고구려 왕을 상징하는 의장기를 앞세우고 문무백관, 취악대,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나아가는 모습.

 

 

 

 

 

   동북아역사재단 작성디지털 복원도

 

 

 

행렬도 이미지

 

 

묘주 이미지

 

 

 

   묘주 부인

 

 

 

 

   장하독1, 2

 

 

 

 

 

 

 

 

 

마굿간

 

 

 

 

 

 

 

 

 

 

 

 

                                                                                                                                                  방아간

 

 

 

 

 

 

주방 차고 등 이미지

 

 

우물 이미지

 

 

 

                                                                                                                                                              악대, 뿔피리를 부는 사람

 

 

 

 

 

 

 

 

 

 

 

 

 

 

 

 

 

 

 

 

    수박희와 부월수                                                                                                                                                        

 

 

 

 

                                                                                                                                                              부월수

    의장대열....                                                                                                                                                

 

 

 

 

 

이영상은 유투브 dogdolians님이 올리신 영상입니다 .

 

 

 

안악3호분은 북한 황해남도 안악군에 위치하고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1949년에 발굴 조사되었으며, 고국원왕 때인 서기 357년에 만들어졌다.
안악3호분의 벽화는 다양한 화면 구성과 유려한 표현방식으로 당시 고구려의 생활 모습이 매우 잘 표현된 벽화 중 하나로 꼽힌다. 묘주부부 초상을 비롯하여 대규모의 행렬도, 주방장면을 그린 실내 생활도, 씨름 및 가무 장면, 문지기, 그리고 연꽃, 귀면 등의 갖가지 장식 문양들이 풍부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무덤 주인공을 고국원 왕으로 보는 입장과 동수로 보는 입장의 오랜 논쟁으로 유명한 무덤이다.

 

 

 

 

 

고분 인물상에서 디자인한 한복 원류

 

 

    바로 한복이다.

운현궁에서 삼국시대의 고분벽화를 근거로 복원한 복식으로부터 조선시대 평상복에 이르기까지 한복의 문화를 되새겨보는 행사를 가졌다.

 

    삼국시대의 복식은 고분벽화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안악고분과 무용총에는 당시 고구려인들이 즐겨 입었을 의상들이 그려져 있다. 삼국시대의 벽화들의 특징은 남녀 구분없이 하나같이 긴 저고리를 입었다는 것이다. 옷에는 고름대신에 허리띠가 둘려있는것도 특징이다.

 

    삼국시대의 복식은 소박한 반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의복에 많은 문양을 수놓게 된 듯하다.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 남자들의 관복이 화려해졌다. 조선시대 왕의 복식으로는 면복과 홍룡포, 황룡포를 선보였고 왕비의 복식으로는 원삼, 당의, 적의가 선보였다.

화려하기만 한 왕실의 복식과는 달리 일반 평민들의 평상복은 화려함보다는 수수해보였다.

 

   벽화에서부터 현대의 실생활까지 이어지는 한복을 알아보자.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의 왕비 복식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춤추는 여인의 복식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의 소녀음악인 복식

 

 

 

 악기 연주자의 복식

 

 

 

 평서민 부인복

 

 

 

 귀부인복식

 

 

 

 고구려 왕비 복식

 

 

 

 고구려 왕의 복식

 

 

 

 백제 복식

 

 

 

 백제 복식

 

 

 

 백제 왕의 복식

 

 

 

 신라 복식

 

 

 

 신라왕의 복식

 

 

 

 당나라의복

 

 

 

 당의

 

 

 

 당의

 

 

 

 긴저고리

 

 

 

 긴저고리

 

 

 

 원삼

 

 

 

 

 긴저고리

 

 

 

 자적원삼

 

 

 

 연두원삼

 

 

 

 

 

 

 조선시대 적의

 

 

 

조선시대 왕의 면복

 

 

 조선시대 평상복

 

요즘엔 개량한복도 많이 선보이고 있어 한복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의복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한다거나 하기엔 낮설기만하다. 비싸게 산 한복을 일년에 많아야 다섯번만 입고 늘 장농에 넣어둔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패션쇼에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닌 생활속에서 거리낌없이 입고다닐 한복이 디자인된다면 좋겠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멋진 문화가 될것이다

 

 

 

그림 속의 칼

 

 

 



                                                                                        안악 3호분 동쪽회랑 동벽행렬도

 

 

          출전: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고구려편)>, 서울대출판부, 51쪽
          4세기 고구려 시대의 고분 안악 3호 무덤 벽화 그림이다.

 

 


 

 

 

대가의 안채 생활, 안악3호분 벽화


전호태(울산대 역사문화학과)


안채는 바깥채에 대비되는 명칭이다. 바깥채는 흔히 사랑채로 불린 바깥주인의 주된 거처로 공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 공간이고, 안채는 안주인이 관리하는 가정생활의 중심공간이다. 안채의 주인은 저택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대내적 존재이고, 바깥 세계와의 관계를 꾸려나가는 대외적 활동은 사랑채 주인의 몫이다. 일상적인 생활공간이 구분되는 바깥주인과 안주인의 만남은 안채 깊숙이 자리 잡은 안방에서 만들어내다시피 한 ‘한가한 시간’에만 이루어진다. 사실상 한 지붕 두 가족인 셈이다.

사랑채니, 안채니 하는 용어에서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정경을 떠올린다. 박물관의 사랑채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활용품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한 지붕, 두 가족을 주제로 한 위의 안채, 바깥채 이야기는 고구려 귀족의 저택구조와 생활방식에 관한 것이다. 안악3호분과 덕흥리벽화분에서 확인되는 귀족 저택의 공간 구조와 기능 구분에 대한 설명이다.

안악3호분은 발견 당시부터 무덤구조, 벽화, 墨書 모두 화제의 대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고구려 초기 생활풍속계 벽화고분이다. 앞방과 좌우곁방, 널방, 회랑이라는 비교적 복잡한 평면구조를 지닌 안악3호분에서 고구려 귀족 저택 안채의 공간구성 및 운용방식은 주로 왼쪽(동쪽) 곁방 벽화의 제재 배치를 통해 확인된다. 왼벽(동벽)의 부엌, 고깃간, 차고, 앞벽(남벽)의 외양간, 마굿간, 방앗간, 안벽(북벽)의 용드레우물. 안채를 중심으로 안뜰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기 마련인 부속건물 및 시설들이다.

조리방과 상차림방으로 나뉜 부엌에서는 시녀 세 사람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음식을 조리하고 상차리기에 열중하고 있으며,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만들어진 고깃간 근처에서는 두 마리의 개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림1)안악3호분 앞칸 왼쪽 곁방 벽화: 부엌

 

넓은 차고에는 둘레가 트인 주인용 차와 둘레를 가린 부인용 차가 나란히 놓였고 차를 끌어야 할 소들은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고 있다. 사냥이나 전쟁에 나갈 때에 주인을 비롯한 바깥채 사람들이 타고 나갈 말들은 마구간에 매어 있고 마구간 아래 나무방책 앞에서는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시동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중이다. 방앗간에서는 시녀 두 사람이 곡식 찧기에 바쁘고, 용두레우물에서는 두 시녀가 물을 길어 항아리와 구유에 담는 중이다. 넓지 않은 곁방 벽면 각 방향에 묘사된 장면들이지만 고구려 귀족 저택 안채에서 이루어지던 일상의 한 순간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안채의 주인은 오른쪽 곁방 앞벽(남벽)에 표현되었다. 장방 안 평상 위에 비스듬히 앉은 부인 좌우에는 세 사람의 시녀가 둘러 선 채 시중들고 있다. 화려한 복식과 머리를 한 부인의 얼굴에는 대가 안채 주인다운 위엄과 여유가 배어 있다. 안채 주인인 부인의 얼굴이 향한 오른벽(서벽)에는 바깥채의 주인인 남편의 정면 좌상이 자리 잡고 있다. 머리에는 冠을 쓰고 오른손에 鬼面의 麈尾를 쥔 남주인의 좌우에는 세 사람의 신하와 한 사람의 시녀가 둘러 서 주인에게 무엇인가를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적거나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다. 笏을 쥔 신하 곁에는 門下拜, 簡을 든 신하 곁에는 省事, 붓과 문서를 든 신하 곁에는 記室이라는 墨書詺이 있다. 이들 묵서명은 신하들의 직무와 신분을 알게 할 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을 거느리는 주인의 신분과 지위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안악3호분 오른쪽 곁방 벽화는 안채 주인과 바깥채 주인의 일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동시에 안주인과 바깥주인, 남편과 부인이 모처럼 함께 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남주인은 직속된 신하들의 보고를 받으며, 업무를 판단하고 지시하는 공적인 공간과 영역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이고, 여주인은 저택의 각종 시설, 남녀시종, 경제 전반의 관리에서 잠깐 손을 놓는 시간이다. 두 사람만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때가 내세 삶의 공간 속에 재현되면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덕흥리벽화분 널방 벽화의 배치로 볼 때, 고구려 귀족의 안채에는 마굿간이나 외양간 외에 다락창고도 세워졌고 연못과 정원도 꾸며졌다.

 

 

(그림2)덕흥리벽화분의 벽화배치로 본 저택 구조

 

다락창고는 문헌기록에 고구려인이 집의 부속시설로 마련하였다고 전하는 桴京이다. 연못 근처에서는 七寶供養과 같은 불교적 행사도 개최되었으며, 저택의 안과 바깥으로 펼쳐진 넓은 뜰에서는 馬射戱와 같은 훈련을 겸한 놀이도 이루어졌다. 어떤 이들은 안악3호분 벽화를 보면서 고구려 귀족의 저택 안으로 들어가 1,500년 전 선조들의 바쁜 일상과 마주치는 듯이 느낄지도 모른다.

 

 

 

 

 

 

마굿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