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忠武公) 남이(南怡)장군. 창녕 남휘, 정선공주 묘역(昌寧 南暉, 貞善公主 墓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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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2020. 7. 4.

        

충무공(忠武公) 남이(南怡)장군 동상은 남이장군의 후예인 의령 남씨 의산공파 자손들의 집성촌인 경남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충무사(忠武祠)에 있다.

충무사는 남이장군의 조부인 태종의 부마 남휘 · 정선공주 묘역(경남도문화재자료 236호) 100m 옆에 3,600평방미터의 부지위에 건립된 사당으로 이익공 맛배 지붕 한식건물로 평국문(平國門)과 충의문(忠義門)을 포함 7개 건물로 구성 되어 있다.

남이(南怡)장군은 1443년 (세종25년)에 부마 남휘(南暉) · 정선공주(태종4녀)의 장손으로 태어나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1467년(세조13년) 이시애 난을 진압하고 건주야인을 정벌하여 적개공신 훈1등으로 공조판서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었고 26세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한1467년 9월 27일 혜성이 나타나자 당시에 숙직을 하던 남이가 춘추좌씨전의 고사를 인용하여 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이 가고 새것이 올 징조)라 한 것을 유자광이 엿듣고 ‘광망이 희면 장군이 반역한다.’고 강목(綱目)의 주(註)를 왜곡하여 고변하여 1468년 10월27일 강순과 장용대 장졸들과 함께 처형 되었다.

남이장군 기마동상은 2018년 4월 28일에 건립되었고 이시애 난을 평정하고 압록강을 건너 오랑캐를 정벌 할 때 모습을 조영한 것이다. 공(公)이 타고 있는 적마(赤馬)는 17세에 선전관으로 북방을 순찰하고 이시애 난(亂)과 건주야인 정벌 등 10여년간 전장(戰場)을 함께 누빈 애마 총(聰)의 모습이다. 공(公)은 찰갑(札鉀)을 입고 투구이마가리개에 우상대장(副元帥)을 표시하는 부원(副元)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투구위 보주(寶珠)에는 군령권을 상징하는 삭모(槊毛)가 달렸다. 오른손에는 세조 임금이 내려주었다는 용천검(龍泉劍)을 들었 등 뒤에 8척 장초자(長梢子:철퇴)를 메고 왼쪽에는 각궁(角弓)과 편전(片箭),궁대(弓袋)를 포함한 동개일습(茼箇一襲)을 갖춘 조선 기마무장(騎馬武裝)의 전형(典型)적인 모습이다. 동상의 재질은 청동이고 높이는 좌대포함 10미터, 길이는 7미터, 무게가 약 3톤에 이른다. 동상의 주변 대장기와 군령기 등 16개의 깃발이 있다.

 

창녕 남휘, 정선공주 묘역(昌寧 南暉, 貞善公主 墓域.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6호. 경남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산1-2번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소간(昭簡) 남휘(?∼1454)의 묘소이다.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와 결혼하여 의산군에 봉해졌으며, 세종 즉위년(1418)에 동지총제가 되고, 이듬해 판한성부사가 되었다. 1425년 평양선위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3차례의 선위사를 역임하였다.

현재 묘역은 그와 공주의 묘가 쌍분으로 되어 있으며, 봉분 아랫부분에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주위에는 묘비와 망주석 등 기타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다.(출처 : 문화재청)

 

남휘(南暉)는 의령 남씨(南氏) 칠세손으로서 영의정을 지낸 남재(南 在)의 손자이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 효성이 지극하 고 인품이 출중하여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태종대왕의 4녀 정선공 주(貞善公主)와 결혼을 하였으므로 태종의 부마이 되었다. 남휘는 세종때 선위사(宣慰司)를 4차례, 유후사(留後司)례 7차에 걸쳐 활동 하였으며 세종 18년에는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선산군(宣山 君)으로 관직을 제수하였으며 단종 2년에는 소간(昭簡)의 시호(諡號) 를 받고 충무공(忠武公) 남이장군(南怡將軍)의 할아버지이신 남휘의 묘는 원래 경기도 평택군 동천리 사후동에 있는 것을 후손이 1974 년에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산 1번지에 이장하였다.(출처 : 창녕군, 1997, 우리고장의 문화유적)